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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0

       숲과 평야가 번갈아 나타나는 지역, 우드랜튼.

       

       1개월하고도 보름간의 끔찍한 훈련을 마친 버멜은 이곳에 배속되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어떻게 사람이 군대를 두 번이나 온단 말인가?

       

       심지어 이번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입대가 아니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한창일 때. 그런 상황에서 최전방에 배치된 셈이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6·25 때 학도병으로 징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한 가지.

       

       총알받이 역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진하라! 전진!”

       

       국방장관에서 4성 장군으로 강등(?)당한 펙튼 장군의 지휘 아래, 버멜과 그 동료들은 우드랜튼 지역을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때로는 폭격을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기동전을 펼치며 적을 교란한다.

       

       다른 전선이 전부 무너지는 와중에도 이곳만큼은 우세했다.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안락한 장소.

       

       “진격하라─!!”

       

       사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안락함을 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버멜의 부대는 전진보다 후퇴를 두려워했다.

       

       “뭐 해 이 새끼야. 다시 안 돌아가?”

       

       적보다 아군이 더 무서운 까닭이다.

       

       게오르그 펙튼 장군. 별 네 개를 단 야전사령관이 직접 전방에 나서서 후퇴하는 병사들을 채찍으로 후려댄다.

       

       저러고 있으면 마왕군의 표적이 되기 딱인데, 지금까지 기습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펙튼은 기동전과 급습에 환장한 맹장이니까. 기습당하기 전에 먼저 기습하는데 어떻게 기습하냐고.

       

       아무튼, 괴팍한 성격이 흠이지만 전공만큼은 확실하다.

       

       “뒤처지는 놈은 처맞을 줄 알아라!!”

       “허억, 허억.”

       

       버멜은 뛰고 또 뛰었다.

       

       체력이 바닥나면 마력을 사용했다.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동료들과는 달리 정령 한 마리도 끼지 않고, 용렬하게 싸웠다.

       

       그것이 지휘관의 눈에도 보인 것일까?

       

       “으하하하! 아주 좋아! 자네, 오늘 아주 대단했네!”

       

       기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후.

       

       병사들 쉬는 막사에 난데없이 쳐들어온 포스타 님께서 자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버멜 호르데입니다.”

       “목소리가 작다!!”

       “버멜 호르데입니다!!!”

       “그래, 호르데 상병! 자네는 두 계급… 아니, 세 계급 특진을 시켜줘야겠군.”

       

       맞다, 이 사람 원래는 국방장관이었지.

       

       “내가 그동안 수많은 영웅을 보았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이군. 어떻게 포탄이 정면으로 날아드는 구릉으로 가장 먼저 돌격할 수 있었나?”

       

       불세례가 쏟아지는 곳에서 단기 돌격이라니. 지구였더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법이 통용되는 아렌스 대륙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용만 겸비한다면 얼마든지 혼자서 위기를 뒤집을 수 있다.

       

       실은 펙튼도 이를 알고 있다. 애당초 이 사람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과는 다르다. 보기보다 전황을 면밀히 파악할 줄 안다. 

       

       “장군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곳에만 돌격을 감행하는 사람. 다른 말로 하자면,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한 사람.

       

       그걸 알고 있었기에, 두렵더라도 나설 수 있었다.

       

       “녀석, 말은 번지르르하군.”

       

       펙튼은 코웃음을 치며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무엇, 말씀이십니까?”

       “마도부장관.”

       

       순간, 심장이 쿠웅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장관님 이야기는 왜…….”

       “자네와 그 계집이 교분이 있다는 건 개나 소나 다 아는 이야기지.”

       

       펙튼의 너스레에 동료 장병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닌데.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이제는 해명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는데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버멜은 정령의 샘에서 여신과 나누었던 계약을 떠올렸다.

       

       메시지 너머로도 느껴졌던, 당황하는 여신의 모습.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각하! 적군이 동부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 가 보자고. 차 준비해!”

       

       상념에서 벗어나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야간 전투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사흘에 한 번꼴로 있는 일이었다. 버멜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마력초를 물었다.

       

       

       **

       

       

       그리고 그런 버멜의 모습을 하늘에서 올려다보는 존재가 있었다.

       

       연둣빛이 살짝 첨가된 백색 머리카락에, 새벽이슬을 맞은 잎사귀처럼 싱그러운 눈망울을 지닌 소녀였다.

       

       백발녹안의 정령, 에어리얼.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버멜의 위를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마치 그곳에 머무르는 공기처럼. 제자리 걸음하는 소용돌이 바람처럼.

       

       […….]

       

       원체 호기심이 많은 에어리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유랑하기를 즐겼다.

       

       이는 바람 정령이 공통으로 지닌 특성이었다. 때문에 공계의 정령이 인간 혹은 엘프와 계약하는 일은 많지 않았고.

       

       그런데도 계약을 진행한다면, 필히 그 사람에게 미덕이나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흐흥, 흥.]

       

       순풍은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회오리가 되었다.

       

       엘프이면서 왜 어떤 정령의 축복도 받지 못한 것인가.

       

       그런데도 왜 이리 필사적으로 카우렐리아에 헌신하는가.

       

       그 소녀와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그에 대한 답을 알아내려고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새 부두에 정박한 배처럼 눌러앉고 말았다.

       

       “…온다.”

       

       버멜은 그리 중얼거리고는 상관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는 여느 때처럼 치열했다.

       

       핵폭탄인가 뭔가 하는 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백린과 작약탄이 날아다니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번쩍번쩍 날아다니는 폭죽 소리에, 고함과 비명이 반반 섞인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

       

       상황을 주시하던 에어리얼은 손끝을 붓처럼 휘갈겼다.

       

       뒤이어 마왕군 진영을 향해 선풍이 불어닥쳤다.

       

       

       **

       

       

       “폐하, 저것 보이십니까?”

       

       우드랜튼의 한 언덕.

       

       파스모와 함께 올라온 마왕은 개암을 까먹으며 진영 건너편의 상황을 내다보았다.

       

       “바람의 정령왕이군.”

       “이프리트가 죽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정신을 못 차린 게 아니야. 자기들도 아는 거지. 지금 우리가 저들을 쉬이 죽일 수 없다는 걸.”

       

       이프리트 하나를 처리하는 일에 기존의 원자폭탄을 모조리 써버렸다.

       

       때문에 현재 마왕군의 공세는 약해진 상태.

       

       이 틈을 노리고 들어온 펙튼의 부대가 국자인 양 전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골치가 아프단 말이야, 골치가.”

       “이프리트의 능력을 쓰면 되지 않습니까?”

       

       파스모는 넌지시 조언했다. 곧이어 마왕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바람은 불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애새끼도 아는 상식이지.”

       “그렇군요.”

       

       파스모의 입꼬리가 아쉬운 듯 올라간다. 마왕은 남은 개암을 촉수로 빨아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프리트가 죽었다고는 하나 아직 다른 정령왕이 건재하다. 특히 저 녀석은 막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지.”

       “그러면 철부지 아닌지요.”

       “철부지? 젊은 혈기를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마왕은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마수들이 뿜어 놓은 불길이 마왕군 진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에어리얼이 일으킨 회오리바람 때문이었다.

       

       “정말로 성가시군.”

       

       저대로 두면 필히 귀찮아질 터.

       

       어떻게든 죽여버리거나, 후방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정령들도 바보는 아니지. 저번과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어찌 할 생각이십니까?”

       “철수한다.”

       “예?”

       “짐의 본대가 있는 위수지역까지 군을 물린다. 전방의 고지는 넘겨주어라. 주력을 후방으로 끌고 와 견고한 모루로 받아칠 것이다.”

       

       견고한 모루 발언에서 알아챘다.

       

       전통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하려는 모양이다.

       

       모루라면 마왕의 주력군이 될 터이다.

       

       그렇다면 망치 역할을 하는 것은…….

       

       “호천에게 연락하라. 지금 당장, 카우렐리아의 수도를 급습하라고.”

       

       

       **

       

       

       “이, 이겼다.”

       

       또 이겼다.

       

       이걸로 벌써 몇 번째 승리더라?

       

       펙튼이 지휘하는 군단은 그야말로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다.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에 다다랐다.

       

       조만간 전쟁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행복회로를 돌리는 자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에테르가 흑주를 만들어낼 테니까.

       

       그전에 마왕이 길라흐의 해군을 움직여 수도 메르헤름을 함락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겠지만.

       

       “각하, 적이 십수 킬로미터 밖까지 철수하고 있습니다!”

       “뒤쫓을까요?”

       

       장교들은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펙튼은 고개를 내저었다.

       

       “뒤쫓지 마라.”

       “어째서입니까?”

       “또 저번과 같은 포위섬멸을 벌일지도 모르는데, 깊숙이 따라가자고?”

       “오늘 낮까지만 해도 전진밖에 모르던 분이 각하 아니셨습니까?”

       “멍청하긴─!!”

       

       ‘고막 떨어지겠네.’

       

       “기습과 추격은 때와 장소를 보며 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 아나? 마왕이다. 정령왕을 둘이나 죽인 괴물이란 말이다! 그 강성했던 제국을 보름도 안 되어 멸망시켜 놓은 것이 마왕인데, 저기서 저렇게 꽁무니를 뺀다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말을 들은 부하들이 입을 더듬거렸다.

       

       버멜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들었다.

       

       “각하, 첨언해도 괜찮겠습니까?”

       “허가하지.”

       “제국은 외부 전선이 아닌 수도에서부터 멸망했습니다. 그러니 카우렐리아도 같은 방법으로 패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카우렐리아의 후방, 그러니까 대양이 위치한 곳.

       

       그쪽에도 세실 르네이를 비롯하여 쟁쟁한 전력이 배치되어 있지만, 언제 어떻게 붕괴될지 모른다.

       

       특히 르네이는 호천과의 상성이 최악이다.

       

       ‘둘이 붙으면 르네이가 반드시 져.’

       

       아이러니하게도 길라흐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레니냐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에테르와 같이 연구하고 있겠지.

       

       버멜은 따귀 맞을 걸 각오하고 펙튼에게 사정했다.

       

       “잠깐 수도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상대로 펙튼의 눈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린다.

       

       “지금 탈영하겠다는 건가?”

       “며칠이면 됩니다.”

       “군의 대원칙은 상명하복이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진짜 야밤에 탈영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던 도중.

       

       “각하, 마도부장관께서 버멜 호르데라는 장병을 속히 수도로 보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신병이 다가오며 그리 고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300화라니, 300화라니…!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 버렸습니다. 이제 이 작품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군요. 아마 외전까지 합치면 1년이 넘어가지 않을까요?

    현 시점에서 본편 완결까지 플롯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본편은 앞으로 30화에서 50화 이내에 끝날 듯합니다. 아마도 본편 완결 후 잠깐 쉬었다가 신작과 함께 외전으로 돌아올 것 같아요.

    아니면 외전을 천천히 쓰면서 신작을 올해 하반기에 낸다거나…

    차후 연재 일정에 정확히 정해진 건 없습니다. PD님과 얼마 전 이야기를 했었는데, 신작은 올해 하반기가 어떨까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냥 업로드 하는 날이 연재 시작일 아닐까요…?

    아무튼, 벌써 결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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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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