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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현자 성능 무지하게 좋네.”

     

    사무실에서 상태창을 체크하다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연금술 C]

     

     

    주치의 업무를 이어가며 시모어의 주문 수업을 들으니 순식간에 랭크가 올랐다.

     

     

    [성질변화 C]

    [물질의 화학식을 조작합니다. 대상 물질은 랭크에 따라 제한됩니다.]

     

     

    무엇보다 성질변화가 직관적으로 바뀌어서 편해졌다.

     

    전에는 단순하게 딱딱한 걸 부드럽게 바꾸거나 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내 화학 지식을 기반으로 식을 디테일하게 조작할 수 있다.

     

    [추출 D] 라는 스킬도 개방해서 한층 재료의 폭도 늘어났다.

     

    “사탕수수가 있으면 MSG도 만들 수 있겠어.”

     

    아쉽게도 이 동네에 사탕수수는 없었다.

    나중에 외지 탐방할 일이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전부터 동네 짜장면 맛이 그리웠다.

     

    “덕분에 제약의 범위가 늘어났어.”

     

    문제는 나도 그 수많은 약들의 원료나 합성식까지는 정확하게 전부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유명한 몇몇 약제는 기억하지만 대부분은 기초 원리만 알기에 실험이 필요하다.

     

    “근력강화제를 만들어 보긴 했는데.”

     

    손에 든 주사기의 투명한 액체를 바라본다.

     

     

    ―――――――――――

     

    중급 근력강화제

     

    투약 시 효과 : 1분간 근력이 증가합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물 남용은 금지!

     

    ―――――――――――

     

     

    약간 점성이 있는 액체다. 콜레스테롤에서 추출한 호르몬에 변형으로 화학식을 살짝 변경하고 강화로 마무리했다.

     

    본래 근육을 늘리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운동 효율을 늘리는 것이지 투약만 한다고 근력을 늘리는 마법 약물은 아니다.

     

    그런데 연금술 스킬을 섞으니 진짜 알기 쉬운 비약이 완성되어버렸다.

     

    “한 가지. 부작용이 좀 걸려.”

     

    심지어 지속시간도 아주 짧다.

    비상용으로만 가지고 있어야지 함부로 써선 안 될 물건이다.

     

    가령 지난번처럼 고블린 무리에 습격당했을 때라든지.

     

    주사기는 조금 개조를 가했다. 평소에 바늘이 숨겨져 있다가 끝을 누르면 튀어나와 주입되는 방식이다.

     

    유사시 쓰기 위한 구조다.

     

    근력강화제를 가운 안주머니에 넣으며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이런 시간이네.”

     

    오후 업무를 시작할 때였다.

    아셀라의 저녁 식단 확인부터 해야 한다.

     

    “근데 타냐는 왜 안 와?”

     

    최근에는 내가 이동할 때가 아니면 굳이 호위할 필요가 없으니 기사 연병장에서 자유롭게 단련하라고 해놨다.

     

    처음에는 임무를 이유로 거부하던 그녀였지만 황실 기사단에 꽤 관심을 보이던 눈치가 있었다.

     

    결국 지금처럼 시간이 빌 때는 단련을 다녀오기로 받아들였다.

     

    늘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그녀였다.

    성격상 내가 움직이기 10분 전에는 와서 대기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얘 어디서 뭐 하냐.”

     

    나도 업무를 시작해야 하니 타냐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내의원을 나와 황실 기사단 병영을 찾는다.

     

    황실 부지 성벽 곳곳에 배치되어있기에 병영은 각 방위에 하나씩, 네 개가 있다.

     

    굳이 먼 곳을 찾아가지는 않았을 테니 남쪽 병영에 있겠지.

     

    병영 입구에 도착하니 우락부락한 보초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신원을 밝혀주십시오.”

     

    뭐라는 거야.

    이놈들은 휘장도 못 알아보나.

     

    “3황녀님의 주치의다.”

     

    “아, 그 주치의시군요.”

     

    보초들이 어째 피식피식 웃어댔다.

     

    흠, 무슨 분위기인지는 쉽게 짐작했다.

     

    “명부에 성함과 방문목적을 적어주시죠.”

     

    “확인만 하면 돼. 안에 내 기사가 있나?”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시죠.”

     

    “길을 열어야 들어가지.”

     

    “하하, 오신지 얼마 안되셔서 모르시나 본데 명부에 성함을 적고….”

     

    하, 이거 원.

     

    “기사, 어느 파벌 소속이야?”

     

    내가 불쾌함을 드러냈음도 보초들은 능글대는 태도를 멈추지 않았다.

     

    “파벌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남측 병영은 토진궁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토진궁, 2황자 파벌이었다.

    황실에서는 꽤 힘 있는 승계권자다.

    이들의 어깨가 든든한 것도 이해가 됐다.

     

    “기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그와 눈을 가까이 마주쳤다.

     

    “황가의 2품계 공직원의 행동은 절차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업무의 무게가 사소한 절차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 그런 기본 수칙도 모르고 보초를 서고 있어?”

     

    내가 원칙을 언급하니 그들이 당황하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신입 신고식이라도 치를 속셈이었나 보지.

     

    어리버리한 상급자 골탕 먹이기. 물론 꽤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황궁의 예도와 규칙을 입궁한 날 전부 읽어놨다.

     

    “가령 지금 황녀님의 옥체에 이상이라도 생겼는데 내가 여기서 뺏긴 시간 탓에 대처가 늦었다 쳐보자고.”

     

    내가 손날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해가 돼? 업무 태만에 무능력으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죄, 이 자리에서 물을 수도 있거든.”

     

    “그, 그게….”

     

    보초들이 내게서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당황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약한 파벌의 주치의라 호구로 보였나 보다.

     

    그때였다.

     

    “보초들의 실수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시죠, 고트베르크 선생님.”

     

    병영 안쪽에서 절그럭거리며 덩치 큰 기사가 하나 걸어 나왔다.

     

    고급스러운 갑주로 보아 꽤 높은 직책에 있는 자였다.

    내 직함도 정확히 알고 있다. 어느 정도 머리가 찬 자임이 분명했다.

     

    “저는 황실 기사단 2사단의 중대장인….”

     

    “관심 없고.”

     

    “하하, 분노를 거두셔야 할 텐데요. 3황비파가 2황자님께 오래전부터 협력하고 계신 상황은 잘 아시겠지요.”

     

    흠, 그랬었구나.

     

    황제의 눈 밖에 난 카밀라가 선택한 황가의 아군은 2황자였던 모양이다.

     

    게오르크라는 이름이었던가.

     

    시모어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2황자가 카밀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그가 아셀라의 재능과 디버프에 관해 정확하게 알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고작 말단 기사놈들이 주치의인 내게 어떻게 장난질을 칠 생각을 하나 했더니만.’

     

    그런 배경이 있었나.

     

    말하자면 지금까지 3황비파는 2황자파의 부하, 월광궁이 토진궁의 속국이었다고 할까.

     

    우습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

     

    “원하시는 건 선생님의 호위기사시죠? 마침 병영 안에 있습니다. 저희 기사들이 친절하게 대련 상대를 해주던 참이었죠.”

     

    역시 타냐는 여기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안에서 있었던 일도 충분히 상상이 간다.

     

    검술에 관심을 보이던 타냐에게 기사들이 시비를 걸어 대련을 빙자한 스트레스 해소용 공격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 가지 정정하지.”

     

    나는 앞으로 나서며 선언했다.

     

    “3황비파가 아닌 3황녀파야.”

     

    내가 카밀라를 위해 일한다고 여겨지는 건 좀 싫으니까.

     

    “지금까지는 어땠을지 몰라도 같은 태도로 대하다간 큰 코 다칠 거야.”

     

    “하하하! 다친다, 저희가요?”

     

    중대장이 어이없어하며 하늘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저희가 다치면 선생님이 고쳐주셔야 할 텐데요?”

     

    “아, 그건 누구보다 자신 있지.”

     

    “…응?”

     

    “내 치료 실력은 내의원에서 제일이거든. 너희도 부상입었을 때 생각나면 찾아와.”

     

    “…그래요? 자신감은 엄청나시군요.”

     

    내 덤덤한 반응에 중대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게오르크 전하는 저희 중대까지는 내의원 치유사를 안 보내주시죠.”

     

    “이번 비무대회도 출전할 기사들만 챙기고 계시고요.”

     

    “조용히 해라! 전하께서 분노하시면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모르나!”

     

    중대장이 부하들을 윽박지른다.

     

    그리 말해도 내게 게오르크 2황자라는 이름은 별로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10년 후에서 생존한 황가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셀라가 즉위 후에 전원 숙청했다.

     

    차라리 아셀라를 들먹였으면 내가 좀 쫄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때 병영 안쪽에서 절그럭거리며 급히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대장인가? 어디, 그 여기사가 어떻게 됐는지 보고를… 으응?”

     

    중대장은 자기 부하가 나타나서 타냐가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말해주길 바란 듯했지만 예상은 제대로 빗나갔다.

     

    다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안에서 타냐가 직접 뛰어나왔기 때문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타냐가 급히 뛰어와 내게 사과했다.

     

    “기사님들과 대련에 열중하다가 복귀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는 타냐.

     

    “다친 곳은?”

     

    “다친 곳이요? 아뇨, 검술에 대해 합을 나누는 모의 대련이었기에 부상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 기사분들은 몇 명 찰과상을 입으셨습니다.”

     

    쿵, 중대장이 뒷걸음질 치다가 다른 보초와 갑옷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기사가 서른은 있었는데 전부 때려눕히고 나왔다고? 심지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중대장이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타냐는 황실 기사들의 시비를 시비로 인식조차 못 하고 진짜 대련으로 임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른 명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는 소리였다.

     

    꼼꼼한 타냐니 진작 돌아갈 시간이라고 깨달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바짓자락을 붙들렸겠지.

     

    굳이 자기 잘못으로 돌려 책임을 지는 게 타냐답게 듬직하다.

     

    “덕분에 업무에 늦게 생겼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단장?”

     

    조금 놀려줄 생각으로 가볍게 타박하니 타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사과했잖습니까.”

     

    “그걸로 끝이야? 어이가 없네. 단장도 보리스처럼 성의를 좀 보여.”

     

    “맛있는 음식 말이군요. 구해보겠습니다.”

     

    “자네가 구해봐야 황실 음식보다 고급이겠어? 입도 막입이면서. 일주일 동안 나 업고 사무실 올라가.”

     

    “대신 근력 단련에 어울려드리죠.”

     

    “어허, 지금 주군을 호위도 없이 먼 길 행차하게 해놓고 협상을 하려 들어?”

     

    “사흘이요.”

     

    “오케이.”

     

    못마땅한 듯 입술을 비죽 내민 타냐의 표정은 꽤 웃겼다.

    계단을 안 오르게 된 것보다 이 장면이 더 큰 수확이었다.

     

    “그럼 빨리 돌아가자고.”

     

    “예. 호위하겠습니다.”

     

    “잠, 잠깐 기다리십쇼!”

     

    볼일도 끝나 병영을 떠나려는데 중대장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저희 병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그냥 가시겠다고요?”

     

    “너희 기사가 약해서 타냐에게 진 거잖아. 그러게 평소 훈련 좀 잘 시키지 그랬어.”

     

    “지금 뭐라고…!”

     

    “근력도 더 키우고 말이야. 너도 덩치만 키우고 근육이 다 굳었나 본데, 스트레칭도 하고 그래. 내가 알려줘?”

     

    중대장이 결국 폭발해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모욕을! 그 여기사가 무언가 비겁한 술수를 쓴 거겠지! 비실비실하게 생겨먹어서 무인을 가르치려 들지 마십시오!”

     

    거 참 고집불통인 친구네.

    머리까지 근육으로 굳어버렸는지.

     

    이래서 스트레칭은 필수다. 몸이 유연해야 사고도 유연해지지. 타냐에게 질 수도 있지 뭘 그리 화를 내.

     

    상황은 정리해야겠다.

    마침 좋은 비교군도 되겠고.

     

    실험해볼까.

     

    나는 가운 아래에 손을 넣어 근력강화제가 든 주사기 끝을 톡, 눌렀다.

     

    왼쪽 가슴부터 뜨거운 느낌이 온몸으로 슬며시 퍼져간다.

     

    나는 중대장에게 다가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의 팔을 잡아줬다.

     

    “너무 편견 갖지 말고, 기사.”

     

    ―꽈악…

     

    “어어… 무슨 힘이?!”

     

    내게 팔을 잡힌 중대장의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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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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