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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바실리 지방에서 채취한 찻잎입니다. 향이 좋고 은은한 단맛이 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죠. 좋은 물건이니 한 번 드셔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주교님.’

   “주니까 마셔주긴 할게. 꼴통 주교.”

   

   나는 매일 같이 루시의 입을 틀어막고 싶단 생각을 하며 살지만 오늘만큼 그 생각이 간절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요한은 적으로 만들면 너무도 귀찮은 인간인지라 도발을 하고 싶지 않은데 메스가키 스킬이 강제로 도발 커맨드를 눌려버리니 실시간으로 위에 구멍이 나는 것만 같았다.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 겉으로 긴장한 게 티가 안 나서 망정이지.

   

   스킬의 보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을 거다.

   

   난 일단 주교가 권유한 대로 차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분명 좋은 차인 것 같긴 한데 방 안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그 맛이나 향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영애님. 일단은 아그라의 저주를 정말 해주하셨는지부터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걸 하러 온 거잖아. 빨리 해.”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요한이 눈을 감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중얼거리가 나의 주변에 몇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은은한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마법진의 안에는 나 같은 무지랭이는 무슨 의미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을 품고 있었다.

   

   하르네의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저 마법진의 문양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던데.

   

   이 복잡한 마법진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

   

   그에 감탄하던 중 갑자기 내 주변을 돌아다니던 마법진이 사라졌다.

   

   “정말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셨군요.”

   

   요한의 말에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보좌하는 사제의 것이리라.

   

   “영애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찌 해주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듣고 싶어? 하핫. 좋아. 간절해 보이니까 특별히 말해줄게.”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어찌 이야기를 해야 할 지는 생각해두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내 말이 어떻게 번역이 될지 모르겠단 것이다.

   

   오늘 따라 이상할 정도로 메스가키 번역이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계시를 받았어요.’

   “계시를 받았어.”

   

   “신의 말씀을 들으셨다는 이야기입니까?”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메이스를 꺼내 본래의 크기로 되돌렸다.

   

   빈손에서 갑작스레 메이스가 튀어 나오자 요한이 눈썹을 살짝 들었고 요한을 수행하던 사제가 다급히 요한의 옆으로 달려와 수호의 마법을 펼쳤다.

   

   내가 요한의 대가리라도 깰 거라고 생각한 건가?

   

   평소 루시가 지닌 업보가 가볍지 않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좀 무례하네.

   

   귀족 영애를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행동이잖아.

   

   내가 미간을 찌푸린 것과 요한이 거센 목소리를 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펠킨 사제. 이 무슨 무례한 행위입니까. 빨리 마법을 거두십시오.”

   

   단호한 그 말에는 단순한 언어 이상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사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재빠르게 마법을 거두고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교님. 루시 알른 백작 영애님.”

   

   이걸 빌미로 트집을 잡는다면 대화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루시의 입에서 상상 이상으로 거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으음. 이번엔 관대하게 넘어가 주자.

   

   어차피 하루 이틀로 끝날 관계도 아니고 빚을 지워둔 셈 치자고.

   

   ‘이 무기는 루엘의 메이스입니다.’

   “루엘의 메이스. 꼴통 주교도 이건 알겠지?”

   

   “…이게 그 성인으로 지정되신 루엘님의 메이스란 말입니까?”

   

   ‘진짜에요.’

   “거짓말 같나 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순순히 메이스를 건네주자 루엘은 귀중품이라도 다루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메이스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무슨 보석을 감정하듯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대충 봐도 짧은 시간 내에 끝날 것 같진 않네.

   

   요한이 감정을 마치는 걸 기다리며 찻잔을 든 순간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여아야. 본인이 성인으로 지정되었느냐?>

   ‘모르셨어요?’

   <말해준 적 없지 않으냐!>

   

   그야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이백년 전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웠던 영웅들은 다 사후에 성인으로 지정됐잖습니까.

   

   어린애한테 물어봐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할배가 모를 줄은 몰랐죠.

   

   <본인이 성인이라니 놀랍고도 과분한 일이구나.>

   ‘세상을 구했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에요?’

   <허. 네가 그런 말을 해 줄 줄은 몰랐구나.>

   ‘네? 왜요?’

   <너는 나를 한 번도 존중한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평소에 얼마나 할배를 대우해 줬는데!

   

   짐작이 가는 부분이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게임의 스토리를 아는 나는 할배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된 길을 걸었는지 아니까.

   

   “진품으로 보입니다만. 이를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루엘의 메이스는 분명 오래 전에 사라졌었는데.”

   

   자길 좀 더 존경하라는 할배와 투닥거리고 있던 나는 요한의 목소리를 듣고서 현실로 돌아왔다.

   

   ‘말했잖아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계시를 받았다고. 아무리 늙었어도 방금 말한 걸 잊으면 곤란한데.”

   

   루엘의 메이스가 준 충격이 큰 것일까.

   

   요한은 중간중간 내가 도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미리 메이스를 보여주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간에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그만큼 메스가키로 번역되는 말들이 거칠었으니 말이다.

   

   루엘의 시련을 돌파했던 일, 그리고 에반스 마을에서 저주를 해주했던 이야기를 각색해서 전해주자 요한이 처음으로 입술을 굳혔다.

   

   정색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이 자가 정색을 했다는 건 오히려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소리다.

   

   “숨겨져 있던 시련을 찾아냈으며, 그 곳에서 얻은 물약으로 저주를 해주했다는 겁니까.”

   

   ‘계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계시가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래?”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물이 눈앞에 있으니 부정할 수가 없군요. 믿겠습니다.”

   

   요한은 그리 말을 하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어 내 앞에 올려두었다.

   

   내가 눈빛으로 열어도 되냐고 묻자 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의 안에는 목걸이의 형태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들어 있었다.

   

   은으로 만든 영롱한 하얀색의 십자가는 내가 게임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주신 교희의 상징. 소울 아카데미가 게임이었을 무렵엔 주신 교회와 관계된 사람의 호감도 증가와 캐릭터 운 스텟 증가라는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었다.

   

   현실이 된 지금도 그 효과는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겠지.

   

   루시의 평판이 평안인지라 호감도가 증가해봐야 극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뭣보다 앞으로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때마다 이 물건이 지닌 효과가 강해질 테니까.

   

   언젠가는 루시가 지닌 악평을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다.

   

   나는 그리 생각을 하며 목걸이를 착용했다.

   

   *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사제의 길을 택한 지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요한 비에라는 여전히 신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 망나니 같던 알른 영애가 신의 계시를 받다니.

   

   신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는 루시 알른이라는 영애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본래 성지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요한이 이 교회에 오게 된 것이 알른 영애 때문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알른 영애는 날이 멀다하고 매일 같이 교회를 찾아와 진상을 부렸다.

   

   신을 모독하고. 사제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신도들을 위협했다.

   

   그 상대가 어지간한 귀족이었다면 주신 교회의 권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겠지만 루시 알른은 그럴 수 없는 상대였다.

   

   그녀는 대륙에서 손에 꼽는 강자인 철혈백 베네딕이 아끼는 사람이었으니까.

   

   만일 일이 꼬여 베네딕의 분노를 사게 되면 주신 교회로서도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파견이 된 게 요한 비에라였다.

   

   높은 작위를 지닌 가문의 출신임과 동시에 교회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닌 그는 알른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였던 것이다.

   

   그는 교황의 명에 따라 알른 교회에 파견을 나오자마자 베네딕 알른과 협상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보였다.

   

   사실 그는 협상이라기보단 협박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지난 오늘 루시가 다시 교회로 찾아왔다.

   

   이전처럼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교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루시가 교회로 찾아와 한 이야기들은 용이 마법을 모른단 소리처럼 허황된 말들이었다.

   

   추기경 급의 성직자만이 해주할 수 있는 아그라의 저주를 직접 해주했다거나,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행방불명되어 있던 루엘의 메이스를 찾아냈다거나,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하나 같이 음유시인에 이야기에 나올 것 같은 소리들뿐이었다.

   

   허나 그 모든 건 사실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의 증거물이 요한의 눈앞에 있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을 모욕하던 아해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인가. 도대체 아르마디께서는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 것인지.”

   

   요한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리 말을 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신께선 그에게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을 생각인 듯 했다.

   

   “한동안 난리가 나겠군.”

   

   신의 계시를 얻은 자가 나타난 일.

   

   오래 전 행방불명되어 교회가 찾아 헤매던 루엘의 메이스가 나타난 일.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여 악신의 대적자가 된 자가 나타난 일.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구제불능이란 평판을 지닌 망나니 영애와 관련된 화제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성지에서 요한 주교가 정신이 나간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이 모든 게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이들의 표정이 어찌 변할지를 상상하던 요한은 피식 웃고는 다시금 깃펜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알른 영애는 좀 잠잠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녀도 신의 계시를 얻음에 따라 조금은 달라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요한은 자신을 꼴통 사제라 부르던 영애의 모습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달라지긴 무슨.

   

   *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해 준 건 매일 같이 날 괴롭히는 메시지 창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십시오.]

   

   손을 내저어 메시지창을 없애버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피곤했다.

   

   요 며칠 마차를 타서 그런 걸까.

   

   버릇처럼 종을 울리기 위해 손을 뻗은 난 허공을 휘적거리고 나서야 내가 저택에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나 아카데미 시험을 치러 왔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아카데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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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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