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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이브 니르바나 이그드라실은 분홍 머리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요나.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소년이었다.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방치되다시피 자란 레몬과 애플. 당연히 나이에 비해 교양과 지식이 부족하고, 쌓아둔 재산이나 무력 같은 건 전무하다.

       

       그렇기에 이브가 데려와 뭐라도 시켜 먹으며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런 두 자매에게 저항조차 못 하던 것이 대략 1년 전의 요나다.

       

       헌데, 어제는 레몬과 애플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으로 약탈자 하나를 완전히 해체했다고 한다.

       

       아무리 인간이 짧은 수명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종족이라지만, 명백한 이상이 느껴지는 속도.

       

       거기에 겨우 8쿠퍼…아니, 당시의 요나 입장에서는 목숨이 달린 금액이었다고 했던가.

       

       레몬과 애플이 별생각 없이 저지른 일로 굶어 죽을 뻔했다며 둘에게 이를 벅벅 갈며 복수심을 불태웠던 것 같으나, 정작 쌍둥이가 죽을 위기가 되자 그녀들을 구했다.

       

       감정이란 대가를 받는다 하여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요나는 럭키 스트라이크를 받는 순간 정말로 모든 원한을 잊었다.

       

       이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브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단 말이죠.”

       

       이브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외모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걸.

       

       예전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써먹기도 했지만, 은퇴한 후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특성.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이브는 자신을 경계하는 이들에게 익숙해지고 말았다.

       

       가끔 호의적이고 친근하게 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진실의 눈에는 그러한 가식이 전부 보이기도 했고.

       

       물론 거짓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이브의 나이가 몇인데 이제와서 그런 일로 일희일비하겠는가.

       

       기본적인 예절, 상대방을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배려, 단순히 몸에 밴 습관 등등.

       

       거짓이라 하여 반드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이브다.

       

       다만 그런 이브이기에 요나가 보여주는 진심 어린 호의에 더더욱 당황하고 만 것이다.

       

       요나는 레몬이나 애플처럼 눈치가 없고, 요령이 없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원한다면 언제든 표정과 감정을 감출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진실의 눈으로 살펴본 요나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군요.”

       

       실제로는 요나가 이브의 권능을 알고있기 때문에 신경 써서 실수로라도 거짓을 입에 담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고.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박살 난 대신 자기 세계관과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 작가라 그런 것이지만….

       

       진실의 눈은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거짓을 밝혀내는 권능. 구체적인 생각을 읽진 못하고, 대상이 정말로 속고 있는 경우를 가려내지도 못한다.

       

       아무리 이브라도 어떻게 요나가 사실 판 대륙과 똑같은 설정의 소설을 쓰려던 작가였으며, 본인이 그 등장인물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그저 요나가 투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그녀에게도…아니, 그런 그녀이기에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소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요, 흥미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후후.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쓰러뜨리고, 세계수 님의 권능을 받아오겠다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엘프가 몇백 년에 걸쳐 시도했던 일이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엘프의 정신적 공허함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장생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0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엘프가 속출했을 정도.

       

       당연히 이들은 어떻게든 세계수의 흔적이라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쳤고, 세계수의 적장녀라지만 아직 어린 이브를 여왕의 자리에 올린 것도 그래서다.

       

       그런 당시의 엘프들이 차원 간에 걸친 그림자요, 눈속임에 불과한 허상이라는 걸 알아도 세계수가 떡하니 있는 미궁 1층을 가만 놔뒀겠는가.

       

       우르르 몰려들어 어떻게든 과거의 삶을 되찾으려 했다. 심지어는 아예 1층에서 살던 엘프도 있었고.

       

       물론, 이러한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세계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엘프들을 살리기 위해 죽었고, 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명제였으니까.

       

       하지만 처음 2층으로 진입한 모험가들이 계층 수호자라는 존재와 조우하게 되고, 놈과 싸워 이겨 사멸한 신의 권능 일부를 제 몸에 깃들인 순간.

       

       반쯤 포기했던 엘프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세계수가 없더라도, 세계수의 흔적이라도 찾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늙은 엘프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고, 어린 엘프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더욱 크게 자라나리라.

       

       그리고 만약 그 권능을 얻은 이가 남자라면…그때는 세계수의 적장녀인 여왕님과 부부의 연을 맺게 하자.

       

       세계수의 권능을 품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다시금 엘프를 완전하게 만들 것이다!

       

       행복회로를 풀가동한 엘프는 종족의 명운을 걸고, 말 그대로 모든 걸 투자해 1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800년이 흘렀다.

       

       엘프는 자력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황금만능주의에 눈을 떴으며.

       

       그동안 반려자 자리를 비워둔 이브는 역사적인 노처녀가 되었다.

       

       “…….”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는지 관자놀이의 핏줄이 움찔거리는 이브. 그녀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안 좋은 일은 잊고, 좋은 일을 떠올리기로 했다.

       

       예를 들면…요나가 마지막에 내건 약속이라던가.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개인의 사활을 걸고, 종족의 미래를 걸었음에도 누구 하나 진심으로 확신하지 못하던 1층 탐사 계획. 그저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요나는 달랐다.

       

       그 작은 소년은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는 듯,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뚜렷한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세계수의 권능을 받아와, 이브를 위해 사용하겠노라고.

       

       요나 본인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어린 소년이 몇백 년 전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이브는 다르다. 그녀는 백지 수표나 다름없는 혼담의 당사자로서 800년간 순결을 지켜온 사람 아닌가.

       

       거기에 마지막의 그 미소.

       

       언제나 그 나이대에 맞는 귀여움과, 분홍 머리의 특징 탓인지 묘한 색기가 어우러진 요망한 표정만 짓던 요나였으나.

       

       악수를 나누던 마지막의 한순간만큼은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오만하고, 사나운 미소.

       

       아니, 과연 그걸 미소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굳이 말하자면 맹수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고, 방해하는 이는 무자비하게 물어뜯을 것 같은 원초적인 폭력성이 담긴 미소.

       

       지구 기준의 ‘남성성’이 한껏 묻어나오는 그 모습에 이브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면서 처음 보는 ‘수컷’의 향기였기에.

       

       “아아….”

       

       요나가 레몬과 애플마저 데려간 탓에 아무도 없는 만물상 에덴.

       

       작고 허름하지만, 확실히 외부와 단절된 그 공간에 혼자 남은 이브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후후후. 잠깐 정도는 괜찮겠죠. 급한 일도 아니니.”

       

       자리에서 일어선 이브가 가게의 문을 잠그고,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진 뿔의 크기를 가늠해, 비슷한 크기의 어른의 장난감을 매대에서 꺼냈다.

       

       이곳은 만물상. 온갖 물건을 파는 만큼 당연히 솔로 모험가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도구도 팔고 있다.

       

       잘 안 팔려서 슬슬 치울까 했던 것이지만….

       

       “치울 땐 치우더라도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해 봐야죠.”

       

       그리 자기합리화를 마친 이브가 큼직한 모형을 입에 물었다.

       

       워낙 오랫동안 지켜온 곳이라 그런지 아래는 좀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고…무엇보다 요나가 처녀를 좋아한다고 했기에.

       

       스르륵-

       

       옷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브는 그날 요나의 거친 미소와 뿔이 이상해요로 2발을 뽑은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

       

       공수표를 너무 남발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거의 무료로 유니콘의 뿔을 이브에게 맡기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느긋하게 기다리면 그만이지만…어찌 됐든 지금의 내가 땡전 한 푼 없는 신세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탈탈 털어보면 몇 쿠퍼쯤 나오긴 하겠으나, 이미 실버의 맛을 알아버린 내 가슴을 울리기엔 너무나 적은 금액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돈을 벌 거야.”

       

       반쯤 납치당하듯 끌려온 레몬과 애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도 미궁에 가는 검까?”

       “그럼 장비 챙기러 잠깐 다녀오겠슴다.”

       

       “아냐. 미궁이 아니라 미궁도시에서 돈을 벌 생각이야. 효율적인 파밍을 위해서는 너희 둘이 필요하고.”

       

       “파밍은 또 무슨 뜻임까?”

       “아,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괜찮은 검까?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파밍은…뭐, 한번 해보면 알 거야.”

       

       이게 협력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난이도가 확 달라지거든.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당히 번화했지만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은 동네.

       

       모험가들이 꽤나 돌아다니긴 하지만, 기껏해야 레몬이나 애플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딱 좋은 느낌으로 치안이 불안한 동네라는 뜻.

       

       이런 곳에는 꼭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골목 근처를 집중적으로 훑어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했다.

       

       야생의 양아치들을!

       

       “가라 레몬! 애플! 뭐라도 시비 걸어!”

       

       “역시 본색을 드러내는 검까!”

       “오늘부터 여긴 저희가 접수하는 검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시키니까 신나서 돌격하는 쌍둥이 엘프. 그 기세에 당황한 로컬 양아치들을 보며 손가락을 풀어주었다.

       

       뚜둑-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군.”

       

       모험가가 아닌 소매치기로 돌아갈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리고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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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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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니르바나 이그드라실은 분홍 머리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요나.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소년이었다.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방치되다시피 자란 레몬과 애플. 당연히 나이에 비해 교양과 지식이 부족하고, 쌓아둔 재산이나 무력 같은 건 전무하다.


       


       그렇기에 이브가 데려와 뭐라도 시켜 먹으며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런 두 자매에게 저항조차 못 하던 것이 대략 1년 전의 요나다.


       


       헌데, 어제는 레몬과 애플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으로 약탈자 하나를 완전히 해체했다고 한다.


       


       아무리 인간이 짧은 수명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종족이라지만, 명백한 이상이 느껴지는 속도.


       


       거기에 겨우 8쿠퍼…아니, 당시의 요나 입장에서는 목숨이 달린 금액이었다고 했던가.


       


       레몬과 애플이 별생각 없이 저지른 일로 굶어 죽을 뻔했다며 둘에게 이를 벅벅 갈며 복수심을 불태웠던 것 같으나, 정작 쌍둥이가 죽을 위기가 되자 그녀들을 구했다.


       


       감정이란 대가를 받는다 하여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요나는 럭키 스트라이크를 받는 순간 정말로 모든 원한을 잊었다.


       


       이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브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단 말이죠.”


       


       이브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외모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걸.


       


       예전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써먹기도 했지만, 은퇴한 후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특성.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이브는 자신을 경계하는 이들에게 익숙해지고 말았다.


       


       가끔 호의적이고 친근하게 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진실의 눈에는 그러한 가식이 전부 보이기도 했고.


       


       물론 거짓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이브의 나이가 몇인데 이제와서 그런 일로 일희일비하겠는가.


       


       기본적인 예절, 상대방을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배려, 단순히 몸에 밴 습관 등등.


       


       거짓이라 하여 반드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이브다.


       


       다만 그런 이브이기에 요나가 보여주는 진심 어린 호의에 더더욱 당황하고 만 것이다.


       


       요나는 레몬이나 애플처럼 눈치가 없고, 요령이 없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원한다면 언제든 표정과 감정을 감출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진실의 눈으로 살펴본 요나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군요.”


       


       실제로는 요나가 이브의 권능을 알고있기 때문에 신경 써서 실수로라도 거짓을 입에 담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고.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박살 난 대신 자기 세계관과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 작가라 그런 것이지만….


       


       진실의 눈은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거짓을 밝혀내는 권능. 구체적인 생각을 읽진 못하고, 대상이 정말로 속고 있는 경우를 가려내지도 못한다.


       


       아무리 이브라도 어떻게 요나가 사실 판 대륙과 똑같은 설정의 소설을 쓰려던 작가였으며, 본인이 그 등장인물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그저 요나가 투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그녀에게도…아니, 그런 그녀이기에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소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요, 흥미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후후.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쓰러뜨리고, 세계수 님의 권능을 받아오겠다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엘프가 몇백 년에 걸쳐 시도했던 일이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엘프의 정신적 공허함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장생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0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엘프가 속출했을 정도.


       


       당연히 이들은 어떻게든 세계수의 흔적이라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쳤고, 세계수의 적장녀라지만 아직 어린 이브를 여왕의 자리에 올린 것도 그래서다.


       


       그런 당시의 엘프들이 차원 간에 걸친 그림자요, 눈속임에 불과한 허상이라는 걸 알아도 세계수가 떡하니 있는 미궁 1층을 가만 놔뒀겠는가.


       


       우르르 몰려들어 어떻게든 과거의 삶을 되찾으려 했다. 심지어는 아예 1층에서 살던 엘프도 있었고.


       


       물론, 이러한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세계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엘프들을 살리기 위해 죽었고, 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명제였으니까.


       


       하지만 처음 2층으로 진입한 모험가들이 계층 수호자라는 존재와 조우하게 되고, 놈과 싸워 이겨 사멸한 신의 권능 일부를 제 몸에 깃들인 순간.


       


       반쯤 포기했던 엘프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세계수가 없더라도, 세계수의 흔적이라도 찾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늙은 엘프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고, 어린 엘프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더욱 크게 자라나리라.


       


       그리고 만약 그 권능을 얻은 이가 남자라면…그때는 세계수의 적장녀인 여왕님과 부부의 연을 맺게 하자.


       


       세계수의 권능을 품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다시금 엘프를 완전하게 만들 것이다!


       


       행복회로를 풀가동한 엘프는 종족의 명운을 걸고, 말 그대로 모든 걸 투자해 1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800년이 흘렀다.


       


       엘프는 자력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황금만능주의에 눈을 떴으며.


       


       그동안 반려자 자리를 비워둔 이브는 역사적인 노처녀가 되었다.


       


       “…….”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는지 관자놀이의 핏줄이 움찔거리는 이브. 그녀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안 좋은 일은 잊고, 좋은 일을 떠올리기로 했다.


       


       예를 들면…요나가 마지막에 내건 약속이라던가.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개인의 사활을 걸고, 종족의 미래를 걸었음에도 누구 하나 진심으로 확신하지 못하던 1층 탐사 계획. 그저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요나는 달랐다.


       


       그 작은 소년은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는 듯,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뚜렷한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세계수의 권능을 받아와, 이브를 위해 사용하겠노라고.


       


       요나 본인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어린 소년이 몇백 년 전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이브는 다르다. 그녀는 백지 수표나 다름없는 혼담의 당사자로서 800년간 순결을 지켜온 사람 아닌가.


       


       거기에 마지막의 그 미소.


       


       언제나 그 나이대에 맞는 귀여움과, 분홍 머리의 특징 탓인지 묘한 색기가 어우러진 요망한 표정만 짓던 요나였으나.


       


       악수를 나누던 마지막의 한순간만큼은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오만하고, 사나운 미소.


       


       아니, 과연 그걸 미소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굳이 말하자면 맹수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고, 방해하는 이는 무자비하게 물어뜯을 것 같은 원초적인 폭력성이 담긴 미소.


       


       지구 기준의 ‘남성성’이 한껏 묻어나오는 그 모습에 이브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면서 처음 보는 ‘수컷’의 향기였기에.


       


       “아아….”


       


       요나가 레몬과 애플마저 데려간 탓에 아무도 없는 만물상 에덴.


       


       작고 허름하지만, 확실히 외부와 단절된 그 공간에 혼자 남은 이브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후후후. 잠깐 정도는 괜찮겠죠. 급한 일도 아니니.”


       


       자리에서 일어선 이브가 가게의 문을 잠그고,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진 뿔의 크기를 가늠해, 비슷한 크기의 어른의 장난감을 매대에서 꺼냈다.


       


       이곳은 만물상. 온갖 물건을 파는 만큼 당연히 솔로 모험가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도구도 팔고 있다.


       


       잘 안 팔려서 슬슬 치울까 했던 것이지만….


       


       “치울 땐 치우더라도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해 봐야죠.”


       


       그리 자기합리화를 마친 이브가 큼직한 모형을 입에 물었다.


       


       워낙 오랫동안 지켜온 곳이라 그런지 아래는 좀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고…무엇보다 요나가 처녀를 좋아한다고 했기에.


       


       스르륵-


       


       옷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브는 그날 요나의 거친 미소와 뿔이 이상해요로 2발을 뽑은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


       


       공수표를 너무 남발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거의 무료로 유니콘의 뿔을 이브에게 맡기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느긋하게 기다리면 그만이지만…어찌 됐든 지금의 내가 땡전 한 푼 없는 신세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탈탈 털어보면 몇 쿠퍼쯤 나오긴 하겠으나, 이미 실버의 맛을 알아버린 내 가슴을 울리기엔 너무나 적은 금액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돈을 벌 거야.”


       


       반쯤 납치당하듯 끌려온 레몬과 애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도 미궁에 가는 검까?”


       “그럼 장비 챙기러 잠깐 다녀오겠슴다.”


       


       “아냐. 미궁이 아니라 미궁도시에서 돈을 벌 생각이야. 효율적인 파밍을 위해서는 너희 둘이 필요하고.”


       


       “파밍은 또 무슨 뜻임까?”


       “아,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괜찮은 검까?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파밍은…뭐, 한번 해보면 알 거야.”


       


       이게 협력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난이도가 확 달라지거든.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당히 번화했지만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은 동네.


       


       모험가들이 꽤나 돌아다니긴 하지만, 기껏해야 레몬이나 애플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딱 좋은 느낌으로 치안이 불안한 동네라는 뜻.


       


       이런 곳에는 꼭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골목 근처를 집중적으로 훑어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했다.


       


       야생의 양아치들을!


       


       “가라 레몬! 애플! 뭐라도 시비 걸어!”


       


       “역시 본색을 드러내는 검까!”


       “오늘부터 여긴 저희가 접수하는 검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시키니까 신나서 돌격하는 쌍둥이 엘프. 그 기세에 당황한 로컬 양아치들을 보며 손가락을 풀어주었다.


       


       뚜둑-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군.”


       


       모험가가 아닌 소매치기로 돌아갈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리고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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