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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제피르는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종으로, 생김새가 이 세계의 어떤 생물과도 맞물리지 않았다.

     

    습지대에 서식하지 않았으면서도 항상 이끼의 흔적과 함께 발굴되고, 털도 별로 없으면서 사령체는 항상 털을 고르는 듯 한 행동을 했다.

    육식동물의 신체구조와 비슷하면서도, 내장기관은 전혀 육식에 적합하지 않으며, 사냥을 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았다.

     

    이처럼 제피르라는 마수는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인지라, 그 가설도 꽤나 다양하게 형성된 종이었다.

     

    하지만, 마수학자 제임스는 루크에게 ‘제피르’의 생애에 대한 가설을 듣고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다.

    여태껏 그 누구도 그러한 발상을 떠올리지 못하였으니까.

     

    마법적 효과를 위해 평소에 이끼를 덮어 생활했으며, 때문에 털이 없음에도 털을 고르는 행동을 했다.

    마계에선 무려 식물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제피르 역시 달려 사냥하기 위해서 사냥에 필요한 운동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이빨이나 소화기관등이 초식동물과 닮았으며 공격성이 낮았다.

     

     

    마수학자란, 마계의 환경이 생물과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과 잊혀진 역사를 발굴하는 자들.

     

     

    제임스는 그 말에 설득되었고, 곧장 팀을 꾸려 마계의 흔적을 찾아 탐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유례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한장의 종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이건…….”

     

    종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렸다.

     

    몇 개월간 밤낮 없이 채굴과 탐사를 진행하던 제임스에게, 그 얇은 종이가 지닌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한 팀들 역시, 그 종이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철수 및 압류 명령서.

     

    “이건 말도 안돼.”

     

    무려 수개월동안 지속한 탐사를 이제와서 이깟 종이 한장으로 없애버릴 수는 없다.

    이제야 그 아이가 말했던 ‘생물처럼 움직이는 나무’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미 허가를 받았소. 그러니 당신네들이 이런 식으로 통보할 수는 없단 말이오!”

     

    하지만, 눈앞의 남자들은 변함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우리 또한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곳은 이제 사유지이니, 자연히 당신들의 탐사 활동도 제한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몇 주 전, 이 일대 전부가 한 회사에 의해 팔려버렸다는 이야기다.

    땅이 팔렸으니, 자연스레 그 부산물까지 모두 자신들의 것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이 거대한 황무지를 대체 누가, 어디에 쓰려고 산단 말인가?’

     

    이 일대 지역은 학자들에게는 훌륭한 탐사지이지만, 기업인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마계의 영향으로 숲도 조성할 수 없었고, 사람들이 살기에도 그닥 훌륭한 환경이 아닌데다가, 산다고 해도 관리하기 편한 장소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지역은 팔렸다.

     

    물론 도로를 내고, 연구시설을 짓겠다는 표면적인 이유는 있지만, 그렇다면 굳이 자신들의 탐사작업 자체를 틀어막을 이유는 없었다.

    건축과 발굴 및 탐사작업은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단 한걸음도 양보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자신을 믿고 여기까지 달려온 자신의 팀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허망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자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럼 이곳에 퍼부은 우리의 시간과 노력은?”

    “보상해줄 테니, 회사로 청구하십시오.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허.”

     

    그는 거대 기업, ‘루체스트’의 기업마크가 찍힌 명함을 건네며 말을 거뒀다.

    제임스가 얼결에 그 명함을 받아들자, 그는 그것을 수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비워주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는 저희에게 허락된 규칙대로 행할 뿐이니까요.”

    “…….”

     

    허락된 규칙이란, 강제철거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쯤 되니 제임스는 자연스럽게, ‘루체스트’가 자신의 연구를 방해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팀이 묻는다.

     

    “박사님, 그럼 이제 저희는 어쩌죠?”

    “……글쎄,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당장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떠올리기 어렵겠지.

     

    ‘면목이 없군……. 팀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그는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

     

    -찰칵.

     

    “오늘도 아카데미, 잘 다녀오십시오.”

    “응…….”

     

    운전수가 차의 문을 열자, 어두운 표정의 소녀가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발걸음을 내렸다.

    소녀의 이름은 헬레나 루스핀드, 루스핀드가의 외동딸이자, 루스베리그룹의 후계자인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지금 당장 소녀의 갑갑한 감정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란 바로, 시루드 트리핀드 때문이었다.

     

    며칠 전, 시루드는 수영장에 가자고 했던 헬레나의 약속에 이렇게 대꾸했다.

     

    ‘아, 미안. 나 사실 수영장은 별로 안 좋아해서. 어차피 루크도 안 간다고 하고, 나도 그냥 안 갈래.’

    ‘아……. 그래?’

    ‘어, 우리 그렇게 안 친하잖아.’

    ‘그렇……지.’

     

    헬레나에겐 그 ‘별로 안 친하다’는 말이 굉장히 심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쉬는 시간에 자주 찾아가서 이야기도 하고(일방적인 대화이긴 했지만),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잔 적도 있고(비록 별장이 넓어서 같은 지붕 아래라는 느낌은 전혀 안 났지만), 저번에 루크의 생일파티 때는 음식도 갖다줬고(루크가 시킨 것이긴 했지만)…….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전부 다 착각이었다는 말이 아닌가?

     

    사실, 원래 어린 나잇대의 아이들은 동성끼리는 쉽게 친해질 수가 있었지만, 이성과 친해지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게다가 내성적인 시루드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더 심각했다.

    시루드는 여자아이가 먼저 친한 척을 하지 않으면 친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수영장이라니?

    뭐랄까, 평소 자주 놀지도 않는 여자아이가 그렇게 말하면 시루드는 곤란할 뿐이다.

     

    루크의 경우엔 루크가 먼저 가장 깊숙히 다가오는 성격이었고, 메리는 모든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성격이었으니 어느정도 말을 텄지만, 헬레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으니까.

     

    헬레나는 시루드와 마찬가지로 내성적인데에 더해 제 맘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하지 못하는 솔직하지 못한 성격의 아이였고, 흠결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인 탓에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 파묻혀 사느라 친구를 사귀어 볼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헬레나는 자주 시루드의 반에 찾아가긴 해도 결국 좋다는 티를 잘 못 내었고, 그것은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서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운 좋게 마침 혼자 먹고 있는 시루드를 발견하면 그 옆에 앉으면 괜히 부끄러워서 ‘차, 착각하지 마. 그냥 자리가 남아서 옆에 앉는 거 뿐이니까.’ 라고 입에서 멋대로 나와버리는 식이랄까.

    그러면 항상 솔직하고 직설적인 여자아이만 겪어본 시루드는 그저, ‘하긴, 엘프는 소수민족이라서 식당의자도 별로 없긴 하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냥 납득해버리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항상 쉬는 시간에 시루드의 책상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마법 문제 같은 걸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되는데 굳이 찾아와 물어보기도 한다.

    그것이 귀찮은 시루드가 ‘왜 항상 나한테 그걸 물어보는 거야?’라고 물으면, ‘그냥,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라고 말하며 튕기는 것을 ‘하긴, 전교 2등인데……. 마법에 대해 물어볼 사람은 나 이외엔 루크밖에 없기는 하지.’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린다.

    항상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넘겨지다보니 시루드의 안에서 호감도는 쌓일 틈이 없었고, 헬레나만 어딘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탓에 시루드로부터 ‘친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까지, 헬레나는 친하지 않다는 말이 가슴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 이유는, 헬레나 말고도 다른 동성친구가 많은 시루드와는 달리, 헬레나에게는 시루드 외엔 딱히 동성중에도 친한 사람이 없어서였다.

     

    “하아…….”

     

    이럴 때는 자신의 가문이 싫어지는 헬레나였다.

    분명 루스핀드 가문은 여러가지 사업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그리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기피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것은 과거 좋지 못한 가정사정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자주 다투어 친구가 별로 없었던 시루드와 비슷한 것이다.

     

    하긴, 집 가는 방향도 다르고, 반도 다르고, 그렇다고 딱히 같이 할 이야기도 없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애한테 집착하고 있는지, 헬레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레나는, ‘차라리 그 때 친하지 않냐고 대꾸할걸.’ 하고 자신의 멍청함에 후회를 하며 축 처진 발걸음으로 아카데미를 향하고 있었다.

    자기 바쁘다고 본래 약속을 파토 낸 애꿎은 루크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

     

    헬레나는 괜스레 바닥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걷어찼다.

     

    이게 다 ‘루체스트’라는 기업을 인수하고 나서 벌어진 일이다.

    그 기업을 산하에 두고 나서부터 자신의 아버지는 여러가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고, 집에도 자주 안 들어오시고, 1등을 해도 칭찬을 안 해주시게 되었으니까.

     

    ‘우울해. 이럴 땐 루크의 꼬리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이런 날에는 정말 생각하기 싫지만, 루크의 꼬리 감촉이 제멋대로 상상이 되고 만다.

    그것은 정말로 부드럽고, 따듯하고, 폭신거려서 베개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

    어찌나 간절했는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 같…….

     

     

    “오, 헬레나. 좋은 아침이구나.”

    “뭐야, 루크 맞잖아?!”

     

    ……은게 아니라, 그것은 실제로 루크였다!

     

    몇 주 못 본 사이에 갑자기 키도 더 커지고 머리카락도 엄청 길어져서 바로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

    하지만 헬레나의 반응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너무 빨리 자라

    —-
    말없이 연재 쉬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이 한편이 정말로 잘 안 써져서… 정말로 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네요…ㅜㅜ
    죄송합니다… 중간에 공지라도 썼어야 했는데… ㅜㅜㅜㅜㅜㅜ

    대신, 크리스마스에 큰거 옵니다…!
    기대해주세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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