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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서준은 춘봉과 함께 나름 정들은 뒷골목을 떠났다.

   

    무림에 떨어진 뒤 그 근처에서만 지내다보니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처음이다.

   

    “생각보다 넓은 도시였네.”

    “그 정도는 아닌데?”

    “이게?”

   

    둘 모두 일류 이상의 무인인데도 한참을 걸어야 성벽이 나오는 도시. 이게 넓은 도시가 아니란다.

   

    역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상식으로 이곳을 판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의 무림은 지구에서의 중국과 아예 그 지리 자체가 다를지도 모른다. 어차피 중국 지리 같은 건 모르니까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두음향까지 벗어난 두 사람은 지도를 살폈다.

   

    “이쪽 맞지?”

    “어. 산을 가로지를 거면 맞지.”

   

    시장에서 구한 누가 봐도 대충 그려놓은 지도. 나침반을 활용해 방향을 잡고 화산파까지 일직선으로 선을 그었다.

   

    그까짓 산이니 절벽이니, 무인쯤 됐으면 일직선으로 통과해도 안 죽겠지.

   

    그런 마인드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고 시장을 돌아보느라 조금 늦은 시각인 만큼 어쩌면 오늘은 이 산에서 야영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서준은 터벅터벅 산길을 걸으며 옆에서 쫑쫑 걷고 있는 춘봉이의 모습을 살폈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꽤 많이 자라긴 했다.

   

    키도 그렇고, 하늘이 무심하게도 젖살도 좀 빠졌다.

   

    슬슬 여성으로서의 선이 드러나는 그 모습에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만 크면 안 되냐?”

    “…진짜 왜 맨날 개소리만 하냐?”

    “아니, 그렇잖아. 내 귀여운 춘봉이가….”

    “흥. 애새끼가 그렇게 좋냐? 취향 존나 이상하네.”

    “꼬맹이가 좋은 건 아닌데, 그, 뭔가 있어 그게.”

   

    나는 페도가 아니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춘봉이가 쑥쑥 자라 어엿한 성인 여성이 된다 생각하면 그게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섭섭함이 몰려오고야 마는 것이다.

   

    “조만간 목마도 못 태워주겠네.”

    “응…? 아니, 뭐, 그건 상관 없지 않나? 좀 커도 뭐….”

    “역시 그렇지!?”

    “이 새끼! 유도 심문이었나!”

    “너도 사실 목마 타는 거 좋아할 줄 다 알고 있었어!”

    “아닌데!?”

   

    왁왁 성을 내는 춘봉이. 이게 여자의 마음이라는 건가?

   

    말은 저래도 좋아하는 거 다 안다. 입과 달리 몸은 솔직한 법. 금춘봉의 반응쯤이야 이제 마스터 했다.

   

    “좋았어. 목마 태워줄까?”

    “지랄 말고 걷기나 하자, 우리.”

    “에이, 좋으면서 뭘 또 빼고 그…, 엉?”

   

    빽빽한 나무 사이로 소란이 전해져온다. 사람의 비명과 다급한 발소리. 그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야생의 산적이 불쑥 튀어나왔다.

   

    “도, 도망쳐…!”

    “살려줘어어…!!”

   

    그리고 이쪽을 지나쳐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뭔 상황인데 이거.”

   

    서준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발이 땅을 밀어내는 순간, 도망친 산적의 등이 코앞에 보였다.

   

    그대로 뒷덜미를 잡아채자 산적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 이거 놓지 못해!”

    “아저씨 산적이죠?”

   

    패션이 누가 봐도 산적이다.

   

    “알면 놔라! 녹림의 보복이 두렵…, 히익…!? 빠, 빨리 놔라! 제발! 놔주세요!”

   

    무언가를 본 산적의 발버둥이 갑자기 심해졌다.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다가오던 기척이 멈춰섰다. 온몸이 피로 칠해진 사내. 그의 손에 들린 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누구…?”

   

    사내는 서준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달려들어 도를 휘둘렀다.

   

    가만히 있으면 산적의 목이 뎅강 날아간다.

   

    가볍게 뒤로 물러난 서준이 들고 있던 산적을 저 멀리 던졌다.

   

    후웅-!

   

    도가 허공을 가른다.

   

    사내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준을 향했다.

   

    “한 패냐?”

    “잘 패긴 하는데.”

   

    내가 또 한 팸 하지.

   

    서준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발을 휘둘렀다.

    

    콰앙-!

   

    도의 옆면으로 발을 막아낸 사내의 몸이 뒤로 주욱 밀렸다.

   

    “으음….”

   

    사내는 얼어붙은 손을 휘둘러 성에를 떨쳐냈다. 그의 사나운 시선이 서준을 향했다.

   

    “뭐 하는 놈이냐.”

    “그…, 씨발 내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

   

    사람한테 냅다 칼을 휘둘러? 사회성이 결여된 새끼가 분명하다.

   

    서준과 빤히 시선을 마주치던 사내가 눈을 굴렸다.

   

    그를 경계 중인 춘봉이를 한 번, 허겁지겁 도망치는 산적을 한 번.

   

    그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도에 도기刀氣를 휘감았다.

   

    “비켜라!”

   

    사내가 달려든다. 아니, 달려드는 척 하며 춘봉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씨발년이.”

   

    서준 역시 검을 뽑으며 달렸다.

   

    그의 검에 찬란한 금빛 검기가 어렸다. 그대로 검을 휘두르자 폭발과 함께 열기가 사내를 덮친다.

   

    콰앙-!

   

    사내의 몸이 밀려난다.

   

    서준은 빠르게 바닥을 훑어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대로 음기를 부여해 쏘아내자 사내가 도의 옆면으로 막아냈다.

   

    카앙-!

   

    허공에 뜬 돌멩이.

   

    서준이 중지를 엄지로 고정했다.

   

    이전, 태극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뒤 내공만 짙어진 게 아니다.

   

    음기와 양기를 전환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서준이 순식간에 손끝에 맺힌 양기를 쏘아냈다.

   

    양기의 탄환은 허공에 뜬 돌멩이에 그대로 적중했고,

   

   

    ────────────!!!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커억…!”

   

    폭발에 휩쓸린 사내가 튕겨 날아갔다.

   

    나무 몇 그루를 몸으로 부수며 날아간 사내는, 이내 나무에 허리를 처박고 땅에 쓰러졌다.

   

    “끄으윽….”

   

    사내가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하지만 계속해서 쓰러진다.

   

    직접 맞은 게 아니라 폭발에 휩쓸렸을 뿐이라 해도 혼원일월지의 위력은 사람이 버텨내기 힘들다. 직접 맞았으면 온몸이 터져나갔을 터.

   

    사내 앞에 선 서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뭐 하는 새끼냐?”

   

    이 새끼를 살려두는 건 별 이유가 아니다. 춘봉이에게 달려들 때 도가 아닌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춘봉이를 제압하려 들지 않고 죽이려 들었다면 몸통에서 팔다리를 뜯어놨을 거다.

   

    “내 딸….”

    “니애미.”

   

    뻐억-!

   

    머리가 걷어차인 사내가 기절했다.

   

    “흐음….”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서준의 눈가가 좁혀졌다. 이 새끼를 살려둬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그에게 춘봉이 다가왔다.

   

    “아니, 이 새끼들은 내가 만만해보이나? 맨날 나한테 지랄이야.”

    “만만해보이긴 하지.”

   

    생긴 걸로만 보면 동네 바둑이와 치열한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판정패 당할 것 같은 느낌이다.

   

    “뭐 이 새끼야?”

    “그만큼 귀엽다는 거지.”

    “무, 뭣….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말을 더듬대는 춘봉이. 서준이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얘 어쩌지? 죽여 말아?”

    “얘기나 들어보자. 아까 보니까 딸이 어쩌고 하더만.”

    “딸…. 흠. 에휴.”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자 춘봉이 움직였다.

   

    툭툭

   

    사내를 점혈해 내공의 흐름과 움직임을 제한한 그녀가 물었다.

   

    “깨운다?”

    “엉.”

   

    꾹-

   

    혈을 누르자 사내의 눈이 퍼뜩 떠졌다.

   

    “허업…!”

    “야.”

   

    서준이 검의 옆면으로 사내의 턱을 들어올렸다.

   

    “이름.”

    “…왕대산이오.”

    “그래서, 딸은 뭔 소린데?”

   

    사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펄떡이며 외쳤다.

   

    “딸…! 내 딸을 좀 구해주시오…! 나는 어떻게 해도 좋으니 내 딸을…!”

    “뭐 납치라도 당했냐?”

    “마, 맞소! 내 품을 뒤져보시오! 편지가 하나 있소!”

   

    이 씹새끼. 처음부터 이렇게 말로 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혀를 찬 서준이 발로 사내의 몸을 뒤집었다.

   

    “보자….”

   

    품을 뒤적이자 사내의 말처럼 편지 하나가 나왔다.

   

    “흠…. 못 읽겠는데?”

   

    피로 쓰인데다 날려 쓰기까지 해서 전혀 못 알아먹겠다. 

   

    “줘봐.”

    “엉.”

   

    편지를 춘봉이에게 넘겨주자 그녀가 편지 내용을 읊어주었다.

   

    그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녹림 놈들에게 아가씨가 납치당했다. 나는 겨우 탈출했다. 중상이라 못 움직이니 편지를 보낸다. 죄송하다.

   

    “호위쯤 되는 놈이 보낸 건가?”

    “그런가 본데.”

    

    사내를 바라보자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소령이의 호위가 보낸 편지요!”

    “아니, 호위가 산적한테 당한다고?”

   

    어이가 없어서 묻자 춘봉이가 답했다.

   

    “요즘 산적들은 의외로 강해. 최소한 우두머리는. 산에는 마물이 많아서 약하면 살아남기 힘들거든.”

    “뭔…. 강하면 산적을 왜 해?”

    “내가 아냐? 사람 머릿속을 이해하려 하지 마. 그냥 그런 병신도 있구나 생각하는 게 속 편해.”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머리를 긁적인 서준이 혀를 찼다.

   

    “근데 산적이 강하면 산을 피해가야 되는 거 아니냐? 얘네는 왜 또 산으로 가다가 산적한테 잡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나도 모르지.”

    “아니, 어이가 없잖아.”

    “나도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사내를 바라보자 그가 호위를 변호했다.

   

    “산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요. 아이가 어린데다 산적이 위험하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근데 왜 산적한테 잡혀?”

    “…마을에 머무르다 산적 놈들이 소령이의 미모에 눈독을 들였을 수도 있소.”

   

    그니까 산적들이 마을까지 내려와서 딸을 납치해 갔다?

   

    “애초에 이 산에는 산적들이 없었소. 최근에 자리를 잡은 모양인데….”

    “아, 됐고.”

   

    별로 안 궁금하다. 그걸 알아서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얘네 소굴이 어딘데.”

   

    사내가 눈을 부릅 떴다. 그의 눈에서 안도의 눈물인지 뭔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정말 고맙소…!”

    “아니, 어디냐고.”

    “산적 한 명을 사로잡아서 물어볼 생각이었소만…, 그게….”

   

    모른다는 소리다. 도움 안 되는 새끼.

   

    “하아…. 가자 춘봉아.”

    “이 사람은 어쩌게?”

    “알아서 하겠지.”

   

    서준이 걸음을 옮기자 춘봉이 재빨리 사내의 점혈을 풀고 그의 뒤를 따랐다.

   

    “아이고 우리 춘봉이. 애가 이렇게 착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고.”

    “니가 먹여살려주겠지.”

    “뭐, 뭣…!”

   

    감동이다! 서준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우리 춘봉이는 평생 오빠랑 살자!”

    “…뭐라는 거야.”

   

    흥, 춘봉이가 수줍게 콧방귀를 뀌었다.

   

   

    *

   

   

    “그래서 얘네는 어떻게 찾을 건데?”

   

    춘봉의 질문에 서준이 눈을 감았다.

   

    잠시 집중하던 그가 번쩍 눈을 떴다.

   

    “저기 같은데?”

   

    그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춘봉이 눈가를 좁혔다.

   

    “어떻게 알아?”

    “기가 흐트러졌어.”

    “뭔 씨발 좀 진짜.”

   

    춘봉이 이마를 탁 치며 한탄했다.

   

    “좆같은 세상. 재능만 있으면 다 되는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범천불빠따 님 후원 감사합니다!
캐릭터의 매력..
역시 독자님께서도 춘봉이를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군요!
사실 춘봉이는 엑스트라에서 스스로의 귀여움만으로 히로인까지 승격한 능력자랍니다.

*

일러는 ‘이서준 ver. 황운신공’ 입니다!
근데 이제 좀 진지함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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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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