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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그 이후에도, 그리폰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었다.

        

       여러 서브컬쳐 속에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네 발 달린 존재는 보통 인간을 등 위에 태우는 것을 꺼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을 태우는 존재는 보통 말이나 소처럼 인간의 ‘가축’이었으니까. 자기 등에 인간을 태운다는 것이 자신을 가축 수준으로 낮추는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간도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 바닥에 엎드린 인간 위에 또 다른 인간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림이 영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리폰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등에 한 번 올라타 보아도 되겠습니까?”하고 묻자, 그리폰은 당연하다는 듯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등에 오르기 쉽게 날개를 내려주었다.

        

       그리폰의 문화가 인간과 달라서 무릎을 꿇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 같다. 그리폰이 나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무릎도 정중하게 굽혔으니까. 완전히 무릎을 꿇는 것은…… 뭐, 필요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사람 앞에서 보여주기는 영 애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 그보다, 초대 팬그리폰은 그리폰 사이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개고생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르긴 몰라도 그리폰 등 위에 타고 날아다녔던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표현한 내용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순순히 자기 등을 내준 그리폰을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폰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폰의 깃털은 얼핏 보면 억세 보여도 손으로 만지면 몹시 부드러웠다. 다만 방수를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깃털을 몇 번 만지면 손에 하얀 가루가 묻어나온다. 사실 손뿐만이 아니라 옷 여기저기에 그 가루가 묻어서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그리폰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빠진 그리폰 깃털을 챙겨서 가져간다고 했던가.

        

       그리폰 깃털을 모아서 굳이 할 것도 없었으므로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 사람들이 그걸 가져다 팔건 말건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 솔직히, 그리폰 같은 맹수를 관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그 정도는 그냥 부수적인 이득으로 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기 등에 올라탔다는 것을 확인하듯 등을 한차례 부드럽게 흔든 그리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몸이 휘청거렸지만, 깃털을 꾹 잡고 버텼다.

        

       안 아픈가?

        

       하긴, 내 손으로 이렇게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안 아플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머리카락과는 구조가 다른 모양이다. 빠지는 깃털은 힘으로 뽑았기 때문은 아닐 거다. 그리폰이라도 털갈이 정도는 하겠지.

        

       “자, 그럼—”

        

       내가 그리폰 등 위에 앉은 채 자세를 잡고, 그 다음으로 뭔가 말하려는데, 그리폰이 그대로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펄럭, 하고 거대한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제로백이 5초 미만인 슈퍼카를 타는 것처럼, 그리폰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눈 깜짝할 새였다.

        

       양손으로 깃털을 꽉 잡았다. 위쪽을 향해 솟아오른 그리폰의 등 각도 때문에 엉덩이가 뒤로 쭉 밀려나서 식겁했다. 다행히 그리폰의 날갯죽지에 무릎 부분이 걸려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몸이 위로 붕 떠 올라서 여전히 덜덜 떨렸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한번 식겁했다. 그리폰은 이미 제도 상공 한참 위로 떠 올라 있었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였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니 온도가 아래보다 몇 도는 더 떨어진 것 같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면 오금만 저릴 것 같아 시선을 정면으로 다시 돌렸더니, 그리폰이 내 쪽을 살짝 돌아보고 있었다.

        

       독수리의 얼굴에서 표정을 찾는 것도 조금 우습기는 한데, 기분 탓인지 그 얼굴은 ‘훗, 나 어때?’하는 것 같았다.

        

       “…….”

        

       아, 알겠다.

        

       나를 순순히 등에 태운 것은, 나를 놀리거나 아니면 자기 능력을 뽐내고 싶어서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둘 다거나.

        

       이 상황에서 괜히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 지는 것이다.

        

       나는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으니 무표정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나름대로 표정 관리하는 법을 익혀왔다. 태연한 척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습니까?”

        

       내 질문에,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 모양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도 좋습니다. 저도 따라갈 테니.”

        

       그야 여기서 내리면 곧장 아래로 떨어져 죽는 길뿐이니 당연히 따라가야겠지만.

        

       그렇다고 데려다 달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그리폰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날기 시작했다. 상승하던 것 이상으로 빠른 속도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리폰이 사실 일정한 영역을 거점으로 두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여행하기에 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글을 써두기도 했던데, 그게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황궁이었다.

        

       정확히는, 그리폰이 차지하고 있는 황궁의 뜰 중 하나.

        

       내 말을 들은 그리폰은 전속력으로 제도 위를 몇 바퀴 돌았다. 나는 매달려있는데 정신이 팔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정황상 제도 위를 크게 몇 바퀴 돈 모양이다. 날아다닌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으므로 제도 전체를 훑은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다시 착륙한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니고 황궁의 안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어 다시 땅에 내려서서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전속력으로 날아다녔다는 것이 거짓말 같게, 그리폰은 평소의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조금 태도가 달랐다고 해야 할까.

        

       내가 사람의 눈만 보고 감정을 맞출 만큼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분위기는 읽을 줄 안다.

        

       그리고 그런 내 감각으로 봤을 때 저 그리폰이 짓고 있는 표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조금 전, 저 하늘 위에서 나를 돌아보는 그리폰에게 내가 했던 말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였다.

        

       그리고 그리폰은 잠시 고민하듯 제도 위를 몇 바퀴 돌더니, 자기가 지내고 있는 이곳에 착륙한 것이다.

        

       “이곳이 제일 좋습니까?”

        

       내 말에,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갸웃거림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자기도 자기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런 거겠지.

        

       “…….”

        

       턱에 손을 얹은 채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가본 곳이 별로 없습니까?”

        

       “…….”

        

       내 말에 그리폰은 잠깐 얼어붙었다가 이내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흥.’하는 소리를 냈다.

        

       없는 모양이구만.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지상 최상의 생물이라는 그리폰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서 사육하고 있었던 법국이라던가.

        

       잡았다면 그 그리폰을 대체 어디서 잡았다는 말인가? 어떻게 죽이지 않고 생포해 마법을 걸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루고 있었다는 말인가?

        

       만약 그리폰이 다 자란 다음이었다면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은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습니까?”

        

       “…….”

        

       그리폰은 대답하는 것을 거부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거 생각보다 어린 거 아니야? 실제로는 열 살도 되지 않았다던가.

        

       완전히 새끼였을 때 생포 당했거나, 아니면 우연히 알이라도 발견해 훔쳐 왔거나. 그 과정에서도 물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겠지만, 그리폰을 부릴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닐지 모른다.

        

       물론 그러고도 그리폰을 완전히 조종하는 것은 하지 못해서 다 죽어가는 상태로 만들어놨었지만.

        

       “태어난 곳은 어디입니까?”

        

       “…….”

        

       묵묵부답.

        

       슬슬 얘가 왜 여기 죽치고 앉아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거다. 뭘 알아야 가지.

        

       그리폰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알려진 곳은 꽤 있다. 물론 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인간이 거의 없기도 했고, 그래서 ‘정말로 그곳에 그리폰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그냥 추측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나름대로 증거도 있는 곳이었지만.

        

       하지만 만약 이 그리폰이 애초에 사람의 손에서 자란 그리폰이라면 그 장소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알고 있다고 해서 굳이 거기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을 거다. 애초에 정들 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이 그리폰이 조금 딱하게 느껴졌다.

        

       “그런 겁니까?”

        

       “…….”

        

       나는 그리폰에게 다가가 그 몸에 위로하듯 손을 댔지만—

        

       “겍.”

        

       그리폰의 발에 밀쳐져서 비틀거렸다.

        

       아니, 위로도 온전히 못 받다니, 무슨 사춘기 애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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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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