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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0

       사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다.

        

       당연히 사육 관련된 자격증을 따거나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초등학생 때 담임이 화분 하나씩 가져다 키우라는 말에 동네 꽃집에서 적당한 화분 하나 사다가 놓고 키워본 것이 내가 뭔가 키워본 경험의 전부였다.

        

       사실 지금도 그리폰을 돌보는 건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내가 ‘키우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키운다는 말이 성립하는 놈인가?

        

       분명히 사람 말을 알아듣는 녀석이다. 황궁에 있는 것도 본인이 있고 싶어서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키우려고 데려다 놓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순히 사람 말의 뉘앙스를 보고 판단하거나 특정 단어만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말을 구체적으로 알아듣고 움직일 줄 아는 녀석이었으니 굳이 길들이고 훈련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낙관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이유로, 나는 곧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흥.

        

       이라고, 그냥 한 글자로 써두면 꽤 귀여운 느낌이 든다. 보통 우락부락한 남자 캐릭터보다는 귀엽게 생긴 캐릭터나 여자 캐릭터가 자주 쓰는 말이었으니 그런 이미지가 붙을 만도 했다.

        

       그리고, 애초에 저 효과음은 작고 귀여운 존재가 콧소리를 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훨씬 더 덩치 큰 존재가 소리를 내면 저런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리폰이 내는 소리도 그렇다. 절대로 ‘흥’은 아니었다. 애초에 구강 구조가 우리와는 다르기도 했고, 사람은 입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폰은 부리를 가지고 있다. 콧구멍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과는 그 구조가 달라서 그리폰이 콧김을 내뿜으면 커다란 펌프로 바람 소리를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무엇보다, 그 큰 덩치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물답게 폐활량이 어마어마해서, 내 정수리보다 까마득히 위에 있는 그 콧구멍에서 나온 바람이 내 발밑에 작은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치맛자락이 살짝 흔들리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말을 듣고 그리폰이 보인 행동을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그 글자 말고는 따로 표현할 방법이었다.

        

       흥.

        

       “……대체 뭐가 문제야?”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도 주고, 주변도 푹신하고 따뜻하게 관리해주고. 애초에 여기 있고 싶어서 여기 있는 거 아니야? 편하게 살고 있으면 내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줘도 되는 거잖아.”

        

       그리폰 콧구멍에서 커다란 숨소리가 들리고, 다시 한번 내 발밑에 먼지바람이 일었다.

        

       “아니, 애초에 나를 인정해서 여기 온 게 아니었냐고…….”

        

       남들 앞에서는 대놓고 하지 못 하는 말이었지만, 그리폰 앞에서는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지능이 좋아도 구강 구조가 다른 이상 그리폰이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깨를 늘어뜨리는 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걸로 봐서, 내 부탁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음.

        

       나는 다시 그리폰을 올려다보다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비인간 인격체라는 말이 있다.

        

       인간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인격체이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까마귀나 앵무새의 지능은 인간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하기도 하고, 코끼리나 돌고래는 자기들 나름대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도 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니 뭐라느니 하지만 그럴싸한 말이긴 했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동물 중 지능지수가 인간에게 필적하는 동물이 인간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니까.

        

       그런 분류가 실제로 과학적인 것인지 너무 감상적인 것인지는 미뤄두더라도, 일단 그런 분류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비인간 인격체의 분류 안에 그리폰을 넣을 것이다.

        

       식빵 굽는 자세로 앉은 주제에 머리를 고고하게 치켜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녀석한테 진짜로 금수 정도의 지능만 있다고 한다면 나는 정말로 놀랄 테니까.

        

       “좋아, 그럼.”

        

       나는 그리폰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테니까. 대신 너도 내가 원하는 걸 하나 해줘. 이러면 꽤 공평하지?”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도 그리폰은 한동안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못 알아들어서 저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쯤이 되어서야, 그리폰은 움직였다.

        

       대단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저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리고 접었던 날개를 마치 기지개를 켜듯 쭉 위로 펼쳐 올렸다.

        

       대단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위압감 있었다. 안 그래도 큰 키의 그리폰인데, 양쪽으로 쭉 펼친 그리폰의 날개 끝은 그리폰 머리 위 한참 위까지 올라갈 정도였으니까. 그 거대한 덩치를 위로 띄워 올리려면 당연히 날개가 이렇게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까지 그리폰을 꽤 자주 보았던 나도 한순간 눈을 빼앗길 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상체가 흰머리수리, 하체가 사자인 그리폰이다. 날개를 펼친 모습을 정면에서 보면 말 그대로 거대한 독수리가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뭔가 대단한 행동이라고 할까 두근거리면서 올려다보았지만, 날개를 편 것은 정말로 기지개였는지, 그리폰은 금방 다시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다가 대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니까,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 같은 자세로 말이다.

        

       순간 그게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이전에 그리폰에게 했던 것처럼 양손으로 치마를 잡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러면 됐어?”

        

       내가 물어보자,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흥, 하고 숨을 내쉬었다. 뭐.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올려다보자, 그리폰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양 무릎도 살짝 굽히고.

        

       “……응?”

        

       뭐지? 나더러 죽은 사람이라는 소리인가?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일본 게임회사에서 만든 세계관 속의 서양이다. 절 두 번은 죽은 에게…… 뭐 그런 유교적 규칙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지, 일본 게임 회사니 유교적 색채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걸 굳이 서양 배경에 욱여넣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 상황에서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림이 이상하다. 게다가, 내가 그리폰을 자주 보면서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리폰은 마음만 먹으면 나를 푸딩처럼 잘라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괜히 성질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다시 한번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났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나의 말을 들은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도 허리를 숙여 그 인사를 받아들여 주고—

        

       ……우리는 그 뒤로도 그 짓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그제야 내 머릿속 한구석에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그리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을 때, 나는 그리폰에게 존댓말을 썼었다. 사실 그때는 내 주변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썼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원칙을 스스로 어겼던 적이 몇 번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클레어와 함께 시간을 돌리던 순간이라던가.

        

       어쩌면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내 기준을 아래로 조금 내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솔직히 짐승이랑 단둘이 있는데 존댓말을 쓰는 건 이상하잖아. 키우는 강아지한테 존댓말로 말을 거는 건 좀 그림이 이상하지 않아?

        

       물론 내가 키우는 건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긴 했지만.

        

       “…….”

        

       하지만 그래도 상황은 꽤 명확했다.

        

       그리폰은 구강구조 때문에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으니, 나름대로 바디랭귀지로 나에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인사를 하고 나서 ‘반말’로 말을 건넬 때마다 그리폰은 더 신중하고 공손하게 나에게 인사했다.

        

       그 몸짓이 자기도 그렇게 할 테니 나도 그렇게 하라는 소리가 아니라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그런 것 치고는 얘는 내 목덜미를 들어서 위로 던지는 짓을 몇 번 했던 것 같지만, 일단 그걸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상호 존중하자는 소리입니까?”

        

       내가 그렇게 존댓말을 하고 나서야 그리폰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거참 까다롭기도 하지.

        

       “그럼, 이렇게 공손하게 부탁하면 제 부탁도 들어주실 생각입니까?”

        

       “…….”

        

       내 질문에 그리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의 그 식빵 굽는 것 같은 자세로.

        

       어떻게 보면 알 품는 자세 같기도 했다.

        

       …….

        

       그러고 보니 얘는 수컷인지 암컷인지 모르겠네. 확인해보려고 하면 화내려나?

        

       그런 아무래도 상관없는 생각과는 별개로, ‘상호 존중’은 서로 대화하는 ‘기준’인 모양이고,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는 또 별개의 문제인 모양이다.

        

       ……거참 까다롭기도 하지.

        

       하고,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한번 더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어프라이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제가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앞으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몇 가지 외에도 얕은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그 모든 글을 하나하나 다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이상하게 그 중 대부분이 TS이기는 하지만… 사실 처음 쓰기 시작한 집필 동기가 TS물 쓰고싶다는 것이었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죠.

    이번 작품은 이제 후일담과 외전만 남았습니다만, 연재 주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다음 작품도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연재를 끊고 쉬어볼까 했는데, 괜히 그렇게 했다가는 휴식기가 너무 길게 늘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차라리 적당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준비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사실 이미 표지도 뽑아두었고…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이 저의 글을 읽어주실 마음이 들도록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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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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