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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지금 와서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큰돈을 만지고 싶었다.

       

       일반적인 부자가 다루는 수백억 정도의 규모 말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 말이다.

       

       재물욕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애당초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금덩이가 생기면 반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양성자 산란 실험에 쓸 금박을 만드는 사람.

       

       그런 성정은 이 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나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나인 그대로인 채로 시간을 주항한다.

       

       그러니 여자이건, 남자이건. 인간이건, 기계이건. 연구자에게 있어 성별이나 종족 따위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경제부장관께 삼가 아룁니다. 예산 좀 더 주십시오.”

       “하지만 이러다간 국가 재정이….”

       

       오늘도 나는 경제부 건물에서 농성을 벌였다. 상대는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한 명이었다.

       

       “이미 적이 코앞까지 와 있지 않습니까?”

       

       연구비를 내놓거라. 내놓지 않으면 수폭으로 구워삶으리.

       

       “하아…. 10억 엘랑이면 충분하겠습니까?”

       “20억.”

       “……알겠습니다.”

       

       오늘도 달달하군.

       

       거대과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이란! 이만큼이나 달콤하다. 어쩐지 중독될 것 같아.

       

       지구로 돌아가면 영영 할 수 없게 되겠지? 그리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웠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돈을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

       

       “장관님! 감람석과 구조가 비슷한 초전도 물질을 새로 발견했습니다!”

       “임계 온도 말해 주세요.”

       “10기압에 절대온도 기준으로 477.38 정도입니다.”

       “……오.”

       

       미쳤다.

       

       이거, 노벨상감이잖아.

       

       “기존에 있던 초전도 이론을 따르지는 않을 테고……. 어쩌다가 한 번 만들어 낸 건가요?”

       “네, 공계마도사를 두 교대로 나누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작업한 결과입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예상보다 훨씬 일찍 1번 목표가 달성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스크롤 제작 작업에 들어가도 될 터.

       

       그러기 위해선 아카샤와 로즈마리를 먼저 만나 봐야 한다. 상시 격발이 가능하려면 백야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겸사겸사 클라이스나 다른 사람도 데려갈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아이 씨, 깜짝이야.

       

       “무슨 일인데요.”

       “마왕군이 해안선에서 직접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대피하셔야 합니다!”

       “…….”

       “…저, 장관님?”

       

       역시, 왜 안 오나 했다.

       

       메르헤름의 해안선에는 골렘이 변화한 포대들과 정령마도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중에는 세실 르네이에 준하는 베테랑도 많고.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해안에 세워졌던 독일군 요새보다 더 견고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간이 큰 놈이길래 그런 곳을 공격하려는 걸까. 

       

       답이야 뻔하긴 한데,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총대장은?”

       “그게, 조금 전 벌어진 일이라 저도 잘…….”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두십시오.”

       

       이런 간덩이 부은 짓을 할 놈은 좋으나 싫으나 한 명뿐이다.

       

       “호천의 길라흐. 그 녀석이 온 겁니다.”

       

       생각해 보면 요새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주기가 뜸해지긴 했다. 아무래도 휴식기를 가지는 모양이겠지.

       

       요르문간드가 지친 것도 있을 테고, 아니면 불의 정령왕을 잡는 데 모든 폭탄을 써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마왕군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는 시기는 아니라는 거.

       

       움직인다면 지금이 적기이리라.

       

       “지금 수도에 짓고 있는 리튬 정제 공장 있죠? 위험하니까 일단 작업 중지하라고 하세요.”

       “도중에 멈추면 연구개발은 어떻게 진행하시려고요?”

       “연구는 다른 곳에서 먼저 할 수 있습니다.”

       

       비서에겐 그러면서 적당히 둘러댔다. 어차피 리튬 같은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거든.

       

       “나머지 연구 인력은 아이비 섬으로 옮겨서 합니다. 여기 있다간 계속 방해받을 거예요.”

       

       아이비 섬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제도다.

       

       로즈마리와 아카샤가 그곳에 있다.

       

       “가서 시험용으로 하나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초전도체도 얼추 만들었겠다. 이제 둘의 도움을 받으면 불완전하더라도 흑주를 만들 수 있을 터.

       

       일천 년. 그동안의 연구가 빛을 보려는 순간이다. 정말로 전쟁이 끝날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지금 당장 펙튼 장군이 있는 전선에 연락하세요. 버멜 호르데라는 엘프를 제 앞으로 데려오라고.”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나갔다.

       

       다행히도 이날 길라흐의 공격은 미미한 수준에서 그쳤다. 카우렐리아의 해군력이 막강하다고 들었는데, 잘 막아낸 모양이었다.

       

       다음 날.

       

       나는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짐을 바리바리 챙겼다.

       

       피난 오는 길에 지인도 여럿 데려왔다. 로테, 프레이, 클라이스 자매, 헤를라인 선생님, 마지막으로 유피엘과 레니냐까지.

       

       우리는 사태를 공유한 뒤 공격받지 않은 항구를 통해 거처를 옮기기로 합의했다.

       

       해당 항구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 건 덤이었다.

       

       “……에테르.”

       

       몇 번이고 들었던 목소리.

       

       버멜이었다.

       

       “야, 그동안 잘 지냈냐?”

       “말도 마라. 군대 두 번 가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하아…. 수고가 많다.”

       

       저쪽 세계에선 군 생활을 안 해봤기에 온전히 공감해 줄 수는 없었다. 마왕군에 있었을 때도 전투병과가 아니라 기술고문이었고.

       

       “열심히 살았어. 뭐어…. 그건 그렇고.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지?”

       “알다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천만에. 딱히 변명할 여유는 없다.

       

       어차피 저쪽 세상으로 가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에테르가 될지, 에테르가 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녀가 무슨 상관인가.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한데.

       

       “출발하자.”

       

       항해사에게 닻을 올리라고 시켰다.

       

       석탄을 땐 증기선은 안개와 같은 트름을 토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른 아침, 해무가 걷히고 그 사이로 드넓은 하늘이 보인다.

       

       섬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솔직히, 지금 상태론 네가 호천을 이길 수는 없어.”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네.”

       

       첫 이야기는 길라흐에 관한 것이었다.

       

       길라흐와 나는 오랜 견원지간이다.

       

       이 세상에서의 나는 아렌스 대륙 출신이 아니었다. 저기 어디, 군도에서 태어났다.

       

       대륙에 들어오면서부터 부랑아 신세였고, 힘이 없었던 시절에는 노예 상인이나 도적 떼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몸놀림 하나만큼은 잽싸서 어떻게든 도망다니긴 했지만.

       

       누더기 하나 걸치고 모닥불 쬐며 산나물 구워 먹던 그 시절이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반면에, 길라흐는 하이엘프 출신이다. 즉, 카우렐리아 태생.

       

       눈깔 노란 것 말고는 잘 나고 잘 살았을 것 같은 녀석이, 난데없이 세상에 증오를 품고 마왕군에 귀순했다.

       

       그런데도 나와 같은 ‘금안’으로 묶이길 싫어했다. 드워프인 파스모와도 사이가 안 좋았지만, 특히 나에게만 지랄을 떨어댔었지.

       

       따지고 보면 동료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군.

       

       “담글 거라면 내 손으로 담그고 싶은데.”

       “그러니까 얘기했잖아. 지금 너로는 안 된다고.”

       

       분한 이야기지만 안다. 그래서 흑주가 필요한 거고.

       

       그리고 흑주를 만들 시간을 벌려면 버멜이 필요하다.

       

       “뭐 묘책이라도 있어?”

       “딱 하나 있지.”

       

       버멜이 어느 방향을 곁눈질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내 고개도 슬며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유피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 금안족 소녀가 있었다.

       

       레니냐.

       

       로테보다도 짙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 앞머리를 늘어뜨린 채 소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배 타니까 저번에 횟집 가서 먹었던 게 떠오르네.”

       “그러네…. 전쟁 끝나고 다시 갔으면 좋겠다.”

       

       가끔 위험한 발언을 하기는 해도 유피엘과 친한 건 변함 없구나.

       

       학생 둘을 잘 키운 것 같아서 뿌듯하다.

       

       그런데, 잠깐만.

       

       레니냐가 길라흐를 쓰러뜨리는 히든카드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말하자면 길어.”

       

       이어지는 버멜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길라흐는 부르주아. 레니냐는 프롤레타리아.

       

       “길라흐에게 레니냐는 천적이나 다름없어.”

       

       두 사람의 고유마법이 서로 상극이라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레니냐가 고유마도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심지어 레니냐는 일개 학생이다.

       

       “이제 막 2학년에 불과한 애야. 그런 애가 어떻게 마왕군 최고 간부를 이기는데?”

       

       내 질문에, 버멜의 입이 단호하게 떨어졌다.

       

       “스태프.”

       “스태프?”

       “마법의 숙련도 차이가 아니야. 시전자의 의지나 사상에 따라 상성이 갈릴 수도 있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 

       

       그러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사실.

       

       “스태프는 그 사람의 과거 경험이나 심상에 따라 모습을 바꾸니까.”

       “……흐음.”

       “너도 알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들은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내 경우에는 한결같이 버니어 캘리퍼스였다. 물리학이라는 단어를 잘 표현한 무기인 셈이다.

       

       “길라흐는 갈고리고…….”

       

       길라흐가 지닌 교월(皎月)이라는 갈고리에는 선민사상과 정령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다. 하이엘프였던 시절 느꼈던 우월함과 자신을 금안으로 만든 여신에 대한 분노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다.

       

       반면에.

       

       “……레니냐는 낫과 망치.”

       

       레니냐가 스태프처럼 사용하는 낫과 망치는 연양(連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는 달빛을 숨게 하는 태양의 연속성을 뜻한다.

       

       태양은 왕이나 황제를 의미한다. 또한 낫과 망치는 노동자 계급을 의미한다.

       

       즉, 민중이 곧 황제.

       

       “그렇군. 뭔지 알겠다.”

       

       어느새 납득하고 있었다.

       

       인민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길라흐의 신념과 완전히 반대된다.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보았을 때, 슬슬 전자가 이길 때가 되었다.

       

       “흑주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프로토타입 제작은 일주일, 안정성 검사까지 모두 마치면 2개월에서 3개월 남짓.”

       “좋아, 그러면 그전에 길라흐가 오게 될 때를 대비해서 빨리 만들어 둬. 나는 레니냐한테 가 볼 테니까.”

       

       버멜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타이밍이 굉장히 좋았다.

       

       “…읍.”

       

       울컥, 하고 핏물이 올라왔다. 나는 서둘러 아무도 없는 선미로 달려갔다. 입에 가득 차 있던 핏물을 바다로 주르륵 흘려 보냈다.

       

       “하아, 하아…….”

       

       이전까지와는 달리 피의 양이 상당했다. 색깔도 검정에서 붉은색 계통으로 옮겨갔다.

       

       떠내려간 핏물이 벽람색 바다와 섞이며 적조와도 같은 모양새를 만들었다. 나는 숨이 고르게 될 때까지 난간을 잡고 시간을 죽였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주일간 무접점 키보드 사서 써본 소감 :

    아주 조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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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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