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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불명은 조용히 흑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기공을 해제했다.

         

       불명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저 지금처럼 불명이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구나.“

         

       “…역시.”

         

       흑묘는 불명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얼굴을 가렸지. 보자마자 누가 봐도 늙어버린 호천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해주려무나. 특히 사손에게는 말이다.”

         

       흑묘는 미래에서 온 호천안인 불명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은 일이 많았다.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흑묘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억눌렀다.

         

       말끔하게 드러난 불명의 눈에서 휘몰아치는 수많은 감정들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폭풍이 이는 격랑처럼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불명을 보며 흑묘는 불명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깨달았다.

         

       온갖 상처로 얼룩진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과연 미래의 일을 묻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불명은 흑묘를 찬찬히 살폈다. 얼굴을 가리는 기공을 걷어낸 깨끗한 시야로 흑묘를 바라보는 것은….얼마만일까. 여전히 밤하늘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흑묘의 눈을 바라보며 불명은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은 생생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뽑기 진법.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행들이 수색하는 장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었지.

         

       그리고 정철이 나타났고 싸움이 벌어져 패배했다.

         

       [발악을…]

         

       뒤돌아선 정철. 선천진기를 터트린 흑묘. 그리고…무력하게 누워 손이나 허우적거렸던 자신.

         

       [모두! 선배를 데리고 도망쳐요!!]

         

       그렇게 외치며 정철에게 달려들던 흑묘의 모습은 아직도 가슴에 그대로 못 박혀 있었다. 생의 마지막 불꽃을 연료삼아 피어나던 얼음 알갱이 하나하나까지 기억났다.

         

       정철은 검강을 뽑아내 흑묘를 공격했고.

         

       흑묘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으며 정철에게 매달렸다.

         

       그야말로 자살 공격이었다.

         

       [이, 이 미친 년이…!]

         

       흐려진 시야로도 흑묘가 대량의 피를 토해내는 것이 보였다. 정철이 흑묘의 몸을 타격할 때마다 흑묘의 입에서는 피가 튀었지만 그럼에도 흑묘는 정철에게 매달린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츠츠츠츠츠!!!

         

       [으아아아아!]

         

       선전친기와 함께 폭주하는 구음기가 운무와 같은 서리를 만들어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일행이 불명을 들어 올려 입구로 달렸다.

         

       불명은 누군가의 어깨에 얹어진 채 하염없이 운무 속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형상이나 겨우 보일 짙은 운무 사이로 불명은 흑묘가 무어라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흑묘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말했는지는 영영 알 길이 없었다.

         

       흑묘는 불명의 귀에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고.

         

       자욱한 한기의 운무 때문에 입모양은 읽어낼 수 없었으니까.

         

       제발.

         

       흑묘가 내뱉은 마지막 말의 편린이라도 듣기 위해 온 의식을 짜냈건만 불명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불명이 기억하는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고.

         

       불명이 본 흑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만신창이가 된 일행과 간신히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불명은 자신을 자책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용지맹이라는 변수를 놓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을 텐데!

         

       흑묘를 잃은 불명은 더욱더 철저하고 지독하게 계획을 세웠다. 얻을 수 있는 기진이보와 영약이란 영약은 죄다 손에 넣어 사용했고 다른 세력들을 끌어들이며 사도련을 견제했다.

         

       그러나.

         

       불명의 ‘실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리 불명이 선전하더라도 불명은 절정 고수에 불과했으며 정철은 화경의 끝자락에 달했으며 거대 세력을 다루는 자였다.

         

       전과는 다르게 정철은 자신의 손해조차 감수하며 온 힘을 다해 불명을 처리하려 했으니 잘 풀리던 일들 사이에서도 위협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꼭 정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탐욕적으로 성장한 불명에게는 여러 적이 생겼으니 그 적들을 관리하는 중에도 ‘실수’가 터지기도 했다.

         

       그리고 ‘실수’가 터질 때마다 불명의 곁에는 한 사람이 사라졌다.

         

       [쿨럭,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드디어…은공에게 은혜를 갚는군요.]

         

       정철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 여일예가 스러졌다.

         

       [하하하! 승객을 지키는 것이 마부의 진정한 도리입니다! 마지막에는 원 없이 달릴 수 있겠군요.]

         

       무리하게 기연을 탐하다 소문이 퍼져 몰려든 무인들의 틈바구니에서 탈출하기 위해 당도연은 희생을 자처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낭인님.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유경 오라버니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혁기린이 품에서 숨을 거두었고.

         

       [하하, 즐거웠다 제자야. 태음이 스러지고 너무 오래 살았어.]

         

       당소열 역시 눈을 감았다.

         

       실수를 반복하며 모든 일행을 잃고…혼자가 된 불명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오만했음을.

         

       여태껏 실수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고작해야 게임 좀 잘한 것이 뭐 그리 잘난 것이라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무시하고 아래로 내려보았단 말인가.

         

       한 세력의 정점, 수십 년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로매진한 자들을 고작해야 제 머릿속에 담고 손안에 굴리는게 가당키나 했던가.

         

       천하 모든 것을 제 뜻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다 여기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수립했거늘 그런 오만한 계획들이 어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었겠는가.

         

       모든 일행을 잃은 불명은 그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가슴이 찢어지고 마음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 사실을 가슴에 새겼지만…

         

       그런다 한들 사라진 일행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이은 실패에 엉망이 되어버린 사천도 되돌릴 길이 없었다.

         

       그저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마음을 안고 복수를 위해 움직였다. 무공은 물론이요 모든 기술들까지 대성한 불명은 복수에 성공했으나.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모두 스러진 지 오래였다.

         

       문득 불명은 호천안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련이 남지 않았느냐고 물었었지.

         

       ‘없을 리가 있겠느냐.’

         

       미련은 차고 넘쳤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핵심석을 가지고 그날의 그 진법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연구했을 정도로.

         

       과거로 돌아간들 지금 자신의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만약 그때 그 진법으로 들어간다 한들 본체는 그 결과를 알 길 없이 그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날의 그때, 뽑기 진법에 꽝 대신 스스로를 넣기 위해 수십 년을 태우며 연구했을 정도로 차고 넘쳤다.

         

       익숙한 동굴 속에 구현되었을 때 불명은 자신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동굴에 숨어 호천안과 일행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 일행의 뒤를 밟고 있을 정철을 없애 버리고 싶은 충돌이 불명의 마음속을 가득 메웠지만 불명은 그런 충동을 다스리며 심호흡을 했다.

         

       결국 호천안의 ‘오만’을 깨지 않는 이상 호천안은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계십니까?”

         

       “저희들은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저 한 번만 다시 들어보면 소원이 없다 여겼던 목소리들이 귀에 들리고 그 모습까지 드러났을 때 불명은 모든 것을 잊고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가 오늘 네 무덤이 될 것이다.”

         

       정철이 나타났을 때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혹여나 내가 알던 과거와 다른 결과가 펼쳐지면 어떻게 하지? 만약에 일행들이 전투 중에 목숨을 잃는다면?

         

       불명에게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호천안을 죽이기 위해 검을 치켜들던 정철이 흑묘를 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불명은 안도했다.

         

       자신이 그렇게 꿈꾸고 염원하던 소망.

         

       과거의 후회를 되돌릴 수 있는, 미련을 털어버릴 기회를 비로소 손에 넣었으니까.

         

       ‘이 미련은 끝이 없는 모양이구나.’

         

       3년.

         

       불명이 호천안을 단련시키며 미련을 쏟아낸 시간이었다.

         

       불명은 여전히 가슴 속에 한가득 남은 미련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제는 만족해야 할 때였다. 이곳에 있는 호천안은 불명이 아니니 스스로의 생은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할 일이었으니까.

         

       실패자의 넋두리나 풀겠답시고 영원히 붙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놓아줘야 할 시간이 왔다.

         

       “궁금한 점이 많다는 것,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대답해 줄 수 없단다. 비록 나는 실패자이나 오랜 세월 궁구해 온 것이 있으니 지금의 상황이 최선이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흑묘는 불명의 답변에 침묵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별로 없으니 길을 비켜 주겠느냐?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으니.”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불명은 흑묘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척 봐도 흑묘는 쉬이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으니까. 흑묘의 질문을 무시하고 떠난다 한들 흑묘가 불명의 앞을 막을 수는 없을 테지만 불명은 그런 식으로 흑묘와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계획에 없는 일이었지만…불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의 정체를 알고 나니 그때의 상황을 되짚게 되더군요. 혹여 미래의 저는 죽었습니까?”

         

       “…그렇다.”

         

       불명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기껏 목숨 바쳐 살려놓은 자가 그저 후회에 찌들어 과거로 돌아올 궁리나 하는 패배자라니. 흑묘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가 막힐까.

         

       흑묘는 죄책감에 찌든 불명의 눈동자를 보며 다시 물었다.

         

       “혹여 그때의 저는 유언을 남겼습니까?”

         

       “….그러지 못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때의 상황에서 유언을 남기기는 힘들었겠지요.”

         

       흑묘의 말에 불명은 가슴이 욱신거렸으나 감내하기로 했다. 어떤 비난을 퍼붓더라도 흑묘는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말에 불명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저는 고맙다고 말했을 겁니다.”

         

       흑묘는 불명과 눈을 마주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선배 덕분에 정말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선배가 없었다면 저는 영원히 음지의 그늘에 숨어 있었을 것이고, 이런저런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혁기린이라는 친구를 사귈 수 없었을 것이며, 려아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월복당의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지도 못했을 것이며, 사라를 구할 마음을 먹지도, 구하지도 못했겠지요.”

         

       흑묘는 멍한 표정을 짓는 불명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는 그저 불명 어르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정말로 그 상황에서 내가 죽었다면 나는 선배에게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숙고하고 또 숙고해 낸 결론입니다.”

         

       “….그렇구나.”

         

       “결국 어르신께서는 저희 일행을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저…생각해 낼 수 있는 보답이 이 정도라 송구합니다.”

         

       고개 숙이는 흑묘를 보며 불명은 생각했다.

         

       차고 넘치는 보답이라고.

         

       무어라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지조차 모를 대단한 것을 받았다고.

         

       흑묘는 말을 잃은 불명을 바라보며 뒤로 한 걸음,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불명은 말없이 죽립을 한 번 매만지고는 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각문주를 내던지자 진법에 구멍이 뚫렸다. 갑자기 불어닥치는 눈에 흑묘는 바깥의 계절이 겨울임을 깨달았다.

         

       불명은 마지막으로 흑묘를 눈에 담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흑묘는 말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불명 역시 웃으며 진법 바깥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불명은 눈을 맞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진법은 안배대로 작동한 모양이었다. 안에서는 3년이었지만 바깥에서는 6개월 정도 지난 상황.

         

       진법 바깥은 적귀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는지 전에는 없던 망루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괜히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 움직여야겠군.’

         

       불명은 곧바로 발을 움직였다. 극에 달한 은신술과 경공술을 펼치며 적귀대원들의 감시망을 조용히 빠져나간 불명이 나타난 곳은 인근의 산꼭대기였다.

         

       그곳에는 어떤 사내가 뒷짐을 지고 불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정철이라는 자가 이상한 헛소리를 하더구나.”

         

       불명은 말없이 사내의 말을 들었다.

         

       “허황된 소리라 여겼지만, 휘하에 거두어 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빚이나 지우자고 친히 왕림했건만 그자의 말이 절반은 사실이었구나.”

         

       사내는 불명을 보며 기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천하에 그대 같은 무인이 존재한다니 참으로 기쁘나, 그대가 가짜라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이군.”

         

       “오늘 이몸은 아주 기분이 좋다.”

         

       불명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흑묘에게 들은 말이 기뻤던 것은 물론이고, 만약 흑묘의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기분 좋을 날이었다.

         

       아주 옛날부터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한 혁기린의 볼도 원없이 주물렀고 당소열과 당도연이 차려 준 밥을 먹고, 흑묘에게 냉찜질도 받았으며 여일예가 깔아 준 이부자리에서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 기분대로라면 네 장단에 어울려 주지 못할 것도 없으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구나.”

         

       “때가 좋지 않았군.”

         

       불명은 천천히 뒤돌아보는 사내를 보며 생각했다. 참으로 아슬아슬했다고. 이 자가 딱 이 시기에 도착한 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이 자와 마주친 결과가 훗날 호천안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는 불명조차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먼 길 온 손님이니, 내 한 수 대접해 주겠다.”

         

       “딱 한 수라니, 유감이군. 유감이야.”

         

       사내가 장탄식을 터트렸으나 불명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뻗었다.

         

       빠직!

         

       작은 번갯불이 튀는 소리와 함께 명주실처럼 가는 번개줄기가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사내는 그 번갯불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순간 산의 공기가 요동쳤다.

         

       순간적으로 사내의 몸에서 뿜어진 고밀도의 기가 일대의 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강기라고 칭하기에는 부족하나 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진득한 사내의 기운이 순식간에 손바닥 위에 진득한 형상의 강환을 만들어냈다.

         

       사내가 만들어 낸 강기의 덩어리는 강환이었지만 환의 형태를 띄고 있지는 않았다. 마치 부정형의 액체가 펄펄 끓는 듯한 형상의 강환은 그대로 몸을 늘이며 불명의 번개줄기를 먹어치우기 위해 쏘아졌다.

         

       마치 해변에 쏟아지는 파도와 같은 형상을 한 사내의 강환과 불명의 강환이 충돌했다.

         

       불명이 내쏜 강환은 겉으로 너무 유약해 보였기에 충돌이라기보다는 접촉이라고 표현해야 할 광경이었다.

         

       맥없는 일이었으나 사내와 불명의 수 교환은 그걸로 끝이었다.

         

       어느새 불명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으니까.

         

       핵심석이 파괴되며 진법이 해제된 것이다.

         

       불명과 대치하던 사내는 홀로 중얼거렸다.

         

       “세상은 넓군.”

         

       사내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바늘 하나 들어가기도 힘든 구멍이 뚫려 있었다.

         

       참으로 작은 상처였다.

         

       기껏해야 주먹을 쥘 때 따끔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 전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요 내공의 수발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작은 상처.

         

       그러나 이 상처를 내며 침투한 작은 번개의 기운을 제거하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내는 그 기간을 쉬이 예상할 수 없었다. 그저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짐작할 뿐.

         

       “흐음.”

         

       사내가 주먹을 쥐자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고통이라는 단어와 한없이 멀어진 줄 알았건만 이리 가까이 있었나.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며 호천안 일행이 머물고 있는 중영산 쪽을 바라보았다.

         

       “대접을 받았으니 나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도리겠지.”

         

       사내는 이 상처가 불명이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라 판단했다. 적어도 이 상처를 낫게 할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라는 전언.

         

       연신 주먹을 꼼지락거리던 사내는 슬쩍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살아가면서 재미를 느껴본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사내는 이 소소한 소득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도 검은 칠흑 같은 머리와 그 어떤 존재보다도 선명한 붉은 눈을 지닌 사내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한겨울.

         

       중영산의 동굴에 펼쳐진 진법이 정지한 날.

         

       아직은 봄이 오기에는 이른 시기, 멈춰있던 모든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퇴고가 길어지다보니 시간을 좀 넘겼네요!

    *
    [비공개]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300화 기념 후원을 해주시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엔딩까지 같이 봐 주셨음 좋겠네요!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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