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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왜, 조금 더 있다가 가지…….”

    다이튼이 조금 아쉽다는 투로 말했으나, 예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원 예약한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이제 가봐야해.”

    “병원? 루크언니, 어디 아파?”

    디아나가 ‘병원’이라는 말에 몸서리를 치면서 불안한 어투로 물었다.

    예르나는 그런 디아나를 안심시키기위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건 아니야, 디아나. 그냥 정밀검사일 뿐이니까…….”

    하지만 예르나는 결과를 대충 알고있었다.

    루크는 마나심축적증후군, 즉 서클이 새겨진 아이였다.

    검사결과가 멀쩡하게 나올리가 없다는건 아주 잘 알고있었다는 뜻이다.

    아마, 루크도 자신의 몸은 잘 알고있을 것이다.

    마나로 이뤄진 사슬이 자신의 심장에서 돌고있다는걸.

    ‘사실은 언제 갑자기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건데…….’

    서클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서클의 폭주를 감당하지 못하면 당장 내일도 죽을 수 있으니까.

    운이 좋다면 오래오래 서클이 안정화된 상태로 살아갈 수 있겠지. 

    물론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서클제거시술이 불가능한 자는 온전히 자신의 인내와 의지만으로 서클폭주의 고통을 감내해야만한다.

    ‘아이에겐 너무나 가혹한 삶이지만…….’

    예르나의 어두운 생각과는 달리 루크는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디아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담에 또 봐, 루크언니!”

    “그래, 다음에 또 보자꾸나.”

    예르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앞서 걱정하는게 아니면 좋을텐데…….’

    아직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게 아니니…….

    예르나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시작하자, 루크는 문득 다이튼에게 말했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극진한 대접에 깊이 감사한다, 다이튼. 그대도 얼른 회복하고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구나.”

    “으,응? 그, 그래. 너도 검사 잘 받고.”

    “잘가, 루크언니!”

    다이튼이 얼결에 루크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루크는 가볍게 몸을 돌려 문 밖으로, 곧 다이튼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하여튼 저놈 저 말투는 참…….’

    언제 봐도 참 적응안되는 녀석이다.

    ——-

    도착한 곳은 루크가 일전에도 입원했던 전적이 있는 그 병원이었다.

    애초에 응급시설이 완비된 병원이다보니 꽤나 규모가 있었던데다가, 가깝기도 했으니까.

    “루크 이루시……. 네. 기록이 있네요. 한시간정도 기다리시면 될거에요.”

    “한시간이요?”

    “네, 진료가 좀 밀려서요. 환절기엔 원래 좀 바쁘거든요.”

    “아, 그런가요.”

    하긴, 갑자기 날씨가 확 변해버리기는 했지.

    예르나는 간호사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미 앉아있던 루크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루, 한시간정도 기다려야한대. 기다릴 수 있지?”

    “상관없다. 그리 급한것도 아니지않나.”

    루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한시간 정도 기다리는건 그다지 어렵지도 않으니까.

    “여긴 읽을거리도 꽤 많구나.”

    루크는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잡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패션, 화장, 또는 여행에 관한 잡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교재였다.

    이 시대의 것에 대해선 무엇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루크였기에, 그것들은 모두 신기한 것이었다.

    ‘흐음, 이 ‘비행기’라는것도 나중에 접해볼 기회가 된다면 좋겠군. 호오오, ‘워프트레인’이라…….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루크는 그동안 습득한 클래스마법의 지식을 이용해 ‘비행기’나 ‘워프트레인’이라는 기술이 어떤식으로 작동할지 머릿속으로 간단히 원리를 떠올렸다.

    ‘비행에 관한 마력배열과 언령이 있던가? 그 지식은 아직 모른다. 허나 기초적인 문법은 대부분 깨우치지않았던가. 결국 그 조합과 배열에따라 효과를 얼마든지 짜맞출 수 있을테니, 비행과 워프또한 불가능하진 않을터…….’

    그렇게 잡지에 금방 빠져버린 루크.

    그리고 옆에서 그것을 보던 예르나는 얘는 어딜가든 독서구나 하고선 미소짓는다.

    그렇게 20분정도 지났을까,

    “루크 어린이 보호자분, 잠깐 이리로 와보시겠어요?”

    “아. 잠시만요.”

    앞의 간호사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예르나를 불렀고, 그녀는 루크에게 ‘잠깐만, 금방 갔다올테니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크는고개를 살짝 끄덕여준 뒤, 다시 독서에 집중한다.

    독서에 집중하는 루크는 옆에서 누가 방해하지 않는이상,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지.

    ——-

    루크는 예르나의 예상대로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까지는.

    “…….”

    아까부터 느껴지는 마나의 파장이 심상치않았다.

    이 감각은 마치…….

    -루크,……?

    마나에 민감한 정령인 파이 역시 느꼈으리라.

    “그래, 파이. 나도 알고있다.”

    1서클의 존재.

    주체하지 못하고 퍼져나오는 안정되지않은 마나의 정체는, 1서클에서 채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불완전한 서클에서 흘러나오는 살짝 난폭해진 마나였다.

    “흐음.”

    루크는 책을 슬쩍 내리면서 마나의 방향을 쫓았다.

    그 출처는 꽤나 가까운곳에 있었다.

    ‘엘프인가.’

    엘프가 비록 마나감응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실제로 마법사가 되는경우는 드물었다.

    마법보다는 정령을 더욱 선호했고, 또 그 편이 숲에서의 활동에는 더욱 효율적이었으니까.

    “서클이 새겨진 엘프라.”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루크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신경쓰이는 엘프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얀 은발에 붉은 눈. 엘프중에도 희귀한 알비노였다.

    그는 편한 후드티의 차림새에, 만사가 귀찮다는듯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채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키는 루크보다 겨우 반뼘정도 더 큰 모습. 

    어렸다.

    ‘오만한 자세로군.’

    자세만 보아도 그 성격을 유추할 수 있겠다.

    아마 꽤나 고집이있고 강단이 있는 성격이리라. 나쁘게말하자면 독불장군이겠다.

    하지만 그런 고집쟁이를, 루크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 오만과 고집이야말로 실로 마법사다운 성품이니.

    “뭐, 뭐야?”

    은발적안의 엘프꼬마가, 문득 인기척을 느꼈는지 당황하며 쏘아붙였다.

    “그대여, 곁에 앉아도 되겠는가?”

    그는 상당히 당황했는지,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그 말이 당연스럽게도 자신을 향했었다는걸 깨닫고는 이유모를 부끄러움에 인상을 구겼다.

    “그, 그러던지! 알아서 앉으면 되잖아?”

    “그럼, 실례하겠네.”

    루크는 그렇게 꼬마엘프의 곁에 소리내지 않는 귀족 특유의 부드러운 몸짓으로 앉았다.

    ‘이 여자앤 말투는 왜 이런대? 몸짓도 이상하고…….’

    너무나 특이한 루크의 등장에, 그는 아직 당황스러웠다.

    아직 혼란스러워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잠시 기다려 줄 법도 하건만, 루크는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 보다는 그 편이 훨씬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 머리는 염색인가?”

    “날때부터 이랬어.”

    그는 귀찮다는듯이 살짝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번이고 대답한다는 듯이.

    과거에도 여러번정도 대답한 것인가?

    ‘그렇다면 실제로 알비노라는 뜻이겠군.’

    은발적안은 다크엘프의 사이에서는 꽤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피부가 하얀 화이트엘프중에서는 보기드문 유전형질이었다.

    그리고 이런 알비노현상은 하이엘프의 피가 열성으로 나타난 결과가 보통이다.

    루크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루크 이루시, 루크라고 부르거라.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갑작스런 자기소개에 당황한 그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문득 루크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생각했다.

    ‘……이거 쫌 부끄러운데.’

    생각해보니 갑자기 모르는 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는건 꽤나 낯간지러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여자애가 꽤나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그는 시선을 피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시루드 트리핀드.”

    “트리핀드……. 역시 그랬군.”

    트리핀드, 루크도 알고있는 성이었다.

    그것이 하이엘프의 성씨니까.

    그나저나, 하이엘프의 혈통이 5000년이나 이어져왔단 말인가.

    과거의 향수가 느껴졌다.

    하이엘프는 마나감응력역시 정령감응력만큼이나 뛰어난 지도자층 엘프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하이엘프의 경우.

    피가 온전하지 않은 알비노라면 정령감응력이나 마나감응력중 하나가 희생되는대신, 그 반대성향이 더욱 강화된다.

    5000년 전의 루크가 알만한 알비노 엘프는 정령사였기에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었으나, 그는 그 어린 나이에 1서클에 도달한 유망주.

    ‘이건 이야기가 통할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조언을 해줄수도 있겠고.’

    클래스마법이 세계를 구성하는 지금, 이제는 쇠퇴해버린 서클마법의 사용자가 아닌가.

    어쩌면, 과거의 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시루드라고 부르면 되겠느냐?”

    “……마음대로 불러.”

    루크는 책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시루드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파편을 느끼며 생각했다.

    ‘심장의 서클은 불안정하군. 감응력은 뛰어나지만, 서클이 너무 얕아.’

    이대로라면 반드시 폭주한다.

    길면 1년, 짧으면 한달.

    운이 좋다면 억누를 수도 있겠지만, 이리도 얕아서야, 조금의 감정의 동요만으로도 위험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루드, 서클을 심장에 새긴지 얼마나 되었지?”

    “뭐야, 너. 그걸 어떻게……!”

    “잠깐, 진정하거라. 네 서클은 지금 굉장히 불안정하다. 감정에 휘둘리지말거라.”

    “윽! 후우……. 이건 너 때문이잖아.”

    시루드는 심호흡을하며 천천히 감정을 추슬렀다.

    “루크라고 했던가? 너, 갑자기 뭐야?”

    감정을 추스리니 심장의 통증이 가시는걸 느끼며, 시루드는 인상을 찌푸리곤 루크를 쏘아붙였다.

    서클폭주 직전까지 간 탓일까, 시루드의 표정은 확실히 짜증을 담고있었다.

    ‘폭주한다해도 안정화시켜줄 순 있지만…….’

    루크는 2서클, 1서클에는 충분히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 원리를 이용하면 강제로 서클을 안정화시키는 작업도 가능하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미안하군. 그대에겐 내가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생겨서 말일세.”

    “내, 내게 호기심을?”

    반면 시루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자신에게 서클이 있는건 어떻게 알았으며, 또 이렇게 갑자기 훌쩍 다가오는건 뭔가.

    ‘얘, 혹시 날……?’

    호기심이라면, 그런것밖에 없지 않겠는가.

    처음보는 여자애지만, 서클에 대한걸 알고있는걸 보면 스토커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여자애다!’

    시루드는 경계심을 마구 끌어올렸다.

    화장실에 간 엄마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수인여자애가 나를 스토킹했어!’

    대체 어떻게, 언제부터?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식은땀이 마구 나기 시작했다.

    “그대에게 부탁할게 하나 있네만.”

    시루드는 흘깃, 하고 옆을 바라본다.

    태연하게 책을 읽고있는 무표정의 여자아이.

    곱게 갈라져내려온 백금발에, 꽤나 오묘한 빛을 내는 청록색과 황금색 눈동자. 거기에 대체 무슨 수인인지 모를 오묘한 뿔과 귀.

    거기에 애들은 입지 않을법한 어른스러운 의상…….

    ‘어라? 이렇게보니까 나름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얼굴은 귀여웠다.

    그게 참 비현실적인 거지만.

    “뭐, 뭔데.”

    “가슴을 좀 만져봐도 되겠나?”

    “ㅁ, 뭐라고!”

    루크의 입장에선 그저 심장의 서클에 손을 대고 자세히 느껴보고자 했던 것이지만, 시루드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전해지고 말았다.

    ‘이건, 성추행!?’

    심장이 마구 뛰기시작한다.

    당혹이라는 감정으로 불붙은 심장은 마침내 수치심과 공포로 폭발했다.

    “으윽……!”

    털썩.

    심장이 찢어지는듯한 통증, 마력이 날뛰는 것이다.

    고통은 또한 공포라는 감정을 마구 생산해냈다.

    결국 시루드는 금방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으어……. 억…….”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의자의 사이에 가려져 어른들도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는 듯 보였다. 쓰러질때 소리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이대로 죽는건가……?’

    원망스러웠다.

    그저 서클제거시술을 받으러 온 것 뿐인데, 루크인지 리키인지모를 여자애때문에 죽게 생겼다.

    ‘살려, 줘……!’

    허억, 헉, 하고 숨을 들이키고 있으니, 복부에 무언가 얹히는 감각이 들었다.

    고통탓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지만, 가슴쪽에도 무언가 닿는 듯 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따듯하고 안정된 기운.

    그것이 심장을 부드럽게 감싸며 마침내 날뛰어대던 심장의 고리를 풀어낸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발에 찔린 가시를 살살 뽑아내듯이, 자애로운 느낌으로.

    “하아, 하아…….”

    “흐음, 정신이 드는가?”

    눈을 떠보니 보이는 광경은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비현실적인 소녀가, 마침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모습이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너무 감정적이구나.”

    “너, 너어…….”

    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말이 새어나오기 직전,

    “루?! 지금 대체 뭐하는거야!?”

    경악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르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ㅋㅋ 제가 어지간해선 12시에 올리러 했거든요.
    근데 삽화가 마려워서 늦었습니다…. 주말엔 어떻게 주기를 돌려봐야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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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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