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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눈을 감은 채 신성마법의 구절을 외우고 있는 페이비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진법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주변을 휘감은 진법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어지간한 성직자들이 한 가지 마법을 다룰 때보다 뛰어났으니.

   

   저 많은 것을 유지하고 있는 페이비가 얼마나 괴물 같은 사람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광경을 가만 지켜보던 요한은 몇몇 마법진 끝에 떨림이 생기는 걸 확인하고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성녀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주교님. 전 아직.”

   “이 이상 해봐야 내일의 연습에 지장을 줄 뿐입니다.”

   

   요한의 단호한 목소리에 페이비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뜬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을 휘감던 신성이 흩어지며 밝은 빛과 함께 바닥에 내리 앉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별 것도 안 했는걸요.”

   

   페이비는 땀을 닦아내며 겸손을 표했지만 요한은 그 겸손 앞에서 고개를 내저었다.

   

   “과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지금 성녀님께서 보여주시는 성장은 수많은 이들을 보아 왔던 제 입장에서도 눈에 띌 정도이니까요.”

   “그…런가요?”

   “제가 농담을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막 가문에서 빠져나왔을 무렵부터 수십 년 동안 주신 교회에서 일해 온 요한이다.

   

   수없이 많은 성직자들을 보아 온 그의 입장에서도 페이비의 성장은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페이비가 어디 이제 막 사제의 길에 발을 내딛은 사람이던가.

   

   그녀는 이미 성녀라 불릴 만큼의 실력을 쌓아 온 성직자다.

   

   수준이 올라갈 때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게 상식일 터인데 지금 페이비가 보여주는 성장은 그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충분한 경지에 이른 이가 아무런 밑천이 없는 사람마냥 급격한 성장을 보인다니.

   

   “후후. 아무래도 영애께서 알려주신 수련법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이네요.”

   “확실히 그 분께서 알려주신 수련법은 훌륭했습니다.”

   

   주신의 애정을 받는 분께서 알려주신 수련법은 요한이 알고 있던 여러 수련법과는 거리가 있었다.

   

   기사가 근육을 키울 때 사용하는 무식한 운동마냥 거친 방식은 주신 교회의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었으니까.

   

   “죽을 날을 기다리던 노친네에게 성장하는 기쁨을 알려 줄 정도였으니까요.”

   

   허나 요한은 주신 교회보다도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을 믿었고 그 결과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성장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성녀님의…”

   

   무의식중에 목소리를 내던 요한은 페이비가 고갤 갸웃거리는 걸 보고 중간에 말을 끊었다.

   

   방금 전 그가 하려 했던 말은 페이비의 급격한 성장이 단순히 수련법의 변화만으로 생긴 것이 아닐 것이란 내용이었다.

   

   수련법이 달라져서 생겨난 변화라기엔 페이비의 성장 폭이 과할 정도로 크니까.

   

   버로우 영지에서 기적을 재현하며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걸까 싶을 정도로.

   

   이를 모두 말하지 않은 것은 요한이 이 성장의 원인을 대략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이의 설명으로 깨달아서야 의미가 퇴색될 터.

   

   “주교님?”

   “아아. 죄송합니다. 성녀님께서 왜 알른 영애를 왜 자꾸만 영애님이라 부르는 지 의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훗날 페이비가 스스로 이 사실을 깨닫길 바라며.

   

   “…네?”

   “다른 영애분들은 다 평범하게 영애라 부르시면서 왜 알른 영애께만 영애님이라 부르는가 싶었던지라.”

   

   평상시에 의아하게 여기던 내용이기도 했던지라 요한은 자그마한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다만 한 가지 요한이 예상 못했던 것은 그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점차 페이비의 양 볼이 벌겋게 물들었다는 것이다.

   

   “성녀님?”

   “그… 그게… 그러니까…”

   “혹시 말 못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아뇨! 그. 그런 건 아니고. 저어. 다른 분들이 다 영애라고 부를 때 저 혼자 영애님이라고 부르면 눈에 띄. 잖… 아요…”

   

   뒤로 갈수록 죽어가는 목소리에 요한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기에 말을 하기 힘들어 하시는가 했더니 알른 영애의 눈에 띄고 싶단 것이었나!

   

   “웃지 마세요! 웃지 마시라니까요!”

   “아니. 큽. 그치만 그 호칭을 결정하느라 고민했을 성녀님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새서.”

   “주교님!”

   

   얼굴에 벌개져서는 어찌할 줄 모르는 페이비의 모습에 요한이 눈웃음을 흘린다.

   

   그러고 보면 내게 배움을 청했던 이유도 알른 영애와의 내기에서 승리하기 위함이었지 그래.

   

   자신이 특별히 여기는 사람에게 자신도 특별히 여겨지고 싶다는 건가.

   

   참으로 풋풋하시군.

   

   “알른 영애께서 아신다면 무척 재미있어 하시겠네요.”

   “…절대 말 하시면 안 돼요?!”

   “후일 성녀님께서 어떻게 하시는 지에 따라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흐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그랬어요.”

   

   성녀의 품위는 어디다 내다 버린 것인지. 목소리를 드높이며 양 팔을 흔들던 페이비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지켜 달라 부탁을 하고서 요한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물어봐도 저러시는데 훗날 영애께서 직접 물음을 던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왕이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물어봐주셨으면 좋겠군. 재밌을 것 같으니까.

   

   “들으셨습니까. 카리아님. 성녀님께서 비밀을 지켜 달라 그러시는 군요.”

   

   페이비가 떠나고서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걸음소리가 사라졌을 무렵 요한이 목소리를 내자 문이 열리며 카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요. 저런 걸 흘릴 정도로 심술궂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 쪽으로 향한다.

   

   “제가 드린 반지는 어떻습니까?”

   “잃어버렸어요. 어디 길가에 떨어트린 것 같은데 찾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미리 정해둔 암호문을 나눔에 따라 요한의 얼굴에서 느긋함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엄격함이 대신했다.

   

   “교회의 동향에 대해 들으러 오신 것이죠?”

   “맞아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교님과 교차 검증을 하는 게 정확할 테니까.”

   “이해했습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아직까지 주신 교회가 버로우 영지를 구원한 이를 찾고 있단 사실입니다.”

   

   당시 버로우 영지를 방문했던 심문관은 영지 전체를 휘감고 있던 주신의 신성을 눈에 새겼다.

   

   그렇기에 예술 교단의 사도가 이 곳을 구원했다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는 예술 교단의 사도가 벌인 위업을 칭송하면서 뒤로는 진정 버로우 영지를 구원한 이가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서 눈을 붉혔다.

   

   “다만 그럴 듯한 단서는 손에 넣지 못한 듯 하더군요.”

   

   주신 교회의 사람들이 공식적인 루트로 버로우 영지를 방문했을 때엔 이미 루시를 비롯한 일행의 흔적이 지워진 상태였다.

   

   교회의 권위가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그 곳에 소속된 이들이 필사적으로 구원자를 찾아헤맨다 한들 그럴 듯한 무언가를 발견할 순 없었다.

   

   “그래서 심증 쪽으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쪽도 성과가 그리 좋진 못합니다.”

   “주교님과 성녀님은 의심받지 않고 계십니까?”

   “알른 영애의 메이스와 관련된 사안으로 아르테아 영지에 머무르다 복귀한 걸로 되어있으니까요. 뭣보다 교회는 아직 알른 영애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제가 파악한 것과 별 다를 거 없네요. 다행이에요.”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주신의 사랑을 받는 분이 그를 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인데.”

   

   차를 타던 요한은 입맛이 쓴 것을 느끼고 찬장에서 각설탕이 든 통을 꺼냈다.

   

   “단 걸 좋아하십니까?”

   “그럭저럭요.”

   “그럼 두 개만 집어넣겠습니다.”

   “예. 그거 좋네요.”

   

   *

   

   잔뜩 뜨거워졌던 페이비의 얼굴은 소울아카데미 근처에 도달해서야 겨우 본래의 하얌을 되찾았다.

   

   하아아.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는데 예전의 엄하시던 요한 주교님이 생각나서 무심코 입밖으로 내어버렸어요.

   

   …비밀로 해주시겠죠? 요한 주교님께서 영애께 발설하지 않으시겠죠? 그쵸?

   

   영애님께서 절 특별하게 여겨주시길 바란다는 이 욕망을 아셨다간 전 진짜 부끄러워서 죽어버릴거에요!

   

   “성녀님!”

   “…네헷?!”

   

   잡념의 한 가운데에서 고뇌하던 페이비는 누군가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답하다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성녀님께서 무언가 고민하고 계시는데 제가 방해를!”

   “아뇨. 괜찮습니다. 저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광장에 올라온 공지 보셨나요?”

   “아뇨. 오늘 일이 있어 바깥에 다녀왔거든요.”

   

   페이비가 고개를 내젓자 여학생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게 이번 던전학 시험을 전학년이 같은 던전으로 수행한다더라고요!”

   “…네? 그게 정말인가요?”

   “네! 광장에 가보시면 자세한 사안을 알 수 있을 거에요!”

   

   페이비는 여학생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후 광장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겨울의 이른 밤이 찾아오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지를 살피고 있었다.

   

   괜히 저 분들 사이를 파고들다간 민폐가 될 테니 시력을 강화시켜 내용을 확인할까요.

   

   광장 한 가운데에 걸린 공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번 던전학 시험이 기말고사 기간 내내 이어질 거란 것. 도전횟수가 무한하다는 것.

   

   파티의 구성은 자율적으로 해도 괜찮다는 것.

   

   던전의 근간은 같지만 학년에 따라 다른 부분이 있을 거란 것.

   

   이외에도 여러 사안이 거기에 적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건 던전 공략의 보상에 관한 부분이었다.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직접 제작한 장신구?”

   

   페이비는 예술 교단에서 만들고 축복한 장신구가 얼마의 가격에 유통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주교급이 만든 물건도 부르는 게 값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인데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직접 제작하신 물건이라면.

   

   큰일이 났군요.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장신구를 내어주지 않는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던전의 보상으로 자신의 장신구를 제공해 주었다는 건 분명 영애님께서 부탁하셨기에 나온 결과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이런 데에 자신의 장신구가 걸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까.

   

   즉 영애님이 스스로가 만든 던전을 사도께서 직접 만든 장신구가 보상으로 걸려야 할만큼 까다로운 곳이라 판단내렸다는 것이고.

   

   평범한 이들과는 다소 다른 기준을 지닌 영애님이 그렇게 판단내렸다는 건.

   

   완성된 던전이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하는 수준의 마경이라는 것.

   

   …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로 한 분들을 만나러 가야겠네요.

   

   빨리 논의를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분명 수련장에서 합을 맞추고 계시겠죠?

   

   페이비의 추측은 옳았다.

   

   아서와 조이, 페이비. 이 세 사람은 여느 때처럼 훈련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 한 가지 다른 것은 그 곳에 불청객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동생아.”

   

   세실 솔라딘.

   

   솔라딘 왕국의 2왕자가 아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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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님! 3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푸하핳♡ 돈을 주면서 칭찬해주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
이 소설이 안 올라오면 어쩌나 안절부절하는 허~접♡주제에 건방지긴♡
뭐♡ 그래도 준 거니까 좋은 곳에 써주도록 할게 허♡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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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을 하면서 스스로 허접독자♡라고 그러다니♡
완전 비굴해♡ 자존감 바닥♡ 너무 한심해서 오히려 웃길 지경이야♡
자존감을 좀 가지는 게 어때?♡ 그래봐야 허접인 건 똑같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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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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