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0

       지상으로 돌아온 원더스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가 TTT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복기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TTT에 나오는 인물들을 시리즈별로 구분해서 취급했다.

         

       TT1의 배경은 하늘도시 히포드롬으로 등장인물들은 주로 서커스 그랑프리의 도전자들이었다. TT2의 배경은 6대 극장이 있는 도시들로 등장인물들은 극장 관계자와 해당 도시의 주민들이었다. TT3의 무대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원더스타인의 과거와 연관된 자들이었다.

         

       메인 퀘스트를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주로 TT1과 TT2의 등장인물들이었고, TT3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변수 제어를 위해서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전략은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납치극 같은 경우는 그런 전략으로 대처하기 힘든 것이었다. 미스테릭서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그래서 대처가 어설펐고, 끝내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TTT에는 그 말고도 소속 불명의 개근 캐릭터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시리즈 내내 숨겨진 보스로 출연하는 사신이 그랬고, 용사들의 캠프에 머물면서 스킬북을 파는 상인 윌리 또한 그랬다.

         

       윌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으로 게임 내에서 스킬북을 파는 유일한 상인이었다. TT1 때부터 출연하여 TT3의 최종 스테이지인 원더랜드까지 따라다니며 주인공들에게 물자를 보급했다. 그의 정체도 미스테릭서처럼 원더스타인에게 원한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밝혀진 게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그를 그저 상점 이용과 스킬 관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로 여겼다.

         

       그런 역할 덕분에 그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교육의 천재’로 통했다. 클릭 한 번에 기술을 습득하게 해주는 스킬북의 원리는 그의 가르치는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우스갯소리의 대상일 뿐인 그 노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어쩌면 이 현실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찰리의 경우처럼 말이다.

         

       앞선 인물들을 모두 검토한 원더스타인은 이어서 TT3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봤다. TT3의 주적은 원더스타인과 그의 자매들인 세 마녀로 지금 시점에서 마주쳐봤자 골치 아프기만 한 존재들이었다.

       TT3에서 그들은 각각 원더스타인을 수장으로 하는 조직을 부대표로서 이끌고 있었다. 토끼 마녀는 마도사들의 연합인 ‘부두교’를, 까마귀 마녀는 아이들을 입맛대로 제작해서 파는 상회인 ‘콤프라치코스’를, 마지막으로 뱀 마녀는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그를 꼭두각시로 삼아 제국을 뒤에서 좌지우지한 ‘황실 극단’을 맡고 있었다.

         

       TT3의 스토리 흐름은 베르그송 자작의 저택에서 시작하여 부두교를 무너뜨리고, 콤프라치코스를 쳐부순 후, 황궁과 교황청이 있는 제국 수도에서의 싸움을 거쳐, 마지막으로 원더랜드에서 끝을 맺었다.

         

       그는 지금까지 위 세 조직과 접촉할 일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었다. 미래의 정보를 사용하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간이 있었지만, 괜히 그런 식으로 미래를 바꿨다가 메인 퀘스트에 영향을 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아나이스와 거리를 두려 했던 것도 사실 모두 그 때문이었다. 그녀와 너무 많이 얽혔다가 부두교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아나이스를 제외하면 세 조직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다고 여겼다. 일단 콤프라치코스와 그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곳의 상품이었던 레이나를 서커스단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아이 상회와 직접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황실 극단에 대해서도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제국 황제는 아직 병석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충신들을 처형하고 황실 극단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것은 병석에서 일어나고 난 다음이었다. 주변의 누가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황제의 귓가에 뱀의 말을 속삭일 혓바닥이 아직 그곳에 없었다. 세 마녀 중 한 명인 뱀 마녀의 신변에 대해서 원더스타인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적들뿐이었다. 원더랜드를 침공하기 직전에 원더스타인은 자신의 새로운 친위대를 소환했다. 그들은 TT1의 보스들처럼 괴물 서커스의 단원들이었다. 청혈귀, 지네 영감, 샴쌍둥이 자매, 살덩어리 여자, 그리고 투명 인간. 그들은 모두 TT1에 등장한 보스들과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 그들의 행방에 대해 알 길은 없었다. 게임 내에서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자세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 스테이지만 등장해 TT1의 향수를 되새기는 대사와 공격 패턴으로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그들 역할의 전부였다.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즉석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원더스타인이 예전부터 거두어서 키우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TTT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던 그는 엘라가 있는 병실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클라라가 또 잠꼬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클라라 양, 엘라 양이 깨어났습니까?”

         

       원더스타인은 노크를 한 뒤, 병실로 들어갔다. 엘라의 눈가가 등불 아래에서 반짝였다. 그녀는 또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클라라 보고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한 뒤, 병상 앞에 앉았다.

       엘라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감정을 간신히 가라앉힌 뒤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클라라 선배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나 봐? 찰리가……죽었다고…….”

       “네. 그녀에겐 너무 큰 충격일 테니까요.”

         

       엘라는 이불을 쥐어뜯을 것처럼 꽉 쥐었다. 자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친절하게 굴면서………. 그녀는 그의 이런 점이 싫었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군요. 혹시나 깨어났을 때도 공황 상태에 빠져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기억 안 나십니까? 미스테릭……아니, 당신의 친구가 지하수로 몸을 던진 다음에 말입니다.”

         

       엘라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고는 소리쳤다.

         

       “모, 몰라……. 나는 직후에 바로 혼절했으니까…….”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때의 그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기억 못 할 만도 했다. 그는 괜히 친구가 죽는 순간을 상기시킨 것 같아서 미안했다.

       엘라는 그때를 더 이상 떠올리기도 싫은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보다 미키는 어떻게 됐어? 찰리와 공범으로 엮이지는 않았어?”

       “네. 당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친구들’ 중 한 명으로 제가 잘 말해놨습니다.”

         

       엘라는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며 되물었다.

         

       “그래서……미키는……어떻게 할 거야?”

       “풀어줄 수는 없으니 우리 서커스단에 받아들일 겁니다. 즉, 그의 목숨은 제 손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부디 ‘허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원더스타인이 밤새 그녀의 병실 앞을 지켰던 것은 깨어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인질’이 최선이었다.

         

       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 악당.”

       “네. 맞습니다.”

         

       그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오해를 수습할 방법은 없었다. 이렇게라도 그녀를 붙잡아두는 것으로 그는 만족하기로 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당신은 제가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오르는 것을 도우면…….”

       “당신이 우리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준다는 거지……. 알고 있어…….”

         

       원더스타인은 기운을 잃고 고개를 축 늘어뜨리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로써 다시 퀘스트는 원래 궤도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를 미워하지만, 어쨌든 그의 일에 협력은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녀가 기억을 잃기 전과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자신이 무슨 말을 하면 삐딱하게 바라보며 맞서던 그녀가 가만히 자신이 협박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 자신을 향한 것일 것이다. 그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차라리 그녀가 자신을 큰 소리로 욕해주고 비난했으면 이렇게 기분이 울적하지는 않을 텐데…….

         

       그때, 그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녀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고 그녀를 자극할 방법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허리를 숙이고 속삭였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단장님.”

         

       그리고 그가 다음에 취한 동작은 엘라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그녀가 지난 3개월 동안 그렇게나 바랐는데도 그가 주지 않았던 것이었으니까.

       쪽.

         

       원더스타인은 당장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방방 뛰리라 생각했다. 자신에게 욕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날릴 거라고 여겼다. 그는 그녀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반응이었다. 그저 고개를 더욱 깊숙하게 숙인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성희롱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끙. 이게 아닌데.

         

       “어……그럼 가볼게요.”

         

       원더스타인은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는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클라라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지나치면서 단원 관리 창을 열었다. 엘라의 호감도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녀가 기억을 회복하면 바로 살펴보려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동안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고정되어 있던 호감도 30. 아마 절반 이하로 떨어졌겠지……. 아니다. 방금 내가 한 짓 때문에 0이 됐을 수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바보짓을 후회하며 그녀의 프로필 창을 허공에 띄웠다. 병실에서 빠르게 멀어져 가던 그의 걸음걸이는 얼마 안 있어 급속도로 느려졌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눈앞에 떠오른 프로필 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과연 그녀의 호감에는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이름: 엘라

       나이: 17

       호감도: 46 (다음 보상: 호감도 50)

       칭호: 부단장

       직업: 맹수조련사

       특성

       : [인스피라-스피릿 링크], [인스피라-모자 마술]

         

         

       그녀의 호감도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올랐다. 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감정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쁜 놈.”

         

       엘라는 그가 병실을 나가고 얼마 안 있어 그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을 쓰다듬으며 욕을 내뱉었다. 저 악마 자식은 3개월 동안 자신이 매달렸을 때는 나중에 후회할 거라면서 한 번도 입맞춤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정작 기억을 되찾고 나서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볼을 훔쳐 버렸다.

         

       “악마 자식.”

         

       그녀는 사실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안아달라고 요구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의 품에서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며 울었던 것까지 모두 말이다. 그가 그것을 언급한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억의 홍수 속에서 그녀는 콱 익사해서 죽고 싶었다.

         

       “개새끼.”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차마 누군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볼까 두려워서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두근거리는 가슴. 그의 입술이 닿은 순간, 멎어버렸던 그것은 어느 때보다 빨리 뛰고 있었다. 놀람, 분노, 혐오, 충격.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단어로 그 감정을 묘사하려 했다. 그러나 결코 하나만은 입에 담지 못했다. 그것이 사실과 가장 가까운 것이었기에 더욱.

         

       “그럴 리 없다고.”

         

       그녀는 환자복의 가슴팍을 찢어버릴 듯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감정 따위.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달빛에 애처로운 분홍빛을 뿌리며 흔들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우냥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원래 막간으로 빼려고 했던 이야기를 서커스 찰리 마지막 화로 옮겼습니다! 그게 에피소드 구성상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내일 올릴 것 같습니다.

    어느새 300화! 독자님들의 응원 덕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