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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격류에 휩쓸린 찰리는 자신이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것은 고사하고 어디가 아래이고 위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물이 폐 속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왔지만, 질식이라든지 익사라든지 하는 개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의식 역시 몸을 따라 깊게 잠기고 있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그는 밤하늘에 명멸하는 수많은 별을 보았다. 그것은 시신경 근처에 고통이 가해졌을 때, 그 신호를 뇌가 빛으로 착각하는 현상이었다. 호흡 곤란에 전신의 세포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찰리는 눈앞에 번쩍이는 섬광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별의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우주 공간을 헤엄쳐 나가던 그는 이윽고 어느 외로운 행성에 추락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격이 몸을 때렸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몇 가지 단편적인 단어들이 떠올랐다.

       곡예사, 마귀, 우주, 죽음……. 그것은 곧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원더랜드?’

         

       그는 간신히 눈을 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어디에도 가면을 쓴 주민이나 하늘을 가득 메운 폭죽과 연, 흥겨운 악기 소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축축한 어둠 속을 둥둥 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별빛의 색과 그 수였다. 금빛으로 번쩍이던 섬광들은 어디 가고 보석 같은 붉은 빛을 발하는 두 개의 별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사람의 눈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눈의 주인은 기절한 그를 내려다보며 피처럼 새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일하러 왔다가 재밌는 것을 봤네.”

       

       거대한 지하수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름 수십 미터의 거대한 원통형 구조의 바닥이 그들이 있는 곳이었다.

       찰리가 제정신이었다면 이곳이 어디인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학교 지하에 숨겨진 공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지하수에 떠밀려 도착한 곳은 바로 예테린푸르크의 빗물을 모으는 저수조의 최하층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위로 수십 미터 올라가면, 아까 레이나와 비올라, 두 사람의 줄타기 곡예사가 대결을 벌였던 장소가 나왔다.

         

       “왜 그렇게까지 그를 싫어하는 거지? 질투인가? 흐음, 우리 통하는 데가 있는데.”

         

       찰리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피부는 분칠한 것처럼 새하얬다. 반면, 그녀의 입술은 피처럼 새빨갰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특징은 그녀의 등에 솟은 날개였다. 그것은 사람 몸통만큼 컸으며 까마귀의 것처럼 새까맸다.

         

       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는 곧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의 몸을 서둘러 물 밖으로 끌어냈다. 그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물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았다.

         

       “젠장, 이 녀석 호흡이 멈췄잖아. 후우……어쩔 수 없지. 인공호흡을 해줘야겠네.”

         

       그녀는 축 늘어진 그의 몸을 붙잡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과 입을 통해 숨을 불어넣는 그녀의 동작은 분명 사람을 구하는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 전체에서 흐르는 진한 색기 때문인지 너무나 관능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붉은 혀가 뱀처럼 그의 입 구석구석을 탐닉했다.

         

       “쿨럭, 쿨럭, 크윽, 흑.”

         

       그녀의 입맞춤을 받은 지 얼마 안 있어 찰리는 기도를 막고 있던 물을 연신 토해내며 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등에 날개를 단 여인은 귀여운 강아지를 다루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테나 라센’으로 암흑가에서는 보통 ‘까마귀 마녀’로 통했다. 그녀는 아이를 만들어서 파는 상회인 ‘콤프라치코스’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그녀가 이 도시에 온 것은 다름 아닌 ‘별빛’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녀의 부하들은 몇 주 전, 베가스 경매에 올라온 다섯 병의 별빛을 모두 입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병을 누가 시세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을 주고 입찰하고 말았다.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는 데 철저한 사설 경매장이라 입찰자가 누군지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경매가 끝난 지 몇 주나 지나서야 간신히 입찰자가 제국의 공작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트릴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별빛’은 바이오맨서가 아닌 사람이 데볼루트를 조작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콤프라치코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고객들의 요구대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데볼루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귀중한 것이기에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 부회장인 그녀가 직접 움직이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하고 나서 그것이 의외의 인물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라테나는 오랜만에 그를 보게 되었다. 콤프라치코스는 비록 그녀가 이끌고 있기는 했지만, 서류상의 주인은 아직 그였다. 애초에 이 조직이라는 것도 그가 데볼루트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실험체들을 조달할 목적으로 세웠던 것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제멋대로 점토를 주무르고 노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 맞춰 점토를 빚는 것이 도예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과 유사했다. 원더스타인은 조직에 있던 십여 년 동안 많은 아이를 조작하여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한 라테나는 한동안 그의 주변에 숨어서 그를 관찰했다. 한때 동료이긴 했지만, 그와 마주치긴 껄끄러웠다. 그는 데볼루트 사용법을 익힌다는 목적을 달성한 뒤, 그녀를 떠나려고 했다. 심지어 떠나면서 둘이 공들여 만든 조직도 해체하려고 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토끼 년은 부두교라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을 맡고 있고, 뱀 년도 황궁의 중추에 들어갔는데, 자신만 힘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들 셋은 사이좋은 자매였지만 하나 있는 남동생에게 제일 존경받는 누나가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했다.

         

       물론 그녀가 콤프라치코스를 유지하겠다고 고집을 피운 데에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남동생에 대한 야속한 심정도 함께 작용했다. 그래서 둘은 크게 다투고 헤어졌고,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떨어져 지내면서도 그녀는 그에 대한 소식을 계속 전해 들었다. 다른 두 누이가 매달 그녀에게 자랑하듯 편지를 보내온 덕분이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은근히 으스대는 두 명의 말투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두 명도 반년 전부터 그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서커스 그랑프리에 들어서면서 녀석이 잠수라도 탄 모양이었다. 그건 상당히 고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자니 불안해졌다.

         

       원더스타인은 세 자매보다 늦게 만들어졌다. 창조주는 그를 최악의 실패작이라 부르면서 방치해 버렸고, 심지어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 자매는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사람 마음 살필 줄도 모르고, 사람 대하는 요령도 없어서 답답하게 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그러던 와중에 이곳에서 그와 마주치게 됐다. 사실 별빛이 예테린푸르크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그녀가 가겠다고 나선 것도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라테나는 반가움 대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하하 호호 지내는 꼴이란. 남동생에게 살랑살랑 꼬리 치는 것들이 모두 여우로 보였다.

         

       “크윽, 여, 여기는?”

         

       라테나는 찰리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이마에 걸쳐 두었던 고글을 재빨리 다시 썼다. 그가 보았던 붉은 눈은 사실 그녀의 진짜 눈이 아닌 그녀가 쓰고 있던 고글에 비친 것이었다.상대의 정신을 헤집어 놓을 수 있는 보석 형태의 마도구를 그녀가 세공해서 고글에 장착했다. 이걸로 그녀는 눈을 마주친 대상의 정신을 조작할 수 있었다.

         

       “자, 너는 누구지?”

         

       그녀는 일단 가벼운 질문부터 던졌다. 정황을 봤을 때, 부단장이라는 계집과 연이 있는 놈 같았다. 상황에 따라 둘 사이를 갈라놓을 만한 패로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현재 찰리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끝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뺏기고 말았다는 자괴감에 자신이 찰리라는 사실조차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그는 자신을 정의하는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냈다.

         

       ‘저를 죽이려는 남자죠.’

       ‘저는 이 남자를 미스테릭서라고 불렀습니다.’

         

       찰리는 초점 맞지 않는 눈으로 라테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면서 질문에 답했다.

         

       “나는……원더스타인을 죽이는 자…….”

       “내 이름은……미스테릭서…….”

         

       라테나는 그의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그를 죽이겠다는 말을 입에 담는 그가 당돌해 보였다.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한 번 등을 떠밀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재능은 있어 보였다. 조금만 도와주면 원더스타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여우들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매정한 남동생에게 그녀가 보내는 깜짝 선물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쓴 까마귀머리 형태의 투구를 주먹으로 딱 때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아까부터 구석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넌 누구지?”

       “으윽.”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비올라는 얼어붙고 말았다. 붉은빛의 보석과도 같은 안광에 담긴 힘에 그녀는 몸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의 입은 상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제 이름은 비올라. 찰리의……친구예요.”

       “친구라는 말이 한 박자 늦네? 좋아하나 봐?”

       “……네.”

         

       비올라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본심을 술술 털어놓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무래도 저 여자에게는 사람을 조종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거지?”

       “찰리가 기르는 동물들은 주인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어요.”

       “우꺅꺅!”

         

       비올라의 등에 매달려 있던 원숭이가 고개를 슬쩍 내밀더니 라테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감히 그녀에게 달려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숭이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나랑 같은 방법을 썼네.”

         

       그녀가 등에 있는 날개 한쪽을 펼쳤다. 그러자 그 속에서 눈처럼 새하얀 부엉이가 불쑥 솟아 나왔다. 얼마 전, 원더스타인을 관찰하던 그녀는 매의 공격을 받고 떨어지는 부엉이를 발견하고 주워다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놈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했다. 찰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녀석 덕분이었다.

         

       찰리는 자신이 지하수에 휩쓸리고 얼마 안 되어 이곳에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정신을 잃고 저수조를 떠다니기 시작한 지 몇 시간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방금 저수조 상층부의 물을 방류하는 데 휘말리면서 계속 물을 먹다가 간신히 라테나에게 구조된 것이다.

         

       비올라는 라테나를 노려봤다. 등에 날개가 달려 있고, 수상쩍은 마법을 쓰는 위험한 여자였지만, 찰리의 입술을 빼앗던 장면을 떠올리자 용기가 났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찰리에게.”

       “흐음, 이 친구 이름이 찰리야?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잘됐네. 세뇌를 걸려면 백지에 하는 것보다 덧칠하는 게 더 효과가 좋거든. 특히 이렇게 다 큰 애는 말이야. 나랑 같이 가줘야겠어. 이 녀석에 대한 것을 다 말해야 할 거야.”

         

       비올라는 만신창이가 된 찰리를 바라봤다. 어차피 그를 살리려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그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거부해도 그녀에겐 자신을 굴복시킬 힘이 있었다. 이왕 그렇게 될 바에 그녀는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조건이 있어요.”

       “조건?”

       “당신의 그 세뇌라는 거……제, 제가 원하는 것도 덧씌울 수 있나요?”

       “오호.”

         

       상대의 의도를 간파한 라테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여전히 최면에 걸려 정신을 못 차리는 찰리를 사이에 둔 채 두 여인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

       서커스 찰리 (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꾸준히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병희 님, 10코인 후원! 넵!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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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자리아 님, 300코인 후원! 헉! 큰 금액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기대에 뒤지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예테린푸르크 편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모든 도시 중에 가장 긴 편이었습니다. 다음 4개 챕터는 아마 이름 붙이자면 대륙횡단열차 편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테나 라센의 삽화는 Novel ai를 통해 뽑아본 것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앞으로 가끔씩 올려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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