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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백가 출신 마법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 같이 갤러리 내에서 자신들을 은근히 과시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가문 출신이라던가, 몇 위계까지 올랐다던가, 누군가와 같이 수업을 들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렇기에 게시판에 올린 글과 로브에 달린 문장을 보고 알아낸 서열 38위 프란츠 가문의 가계도.

        추가로 약간의 검색을 더해 그가 누구인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노트를 두 개나 쓴다고? 어째서?”

        “쯧쯧, 이렇게 부주의해서야. 그래야 저격도 피하고 갤러리에 쓴 글로 신상도 추적당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 그건 작성글을 비공개로 돌리면 되잖아. 게다가 한 번 올린 글은 주기적으로 삭제하고 있는데…….”

        “그런 원시적인 대비책은 소용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지금껏 토비, 당신이 쓴 모든 게시글을 아카이브에 저장해 놨으니까요.”

        “허억!?”

       

        분명 밝힌 적 없는 이름을 부르자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벽에 등을 부딪혔다.

       

        실제로 내가 모든 유저들의 게시물을 박제해 놓는 건 아니었다.

        가끔 그런 악질들이 있긴 하지만 나의 경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관리자 계정으로 유저가 삭제한 모든 글을 볼 수 있었으니까.

        갤러리 내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해 왔는지도 낱낱이 파악되었다.

        예상대로 열차 테러를 작당모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

        꿀벌 게시판

       

        작성 게시글 목록 :

       

        [셀루시아 정령사 새끼 어디 갔어? 빨리 찾아와]

       

        삭제된 글 목록 :

       

        [33층에 도달했을 때 작전 개시한다]

        [니플헤이르 하나는 차장이랑 떠났음]

        [수하물에 폭탄 섞은 거 인증, 나중에 식당칸으로 뺄 것들은 붉은 봉인실 달아놨다]

        [출발할 때 플랫폼에서 들린 비명 뭔지 아는 사람?]

        [아무리 순혈 마법사라도 마탑 밖으로 튕겨져 나가면 다시 올라타진 못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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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원은 모두 백가의 일원들로 그 숫자는 총 일곱.

        목적은 비나와 크리스티나가 공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더 이전 글까지 자세히 살펴봐야겠으나 그보다 먼저 이들의 한심한 작태가 눈에 들어왔다.

       

        기껏 정체를 숨겨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분탕질의 기본조차 모르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전부터 지적하고 싶었는데, 닉네임이 다들 화려하군요.”

        “닉네임?”

        “게시판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데 특정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바코드로 만들어야죠. 정체를 감출 생각은 있는 겁니까?”

        “바, 바코드?”

       

        내가 테러리스트였다면 최소한 한 사람 당 바코드 닉 5개는 돌려가며 썼을 것이다.

        누가 올린 글인지는 자짤로 확인하면 된다.

       

        버려진 게시판도 하나로는 부족하다.

        도배와 억지 떡밥을 굴려 세력이 작은 다른 게시판에 테라포밍을 가하면 활동반경이 넓어지니 추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파딱들의 접속 패턴을 도식화하여 최대한 감시의 눈을 피하는 것도 기본 중의 기본.

        들켰을 경우를 대비해 꼬리자르기용 깡통 계정으로 어그로를 끌기까지 하면 정보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문의 문장을 달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처음 만나는 이의 기본적인 정보조차 확인하지 않고 들이대다니. 제가 당신들의 일원이 아니었으면 계획은 여기서 끝이었습니다.”

        “그, 그렇군! 역시 13위인가……! 이, 이럴 게 아니지! 우선 따라와라.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이 없어.”

       

        여러 노하우를 전수해주며 단숨에 토비의 신뢰를 얻어낸 나는 꿀벌들의 은신처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등석과 삼등석을 나누는 객차 사이의 통로에 공간 왜곡 마법을 걸어둔 상태였다.

        토비가 암구호를 말하자 열차의 한 량이 통째로 늘어나며 없던 칸이 생겼다.

       

        “늦었잖아 38번, 어떻게 된 거야?”

        “이 녀석이 일등석에서 하루종일 죽 치고 있어서 합류가 늦었어. 그보다 리더는?”

        “지령 기다리라는 말 이후로 연락 두절이야.”

        “벌써 공역에 들어갔나?”

        “연락 없으면 그냥 우리끼리 시작…… 응? 66번, 왜 그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네 명의 마법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인식저해 마법을 바르고 있어 성별 정도만이 구분되었다.

        서로를 가문의 문장에 달린 번호로 부르던 이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로브를 눌러 쓴 내게 꽂힌 의심의 시선이 이내 확신으로 변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설마 벌써 정체가 들켰나?

        아니면 갤러리 내에서 불화라도?

        ‘사랑받는 손주’는 여러 여자에게 집쩍대고 다닌 흔적이 게시글에서도 역력했기에 이쪽은 좀 억울했다.

        만약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면 대화 몇 번 만으로 내가 셀루시아의 정령사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금방 들통날 터였다.

       

        “너 잠깐 얘기 좀 해.”

        “왜 그래.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나는…….”

        “닥치고 따라와.”

       

        66번은 토비를 지나쳐서 나를 칸 밖으로 밀어냈다.

        좁은 통로에 둘만 서게 되자 긴장감이 더욱 높아졌다.

       

        일등석과 다르게 차체의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열차의 후미.

        마치 멱살이라도 잡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미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이쪽을 올려다보는 신장의 차이, 기껏 마주쳐놓고 시선을 피하는 버릇.

        꽤나 펑퍼짐한 로브임에도 도드라지는 흉부의 굴곡, 세검 형태의 마장, 손바닥의 굳은살.

       

        그리고 무엇보다…… 입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향기로운 시트러스의 내음.

       

        “대체 네가 왜 여기있는 거야, 클락!”

        “시엔?”

       

        마법제 이후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나의 동기였다.

       

       

       

        *

       

        “급행에서 테러가 일어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해 잠입 중이었어. 가문끼리의 분쟁은 본래 정보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된다면 얘기가 달라지니까.”

       

        오랜만에 만난 시엔은 중층을 돌파해 마법사로서의 이명까지 받은 상태였다.

        인식저해 마법을 풀고 드러낸 맨얼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 진짜로 백가 출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보다 넌 왜 여기있어? 설마 이놈들한테 가담한 건 아니겠지?”

        “설마, 그냥 우연이야.”

       

        꿀냄새가 솔솔 나서 이끌려 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 그녀에게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왜 쟤들이 글레시아를 노리는 건데? 마족이랑 연관이라도 있어?”

        “아니, 그보다는 공역에서 순혈 가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노리는 거야.”

       

        공역은 중층에서도 유명한 자원의 보고로 하늘에 떠 있는 섬의 형태였다.

        위치노트 제작에 필요한 종이나 가스등에 필요한 마석 등도 모두 공역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자원의 소유권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구역의 정령들이 내는 시험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공역이 개방되는 시기에는 많은 가문들이 이권 다툼 때문에 서로를 견제하곤 했다.

       

        “지금의 글레시아는 원소학파 내에서도 꽤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니플헤이르 가문에서 칠현자가 나온데다 후계인 비나 네타니아 역시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중이니까.”

        “…….”

       

        원소학 역시 정령학에 견줄 만큼 ‘타고난 순수한 마력’이 중요하다.

        비나의 마력은 순혈 마법사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정순한 편으로, 과장을 조금 보태서 재채기 한 방으로 마족을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쩐지 이가 시리더라니.’

       

        해주란 어떻게 보면 그런 마력에 나의 침을 발라 더럽히는 행위.

        자신의 마법으로 만든 케이크를 선뜻 건낸 것을 보고 가문에서 반쯤 내놓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글레시아가 이번 조사 위원회를 44층에서 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야. 베나흐 설산이나 트라팔가 호수 같은 곳의 소유권을 그런 괴물이 얻으면 적어도 백 년은 독점할 수 있을 걸?”

        “그렇구만.”

       

        시엔의 설명을 들으니 백가에서 기를 쓰고 막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만약 두 사람이 공역에 들어가지 못하면 마탑 내에서 글레시아 학파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다.

       

        어쨌거나 테러 자체는 정보부가 이미 인지하고 있어 성공은 어려워 보였다.

        재미있는 구경도 했겠다, 괜히 내가 끼면 방해만 될 테니 이쯤에서 적당히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세 명의 조력자를 모두 찾을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마지막으로 시엔에게 마법을 내어달라는 부탁을 하려던 찰나, 그녀의 입에서 내 귀를 의심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

        “응?”

        “저기에 없는 나머지 한 명. 그러니까 이번 테러를 사주한 이의 정체가 우리가 쫓고 있는 갤러리의 관리자라는 모양이야.”

       

       감히 나를 사칭하는 놈이 있다고?

       

       

       

        *

       

        “어딜 다녀온 거야?”

        “개, 개인적으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하하.”

        “그나저나 둘이 아는 사이였어?”

        “아니!? 오늘 처음 본 거야. 그치 13번?”

        “…….”

       

        시엔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클락을 옆자리에 앉혔다.

        손수 걸어준 인식저해 마법 때문에 그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상당히 불쾌한 상태라는 건 분명했다.

       

        혹시 아까 했던 이야기 중에 말실수가 있었나?

        자신의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보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혹시 내가 약속 어긴 거 때문에 그래!?’

        ‘……아니.’

        ‘부, 분명 보고 안 하고 갤러리에서 활동한 건 잘못했지만 정보부 일이니까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아니라니까.’

       

        이쪽이 백번 잘못한 것이니 화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시엔은 클락이 진심으로 짜증을 낼 때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법을 한 가지 알았다.

        바로 심신의 안정을 위해 위치노트를 쥐어주고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어느새 눈을 감고 몸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곤 했다.

       

        클락은 옛날부터 갤러리를 보는 도중에는 머리를 헝클어 놓는다거나, 옆에서 살포시 끌어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 치곤 되게 가까워 보이는데.”

        “혹시 둘이 사귀는 사이 아냐?”

        “말도 안 되지. 66위랑 13위가?”

        “서열은 언제든지 변하니 또 모르지. 38번도 예전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잖아? 아니야?”

        “그 얘긴 하지 마.”

        “왜? 여기서 모르는 사람 한 명도 없는데. 프란츠의 적녀가 공역에서 실종된 이후 가문이 아주 풍비박산…….”

        “닥치라니까!?”

       

        그러나 지금은 장소도, 시기도 좋지 않았다.

        곧 저들의 계획이 시작되고 자신은 그걸 막아야 했다.

        우선 적당한 변명을 통해 그를 객실로 돌려보내고, 33층에서 대기하고 있을 정보부 요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려던 그때.

       

        “다들 조용.”

        “……!!”

        “저희끼리 싸우기 위해 모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마침내 고개를 든 클락의 목소리가 좌중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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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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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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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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