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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태어난 장소는 해안가 천막. 나고 자란 곳은 컨테이너.

       

       레니냐의 유년기를 요약하자면 그러했다.

       

       그녀가 세상을 인지할 무렵, 그녀의 부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일찍이 고아가 된 자신을 길러주던 사람은 외가 친척이었다.

       

       – 레니냐, 이 세상은 썩었다.

       

       자신의 삼촌은 어릴 적부터 금안족이 겪는 차별을 이야기했다.

       

       – 이 나라, 카우렐리아엔 지배 계급이 다 해 먹고 있다. 로스차일드, 피어바인, 뭐 이런 녀석들이지. 이런 성씨를 보면 항상 경계부터 해야 한단다.

       

       레니냐는 외삼촌의 말에 반만 동의했다. 그런 성씨를 지닌 이들이 아니더라도 금안족을 차별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무렵, 카우렐리아는 이미 민주화된 이후였다. 공식적으로 신분이나 계급이라는 제도가 없었다.

       

       노력한 만큼 성공한다. 그리 생각했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던 레니냐는 어린 나이에 쓰라린 현실을 맛보았다.

       

       꼬깃한 지폐 한 장을 들고 빵가게에 가면 항상 유통기한 지난 것을 받았고, 꽃가게에 가면 장미의 가격이 3할 정도 올라가 있었으니까.

       

       – 그거? 다 금안족 차별이라니까.

       

       제도적 차별이 사라져도, 관습적 차별은 남아있었다. 많은 금안족이 여전히 가난했다. 대다수의 직업이 마법을 쓸 줄 알아야 했던 까닭이다.

       

       마도에 어두운 금안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순노동이 전부였다.

       

       그래서 했다. 단순노동.

       

       이유?

       

       – 잘 살고 싶으면 아카데미를 가든지.

       

       아카데미 학비를 벌기 위해서.

       

       명문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된다더라. 그런 소문을 믿고 억척같이 살았다.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였다. 하루 네다섯 시간만 자며 주경야독했다.

       

       – 너 그러다가 몸 망가져.

       

       괜찮다. 자신의 몸은 튼튼해서, 쉽게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정신까지 마모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루 일이 끝나고 나면 레니냐는 해안가에 밀려오는 미역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벌어들인 일당은 입에 풀칠하고 살 수준이었고, 친척까지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차별받는 삶은 고달프다. 그래서 성공을 원했다.

       

       레니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었다. 나쁜 사람도 친절하게 대해 주면 변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다. 자신보다 모자라든, 풍족하든. 손에 재물이 있다면 타인에게 나누어 준다. 나 하나, 너 하나.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으며 다 함께 웃기를 바랐다.

       

       소녀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싶은 이유는 명료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그러려면 우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일리야드의 식구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떻게든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사회자 배려 전형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어쨌든. 명문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새끼들, 공부 못하는 것 같지 않아?

       – 그러게. 우리 학교에서 좀 꺼졌으면.

       

       분명, 달라지지 말아야 할 텐데.

       

       – 야, 혼자선 마법도 못 쓰면서 이론서는 왜 보고 있냐?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나서도 세상은 평등하지 못했다.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부잣집 자제들이 틈만 나면 시비를 걸었다. 그때마다 레니냐는 사탕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되받아쳤다.

       

       별사탕을 준 이유는 단순했다.

       

       졸업하면 다 같은 동기니까. 동료니까. 삼촌이 이르길, ‘동무’라는 존재가 될 테니까.

       

       새침한 기득권 자제들도 친절로 다가가면 될 줄 알았다. 바뀔 줄 알았다. 언젠가 친해지고, 그들의 카르텔에 들어가게 될 줄로만 알았다. 

       

       – 뭐야, 이거. 미친년 아냐?

       

       결과는 참혹했다.

       

       외톨이.

       

       “…….”

       

       1학년. 레니냐는 MT도 가지 못한 채 혼자가 되었다.

       

       이유는? 금안족이라서. 일리야드에 입학할 수준이 아닌데, 뒷구멍 전형으로 입학해서. 

       

       심지어 자신에게 모질게 구는 애들에게 별사탕을 권유하는, 정신 나간 년이라서.

       

       ‘괜찮아. 1등으로 졸업하면 모두가 알아봐 주겠지.’

       

       이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나 깨나 학업에만 몰두했다.

       

       성과는 있었다. 첫 시험에서 필기 1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런 다음, 기말 실기평가에선 마력초를 물어서 깎인 점수를 제외하고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금안족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지닌 교수들도 평가 기준을 훼손하거나 조작할 수는 없었다. 레니냐는 그들 눈에도 뛰어난 학생이었다.

       

       1학기 종강총회 직후. 레니냐는 총장실로 불려갔다. 거기서 총장님께 상패도 받고, 장학금도 탔다. 

       

       ‘이것 봐. 하면 되잖아.’

       

       자신감이 붙었다. 카우렐리아가 실력주의 국가라는 걸 체감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여름이 가고 날씨가 선선해질 무렵. 틸레트에서 교환학생이 왔다.

       

       레니냐는 그 시절의 추억을 좋게 생각한다. 로테 살리에르라는 아이를 만났으니까. 그 친구는 자신이 금안족이라고 해서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하지 않았다.

       

       – 너 닮은 아이를 알아. 우리 학교 1등이거든.

       – 이름이 뭔데?

       – 에테르.

       

       ‘에테르’라.

       

       금안족 고어 중에 그런 명사가 있다.

       

       ‘빛을 내려주는 자’라는 뜻이 담긴 단어였다.

       

       ‘에테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생이라니. 심지어 학기 1등인 것까지 똑같다.

       

       ‘한번 만나보고 싶네.’

       

       그 소원은 머지않아 이루어졌다.

       

       동등한 학생이 아닌, 학생과 교수의 관계로.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교수가, 그 에테르였을 줄이야.

       

       그 뒤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에테르가 사실은 ‘사천’이라고 불리는 마왕군의 최고 간부였고, 엘랑카야 북부 지대의 금안족은 절대다수가 마왕군에 속해 있었으며, 이들은 전부 ‘철화의 저주’인가 뭔가를 받아서 몸이 반쯤 기계가 되어 있었다는 등등. 믿지 못할 여러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복잡한 일이 얽히고설켜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레니냐가 보기에 에테르는 선한 존재였는데.

       

       상념에서 빠져나온 레니냐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선생님, 사탕 드실래요?”

       “어? 음. 고맙다.”

       

       신화의 시대부터 시작해서 천 년을 살았다고 한다. 겉보기 나이는 비슷해도, 존댓말을 하는 건 당연하다.

       

       에테르는 레니냐가 준 별사탕을 물고는 속을 다스렸다.

       

       “버멜과는 잘 이야기했니?”

       “네. 해안의 마왕군을 몰아내려면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레니냐는 버멜과 대화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버멜 호르데. 이름만 알고 지내던 학생. 그런 엘프가, 에테르 선생님과 틸레트 동기라는 걸 알았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선생님이 뱃멀미를 하는 것 같으니, 가서 보살펴 달라고 했었지.’

       

       그만큼 신경을 쓸 정도였다. 틀림없이 각별한 사이이리라. 레니냐는 눈치껏 행동하자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니냐가 준 박하 캔디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에테르는 숨을 고루 쉬며 진정하는 중이었다.

       

       레니냐의 시선이 흘끗, 하고 에테르를 향했다.

       

       “다크서클이 여전히 심하시네요.”

       “잠을 하도 못 자서 그래.”

       

       ‘거짓말.’

       

       저 눈그늘은 자신의 집에서 농성을 벌일 무렵부터 아주 진했다. 그때 에테르는 하루 여덟 시간 숙면을 취하며 지냈었고.

       

       필시 불면증 따위가 아닌, 다른 병이 있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눈앞으로 마력초 한 개비가 내밀어졌다.

       

       “한 대 피울래?”

       “……고맙, 습니다.”

        

       입에 연초를 물었다. 

       

       쌉싸름한 맛이 났다. 푹 끓인 허브처럼 은은하고 감질나는 맛이었다.

       

       겉면에 말린 종이 필름에는 ‘골든슈타인’이라 쓰여있었다. 멋들어진 필기체였다.

       

       ‘이거, 비싼 거잖아.’

       

       태어나서 이런 마력초는 피워 본 적이 없다.

       

       어딘가 미묘한 감각이 들었다.

       

       ‘이 선생님… 생각해 보니까 주면 주는 대로 돌려주시려고 하지.’

       

       에테르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기브 엔 테이크를 시전했다. 별사탕을 받으면 마력초를 주고, 식사를 대접하면 디저트를 사다 주었다. 심지어 연구실을 청소하면 그것까지 빠지지 않고 일당을 계산해서 준다.

       

       마치 빚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 같았다.

       

       언젠가부터 레니냐는 깨닫고 말았다.

       

       ‘좋은데, 이상하게 답답하단 말이야.’

       

       레니냐 자신은 무조건 나누어 주는 성격이다. 반면에, 에테르는 나눔을 받으면 최대한 돌려주려고 하는 성격이다.

       

       어떻게 보면 거울 같은 둘이었다. 비슷하면서도, 좌우 반전이 되어 살짝 달라진 느낌. 수업 시간에 배운 ‘패리티 붕괴’ 같았다.

       

       “…….”

       

       레니냐는 연기를 머금은 채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원자폭탄으로 죽은 엘프들을 슬퍼하는 에테르 선생님. 그런데도 여전히 견제할 생각으로 가득한 엘프들.

       

       지난 며칠 동안의 기억이 영화 필름처럼 흘러간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눈빛이 우수에 젖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선생님.”

       

       궁금한 게 생긴 레니냐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성선설을 믿으시나요, 성악설을 믿으시나요?”

       “둘 다 안 믿는다.”

       

       즉답이었다.

       

       “왜요?”

       “양쪽 모두 표본을 알고 있거든.”

       

       죽더라도 신뢰를 유지하는 천사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틈만 나면 각 재고 뒤통수치려는 천하의 쓰레기들도 있다.

       

       그런데 전자인 사람이 다른 이에겐 후자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후자가 전자처럼 변할 수도 있고.

       

       1천 년 선배…. 아니, 조상님 뻘 되는 분의 인생관이었다.

       

       “선과 악은 모호한 개념이지.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디폴트도 모조리 달라.”

       “…저는, 모두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널 괴롭혔던 리케라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에테르는 마력초를 피우며 레니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딱하지만, 보드라운 손이었다. 냉동실에 들어있었던 치즈 케이크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너처럼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내가 진정성을 보여 주면 상대도 진정성을 보여 줄 거라 생각했지.”

       “…….”

       “어떤 줏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하나야. 손해 보고 살지 않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다 가는 것.”

       

       그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지만.

       

       “선생님 말을 믿었으면 좋겠어. 실천 압축 노하우거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고 하던가.

       

       왜인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았다.

       

       “레니냐.”

       

       “네, 선생님.”

       “버멜이 뭐라고 했니?”

       “섬에 도착하면 스태프를 다루는 연습만 계속하라고 했어요.”

       

       에테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 네 수련을 도와줄 친구가 있을 거다.”

       

       

       **

       

       

       섬에 도착한 레니냐를 맞이한 건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였다.

       

       나풀거리는 검은색 드레스에, 포도알처럼 동글동글한 두상을 지닌 여자아이.

       

       레니냐는 소녀를 만나자마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같은 금안족이었으니까.

       

       “네가 우리 언니 후계자니?”

       “……뭐?”

       

       소녀는 대뜸 그런 말을 꺼냈다.

       

       후계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흐음, 실물로 보니 재미있게 생기긴 했네. 범상치 않은 오오라가 느껴져.”

       “……?”

       “우리 언니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이거, 마왕군에서 착실하게 있었으면 사천 정도는 거저먹었겠어.”

       

       첫 만남부터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소녀.

       

       그런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남색 머리 소녀는 레니냐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자신을 관찰했다. 마치 보석을 품평하는 것처럼 유심히 살펴보는 모양새였다.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약간은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콩!

       

       “아야!”

       “로즈마리, 헛소리 말고 얘 지도나 해 줘.”

       

       에테르 선생님이 소녀를 살짝 쥐어박았다. 거기서 레니냐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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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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