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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0

    불 꺼진 연구실.

    한 남성이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어째서 모두들 나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그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다.

    그가 평소에 어찌나 지루할 정도로 무감정한 인물인지를 아는 자라면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했을 모습이었다.

     

    그는 한 눈에 보아도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난로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마치 불똥이라도 튀긴 듯 깜빡이는 불빛이 벽난로의 장작으로부터 터져나온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마법이었다.

     

    -팟, 화륵-.

     

    어느새 불이 붙은 벽난로가 그렇게 장작을 태우며 은은한 빛과 열을 뿜어낸다.

    그렇게 별다른 노력 없이 불을 붙인 마법사는 모자와 로브를 옷걸이에 대충 벗어 걸치고는 벽난로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다.

     

    -끼릭…….

     

    꽤 오래된 것인지 흔들의자로부터 유격음이 새어나왔지만 그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

    정성과 세월로 손질된 물건은 마법사에게도 마법에게도 모두 매력적인 장난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오래된 물건을 선호하며, 오래된 관념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현재 그런 마법사들에게 불만을 품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평소라면 기분이 좋았을 그 흔들의자의 유격음조차 지금은 굉장히 불쾌하게만 들려왔다.

     

    “구닥다리들 같으니.”

     

    마탑의 마법사들은 누가 마법사가 아니랄까봐 하나같이 오만방자하고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자신들보다 한참이나 어린 풋내기 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항상 젊은 조언자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확실히, 자신은 마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마 20살도 채 되지 않던 어린 나이에 6서클의 편린을 붙잡았고, 결국 22살 밖에 되지 않는 나이에 온전한 6서클로 자리매김하며 곧 자신들을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버릴 젊은 천재 마법사를 좋아할 늙은 마법사는 별로 없겠지.

    게다가 그 젊은 마법사라는 자가 주장하는 이론들이 하나같이 기존의 이론을 뒤집어버릴 정도로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그는 그들이 자신에게 떠들어대던 말들이 귓가에 마치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루크 이루시, 그대가 주장하는 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군. 대체 어떻게 마나의 속도가 일정한 것이 시공간 좌표값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증거가 되는지…….’

    ‘별자리 계산식에도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이 별자리가 여기에 쓰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군.’

    ‘자네의 이론은 흥미롭지만……. 그 뿐이야. 경험이 부족한 것 같군.’

    ‘최연소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천재라는 사실은 존중하지만, 그대는 아직 6서클이 아닌가. 반면 여기에 있는 원로들은 모두 7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들이네. 다들 한때는 자네처럼 천재로 추켜세워지던 자들이라는 이야기야. 그러니 그대만 옳다는 듯이 오만하게 굴지 말게.’

    ‘그 시기에는 원래 뭐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네. 어째서 그대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자신들의 무지를 이론의 탓으로 돌리는 그 방만함과 오만함.

    그리고 그는 그러한 것들에 이미 충분히 질려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금색의 눈동자에 비친 불길은 마치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난 감정을 형상화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신도 머리가 좀 복잡할 때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게 좋아요. 낮잠은 특히 더 좋답니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성직자인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

     

    낮잠이라…….

     

    ———

     

    -똑, 똑, 똑.

     

    한 거구의 남성이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야, 루크! 너 또 마탑에서 까였다며!”

     

    목소리의 주인은 루크 이루시의 조수이자, 검술 스승이자, 기사이자, 실험체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일 프롭슨이었다.

     

    새로운 이론을 정립했다면서 굉장히 들떠 있던 그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불과 며칠 전.

    하지만 결국 루크의 이론은 마탑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루크는 크게 낙심하여 아직까지 방에 틀어박혔다는 모양이다.

    때문에 그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술이나 한 잔 하러 소드마스터가 친히 그 귀하신 발걸음을 옮긴 것.

     

    케일은 자신이 들고 온 술병을 슬쩍 바라봤다.

     

    -린핀드 윈드워커.

     

    바로 엘프들이 직접 빚는 것으로 유명한 최상급 과일주였다.

    국경에서 밀수품 검문을 하다 언젠가 우연히 손에 넣은 이 술은, 혼자 마시기엔 꽤나 아까운 고급품.

    이왕이면 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과 마시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루크는 이 과일주를 굉장히 좋아했으니, 기분 안 좋은 날 위로주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루크의 성격상, 마탑에서 까이고 난 후 며칠만에 연구실에서 나왔을 리가 없다.

    아마 어디를 가지는 않았을 거다.

    간만에 같이 술이나 마시며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루크도 분명 좋아하겠지.

     

    “…….”

     

    하지만, 이상하게 안쪽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뭐지? 혹시 낮잠이라도 자나?’

     

    케일은 루크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껴 다시 한번 더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야! 자냐! 야! 놀리러 온 거 아니니까 이 문 열어! 술이나 한 잔 하자! 엘프식 과일주야!”

     

    -찰랑, 찰랑.

     

    케일은 문을 향해 보란듯이 자신이 가져온 술병을 과시하듯 흔들었다.

    아마 이 술의 존재를 안다면 곧장 문을 열고 자신과 술을 함께 맞이하겠지.

     

    하지만 여전히 조용한 실내에 케일은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자고 있는 거라면 그 예민한 놈이 이런 소리에 깨지 않을 리 없는데.’

     

    아니면 어디 잠시 외출이라도 했나, 싶어서 발길을 돌리려던 그 순간.

     

    -벌컥.

     

    뒤늦게 문이 열리며 멀끔한 행색의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케일은 장난스럽게 탓하듯이 물었다.

     

    “뭐야, 자고 있었냐? 왜 이렇게 문을 늦게 열어?”

    “아아, 미안하네. 잠깐 정신을 다른 데 두고 있어서 말이야.”

     

    루크는 곤란하다는 듯이 턱선을 긁다가, 케일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눈치챈 케일은 라벨이 잘 보이도록 슬쩍 병을 돌리며 우쭐대듯 말했다.

     

    “그래서……? 관심 있나?”

    “……당연하지. 어서 들어오게.”

     

    역시, 다른 건 몰라도 과일주는 참 좋아한단 말이지.

     

    ———

     

    루크는 사실 술이 그리 센 편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맥주나 과일주 정도는 무리없이 마시기는 하지만, 남들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마법사인지라 평소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고집도 강해서 그런 꼬드김에 잘 넘어가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후우……. 좋구나. 정말 좋은 맛과 향이야.”

    “그렇지? 잘 넘어가지?”

    “정말로 그래. 하지만…….”

    “응?”

    “너무 나만 마시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그대도 마셔야 하는데.”

    “에이, 난 신경 쓰지 마. 난 그냥 위로하러 온 거니까.”

     

    케일은 오늘에야말로 루크가 거나하게 취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동안 이 샌님의 술버릇은 무엇일지 그동안 아주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술의 세계를 잘 모르는 루크는 알 수 없겠지만, 오늘 케일이 가져온 이 과일주는 과일주 중에서도 ‘반잔만 마셔도 술이 약한 사람은 헤롱거리기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가장 강한 도수를 자랑하는, 속칭 ‘레이디 킬러’라고 불리우는 과일주였다.

    물론 루크가 ‘레이디’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곱상하게 생기기는 했다만.

     

    “아하하. 그런가……. 그대는 참 좋은 친구로군.”

    “그렇지?”

     

    케일은 양심이 아주 살짝 찔렸지만, 금세 만면에 웃음을 지어내며 생각했다.

     

    과연 루크의 술버릇은 무엇일까?

     

    누구 한명을 붙잡고 일장연설을 늘여놓는 쪽일까?

    아니면 무난하게 그냥 그자리에서 골아떨어질 수도 있다.

    평소와는 달리 괴성을 지르면서 날뛰는 쪽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게 케일이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하고 있을 때쯤, 루크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케일, 그대는 왜 내 이론이 마탑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알겠나?”

    “응? 글쎄.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케일은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였다.

    한평생 마법에 대한 거라고는 좀 똑똑한 놈들이 뿅, 하면 반짝! 하면서 뭔가가 일어나는 그런 이상한 무언가라는 생각만이 들 뿐, 평소에 딱히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루크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루크는 케일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건, 바로 말과 글로 내 생각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네.”

    “흐음.”

     

    케일은 그런 루크의 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거 취했다.’

     

    약간 붉은 기 감도는 얼굴 빛, 그리고 흐리멍텅하니 풀린 눈, 묘하게 흐느적거리는 몸짓.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루크가 취했음을 가리켰다.

     

    역시 루크의 술주정은 누군가를 붙잡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타입이었던 걸까?

     

    케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또 한동안 놀릴 거리가 생긴 셈이었으니까.

     

    루크는 그런 케일의 생각을 알 길이 없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말과 글, 그것은 읽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지.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가 자신 정도의 생각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단 거야. 같은 말을 듣고 같은 글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르게 생각하지 않던가? 단지 그 말이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문제 때문에 수많은 오해도 생겨나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이론을 표현하기에 말과 글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 만약에 아예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오해도 생기지 않을 텐데, 하고 말이다.”

    “으흠. 그랬구만.”

     

    케일은 대충 대꾸했다.

    술주정뱅이의 신세 한탄을 깊이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루크의 말에는 케일도 숨을 집어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탑의 마법사들의 정신과 내 정신을 연결해 두었다네.”

    “응? 뭐라고?”

     

    마탑의 마법사들의 정신을 연결했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야, 나는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바로 내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마법사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었어. 꿈이라는 형태로.”

    “……잠깐, 그거 지금 했다고?”

     

    루크는 해맑은 표정으로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다들 밤에 별을 보다가 이 시간쯤 낮잠을 자니까, 꿈을 잇기에는 최적의 시간대였지. 그래서 방금 전까지 나의 정신은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네. 거기서 나의 이론을 한 치의 손실도 없이 그대로 꿈을 통해 전달할 수 있었지. 아까 전, 내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었다고 한 것도 그런 의미였다네.”

    “…….”

     

    케일은 입을 떡 벌린 채 루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루크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해하질 못하겠다는 듯 한 표정이군. 이것 보게, 역시 말로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아니, 이해는 됐는데, 그게…… 대체 어떻게?”

     

    마법사의 정신이라는 거, 그렇게 막 이을 수 있는 거였나?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이면 대부분 고서클의 뛰어난 인재들이다.

    그런 마법사들은 정신력도 뛰어나고, 정신계 마법의 방비도 아주 뛰어나다.

    게다가 마탑 그 자체가 지닌 마법 방호력까지 생각하면, 고려해야 할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마법사가 아닌 자신이 아는 것도 이정도인데, 막상 루크는 마치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마치 간단한 일인 것 마냥 말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뭐어……. 그냥 했다. 6서클이면 권한은 충분하니까, 요령만 알면 돼.”

    “…….”

     

    이건 마치 자신이 검술을 논할 때, ‘어차피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경로는 정해져 있으니까, 대충 보고 받아넘기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였다.

    뭐, 사실 루크는 그런 식으로 대충 말해주고 몇 번 행동을 보여주면 따라하는 천재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다른 녀석들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것이다.

    아마 다른 마법사들이 루크의 저 발언을 들으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고 케일은 생각했다.

     

    “그래, 너 잘났다.”

    “칭찬 고맙군.”

    “아니, 칭찬 아닌데…….”

    “……? 이해하지 못하겠군. 잘났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면 뭐란 말이지……?”

    “…….”

     

    케일은 이마를 탁, 쳤다.

    ‘말은 오해를 부른다’던 루크의 말에 조금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데?”

    “방금 전에 막 내 이론을 전달했으니,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

    “그러냐.”

     

    그런데 그 대단한 미친짓의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니.

    케일은 김샌다는 듯 얼굴을 문질렀지만, 루크는 꽤나 희망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긍정적이다. 아마 이제는 다들 나의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제 기존의 이론이 얼마나 큰 낭비였는지, 다들 제대로 직시하게 되겠지.”

    “그래? 그거 잘 되면 좋겠네.”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후.

    케일은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병도 텅 비어버린데다, 본래 목적이던 루크의 술주정도 알아냈으니.

     

    “그럼 난 이제 가볼게. 술도 다 마셨고, 네 기분도 많이 풀린 것 같으니까.”

    “벌써 갈텐가?”

     

    루크의 아쉬운 듯한 목소리에 케일은 단호하게 말했다.

     

    “벌써는 무슨……. 지금 한밤중인데.”

     

    솔직히, 루크의 술주정은 곁에 있으면 재밌다기보다는 피곤한 타입이다.

    술에 취한 루크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죄다 자기만 알 법한 마법 이야기라 별로 재미도 없었고, 이해도 안되었던 탓에 그 피로도는 배가되었다.

     

    “나도 잠을 자야 내일 출근을 하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케일을 따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크.

    루크는 케일을 향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고맙구나. 내게 그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야. 정말로, 고맙네.”

    “……거, 되게 말 많아졌네.”

     

    저 녀석이 평소에 저런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아마 루크는 술에 취하면 저런 말도 서스럼없이 내뱉게 되는 모양이다.

    머쓱한 듯 뒷목을 긁적이는 케일.

     

    “…….”

    “…….”

     

    그 순간, 미묘한 기운이 연구실을 감돌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물론, 그 ‘미묘한 기운’은 남자 둘 사이의 그 미묘한 기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케일의 앞을 가로막은 검은색의 괴생물체가 내뿜는 기운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생물인지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는 부정형의 그것은, 이내 어떤 형상을 취하려는 듯 연신 꿈틀대다가 포효했다.

     

    —–!!!!

     

    차마 말이나 글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비명소리.

    그 존재는 마치 공포, 좌절,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한데 그러모아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케일은 그 모습에 압도당한 채 멍하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케일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 연구소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그리고 그 대답은 루크에게서 나왔다.

     

    “오오, 이거 아주 흥미롭군. 거대한 부정적인 사념에서 탄생한 사념체인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면 아주 강력한 사념체로군.”

    “사념체……? 저게? 고스트나 밴시 같은 거라고? 저런 건 내 평생 본 적이 없어!”

    “맞네. 거대한 한을 품고 죽은 대마법사의 영혼만이 저런 사념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

     

    루크의 말에 경악하는 케일.

     

    “뭐? 대마법사의 영혼? 그 말은 설마, 지금 마탑에서 누가 죽었다는 얘기야?”

    “아니, 그건 아닐세. 내가 연결한 마법사들의 정신중, 사라진 신호는 없어. 즉, 현재 누가 죽은 건 아닐세.”

    “그럼 대체 저건 어디서 나온건데?”

     

    케일의 물음에,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흐음……. 아!”

     

    그리고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는 루크.

     

    “알겠다, 꿈이 악몽으로 변질된 모양이로군! 저 사념체는 내가 연결한 마법사들의 꿈에서 파생된 존재다. 정신이 연결된 수십명의 마법사 모두의 의지력이 구현된게야.”

    “뭐? 그럼 저게 네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케일의 경악스럽다는 외침에, 루크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하하하. 이거 재미있군, 악몽을 쓰면 인간의 의지만으로 사념체를 만들 수도 있다니…….”

     

    케일은 여전히 태평한 모습의 루크를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 그딴 말이 나와? 네 마법으로 얼른 처리해!”

     

    케일의 닥달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알겠다. 잠깐만 기다리게.”

     

    그리고 이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루크.

    하지만, 수십명의 대마법사들의 악몽으로부터 만들어진 검은 사념체는 여전히 케일의 앞에서 형태를 바꿔가며 검고 길다란 촉수를 퍼트려나가고 있었다.

    초조함을 느낀 케일이 ‘아직 멀었어?’라 묻자, 루크는 이내 다시 눈을 뜨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 마법연산이 잘 안되는군. 흐음…….”

    “뭐?”

    “뭔가, 평소랑은 달라. 머리가 답답해서……. 한번에 한두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어…….”

    “…….”

     

    케일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루크는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 중얼거렸다.

     

    “뭐지……? 정신마법의 부작용인가……?”

     

    케일은 상황을 해결해야 할 루크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듯해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아니, 취해서 그런거겠지.”

    “취해……? 내가? 고작 과일 주 몇 잔 마셨을 뿐인데……?”

    “그거 꽤 센 거라서, 너 취했을 수도 있어.”

    “……그래? 그, 그렇군. 그럼 내가 멍청해진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루크.

    하지만, 그렇다고 루크에게 마땅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케일……. 그럼 이제 어쩌지?”

    “어쩌긴…….”

     

    케일은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며 외쳤다.

     

    “내가 막는 동안 넌 마탑에 가서 니가 마법 건 마법사들 깨워, 이 새끼야!”

    “아, 알겠네!”

     

     

     

     

    그리고 그날 밤, 루크는 온 몸에서 과일주 향을 풀풀 풍기며 마탑을 휘젓고 다니며 자고 있는 마법사들의 뺨을 때려 깨웠고, 덕분에 마탑에서는 한동안 ‘루크의 술주정은 자는 사람을 때려서 깨울 정도로 고약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아악! 드디어! 이게 뭐라고 이틀이나 걸렸는지…!

    ps. 사실 사건 자체는 맨정신에서 벌인 짓거리라는게 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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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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