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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리세가 당황하는 사이 남자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녀는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코앞에서 멱살을 잡힌 듯 숨통이 턱 하고 막혀오는 것을 느꼈고, 보이지 않는 손에 질질 끌려가듯 몸을 기울인 채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리세는 끌려가며 자연스레 자신의 목을 억죄고 있는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해 양손을 목에다가 가져다 댔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오직 숨을 캑캑거리며 바닥을 내려다보며 무력하게 끌려가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리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맨날 보던 신사의 바닥뿐.

         

       ‘어? 기둥이 왜….’

         

       그렇게 끌려가던 와중 그녀는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신사의 기둥 아래가 파여 있었다.

       그것도 밖으로 나와 있는 축축한 흙의 양을 보니 기둥의 뿌리까지 닿았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의문을 해소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대로 본전까지 이동했다.

         

       끼이-익.

         

       본전으로 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손도 대지 않고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매달린 사람이 보였다.

         

       “리, 리세!”

         

       리세의 아버지, 사이고 켄지였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투박한 통나무에 묶인 켄지는 질질 끌려오는 리세를 보며 피를 토하듯 그녀의 이름을 소리쳤다. 그는 리세가 목을 캑캑거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에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요귀(妖鬼) 같은 놈! 당장 내 딸을 풀어라!”

         

       노기가 가득 담긴 외침.

         

       하지만 남자는 무섭지도 않은지 방긋방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웃음은 얼핏 천진난만해 보였지만 불길함을 가득 품은 듯 보는 것만으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해주마.”

         

       남자는 리세를 켄지의 앞까지 끌고 간 뒤 그렇게 말했다.

         

       “지금 나랑 말장난 하는 거냐!”

         

       하지만 그 태도가 켄지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켄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진실함을 믿어달라는 듯, 자신이 하는 말에 조금의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진실성과 순수성을 증명하려는 듯 고요한 눈을 그리 마주 보았다.

         

       “자네와 자네의 딸은 풀려날 것이야.”

         

       남자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자네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네.”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것이 자네들에겐 복이 될 수도 있음이니.”

       “맙소사….”

       “그래. 나는 자네들에게 복(福)을 주러 왔다네. 참으로 고맙지 않은가?”

         

       켄지는 심해처럼 깊고 바위처럼 고요한 남자의 눈동자엔 오직 진실만이 있음을 알았다.

         

       자신에게 사람 좋은 얼굴로 다가와 다짜고짜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통나무에 묶고, 딸은 뭔지 모를 수단으로 멱살을 잡아 개처럼 끌고 온 저 사내가.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저 남자의 말이 진실일 수 있는가?

         

       남자의 말에 서린 언령(言靈)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고, 한없이 순수했다.

       켄지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 모름지기 지름길로 가면 빠르고 편한 법이지. 그러니 딱 한 번만 제안하겠네.”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리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곤 켄지의 눈앞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신체(神體)의 진짜 이름을 내게 말해줄 생각이 있는가?”

         

       신체의 이름.

         

       그 단어를 듣자 켄지와 리세 둘의 얼굴이 딱 굳어버렸다.

         

       이름은 힘을 가진다.

       그것은 신체(神體)라 불리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물(神物)이라기에는 영성을 품고 있고, 신령(神靈)이라기에는 한없이 이지가 부족한 것이 바로 신체. 그들은 외부의 자극에서 고립된 채 존재하며, 오직 신체의 이름만이 그들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관측과 상호작용은 면밀한 관계.

         

       신체의 이름을 아는 것은 신체에 인지된다는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는 것은 둘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신체는 인트라넷, 신체의 이름을 아는 것은 접속 아이디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걸 알아서, 무엇을 하려고?”

         

       켄지는 무거운 입술을 움직여 물었다.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는가?”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장난스럽게 되물을 뿐,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려줄 수 없네.”

       “그럴 줄 알았도다.”

         

       그는 피식 웃으며 품에서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방울이었다. 손톱 크기의 작은 방울이었는데, 싸구려인지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은 거칠었으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녹과 때가 묻어 있었다. 특히 때의 경우 검게 변한 부분과 때가 뭉쳐 초록색으로 된 부분이 같이 혼재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얼핏 보면 인적 드문 곳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 폐품이었다.

         

       또 하나는 아주 작은 비닐 팩이었다. 비닐 팩에 담겨 있는 것들은 제각각 달랐다. 어떤 것은 하얀 가루가 들어있었고, 어떤 것은 허브 가루를 닮았고, 어떤 것은 아주 얇디얇은 종이가 들어있었다.가루는 베이킹소다를 연상케 만드는 하얀색을 띠고 있었는데 반투명하면서도 산산조각이 나버린 얼음을 닮아 날카로운 결정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허브 가루는 얼핏 쑥을 말리고 빻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군데군데 뭉쳐서 울퉁불퉁한 구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남자는 작은 비닐 팩을 켄지의 앞에서 흔들며 비웃듯 말했다.

         

       “주술사도 아닌 것이 이런 것을 가지고 있구나. 왜, 이걸로 트랜스(Trance) 상태가 되어 의식이라도 치르고 싶었더냐?”

       “그, 그걸 어떻게….”

       “어찌 내가 이것들의 고약한 냄새를 모르겠느냐? 쉬이 찾을 수 있었노라.”

         

       켄지는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의 딸 리세를 쳐다보았다. 리세는 남자의 말이 무슨 말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경악했다.

         

       “아버지! 약을 하신 거예요?!”

       “리, 리세! 아니다! 그, 그게….”

         

       켄지는 무언가 변명을 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리세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곤 화제를 바꾸려는지 남자에게 크게 소리쳤다.

         

       “네놈! 날 협박하려는 거냐! 그렇게 협박해도 이름은 말해줄 수 없다! 차라리 날 죽여라!”

         

       꾸짖듯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자네를 왜 죽이리라 생각하는가? 자네는 살아야 해. 내가 그렇게 해주겠네.”

         

       하지만 정보는 뱉어야 하니, 이걸 준비했다네.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은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

         

       허공에 둥둥 떠서 흔들린 방울은 지저분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한 청명한 소리를 가득 내었고, 마치 종이라도 치는 것처럼 건물 전체를 울리고 바깥까지 퍼져나갔다.

         

       철—-벅.

         

       누군가를 부르듯 울린 방울 소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언가를 움직였다.

       촉촉하게 젖은 흙바닥을 헤엄치고 있던 그것은 배를 바닥에 깐 채 뱀처럼 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다가오기도 하고, 계단을 부러진 손가락으로 디디며 물구나무를 섰으며,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진 발을 촉수처럼 쭉쭉 늘리며 이곳저곳에 흙 발자국을 남겼다.

         

       “어, 어….”

         

       백 년 동안 소금에 절여버린 듯한 끔찍한 몰골. 빼빼 말랐음에도 채 썩지 못한 피부는 탄력을 잃은 채 뼈를 간신히 덮고 있었고, 뻥 뚫린 동공에서는 체액에 오염되어 새까맣게 변해버린 소금이 모래가 떨어지듯 끊임없이 자국을 남긴다.

       살아생전 어떤 크기였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든 몸으로 기어온다. 부러진 팔로 물구나무를 서려 하다가도 몸을 뱀처럼 꿈틀거리고, 의미 없는 발자국을 벽과 바닥에 남기며 그렇게 움직인다.

         

       “어떤 방법을 써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인주(人柱)가 있는걸 보았다네. 이렇게 기둥 밑에 산 채로 사람을 묻는 인신공양은 요새는 잘 볼 수 없는 것인데. 참으로 운이 좋지 않은가.”

         

       리세는 자신이 눈을 뜬 채 가위에 눌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인주가 어린아이더군. 그래서 널려있는 혼을 쑤셔 박아 새타니를 만들어보았네. 혼이 많아서 그런지 쉬이 만들어지더구나. 어떠한가. 어찌 그럴듯한가?”

         

       인주?

       새타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사, 살려줘….’

         

       알고 싶지도 않다.

         

       ‘짠 냄새, 썩은 냄새….’

         

       리세는 혼란에 빠져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끔찍한 악령을 보았다. 뻥 뚫린 구멍에서는 염장 고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풍겼고, 점점 크기를 더해가며 벌어지는 입에서는 끔찍할 정도의 시취(屍臭)가 풍겼다.

         

       악령의 입은 찢어질 듯 커지고, 또 커지고, 계속해서 커졌다. 그리고 입이 얼굴 전체를 찢어발기며 쫙 벌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꽃 같아.’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세!”

         

       리세는 그렇게 악령의 입이 자신의 머리통을 삼키기 전.

         

       그런 생각을 했다.

         

         

        * * *

         

         

         

       『 리세! 내가 알려줬던 것들을 잘 기억해라! 』

       『 절대 이름을 말하면 안 돼! 』

       『 어떤 수작을 부리든, 절대 넘어가선 안 된다!! 』

         

         

         

        * * *

         

         

       “리세! 리세! 수업 끝났어!”

         

       리세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드는 것을 느꼈다.

       감긴 눈을 억지로 뜨고 고개를 살짝 들자 보인 것은 아이리였다.

         

       “뭐가 그렇게 졸려서 밥도 안 먹고 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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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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