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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흔히 ‘E=mc²’이라고 알려진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가 발표된 건 서기 1905년 경이었다.

         

       수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제국의 문명 수준이 지구 기준으로 딱 20세기 초 정도에 도달했다는 걸 실감한다. 수학이나 마도이론이 개발된 수준도 그 정도였고.

         

       [■ 연구 완료 :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

         

       정리를 금방 증명할 수 있었던 건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이미 다른 사람이 쌓아놓았던 선행 연구를 살피며 그곳에 아이디어를 하나 덧씌운 것에 불과했다.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건 기존 물리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는 마소와 에너지가 서로 교환 가능한 관계임을 시사한다. 에너지는 마소로, 마소는 다시 에너지로 환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 뒤 그 에너지가 다시 마소로 바뀌는 것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마소는 질량과 교환된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을 이끌어내는 핵심 과정인 질량 결손은 이쪽 세계에서 곧 마소 결손과 같은 뜻이었다. 어쩌면 질량과 마소 결손이 동시에 일어나니 원래 세계보다 핵폭발 수율이 높을지도 모르겠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절멸급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 되는 폭발력은 있어야 한다.

         

       세계 멸망을 막아내기 위한 첫 단추를 완성하자 잠이 몰려왔다. 로테는 이미 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간 상태였다. 나는 그녀가 준 은화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침음을 흘렸다.

         

       ─ 나 과외 좀 해 주면 안 될까?

         

       갑자기 로테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땐 머리가 멍해졌다. 동급생한테 과외 문의를 받으며 은화까지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시장가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니 특기를 살려 누군가를 과외해주는 편이 나았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금안족 노예를 처음에는 노리개로 쓰려고 샀는데, 나중엔 자식새끼를 아카데미에 보내기 위한 가정교사로 붙이게 된다고. 설화에 따르면 금안족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것에도 능통하다고 한다.

         

       어차피 최상급 화계마도를 연구하려면 로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는 그걸 위한 전 단계라고 생각하자.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새 연구목표를 설정하는 중입니다. 제반 이론을 형성합니다.]

         

       [□ 제반 이론 : 베테-파인만 방정식]

         

       [핵무기의 효율을 계산하는 방정식. 방정식의 각 계수는 군사기밀에 해당한다.]

         

       기초 단계는 끝났으니 슬슬 본격적인 이론을 제시할 차례다.

         

       방정식을 구성하는 이론이 대략 어떤 것인지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논문을 읽어봐서 안다. 공식 자체는 대중도 열람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방정식에 속한 몇몇 계수가 군사기밀로써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어차피 그 계수값은 이쪽 세계에서는 다르게 측정될테니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계수를 어떤 실험으로 측정해야 하느냐였다. 나는 양장본을 돌려가며 관련 마도를 찾아봤다.

         

       얻은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방정식의 계수를 결정하기 위해 다음의 마도를 익힐 것이 권장됩니다.]

         

       [(미완성)최상급 화계마도 ─ 플레어(Flare)]

         

       “아.”

         

       등잔 밑이 어두웠다.

         

       **

         

       늦게까지 안 자고 버티느라 생체리듬이 엉망이 됐다. 그동안 쌓인 피로까지 합쳐져서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나는 조례시간에 맨 앞에서 퍼질러 자는 패기를 보여줬다.

         

       원래는 뒷자리에 앉아서 남몰래 잘 생각이었는데. 로테가 하도 앞자리에 앉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이딴 게…. 차석…?]

         

       다만 잠이 확 깰만한 사건이 생겼다. 꾸벅거리고 있던 내 앞으로 쿵, 하며 두꺼운 금화 뭉치가 내리꽂혔다.

         

       …이게 뭐야.

         

       “노예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자금난에 쪼들리고 있다는 건 다 알고 있다.”

         

       조례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클리온이 바로 시비를 걸어왔다.

         

       “…그래서 뭐요.”

        “이걸 몽땅 줄 테니 학교를 자퇴하고 황성으로 와라.”

         

       눈앞에는 금화 수천 장이 놓여있었다. 절대로 학교에 가지고 올 만한 액수는 아니다. 로테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내 책상 앞에 놓인 금화 보따리를 응시했다.

         

       정작 나는 실감이 안 나서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니, 필요 없는데.”

       “필요… 없다고?”

         

       현재 내 지출로는 여기서 평생 살더라도 이만큼 돈을 쓸 일은 없다. 애초에 원래 세계에서도 수익이 생기면 연구비로 꼬라박곤 했었다.

         

       물론 지금 개발하려는 마도를 완성하기 위해선 이보다 더 큰 금액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틸레트에 입학함으로써 해결된 문제다. 학계에 몸을 담은 이상 고가의 실험장비를 대여해 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아카데미 자퇴할 생각도 없고 이 돈 그냥 받을 생각도 없어요.”

         

       내 삶의 모토는 기브 엔 테이크다. 그냥 주기만 하는 것도 싫고, 그냥 받기만 하는 것도 싫다. 남이 주는 걸 그냥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인생사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랬다가는 ‘은혜도 모르는 놈’ 소리를 듣고 사회에서 물갈이되기 딱 좋았다.

         

       내 말에 황자의 심기가 어스러졌다. 한껏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클리온이 내 앞으로 금화를 더 밀어넣었다. 원래의 두 배였다.

         

       “정말 이래도 말인가?”

       “안 받는다니까요.”

       “잘 생각해봐라. 어차피 한 학기만 다니고 자퇴해야 할 몸이다.”

       “잠깐만, 그건 뭔 소리예요?”

         

       로테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테르가 왜 자퇴를 하죠? 실력에 문제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살리에르, 너도 알지 않나? 금안족은 선천적으로 마법을 못 쓴다. 실기에서 낙제점을 맞고 금방 제적당하겠지. 내가 미래를 보건데, 이 정도라면 한 학기 만에 학교에서 내쫓길 거다.”

         

       진짜 가지가지한다. 누군 실기 대비를 안 한 줄 아나?

         

       마주치면 마주칠수록 혈압이 오르는 상대였다. 오죽하면 잠깐이지만 살인충동이 올 정도였다.

         

       “그쯤 하시지?”

         

       툭, 하고 클리온의 어깨에 다부진 손이 올려졌다.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클리온은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엔 자신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알파메일 엘프 남학생이 서 있었다.

         

       버멜 호르데였다. 잠깐 나와 눈을 마주친 버멜은 움찔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클리온 황자를 향해 공세를 펼쳤다.

         

       “넌 또 뭐야?”

       “동급생끼리 자퇴하라는 말은 보기 흉하다. 가뜩이나 너보다 등수도 높은 아이한테 시비를 걸어서 뭐 할거지?”

       “하아, 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리 막 대하는 것이냐?”

       “아니까 이렇게 대하는 거지. 여기서 너에게 머리 쳐들고 이리 얘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테니까.”

       “이, 이 새끼가….”

         

       내 책상 앞에 놓여있던 금화 보따리를 치운 버멜이 클리온에게 재차 경고했다.

         

       “나라의 수반에 있다고 해서 자만하지 마라. 너처럼 까불다가 목이 날아간 하이엘프만 수백 명이었다.”

         

       [와, 이렇게 보니까 담당일진이네요.]

         

       클리온이 버멜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단은 전무했다. 버멜은 필기와 실기 모두 균형 있게 잘하는 올라운더였으니까. 무력으로는 찍어누를 수 없다는 것쯤은 이 빡대가리 황자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으로 찍어누르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국외 추방 정도가 전부인데, 버멜이라면 일리야드 아카데미로 언제든지 편입할 수 있는 실력이었기에 학업에 지장이 생기지도 않는다.

         

       아침 사건은 일단락됐다. 곧이어 1교시가 시작되자 나와 로테는 책을 펴놓고 기다렸다.

         

       오늘 첫 교시는 기초화계마도였다.

         

       염병할. 드디어 오고야 만 것인가.

         

       **

         

       나와 한 번 눈을 마주친 하스펠트 교수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분필을 집어들었다.

         

       “제가 여러분들 담임이니 첫 시간에는 진도보다는 일정 안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여기저기서 좋아라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 입장에서는 별로였다. 차라리 진도를 나갔더라면 발 뻗고 잘 수 있었는데.

         

       “그러면 조례에서 하지 못했던 안내사항을 추가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하스펠트는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보았으나, 얼마 안 가서 시선을 거두었다.

         

       “우선 임시반장을 뽑아야 해요.”

         

       나왔다. 담임의 전속 따까리.

         

       나 말고도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건지 쉽게 지원하려는 학생은 없었다.

         

       “제가 하고 싶어요.”

         

       옆에 앉은 얘만 빼고.

         

       “이견이 없으면 살리에르 양이 임시반장을 맡도록 하겠어요. 적어도 일주일간은 저를 도와 이것저것 도와주길 바라요.”

       “네!”

         

       안 돼 시발….

         

       하스펠트 교수의 성격대로라면 로테를 개처럼 굴려먹을 게 자명했다. 심지어 반장은 명예직이다. 무급이라 노동에 대한 대가도 안 나온다.

         

       나 같으면 반장을 하느니 차라리 자원봉사를 한다. 그건 봉사받는 입장에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으니 할 맛이 나는데, 이건 아니었다. 못해도 하스펠트는 고맙다는 얘기를 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으니까.

         

       어떻게 아느냐. 그러게, 나도 이걸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반장 말고도 한 학기동안 절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더 필요해요.”

         

       또 뭔데.

         

       로테 하나만 부리면 그걸로 족하지, 뭐가 아쉬워서 임시직 노예 하나를 더 들이려는 것일까.

         

       “기초화계마도는 기본적으로 실습 수업이 많아요. 당연히 숙제도 있고요. 이 시간에 절 도와줄 학생이 한 명 더 필요한데, 혹시 지원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하스펠트가 곧바로 고개를 내리깔았다. 명백히 날 향하는 눈초리였다.

         

       “지원자 있으면 손 들어주세요.”

         

       뭐, 시발,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30화.. 독점 달 때까지 잠시 쉬어야 할까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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