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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물론 그리폰이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한테 인사할 때는 언제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으니까.

        

       그런 게 그거 외에는 딱히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는단 말이지.

        

       내가 하는 말에 콧방귀를 뀐다거나, 그냥 못 들은 척한다거나, 나를 자기 등에 태워준답시고 목덜미를 물어 위로 휙 던져버리거나. 그러다가 떨어뜨린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유쾌한 경험이라는 소리는 또 아니다.

        

       게다가 그리폰은 말을 못 한다.

        

       입으로 내는 소리라고 해봐야 독수리처럼 퓌요오, 하고 우는 것뿐인데, 그 소리가 그리폰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언어 비슷한 것일지 몰라도 내 귀로 듣기에는 그냥 맹금류 울음소리일 뿐이다. 거기 상대를 배려하는 존댓말이 담겨있다고 해도 내 귀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서로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는 말이다.

        

       ……사람도 아닌 존재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아니꼬왔다.

        

       게다가 그렇게 상호존중을 하자고 선언해놓고, 정작 그 이후의 협상은 또 별개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이쪽에서 건네주는 것이 있어야 저쪽에서도 답이 돌아온다.

        

       만약 그리폰이 나에게 진 빚이 있다면 그 빚은 이미 청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내가 그리폰을 한 번 구해줬고, 그리폰도 나를 한 번 구해줬으니까. 그 이후에는 말 그대로 그리폰이 마음대로 내 옆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닌데, 정작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답답했다.

        

       아니, 개선 행진에서는 그렇게 신이 나놓고, 인제 와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뭔데?

        

       그보다 그리폰이면서 그리폰 사이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네. 정말로 인간의 손에 길든 나머지 안락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건가?

        

       “…….”

        

       “…….”

        

       한동안 그리폰과 눈싸움을 하다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났다.

        

       “일단, 당장은 제 말에 따라줄 의향이 없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저도 당신의 생각을 알 방도가 없습니다만, 혹시라도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있으면?

        

       그리폰의 몸으로 황궁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인간들이 돌아다닐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곳이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복도가 넓고 문이 크긴 해도 그리폰이 당당하게 들어오기에는 아주 비좁았다. 어떻게 꾸깃꾸깃 들어와 돌아다닐 수는 있겠지만, 바닥에 그리폰 발톱이 할퀸 자국들이 남고 복도에 둔 장식품들이 죄다 그리폰 몸에 밀려 떨어지겠지.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나마 인간 중 가장 의사소통이 잘 되는 나도 그리폰이 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황궁 내의 사용인들이라고 별수 있을까?

        

       “—만약 뭔가 원하는 것이 생각난다면 제가 다음에 방문했을 때 표현해 주십시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뿐이었다.

        

       내 말을 들은 그리폰은 한동안 나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

        

       “무슨 생각으로 그 부탁을 수락한 거야?”

        

       그리폰과의 대화…… 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일방적으로 중얼거리고 왔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앨리스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가 아니라 황궁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내 결정이 걱정스러웠다는 뜻이리라.

        

       아무리 상대가 앨리스라고 하더라도, 아니, 상대가 앨리스이기에 더욱 검성과 했던 대화를 들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머리를 굴려서 적당한 핑곗거리를 생각해냈다.

        

       사실 이미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생각해 둔 것이긴 했다. 앨리스라면 반드시 나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봤을 테니까.

        

       “그리폰을 황궁 안에서 키우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

        

       내 말에 앨리스는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폰은 먹는 양이 꽤 많았다.

        

       육지거북인 설카타 거북을 키우면 하루에 배추를 몇 포기씩 먹는다고 했던가. 그걸 육식동물 기준으로 바꿔서 몇 배로 불린다면 대충 그리폰의 식사량이 된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그 덩치에 비해서는 먹는 양이 그렇게까지 많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폰은 완전한 육식동물. 한 번 먹을 때마다 돼지 소 한 마리씩 먹는다면 황실의 기준으로도 결코 무시할만한 돈은 아니었다.

        

       “……꽤 많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돈만 들이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폰을 키운다면 키운 비용만큼을 뽑아낼 생각을 해야겠죠.”

        

       “보통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그 동물에서 본전 뽑을 생각은 안 하지 않아……?”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말이 안 됩니다. 애완동물이라면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키우는 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애완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질문에 앨리스는 다시 한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이번에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그렇네. 이쪽에서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그건 해수지. 물론 그리폰의 태도를 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제 눈치를 봐서 그렇게 말씀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용인 중 그리폰의 거처를 청소하는 이와 먹이를 가져다주는 이는 크게 두려움에 떨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 털을 관리해주는 이들은 일하러 들어갈 때마다 두려움에 떤다고 들었습니다. 그리폰은 그럴 생각이 없어도 그리폰 몸에 손을 대는 처지에서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하죠. 그 사람들 입장에서 그리폰은 해수나 다름없습니다.”

        

       “…….”

        

       “물론 제가 그리폰을 해수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황궁 내에서도, 그리고 앨리스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 그리폰을 내 아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까, 바꿔말하자면 내가 주인이라는 소리다. 그 주인이라는 이가 자기 애완동물을 보고 해수니 뭐니 하는 말을 한다면 벙찌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앨리스와 마주 보는 자리의 의자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그 그리폰을 ‘애완동물’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저를 따라오던 때부터 그 그리폰은 자길 저의 밑으로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애완동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고 있는데?”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이죠.”

        

       나는 간단하게 말했다.

        

       “앞으로 저희 소속이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태만 보면 그 그리폰의 위치는 ‘황궁에 머무르는 손님’입니다. 제국의 상징이라는 이유에서, 그리고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굳이 쫓아내지 않고 정중히 대우하고 있을 뿐인 손님.”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황실 입장에서 중요한 손님을 몇 년 단위로 받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 그 손님은 말만 손님일 뿐, 실제로는 다른 국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창구라던가, 아니면 어떤 중요한 명분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그리폰도 그래야 한다는 거야?”

        

       “예.”

        

       “하지만…… 그리폰은 사람이 아니잖아.”

        

       조금 망설이면서 말하는 앨리스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입니다.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이해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특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쪽에 아무런 득도 되지 않으면서 빌붙어 있는 것은 환영받지 못 할 일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지능의 짐승이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도 않는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귀여워서 키우는 거고, 굳이 그 둘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비슷하니까.

        

       그리고 그런 동물들은 자기 처지를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알 필요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저 인간과 그 동물 사이에 상하관계만 명확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동물들이 원해서 인간의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원해서 동물들을 곁에 둔 거니까. 책임을 지는 것은 온전히 주인의 몫이다.

        

       하지만 그리폰은 애초에 내 아래가 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리폰을 완전히 내 아래 둘 능력이 없고.

        

       그렇다면, 최소한 서로 동등한 관계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검성과 했던 대화를 앨리스에게 하기 싫어서 생각해낸 것이긴 했지만, 동시에 진짜 내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런 것이라도 도와달라고 하겠다는 뜻이지?”

        

       앨리스의 눈에 이해의 빛이 스쳤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뭐, 실패한다고 해도 별 상관없다. 이미 내 목적은 반 정도 이룬 셈이니까.

        

       물론 성공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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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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