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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이단심문관이란 무엇인가.

         

       교단에 배척하는 자들. 교리를 어기고 도망간 자들. 교단을 위협하고 없애려는 자들.

         

       라다토크는 그들 모두를 이단이라 불렀다. 교단의 적이 된 자들은 많았으며, 그들 대부분은 라다토크의 검 아래 무너졌다.

       온갖 것들을 많이 보았다.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타락한 동포들 또한 본 적이 있었다.

         

       라다토크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씻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피. 고뇌와 함께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하는 피.

         

       하지만 오늘만큼은 라다토크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묻어 있는 건 괴물들의 체액뿐이었다.

         

       아무런 무게도, 죄의 깊이도 들어 있지 않은 그저 더러운 피.

         

       라다토크는 복잡한 과거와 기억들은 모조리 내던졌다. 전장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손에는 검이 있고.

       몸에는 성력이 돈다.

         

       라다토크는 불꽃을 감쌌다. 그동안의 모든 고뇌는 오늘만큼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라가 앞에 있었다.

         

       라다토크는 신의 지치지 않는 불꽃을 보았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 닿은 것은 자신보다도 한참은 어린 소년. 지치지 않는 용기와 신실한 믿음으로 전장을 사로잡는 작은 사도.

         

       라다토크는 외쳤다. 끓어오르는 목소리는 참지 못했다. 평소의 진중함은 벗어던진 채 '성전'에 임했다.

         

       "라를 위하여어어어어어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계에 달한 신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덜컥거렸다.

       하지만 라다토크는 나아갔다. 기생충들을 짓밟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달려드는 녀석을 모조리 분쇄하고, 피와 살로 목욕했다.

         

       악취가 전심을 감돌았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라다토크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 없이 전투에 임한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해야할 것이 명백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몸이 한계에 달하고, 금방이라도 나가떨어질 거 같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믿고 의지하는 신이 바로 곁에 있다. 마지막 장작까지 불살라 믿음을 증명할 수 있다.

         

       라여.

       나를 지켜보소서.

         

       그대의 사도가 나보다 먼저 쓰러지게 두지 않겠나이다!

         

         

         

       . . .

         

         

         

         

       뱀 교단은 차가운 곳이었다. 이자벨라는 그 처음을 기억했다.

       이름모를 사제에게 주워졌던 순간. 하지만 그 시작은 전혀 구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옥의 시작이었다.

         

       뱀 교단은 인원이 늘 부족했다. 그렇기에 갈 곳 잃은 고아들을 거둬들여, 강제로 신도로 삼았다. 억지로 낙인을 찍고, 그들에게 신도로서의 의무를 강요했다.

         

       그건 한낱 어린아이가 버티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들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굶고,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고통으로 점칠했다.

         

       이자벨라는 가끔 생각하고는 했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통스럽게 죽어간 다른 아이와 같지 않았을까.

         

       나가.

         

       그녀는 대체 뭘 생각하기에 이런 교단을 내버려두는 걸까.

         

       "…아아."

         

       하지만 이자벨라는 그 의문을 오늘만큼은 접어두었다. 검 끝을 놀려 두꺼운 등딱지를 파고들었다.

       체액이 튀었다. 몸이 더럽혀졌지만 이자벨라는 홀가분했다. 재능을 가졌지만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신과 접선한 아이가 옆에 있었다.

         

       이상한 아이.

       태양신의 사제이면서 뱀 교단을 적대하지 않는 자.

         

       그는 나아가고 있었다.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고, 주춤거렸지만 굳세게 버텼다.

       이글거리는 화염의 끝에는 낯선 그림자가 섞여 있었다. 모두가 놓치고 있었지만, 그림자 성법을 극한까지 단련한 이자벨라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가다.

       나가가 그의 등 뒤에 서 있다.

         

       이자벨라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처음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내 환희로 바뀌었다.

       나가는 한 번도 이자벨라의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온전히 죽음에 이르자, 뒤늦게나마 다른 이를 통해 대답하고 있었다.

         

       그것은 구원.

         

       지옥으로 떨어진 자에게 내려진 한 줄기 빛.

         

       "나가를 위하여어어어어어어어!!!!"

         

       그녀의 신이 그녀를 살기 위해 돕고 있었다. 이자벨라는 기적을 목도하고 그것을 움켜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쓰러져가는 소년의 등을 받쳤다. 옆에 서 같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무너지지 않는다.

       저 아이가 무너지지 않게 바치리라.

         

       그것이 설령 자신의 끝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이 나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일지니!

         

         

         

       . . .

         

         

         

       이런 시발!

         

       존나 많네 진짜!

         

       "아오 썅!"

         

       지긋지긋한 기생충들을 싹 몰아냈다. 성력은 빠르게 재생되지만, 체력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쉬어야 한다. 하지만 쉴 수 있는 타이밍을 몇 번이나 놓쳤다.

         

       성전.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 성전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뱀 교단 태양신교 할 거 없이 싹 다 눈깔이 돌아갔다.

         

       "라를 위하여!"

       "나가를 위하여!"

       "그만 위해! 쉬었다 가자고!"

         

       돌아간 눈깔에는 이미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스스로 멈춰 섰지만, 빌어먹을 라다토크랑 이자벨라가 내 등을 떠밀었다.

         

       "형제님! 저희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 자하드! 너보다 먼저 쓰러질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될 테니까!"

       "아니 좀! 쓰러져도 된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강행돌파를 시도해야 했다. 쏟아지는 기생충들의 피로 목을 적시며 어떻게든 나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베이그니스의 몸 안의 길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기생충들을 짓밟고, 꿀렁거리며 달려드는 살의 벽을 짓뭉개고 나아가자 첫 번째 관문이 나왔다.

         

       피웅덩이.

       그 안에서 꿈틀거리며 모여든 실지렁이들이 군체처럼 모여들었다. 거대한 손의 형태를 취하는 실지렁이들의 집합체가…

         

       "꺼져!"

         

       기다릴 시간 없다! 기다렸다간 내가 지쳐 뒤지겠다!

         

       "터져라!!!"

         

       와장창!

         

       나는 곧바로 깨부쉈다. 성화를 날려 군체 전체를 날려버렸다.

         

       취이이이익!

         

       매캐한 냄새를 짓밟고 곧바로 나아갔다. 중간 보스 좆까라! 불에 취약한 새끼가 어디서 나대!

         

       강행돌파를 선택한 이상 나는 더는 눈에 뵐 게 없었다. 전부 불태우고 모조리 짓밟았다. 빠르게 성장하는 레벨과 스킬 숙련도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내가 다시는 이단심문관이랑 뱀 교단을 데리고 싸우나 봐라!

         

       "전방에 기생충 다수…!"

         

       콰아아아아앙!

         

       "오른쪽에 변형 외갑충…!"

         

       콰아아아아아앙!!

         

       "…괴생물체 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연달아 터지는 성화의 폭격 속에 이단심문관들이 환호했다!

         

       "이런 시발!"

       "역시 라의 사도!"

       "전부 불태워버립시다! 형제님!"

       "다 닥쳐!"

         

       눈 감긴다.

       안 돼.

         

       눈 감으면 진짜 뒤진다!

         

       나는 이를 갈며 나아갔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어떻게든 아껴 썼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코앞.

         

       나는 살점의 벽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언뜻 봐서는 다른 것과 똑같은 살 벽을 뚫고 나아갔다.

         

       두근.

         

       큰 심장 소리. 나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조용한 공간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기생충들이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하며 빠르게 물러가자,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설마 끝…?"

       "눈의 악마가 죽은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이제 진짜 마지막인 거지.

         

       나는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시야가 추락했다.

       한순간 모든 게 검게 변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자벨라와 라다토크가 날 감싸고 있었다.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자하드? 괜찮아?"

         

       안 괜찮아.

       다 너희 때문이라고.

         

       나는 일어섰다. 가만히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기생충들이 물러갔다는 건 이미 보스전이 시작됐다는 의미고. 지체했다가는 준비할 시간도 없어져 버렸다.

         

       "누나. 뱀 교단 뒤로 물려요."

       "왜?"

       "계시가 떨어졌어요."

       "계시?!"

         

       이자벨라가 눈을 크게 떴다. 라다토크가 다급히 물었다.

         

       "그, 그분이 뭐라 하셨습니까?! 형제님?!"

       "저 악마를 토벌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쉽지 않대요."

         

       라다토크가 고개를 들었다.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거대한 살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심장으로 보이는 저것만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으니까 계시까지 내려준 거겠죠?"

         

       나는 빠르게 지휘했다.

         

       "이단심문관은 전위를 맡아요. 오케이? 단순 힘 싸움으로 밀어붙이라고요. 병력이 얼마나 됐던 간에."

       "그냥 심장을 터트리는 건…"

       "불가능해요. 수호자가 있는 한 저건 못 부숴요. 딱 봐도 이상한 검은 막으로 뒤덮여 있잖아요? 악마를 쉽게 죽일 수는 없죠."

         

       이자벨라를 쓱 돌아보았다.

         

       "곧 있으면 쏟아질 악마 중에 유달리 튼튼한 놈들이 있어요. 그 녀석들만 뱀 교단이 맡아 줘요. 나머지는 이단심문관에게 맡겨도 좋아요."

       "어떻게 생긴 녀석들인데?"

       "그냥 딱 보면 알아요. 겁나 크거든요. 다른 녀석보다 두 배는 더 클 테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살점의 벽이 크게 떨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다 뒤지기 싫으면 지금부터 정신 바싹 차려요. 이제까지는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심장 박동이 멈췄다.

         

       [베이그니스(vagueness)가 당신을 직시합니다.]

         

       심장이 열렸다.

       그 위로 거대한 눈 수십 개가 한 번에 떠졌다.

         

       제멋대로 굴러가는 눈깔. 그 중 하나가 날 직시했다. 그러자 곧바로 나머지 눈동자가 나를 모두 직시했다.

         

       멈췄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규칙적이었던 소리가 무너지고, 불규칙적으로 쿵쾅거리기 시작한 소리가 거대한 피의 광장을 가득 채웠다.

         

       "아…아아…"

         

       그 기괴한 광경에 뱀 신도들이 덜덜 떨었다.

         

       "아, 악마다."

       "진짜 악마야."

       "눈의 악마!"

       "죽는다."

       "우린 전부 죽을 거야."

       "신이시여."

       "신이시여."

         

       나는 검을 늘어트렸다. 계속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었다.

       얼른 나이 먹든가 해야지. 새 나라의 어린이 몸이라 그런가. 존나 졸리네.

         

       [베이그니스(vagueness)가 수호자를 호출합니다.]

       [고대의 심장이 열망으로 가득 차니.]

       [끝을 모를 식욕은 스스로마저 삼킬지어다.]

         

       [잠들어 있던 눈의 악마 베이그니스(vagueness)가 완전히 깨어납니다.]

         

       "라다토크님. 이자벨라 누나. 지휘를 부탁해요."

       "형제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저까지 여기 있으면 곧 튀어나올 녀석은 누가 잡아요."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시선을 들어 꿈틀거리는 심장을 노려보았다.

       눈들이 갈라졌다. 심장에서 수많은 살 파편들이 떨어져 나왔다. 불규칙한 고동 속에 떨어져나온 살점들이 비틀리며 모습을 바꿔갔다.

         

       "…악마."

         

       뱀 신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건 악마가 아니다.

         

       심장충. 그래. 베이그니스가 가진 모든 기생충 중에서 가장 강력한 녀석들이지.

         

       쩍.

       쩌적.

         

       거대한 눈 하나가 찢겨나갔다. 떨어지는 살점들 속에서 거대한 팔이 툭 하고 기어나왔다.

       피로 젖은 여섯 개의 다리. 비정상적으로 긴 다리에 비해 짧기 그지없는 신체가 우드득 거리며 돌아갔다. 점액 속에서 번들거리다가 똑바로 일어섰다.

       

       

       수많은 살점들 속에서도 유달리 눈에 띄는 것.

         

       크다.

       너무 크다.

         

       압도적으로 커 사람들이 그것을 그저 올려다보았다. 떨어지는 다른 기생충은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멍하니 그 거대한 붉은 괴물을 몇 번이고 시선으로 곱씹었다.

         

       베이그니스의 수호자.

       이 토벌전의 마지막 보스.

         

       "…그래스호퍼(grasshopper)."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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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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