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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태양을 등지고 선 연화공주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연은 그에 대해 며칠을 고민해야 했다.

       

       배우란, 배역에 대해서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푹 빠지는 메소드 연기는, 결국 그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보통, 그런 경우엔 배역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편하겠지?”

       

       조영대군으로 분장한 채 쉬고 있던 윤종혁에게 묻자, 그는 그렇게 답했다.

       

       “음,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야. 혹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투영해서 하는 방법도 있다만…… 아직 어린 서연이에겐 어려운 일이겠구나.”

       

       사실 연기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다.

       윤종혁은 그리 말하며 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 아역이 자기 나름대로 배역을 해석하려 하는 게 기특했던 모양이다.

       

       “배역에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을 넣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정은선 배우에게 묻자, 그녀는 그렇게 답했다.

       

       “대본에 쓰여있는 것. 배역에 대한 설명과 설정. 그에 대해선 자세히 나와 있지요. 그 이상을 하려는 건 보통 욕심입니다. 거기다, 태양을 숨긴 달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에요.”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엔, 그 작품의 팬들이 보기에 캐릭터의 해석에 대해 더욱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배우나, 감독의 주관이 너무 들어가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는 법.

       그건 분명 팬들이 바라는 결과가 아니겠지.

       

       하지만 드라마의 시청층은 원작을 읽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원작은 대부분 정답이겠지만, 절대 틀리지 않으리라 확신은 할 수 없다.

       

       소설의 독자층과, 시청층의 반응은 다를 수 있는 법이니.

       

       ‘물론 소설을 너무 각색해서 욕먹은 드라마들만 한 트럭이지만.’

       

       서연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은선 배우는 메소드 연기를 장기로 삼는 배우임에도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서연은 아역이니, 그 이상으로 하는 건 욕심이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네.’

       

       애초에 서연은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이렇게 물어보며 부딪쳐볼 수밖에 없었다.

       

       윤종혁이 말했던 것처럼, 배역의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고.

       연화공주의 입장이 되어 그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없었다.

       전생을 투영해도,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서연은 너무 어렸기에, 마땅히 경험이라 부를 게 없었다.

       그러니 서연은 원작의 소설을 보았다.

       

       연화공주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알고자 했다.

       대본을 몇 번이나 읽었고.

       

       여러 가지 형태로 감정을 나타냈다.

       연습

       또 연습.

       

       무엇이 정답인지 직접 연기해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무척 힘들고.

       어린 서연에겐.

       감정을 몰랐던 아이에겐 가혹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일.」

       

       태양을 등지고 선, 연화공주는 달이었다.

       

       「당신이 이곳에 오리라 믿고 있었어요.」

       

       연화공주는, 이혜월은 그렇게 말했다.

       조영대군에게 분노했던 모습과 달리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 윤서일에겐 너무나 어려운 감정이었다.

       아마 이혜월 또한 스스로를 알지 못하겠지.

       

       분노.

       원망.

       그 감정들은 조영대군만이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왜.」

       

       그런 이혜월을 향해, 윤서일은 말했다.

       

       「왜 저하가 떠나야 하는 겁니까. 이건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윤서일은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대체 왜!」

       

       하지만, 어린 윤서일은 그 감정과 생각을 내뱉지 못했다.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성균관 대제학의 아들이라는 말이 우습게도.

       

       서일의 생각과 감정은 단어가 되지 못했다.

       

       「떠나지 마십시오, 저하. 가시면 안 됩니다. 저를, 두고 가지 말아주십시오.」

       

       결국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서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어린아이 특유의 떼쓰기 뿐이었다.

       당연히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어린 윤서일은 그렇게 말했다.

       

       떠나지 말라고.

       그저 그렇게.

       

       “서연아, 정말 괜찮겠니?”

       

       그 모습이 수아의 말과 겹쳐졌다.

       정말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묻던 수아.

       그리고 걱정 어린 눈으로 보는 영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윤종혁은 말했다.

       배역의 심정을 알고 싶다면, 그동안의 경험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운이 좋게도.

       마침 서연은 연화공주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배우는 건 아역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마침 이렇게 기회가 왔잖아요?”

       

       하태오 PD는 서연을 설득하고자 했다.

       조금 더 해보는 건 어떻냐고.

       분명 아역들의 수명은 짧고, 힘겨울 수도 있지만, 전부 그런 건 아니라며.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다른 이들이면 꿈꾸던 것을 손에 쥐고도 정말 놓을 거냐고 다그쳤다.

       

       단 한 작품.

       고작 드라마 하나.

       

       서연이 한 것은 그것 뿐이다.

       그 하나로 과분할 정도의 명성을 얻었다.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태오 PD도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물론, 서연도 알고 있다.

       

       「서일.」

       

       연화공주는 숨을 내쉬었다.

       

       이혜월은 눈을 감았다.

       주서연은 눈을 감았다.

       

       서연에게 감정이란, 어여쁜 수족관이었다.

       바다를 닮고 싶었던 작은 어항이었다.

       

       「우리는 아직 어리고.」

       

       서연에게 감정이란 수면에 비친 태양이었다.

       눈부시게 빛나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

       

       「모르는 것도 많으며.」 

       

       물 위에 비친 태양은, 분명 진짜와 꼭 닮았지만 한없이 다르다.

       따뜻하지도 않고, 수면이 흔들리면 간단히 흐트러질 뿐.

       

       「할 수 없는 일도 분명 많을 거예요.」

       

       이제 서연은 수면 위를 거닐 수 있었다.

       수면에 비친 것이 아닌, 진짜 태양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자신은 재주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많은 것을 한 번에 손을 쥘 수 없었다.

       전생을 기억하고.

       정신과 육신의 괴리가 점점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분명, 사춘기가 되면 더더욱 심해지겠지.

       

       「하지만.」

       

       이혜월은 웃었다.

       

       분명 서연과 연화공주는 다를지 모른다.

       타의에 의해 내쫓긴 연화공주와.

       자의로 떠나는 서연이 같을 리 없었다.

       

       「우리는 아직 어리기에,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서연은 책을 읽으며 연화공주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았다.

       분노, 원망.

       그것은 떠나는 순간 가슴 깊이 묻었다.

       

       어린 이혜월은 강한 마음을 지녔다.

       분명 서연보다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분명 상황은 달라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어리니까.」

       

       포기한 게 아니었다.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고.

       돌아오리라고 마음 먹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서연, 자신과 같이.

       그러니 지금, 바로 이 순간.

       

       서연은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어린 이혜월이 될 수 있었다.

       

       바다에 몸을 적시고, 그 깊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수면에 비친 거짓된 감정이 아닌.

       

       수면 아래 잠긴, 그 깊은 감정을.

       진짜 연기를.

       

       「그러니 약속할게요.」

       

       이혜월의 목소리가 떨렸다.

       등진 태양.

       태양을 숨긴 달이 되어.

       

       「반드시」

       

       윤서일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이혜월은 말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연화공주의 입술이 미소 지어지며, 살며시 떨렸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이혜월은 가슴팍을 움켜쥐며, 숨을 토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윤서일을 향해 웃었다.

       

       「잊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이혜월은 노을로 붉어진 하늘 아래, 말을 잃은 채 서 있는 윤서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속, 해줄래요?」

       

       약속을 의미하는 손을.


       

       「잊지 않겠다고.」

       

       어린 윤서일은.

       그리고 어린 박정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오디션 때와는…… 전혀 다르잖아.’

       

       처음이었다.

       같은 아역의 연기를 넋을 잃고 바라본 건.

       대사조차도 잊고, 멍청하게 상대의 얼굴만을 응시한 건.

       

       그러니, 박정우가.

       어린 윤서일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네, 반드시.」

       

       그저 그런 말을 하며, 연화공주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지극히 아이다운, 그런 약속을.

       

       그리고.

       화면은 단번에 멀어지며, 둘의 모습을 비춘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궁의 모습.

       침통한 은혜대비의 얼굴.

       

       마지막으로 왕좌에 앉은 조영대군의 모습이 나오며.

       그렇게.

       

       태양을 숨긴 달 3화가 끝이 났다.

       

       ***

        

       “하 PD님…….”

       

       KMB 드라마국. 

       태양을 숨긴 달 3화가 끝나고 고요한 적막이 감돌았다.

       차마 누구도 결과가 어떤지 묻지 못했다.

       

       커뮤니티의 올라오는 글도 무서워서 잠시 외면한 상태였다.

       

       “……대박입니다.”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웃음을 참는 직원의 얼굴.

       

       막 집계된 시청률이 그의 앞에 있었다.

       이제 겨우 3화였다.

       대박이 나길 바랐던 건 분명했다.

       

       “맙소사.”

       

       하태오는 눈을 비볐다.

       그곳에는, 도저히 3화에서 나올 수 없는 시청률이 표시되어 있었으니까.

       

       ***

       

       “오우…….”

       

       이미 영상을 한번 보았던 윤종혁은 새삼 감탄했다.

       이걸 찍고 서연이 한동안 울적해 했던 걸 떠올렸다.

       

       그 정도로 감정에 매몰된 연기였다.

       현재 서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연기.

       그것을 한계까지 발휘한 장면이었다.

       

       그것을 본, 수아가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우리 딸, 고생했어.”

       

       아역 시절, 마지막 연기.

       그렇게 생각하니 수아는 괜히 눈물이 나왔다.

       

       서연은 그런 수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다.

       이미 무엇을 할지도 생각해둔 상태였으니까.

       

       ‘우선 성우 학원도 다녀야 하고, 연기 학원도 하나 구해야겠다.’

       

       물론 서연은 알지 못했다.

       성우 학원이야 그렇다 쳐도, 연기학원에서 서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선배님.”

       

       그런 서연을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보던 윤종혁이 말했다.

       

       “선배님은 어느 쪽이십니까? 아깝다는 쪽?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쪽.”

       “글쎄.”

       

       박선웅은 서연과 그 어머니인 수아를 번갈아 본 뒤에 중얼거렸다.

       본래 인기란 불씨와 같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것이어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사그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불씨가 피어올랐을 때, 온 힘을 다해 내달린다.

       잿불마저 불타, 새까만 잔재만이 남을 때까지.

       

       “솔직히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야.”

       

       누구나 손에 잡기를 바라는 기회였다.

       그것을 저리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둘은 서연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안다.

       저 똑 부러진 아이가, 무작정 이런 선택을 했을 리 없으니까.

       

       아마, 정말 어쩔 수 없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거겠지.

       하지만 사람이란, 얻은 걸 그리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러니 박선웅은 말했다.

       

       “하지만 간혹, 시간조차 퇴색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불씨가 아닌 별빛.

       꺼지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이.

       

       “아마, 저 아이는 그런 부류라 생각하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스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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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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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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