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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1

   아서와의 대화를 마치고, 크라슈는 바로 사자단 훈련장을 찾아갔다.

   걷는 내내 크라슈의 얼굴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아서와 나눈 대화가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아서와도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던 시간선이 있었다.

   그 생각이 묘하게 크라슈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 하여튼 회귀자란 것들은 죄다 우울증에 걸리지 못해서 안달이구나. ]

     

   그런 상념을 깬 건 크림슨가든이었다.

     

   크림슨가든은 회귀에 관해 늘 질린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회귀에 질린 반응을 보인 이유에 관해 크라슈는 알지 못했다.

     

   “크림슨가든, 너 다른 회귀자를 만난 적 있는 거냐?”

     

   크라슈의 질문에 크림슨가든은 잠시 침묵했다.

     

   [ 있었다. ]

     

   그리고 의미심장한 대답이 돌아왔다.

     

   “있었다는 건.”

   [ 멸망하기 전 내가 살던 세계에 있었다는 소리다. ]

     

   크라슈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크라슈의 시선이 바깥 창문에 닿았다.

     

   거기에는 검은 까마귀 하나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크림슨가든의 까마귀였다.

     

   “그 회귀자는 지금은 없다는 말이냐.”

   [ 그래, 놈은 지금도 이미 멸망해버린 세상을 막고자 자신의 회귀로 떠났으니까. ]

     

   크라슈의 얼굴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크림슨가든에게서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 마치, 우리는 어차피 다시 보게 될 거라며 일말의 걱정 없이 떠나더군. ]

     

   크림슨가든의 세계에서 회귀한 이는 분명 또다시 크림슨가든과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내팽개쳐 쳐진 크림슨가든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어떠한 일을 겪고, 함께 성장했다 한들.

   회귀자에게는 그저 한 회차에 속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회귀자는 떠났다.

   크림슨가든의 세상은 멸망했다.

     

   [ 멸망한 세계에 시체 한 구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난 모습은 다시금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한 광경이었지. ]

     

   그녀의 앞에 남은 것은 회귀자의 껍데기 하나뿐이었다.

     

   회귀자가 떠나고, 남은 멸망 이후의 세계에 그녀는 그렇게 남겨졌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회귀를 한 지조차 의심스럽군. ]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시체 하나뿐.

   회귀하러 떠난 회귀자가 정말로 갔을지 안 갔을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 멸망을 막았을지, 아니면 여전히 회귀 속에 갇힌 채 빙글빙글 도는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 ]

     

   크림슨가든에는 멸망했을 뿐인 세계를 지키기 위해.

   회귀자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었다.

     

   “……크림슨가든, 혹시 네가 다른 용왕족과 달리 영생을 버리고 싶게 된 계기도 회귀자 때문이냐.”

     

   회귀자는 다시 만나자고 떠났으나 크림슨가든은 영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현실은 크림슨가든에게 상상 이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 ……모르겠다. ]

     

   크림슨가든은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그저, 막연히 영생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을 뿐이다. ]

     

   푸드덕-

     

   창문 밖에 있던 까마귀가 거친 날갯짓과 함께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푸른 하늘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까마귀는 모든 상념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 불멸은 내 손으로 가져가 준다.”

     

   처음 약속한 대로.

   그녀의 불멸을 반드시 가져가 주겠다고 크라슈는 선언했다.

     

   [ 아직 멀었다. ]

     

   크림슨가든은 덤덤히 말을 던질 뿐이었다.

   오늘따라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한 그녀를 보며 크라슈는 말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 * *

     

     

   사자단의 훈련장.

     

   그곳에 도착한 크라슈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바다 빛 머리칼의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의 옆에는 호위인 세라 베텔라가 함께 서 있었다.

     

   때마침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호박색의 눈동자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보는 크라슈를 향해 잔망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에파니아 제국의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였다.

     

   “낭군님, 오랜만이네.”

   “그 호칭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처음 몇 번 장난으로 부르더니.

   이제는 입에 완전히 붙어 버린 듯 그녀는 툭하면 저 호칭을 사용했다.

     

   “언제까지든 사용할 작정이지. 제국과 스타론이 인정한 약혼 사이지 않더냐.”

   “그거 이미 철 지난 이야기야.”

   “아쉽게도 현재 진행형인 게다.”

     

   시즐리는 도망갈 방법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국이나 스타론이나 이 일을 물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참에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두 국가 사이를 최대한 완화 시켜 보려는 거겠지.”

     

   크라슈와 시즐리가 약혼하고 관계를 이어 나간다면 두 국가 사이에 전쟁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크라슈에게 있어서 제국이 스타론을 향해 창을 겨누는 일 자체를 지울 수 있다.

   그것만 봐도 엄청난 장점이었다.

     

   “하덴하르츠 아이에게는 미안하게 됐구나. 본의 아니게 약혼자 자리를 뺏게 되었어.”

     

   시즐리도 이 부분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했다.

   시즐리라도 박힌 돌을 빼는 역할을 원하지 않았다.

     

   “괜찮아. 올해 결혼할 생각이니까.“

     

   그리고 그런 시즐리를 향해 크라슈는 덤덤하게 폭탄선언을 했다.

   이미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으나 직접 발언할 줄 몰랐던 시즐리는 크라슈를 황당한 얼굴로 보았다.

     

   ”내 앞에서야 그런 말을 해도 상관없다지만 다른 애들 앞에서 하면 그날로 난리가 날 게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연애 관련해서는 꽉 막히다 못해 눈뜬장님인데 어디에 눈치가 있는 게냐.”

     

   시즐리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국에만 들키지 않게 하거라. 제국 쪽 일이 정리되는 대로 신경 쓰지 않게 해줄 테니까.”

   “약혼 건을 무마시킬 수 있단 거냐?”

   “거기는 내 힘 밖의 일이다. 단지, 다른 건 하나 어떻게든 바꿀 수 있겠지.”

     

   시즐리가 손가락 두 개를 쫙 펼쳤다.

   크라슈가 그것을 의문스럽게 바라보자 시즐리의 입가에 장난이 한가득 묻은 웃음이 지어졌다.

     

   “두 번째 부인도 괜찮다는 허락이지.”

     

   부인 자리에서 물러설 생각은 없다, 이 소리였다.

   크라슈는 황당한 얼굴로 시즐리를 보았다.

     

   “너 혹시 나 좋아하냐?”

     

   호위인 세라가 질린 눈으로 크라슈를 봤다.

   그걸 정면에서 묻냐는 의미였다.

     

   시즐리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살짝은 붉어진 볼로 잔잔한 웃음을 띠었다.

     

   “조금은?”

     

   진심인지 아닌지.

   크라슈는 시즐리의 반응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시즐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즐리는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냐? 어린 시절에 나를 팔 바쳐 구해준 것도 그렇고, 최근에도 목숨 바쳐 구해준 것도 그렇고, 소녀라면 한 번쯤 자신을 위해 목숨 받치는 남자를 마음에 품는 법 아니겠느냐.”

   “그런 걸로 사랑에 빠진다면 구급대원은 여자가 끊기지를 않겠는데.”

   “흔히들 하는 생각은 나도 해본다는 소리인 것이다. 무엇보다.”

     

   시즐리가 깡총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이내 크라슈의 앞에 다가오더니 그의 넥타이를 툭하니 잡아당겼다.

   

   

   

   

     

   불시에 당겨진 힘이라 크라슈가 조금 자세를 낮추자 작은 키의 시즐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너와 대화하는 건 재밌으니 말이다. 그 점이 시즐리 포인트 67점이다.“

   “미묘하게 상세한 점수네.”

   ”참고로 100점을 모으면 볼 뽀뽀를 해줄 테니 열심히 모아보거라.”

   “마이너스로 만드는 방법은 뭔데?”

   “방금 1점 또 올랐다.”

     

   크라슈는 볼을 반드시 사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본론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즐리도 이미 예상한 부분이었다.

     

   “언니에 관한 이야기지.”

     

   백양단을 해체 시키고, 제국으로 돌아가 버린 시그린 에파니아.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크라슈는 하고 싶었다.

     

   “시그린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

     

   시그린은 현재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

     

   아서를 잃고, 스스로 계획한 일들이 번번이 실패를 맛본 후.

   어쩌면 회귀했을지도 모를 저주받이가 자기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상황에 그녀의 정신은 붕괴했다.

     

   그런 그녀가 앞으로 무슨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만큼.

   크라슈는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만 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

     

   그러자 시즐리는 무척이나 별거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에 틀어박혔다고?”

   “그래, 말 그대로 틀어박혔다. 세상에 들리는 귀를 모조리 닫고,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크라슈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시그린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해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는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제국을 또다시 들리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서 녀석이 직접 시그린이 멸망의 원인 중 하나라 하기도 했으니.’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겠지.

     

   “알았어. 그쪽은 앞으로도 주의 깊게 봐줘. 뭔 일 생기면 바로 말해주고.”

   “어려운 거 없는 이야기이지.“

     

   크라슈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훈련장 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한참 훈련을 진행 중인 이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당연히 비앙카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성숙해져 어른의 티가 나고 있는 비앙카는 훈련에 깊게 집중 중이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훈련인지 아는 만큼 크라슈는 미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분명 다음에 만날 때는 또다시 더 강해져 있을 테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

     

   크라슈가 병상에 실려 온 후 잠깐 보긴 했으나.

   몸을 회복해야 했던 만큼 길게는 이야기하지 못했었다.

     

   ”말 걸지 그러더냐. 좋아할 텐데.”

     

   그러자 시즐리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크라슈는 곧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 있어. 어쩌면 꽤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

     

   훈련 중이 아니었다면 한마디 정도는 걸어 봤겠으나 저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구태여, 말 걸지 않기로 했다.

     

   “올해 결혼하겠다고 해놓고, 오래 걸려서 어쩌잔 게냐.”

   “그건 어떻게든 시간 낼 거야. 그러니 괜히 나왔다는 말은 하지 마.”

   “시답잖은 녀석 같으니.”

     

   크라슈는 시즐리에게 손을 한차례 흔들어주고는 그만 훈련장을 나왔다.

     

   다음으로 향해야 할 곳은 총장실로 향할 생각이었다.

     

   ‘창제무신.’

     

   곧 있을 익시온과의 대립을 위해 크라슈는 그 힘을 반드시 익혀야만 했다.

     

   “누나 얼굴도 안 보고 가는 거니.”

     

   그때, 크라슈는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크라슈와 똑 닮은 검푸른 머리칼을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샬롯 발하임.

     

   크라슈의 누이 되는 사람이었다.

     

   “누님.”

     

   샬롯은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와 크라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바빠 보이니 더 붙잡지는 않겠지만, 한 번씩은 들르렴. 차 한잔 정도는 해도 괜찮으니까.”

     

   샬롯은 그 말만 남기고, 유유히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마이페이스 적인 그녀다웠다.

     

   ‘더 강해졌군.’

     

   샬롯이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도 더 강해졌음을 느낀 크라슈는 피식 웃었다.

   다들 여러모로 한창 강해질 시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창공의 세대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그것도 크라슈라는 계기로 인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게 말이다.

     

   ‘멸망을 대비할 수 있다면 뭐든 좋겠지.’

     

   크라슈가 발걸음을 떼었다.

   창공의 세대가 강해진다면 자신도 그 앞에 서기 위해 강해진다.

     

   

   오직 한 목표를 위해 크라슈는 오늘도 나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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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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