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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노스트럼 왕국의 수호룡, 골드 드래곤 크로노스트럼.

     

     500년 전 왕국의 시조 지오 노스트럼이 초대 지브롤터 변경백과 함께 노스트럼 왕국을 세울 때, 수호룡은 노스트럼의 핏줄에 한 가지 축복을 내려줬다.

     회귀.

      일생에 단 한 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

     나라가 망했다? 회귀하면 된다.

     독살당해 죽었다? 회귀하면 된다.

     역병으로 모든 인간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회귀하면 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국가의 위기 상황이 나타났을 때, 골드 드래곤은 세계를 되감는 기적을 일으켰다.

     이유는 아마도, 노스트럼을 사랑하니까.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 행동의 이유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지켜주는 왕국을 사랑했기에 그 무수히 많은 황금을 내어줬고, 협곡을 만들어 그 어떤 적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대대손손 황금이 주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역사는 500년가량 제법 길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당장 나, 그레이 지브롤터가 기억하는 시간대만 하더라도 510년 이상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그 오랜 역사 동안, 회귀를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어렸을 때, 종이를 이어 붙이는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길게 세로로 자른 종이를 연달아 이어 붙이는 건데, 풀을 이용해서 붙이려면 자연히 겹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겹치는 부분.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면, 겹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회귀로 인해 사라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터.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세상은 그 겹친 이면일 것이다.

     회귀자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회귀의 권능을 만들어 낸 황금룡의 흔적인 황금은 그 역사를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그냥 억측에 불과하지만.

     세계가 되감기 되는 대마법은 말 그대로 모든 이들의 시간을 되감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순간 한순간의 시간을 어딘가에 기록하여, 그 시간대의 세상으로 모든 이들을 되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대마법을 일으키는 것이 노스트럼 땅 아래에 있는 황금이며, 그렇기에 황금에는 회귀로 사라진 역사가 기록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기억이 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지워버리고 없앤 자신의 실패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실패를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법이며, 실패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누구나 존재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모든 이들은 그런 후회를 곱씹으며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로 나아간다.

     이번 생.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는 후회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예상할 수 있었다.

     오직 나만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한 오직 나만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회귀는 노스트럼만 하는 게 아니다.

     수백 년 전, 지브롤터의 조상 중 한 명인 카디안 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회귀는 지브롤터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노스트럼을 향한 수호자인 동시에 노스트럼을 단죄할 수 있는 지브롤터를 향한 황금룡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노스트럼이 망가졌을 때, 지브롤터가 대신 회귀하여 노스트럼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회귀권은 지브롤터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원리를 우리는 추론할 뿐이지만, 그걸 바탕으로 가장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회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회귀를 막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시간을 되감는 것을 막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분석하고, 그의 성향과 이런저런 변수를 생각하여 함정을 팠다.

     20년 동안 기다렸으니, 분명 시간이 지나는 즉시 나타나리라.

     예상대로였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나리아를 습격했고, 아마도 시간을 되돌리기에 가장 그럴싸한 장소로 나리아를 납치했다.

     시간 끝.

     황금 신전.

     황금의 드래곤, 크로노스트럼이 잠들면서 동시에 이른바 ‘회귀 장치’를 지키고 있는 곳.

     분명 그곳으로 갈 것이 예상되었기에, 나는 나리아와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함정을 팠다.

     황금 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노스트럼의 피를 가진 이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황금 신전에 이미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내가 황금 신전에 들어간 순간.

     “딱 맞게 들어왔구나, 그레이.”

     

     아버지는 나리아를 지키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마침, 딱 마지막 인사를 한 참이다.”

     * * *

     생각보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혹시나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건 아닐지 싶었는데, 다행히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에 정확하게 등장할 수 있었다.

     ‘절경이네.’

     그야말로, 절경.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어, 어라? 으응?”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평소의 그 오만하기 짝이 없던 모습과 달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되감기가, 안 돼? 왜? 크림슨은, 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궁금합니까?”

     나는 아버지의 옆에 섰다.

     나리아와 아버지가 나를 향해 잠시 시선을 보냈고, 나는 둘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이미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그리고 나리아를 노스트럼의 핏줄로 삼아,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

     “시간을 되돌린다. 참 말도 안 되는 기적이고 비상식적인 말이지만, 이런 곳까지 왔는데 이야기하지 못할 것도 없죠.”

     “……설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유령을 보는 것처럼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

     “저는 압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인간은 마냥 무능한 건 아니라는 걸. 나라를 말아먹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유능하지만,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머리 하나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걸.”

     나는 가볍게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이번 삶의 당신은 당신의 목표가 망가졌기에, 회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다녔겠죠. 황금을 폭발시키는 힘도, 그 알 수 없는 지팡이도, 죽은 자를 부리는 능력도 모두.”

     ‘나의 회귀 전’에는 저러지 않았다.

     ‘어머니를 취했으니, 저런 힘을 얻으러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세인트 지오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만족했기 때문일 터.

     

     이번 생은 달랐다.

     나는 어머니가 세인트 지오의 품에 들어가지 않게 막았고, 저 자는 회귀 전에는 어머니를 희롱했던 시간을 자신의 성장과 노스트럼의 기적을 찾아 나서는 데 사용했다.

     그것은 그런 과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에는 좀 더 세상을 쉽게 살기 위한 일종의 안배.

     “몰랐던 부분이라 대처하지 못했기는 합니다만, 다행히 마지막에 와서는 이렇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군요. 천만다행으로.”

     “…너구나?”

     세인트 지오가 나를 향해 흉악한 눈을 번들거리며 지팡이를 겨눴다.

     “너, 네가, 설마 권능을 빼앗은 것이냐?”

     “권능을 빼앗는다? 글쎄요. 정당하게 양도받았다면 모를까.”

     솔직히,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니다.

     엄청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이걸 밝힌다는 건, 나라는 존재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하지만.

     ‘그런 무기일수록,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사용해야 하지 않겠어.’

     약 10년 동안 숨겨왔던 비밀이 단 한 사람을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면, 약간의 부작용 정도는 금방 넘어갈 수 있다.

     “그래요. 당신이 예상하는 것처럼, 나리아에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황금룡의 권능은 제게 발현되었기에.”

     “너…!!”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당신이 이미 한 번 되감았다가 진행된 세상에서, 십수 년이 지나 나리아가 한 번 감았으니까.”

     “…….”

     나리아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 황금 신전에 있는 이들 중, 내가 하는 말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소개하죠. 그레이 지브롤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멸망시킨 노스트럼 왕국으로부터 되돌아온, 망국의 변경백입니다.”

     내가 느긋하게 지팡이를 바닥에 놓으며 인사하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표정이 굳는다.

     “이, 이…!”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세계였죠. 그 세계는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기 이전이었고, 제가 원래 겪었던 시간은 당신이 과거로 돌아와 모든 것을 망가뜨린 세상이었으니까.”

     진실을 밝힌다.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멸망시킨 나라로부터, 나리아 여왕으로부터 황금룡의 권한을 양도받아 과거로 돌아온 망국의 변경백입니다.”

     단, 내게 유리한 정보만 밝힌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제약이, 이곳에서는 그나마 말할 수 있게 되어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요.”

     제약 같은 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나리아 여왕, 당신에게도.”

     “…그레이.”

     아버지가 잠시 눈을 감은 뒤, 다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바라봤다.

     “내가 네게 존대해야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겠지?”

     “…….”

     “얼마나 늙은 것이냐.”

     역시 아버지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어느정도 진실을 파악하고, 곧바로 농담을 걸어온다.

     “제가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반말이라도 했을까봐요?”

     “10살 때부터 어른이 갑자기 들어있나 싶기는 했지만, 설마 노인네가 들어있을 줄은.”

     “…27살에 죽었으니, 노인네는 아니죠.”

     

     아버지와 나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27살.

     아버지가 처형당했고, 아스타시아 황녀가 죽었을 때.

     매국노 그레이는 그날 죽었다.

     이후 짧은 기간-이라고 해도 대략 2년, 혹은 3년 정도였던 것 같지만-, 망국의 공주가 나를 이끌고 다녔어도 그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산송장에 불과했다.

     “최후의 순간, 나리아 여왕은 저를 지브롤터로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죽었으나, 눈을 떴을 때는 ‘그날’이었죠.”

     나는 아버지를 향해 가볍게 잔을 드는 시늉을 했고,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시간은 넉넉하고, 바깥보다 훨씬 깊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과거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설령 그중에서도 일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걸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이가 저렇게 있으니.”

     가볍게, 앞으로 한 걸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

     “…흐, 흐흐, 흐흐흐흐흐.”

     무능왕이, 기괴하게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끝이라고? 아니, 아니야. 방법은 있지.”

     무능왕이 나리아를 노려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노스트럼의 피는 다시 낳으면 돼. 아무 여자나 잡아다가, 20년 동안 키워서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된다.”

     “…….”

     “노스트럼의 피를 이어받은 이만 있으면 돼! 새롭게 태어나는 녀석은 황금룡의 기적을 받고 태어날 테니까!”

     무능왕이 나리아를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성을 물려받았으니, 네가 책임지고 아이를 낳아라! 그리고 나를 위해, 그 기적을 바치는 것이다! 흐흐흐, 흐하하!!”

     지팡이가 반짝인 순간.

     “언제까지 아이를 낳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네 아이가 20살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흐하하하하!!”

     무능왕의 몸이 황금으로 빛나며, 황금 신전을 빛으로 뒤덮었다.

     “그때는, 다를 것이야! 20년 뒤에, 다시 만나지! 으하하하!”

     온 시야가 황금으로 물들고, 그 빛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뒤.

     “……응?”

     무능왕은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왜.”

     아버지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마법이든 기적이든, 탈출할 수 없나 보지?”

     “…….”

     무능왕의 얼굴이.

     “…….자, 잠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내가 이곳에 있던 순간부터, 언제든지 결계를 칠 수 있도록 마력을 퍼뜨려 뒀으니.”

     무능왕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 황금 신전 곳곳에는 지브롤터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무능왕이 다시 도망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붙잡기 위한 선혈의 결계가.

     “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우리 가문…우리 가족과의 기나긴 악연을 끊어낼 때가 되었다.”

     아버지가 나리아를 내게로 보낸 뒤.

     “도망칠 곳은 없다. 이제, 네가 뭘 할 수 있지?”

     “으, 으어, 자, 잠깐…. 이건, 분명 잘못된….”

     “마음껏 저항해 봐라. 할 수 있는 걸 모조리 해봐라.”

     천천히, 검을 움켜쥐며 무능왕에게 다가갔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서걱.

     아버지가 검을 허공에 그은 순간, 무능왕의 오른팔이 툭-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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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로 치지직에서 매국명가는 엔딩까지 정기적 라이브 연재로 이어집니다

    일일 2편 정도 예정되어있습니다

    일종의 라이브 미리보기…같은 게 되겠네요

    어차피 12시간 이내에 풀리는 거고, 소장 미리보기를 설정해둔 것도 아니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보기는 내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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