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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승천전’ 개막 이후 이틀차.

       

        개막식 당시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 게 거짓말처럼, 아카데미 스타디움엔 지극히 적은 관객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 D급 허접들 구경 드가자.”

        “이번엔 어떤 황당한 방법으로 우릴 놀래킬까?”

        “기대가 됩니다.”

       

        승천전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건 바로 히어로 계의 밑바닥, D레벨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결투가 반복되면 반복될 수록 관객석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날아든다. 개중에 괴팍한 이들은 허접한 히어로에게 야유마저 보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의 스타디움, VIP를 위해 제공되는 프라이빗 룸.

       

        한 백금발의 여인이 기대 가득한 얼굴을 하고있다. 그녀는 D등급 능력자의 싸움이 그리 재밌는 건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 거야? <성녀>.”

        “재미를 위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견할 뿐입니다.”

        “진짜 취향 독특하네.”

       

        <신속>의 최영웅은 늘어지는 하품을 뱉었다.

       

        지루하고, 재미 없다. 랭커인 그에게 저런 한심한 능력자들의 결투는 애당초 관심사가 아니었다.

       

        “차라리 임혜성, 그놈 같은 이레귤러가 나타나야 재밌는데.”

        “…….”

       

        스윽.

       

        <신속>이 임혜성의 이름을 언급하자, <성녀>의 고개가 슬쩍 그에게로 돌아갔다.

       

        무언가 답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신속은 작게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너무 압박을 주진 말라고.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예상외로 독특한 능력이 발목을 붙잡을 뿐이지.”

        “……?”

       

        <성녀>,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 개소립니까?’라는 말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런 그녀는 뚫어지게 신속을 바라볼 뿐이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뭐긴 뭐야? 당신이 부탁하지 않았어? <현상거절> 임혜성, 놈을 족치고 그의 조사를 하라고.”

        “그게 뭔 개소리입니까?”

       

        어이가 없던 안젤리카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조사?

       

        그에게 부탁하기는… 했다. ‘예언’의 죽음을 비껴 간 송수아, 그녀의 생존에 강한 연관이 있어 보였으니까.

       

        그런데…… 족쳐? 누가? 누구를?

       

        징징징.

       

        <성녀>의 주먹이 울부짖었다. 이상하게 저 신성교단 소속의 히어로 이인자, 신속을 볼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

       

        ‘답답합니다!’

       

        신성력 가득한 펀치를 그의 아가리에 꽂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성녀>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그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

       

        “제가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까? ‘조사’와 ‘족치다’라는 단어는 의미가 많이 다른 것입니다.”

        “그게 그말 아닌가? 답답하군!”

        “썅…….”

       

        안젤리카는 황급히 입을 꾹 다물었다.

       

        답답하다고? 그녀가 무언가… 오해가 될법한 말을 한 적이 있던가?

       

        “그를 다치게 해선 안 됩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임혜성 본인이 가진 능력의 끝은 그녀조차 모를 정도다.

       

        빌런, 꿈속을 걷는자. 그의 세상을 단박에 파괴할 힘을 가진 사람이 바로 그 <현상거절>이니까.

       

        그뿐인가?

       

        그의 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가장 좋은 예로 <비를 내리는>이나, <재창조>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 <성녀> 안젤리카 본인도 있다.

       

        물론 중요한 계약이나 정 따위로 묶인 사이는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계약에 가까운 사이라고 할까?

       

        ‘버스기사님이 다치면 필시 천벌이 내릴 겁니다.’

       

        차게 식은 눈빛의 시선이 <신속>에게 향했다.

       

        “어? 놈이다! <성녀>, 그놈! 임혜성 차례라고!”

        “……!”

       

        기사님 차례입니까?!

       

        제발, 부디 그가 다치지 않길 바라며. 안젤리카의 시선이 빠르게 스타디움 중앙의 경기장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하면 실버입니다!’

       

        아주, 아주 약간 사심 섞인 욕망이 함께였지만 말이다.

       

        * * *

       

        “반갑소.”

        “……어어, 그래.”

       

        내 앞에 선 사내의 모습에 절로 기가 죽었다.

       

        도대체 저 놈은 뭐지? 어떻게 저런 놈이 아카데미에서 있었지?

       

        “본인은 당해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오. D등급 182위, <난투>의 고창두. 그게 내 이름이오.”

        “……!”

       

        경악스러운 사실이 대뜸 날아들었다.

       

        2미터에 가까운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 그가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인 남성 키에 가까운 길고 굵은 봉까지.

       

        “네, 네가…….”

       

        자연히 그를 마주하니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믿기지 않았다.

       

        “1학년이라고?”

       

        도대체 어릴 때 뭘 잘못 처먹은 거야? 저 외모를 한 주제에 나보다 연하라고? 

       

        화가 난다거나, 황당하기 보다는 지독한 슬픔이 느껴졌다.

       

        “음! 너무 나를 과대평가하지 마시오.”

        “…….”

       

        혼자서 착각의 나래를 펼치는 남자의 모습. 그에 나는 대화를 멈췄다.

       

        그래, 세상을 살아가는데 차라리 모르는 것이 좋은 사실도 몇 있으니까.

       

        [ 경기! 시작! ]

       

        스타디움 뒤편의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손을 뻗은 나는 정면을 직시했다.

       

        지금 내가 선 곳은 스타디움 중앙의 커다란, 사각 결투장 위다. 

       

        수만 명이 들어찰 거대한 경기장의 조명이 내리 꽂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문제는 이 결투가 히어로 아카데미는 물론, 전세계에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D등급의 결투를 볼 만큼 팔자 좋은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가겠소! 흐아아아아압!”

       

        그러니 나는 전략을 짜왔다.

       

        속전속결. 내 능력을 활용해, 가장 빠르게 전투를 마치고 내려가려는 계획이었다.

       

        쿠웅!

       

        내 상대인 남자가 크게 도약했다.

       

        이름이 뭐였지? 고두창? 뭐 그런 느낌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 현상거절. ]

       

        손을 슬쩍 뻗은 나는 능력을 개방했다.

       

        [ 상대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거절한다. ]

       

        진언을 읊는다.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승리할 방법이야 지천에 널려있었다.

       

        두둥실.

       

        “오오오오옥! 엄마야!”

        “푸웁!”

       

        상대의 경악섞인 비명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올뻔 했다.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놈이 뭐? 엄마?

       

        가까스로 웃음을 참은 나는 무표정을 연기했다. 진중하고, 진지한 얼굴. 괜히 상대방을 비웃었다는 오명을 쓰긴 싫거든.

       

        [ 자, 장외! 장외입니다! 승자는 D급, <현상거절> 임혜성! ]

       

        “뭐, 뭐야. 이게 결투라고?”

        “아오, 재미없어! ‘염동력’ 관련 능력자인 모양인데?”

        “우우, 쓰레기.”

       

        허무한 장외패에 관객들의 야유가 곧장 날아든다.

       

        참 웃기는 일이다. A급 히어로의 결투만 되었어도 죽 닫고 있을 놈들이 이럴때만 용감하다니까.

       

        스윽.

       

        몸을 돌린 나는 저벅저벅 경기장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는 와중에 싱그러운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병신들.”

       

        “바, 방금 들었어?”

        “미친놈이네! D급이!”

       

        결투가 싱거워서 재미가 없다고? ……어쩌라고?

       

        * * *

       

        “재밌군.”

       

        스타디움 VIP 관람석, 멋들어진 조명으로 실내를 장식한 남자가 샴페인 글라스를 들었다.

       

        꿀꺽! 꿀꺽!

       

        시원하게 샴페인을 삼킨 남자는 방금 있었던 허무한 결투를 떠올렸다.

       

        손을 뻗어, 입을 움직인다. 그 결과로 상대방은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결투장 바깥으로 멀리 날아가버렸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장외’다.

       

        “보아하니 염동력은 아닌 것 같은데.”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은 남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염동력은 아니다. 그도 아카데미 안에서 ‘염동력자’를 꽤나 만나봤다. 그렇기에 내릴 수 있는 확신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 능력은 뭐지? 힘이 작용하는 원리는?”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현상거절>이란다. 나름 뼈가 굵은 남자조차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능력이었다.

       

        또르륵!

       

        잔에 다시 샴페인을 한가득 따른 남자가 턱을 괴고 침묵했다.

       

        상상한다.

       

        그가 가진 능력과, 저 남자가 가진 능력이 부딪히는 걸 이미지로 떠올린다.

       

        “설마.”

       

        첫번째 심상 수련의 결과는 간단한 패배다.

       

        그의 능력은 저 <현상거절>의 ‘거절’을 꿰뚫지 못했다. 이론으로 전투에 임하면, 필시 패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비트는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겠어.”

       

        눈을 감은 남자는 다시 이미지를 떠올렸다.

       

        능력을 발현한다. 적의 입술이 움직이기 전에, 몸을 저 지구 반대편으로 날린다면?

       

        “흠.”

       

        썩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능력을 사용하는 걸 적이 얌전히 기다려줄까…… 라는 점.

       

        눈을 뜬 남자는 다시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공간왜곡>과 <현상거절>이라. 이거, 내쪽이 훨씬 불리하게 느껴지잖아?”

       

        남자는 다시 한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가 끓어오르는 감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뇌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전투.

       

        남자는 그 의식이 즐거웠다. 그렇기에, 저 <현상거절>이라는 미지의 능력자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어.”

       

        그가 보기에 저놈은 괴물이다. 이 세상의 법칙을 우습게 만드는 히어로가 한가득인 아카데미지만, 저정도 불합리한 힘을 휘두르는 놈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놈이 D급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이걸 도대체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아. 아예 없는 건 아니네.”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기억을 짚어 보면 저런 미친 자식이 아카데미에 한명 더 있다. 

       

        <원소술사> 이성혁.

        인류가 그에게 붙인 이명은 지극히 거창했다. 

        ‘정점’이나, ‘황제’. 뭐 그런 것들.

       

        그와 직접 맞붙어 본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원소술사>가 부딪히면 결과가 어찌 될 지를 말이다.

       

        패배다. 그것도 만전 만패.

       

        지극히 냉정하고 이성적인 평가였으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반딧불은 태양은 이길 수 없다는 건 하나의 법칙과 흡사하니까.

       

        “자, 그렇다면 네 능력의 끝은 어디지?”

       

        고급 소파에 몸을 파묻은 남자가 진하게 웃었다.

       

        <공간왜곡> 김인만.

        Z급 4위이자, 전세계에 몇 없는 ‘텔레포트’ 능력자.

       

        품 안의 핸드폰을 꺼낸 그는 대진표를 확인했다. 저 D등급의 <현상거절>이 전승으로 본선에 진출하고, 또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오른다면.

       

        <현상거절>의 상대는……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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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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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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