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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만 해도 이정도로 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헬레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수인 여자애들이 엄청 빨리 자란다고는 들었는데, 이건 솔직히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너, 너 진짜로 루크야?”

    “그래, 나 맞다만.”

    “말도 안돼, 잠깐 못 본 사이에 엄청 자랐잖아!”

    “…….”

     

    루크는 헬레나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너무 빨리 자라기는 했다.

    헌데 이것도 서클 외의 특성이 강해진 반동으로 성장이 억제되어서 이 모양이지, 실제로는 아마 15살의 육신을 지녀야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수인의 성장력으로 대충 얼버무리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루크는 수인의 성장기를 지켜본 경험이 없기에 허용되는 수준의 성장세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반에서 가장 큰 메리의 사례를 보고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어림짐작했을 뿐이니까.

    예르나나 다이튼도 자신의 키에는 별 말이 없었고 말이다.

    그들도 수인의 성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루크가 ‘키메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루크라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라는 식으로 납득해버려서 별 말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아이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특히나 헬레나는 성장기가 늦게 오는 엘프인 탓에 원래부터 키가 작기 때문에 더욱 체감이 되리라.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미 다 보인 마당에 이제와서 폴리모프로 키를 더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헬레나는 루크의 몸을 위 아래로 스윽 살폈다.

    솔직히, 성장기 수인 아이들의 키 성장은 타 종족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는 했다.

    항상 보면, 키가 큰 것이 유리한 농구부나 배구부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다들 수인계통의 아이들이었으니까.

     

    반면 순수 엘프인 시루드와 헬레나는 두배가량 긴 수명 만큼이나 느리게 성장하기 때문에 아카데미는 엘프 아이들에게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헬레나는 궁금증과 질투심을 담아 툭 내뱉듯이 말했다.

     

    “대체 뭘 먹으면 그렇게 커져?”

     

    루크는 그에 능숙하게 답변했다.

     

    “키에는 먹는 것 말고도 규칙적으로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단다. 그러니, 항상 앉아서 공부만 하기보다는 나가서 조깅이라도 하는 편이 좋겠지. 그렇다고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고.”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자신과는 달리 육식을 할 수 없는 엘프에게 식단에 관한 조언을 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엘프식에 관해서는 예르나와 생활하면서 루크도 어느정도 알게 되었지만, 그게 정말 키가 크는 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임상실험의 결과는 약간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예르나는 엘프들 중에서도 키가 작기 때문이다.

    만약 예르나가 선호하는 식단이 ‘키가 크는’ 식단이었다면 예르나의 키는 컸겠지.

    그렇기에 루크는 좀 더 생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답변을 해 주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네.”

    “하하, 그렇겠지.”

     

    원래 세상일이 다 그렇다.

    누구나 다 답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려운 법.

     

    “그나저나, 헬레나. 표정이 그다지 안 좋아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 있느냐?”

    “아니, 별로…….”

     

    루크의 물음에 헬레나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에 담긴 감정에 예민해진 루크는 헬레나의 중얼거림에 담긴 우울한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게 한번 말해보거라. 내가 가능한 도와주지.”

     

    대체 어떤 고민이길래 어린아이가 저렇게 무거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루크는 아이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원래 그런 삶을 살아왔던 루크였으니까, 익숙해졌다고 할 수도 있다.

     

    “…….”

     

    하지만 헬레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혹시 말하기에 곤란한 고민인 것일까?

     

    “그건 혹시 친구에게도 말하기 곤란한 고민인가?”

    “……친구?”

     

    친구라는 말에 헬레나의 반응이 살짝 달라진 것 같아, 루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친구.”

    “…….”

     

    루크의 친구라는 말은 헬레나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우, 우린 정말로 친구야?”

    “당연하지. 헬레나, 네가 내게 말을 건 순간부터, 우린 친구였다.”

     

    헬레나는 생각했다.

    처음에 루크한테 무슨 말을 걸었더라?

    그다지 좋은 소리를 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이 났다.

    그 때는 루크에게 화를 내고 있었으니까.

     

    “하, 하지만, 나 맨날 너한테 나쁜 말만 했잖아.”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 왜냐면, 말로는 사람의 마음 속을 다 파악할 수 없거든.”

     

    그래, 말은 오해의 씨앗이 된다.

    때로는, 상대가 하는 말보다 상대의 행동에 집중해야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루크가 본 헬레나의 행동은, 그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였다.

    루크는 헬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알아, 네가 참 착한 아이라는 것을.”

    “…….”

     

    그 순간 헬레나는 루크가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이제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는 자신의 친구니까.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이건 알아주거라, 나는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는 걸.”

     

    조금은 오글거릴 지 몰라도, 루크에게는 평범한 말이었다.

    그동안 그가 영웅으로 살면서 몇 명의 아이들을 구하며 저 말을 했겠는가?

    하지만 당연히, 헬레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루, 루크으……. 너어…….”

     

    헬레나는 왠지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어엉…….”

     

    루크는 반사적으로 손수건을 꺼내며 울음을 자극하지 않도록 더욱 부드럽게 말했다.

     

    “헬레나. 갑자기 왜 우는 것이냐? 어서 뚝, 하거라. 그래야 교실에 들어가지.”

     

    그 손길은 마치 어머니같기도 해서, 헬레나는 오히려 더욱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흑, 흐윽, 몰라. 나도 왜, 흑, 우는지…….”

     

    루크는 헬레나의 울음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한두가지의 감정이라면 모를까, 현재 헬레나의 가슴 속에는 온갖 감정이 뒤엉킨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래 감정공감능력이 부족하나 말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정령어 덕분에 그것을 남들 수준으로 파악하는 루크의 역량으로는 단지 기쁨과 서러움 정도만을 겨우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허허, 이를 어쩐다…….”

     

    루크는 곤란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시험날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꼬리라도 만지겠느냐?”

    “……응.”

     

    헬레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으응.”

     

    헬레나는 짧게나마 터트린 울음으로 벌개진 눈가로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꼬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루크는 그렇게 헬레나에게 꼬리를 내어준 채로 앞서걸으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만지고 있으면 안심되는 꼬리 특유의 감촉 탓일까?

    결국 헬레나는 자신의 속에 담고 있던 고민을 술술 드러내었다.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 헬레나는 약간 홀가분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얘기를 루크한테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처음에 시루드를 향한 감정은 일종의 복수심이었다.

    루크를 향한 질투 때문에 루크가 가지고 있는 남자친구를 뺏는다, 나쁜 생각이란 건 알지만…….

    그런데 생각보다 그게 쉬운 게 아니었지.

     

    애초에 남의 애인을 빼앗는다는 건 어지간한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헬레나가 그런 걸 능숙하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루크에게 눈에 띄는 부족한 부분이 없어서 더더욱.

    그러다보니 오히려 먼저 마음을 빼앗긴 쪽은 헬레나였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엘프인 시루드는 괜찮게 생긴 애였고, 심장의 서클 때문에 자기관리도 잘하며, 성적도 종합점수는 물론 자신이 더 높지만 마법만큼은 루크의 바로 다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운동도 꽤나 잘하는 남자애였다.

    그야말로 마이너스요소가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존재.

    사실 시루드는 잘 모르고 있지만, 시루드는 반 내의 여자아이들에게 평판도 꽤 높았다.

    시루드가 여자애들이 부끄럽고 부담스러워서 피한다는 부분만 빼면.

     

    그러니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던 헬레나가 먼저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루크는 중얼거렸다.

    “친하지 않다라…….”

     

    시루드에게 친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니, 그것은 어른이 듣기엔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될지라도 아이들 사이에선 꽤 심각한 문제였다.

    루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헬레나의 고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이번에는, 말이다.

     

    ‘하하, 옛날엔 그걸 잘 모르고 애들끼리 싸우는 걸 중재하다 오히려 더 울린 적도 많았지.’

     

    그것도 이제는 다 지난 일, 지금의 자신은 아마 그 옛날보다는 더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사실 루크가 보기에 시루드와 헬레나는 이미 충분히 친하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시루드 그 아이는 왜 네가 친하지 않다고 했을까. 너희들은 분명 대화도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몰라, 안 친하다고 생각하는 걸 어떡해. 역시 걔는 내가 싫은 걸까?”

    “흐음, 글쎄. 싫었다면 그 아이 성격상 아마 싫어하는 티를 냈겠지.”

     

    시루드에게는 보기보다 직설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 집안사정으로 놀리던 동급생들과 싸우지도 않았겠지.

     

    아마 헬레나가 귀찮고 싫어서 어쩌질 못할 정도였다면, 애초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었을 것이다.

    시루드는 맺고 끊음이 꽤 확실한 아이였으니까.

    그럼 시루드에게도 어느정도 호감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라고, 루크가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하자 헬레나는 금방 납득한 듯 보였다.

     

    “그래……? 하긴, 너는 걔랑 친하니까…….”

     

    루크는 조금 안심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헬레나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이런 여자아이가 일부러 주변에 다가오는데도 호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시루드는 눈치가 별로 없는 걸까?

     

    물론 헬레나의 입장에서 알 수 있는 정보만이 루크에게 전달되어 있었기에 시루드의 눈치없음이 어느정도 강조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심했다.

     

    “흐음.”

     

    루크는 생각했다.

     

    ‘어쩌면 시루드는…….’

     

    “돌려 말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지도.”

     

    인간관계에 서투른 아이가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양상이었다.

    마치 옛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때의 루크도, 확실히 친구라는 확인을 받기 전까지는 친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루크는 이 상황의 해법을 누구보다 정확히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루크는 헬레나에게 답했다.

     

    “헬레나, 너는 아무래도 조금 더 솔직하게 말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솔직……? 솔직하게? 어떻게?”

     

    루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냥 이제 친구하자고 말하면 되지. 겸사겸사,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고.”

     

    루크의 말을 들은 헬레나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화를 내듯 외친다.

     

    “그,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냥 하면 되지, 대체 무슨 문제가 있나.”

    “그, 그치만……. 너무 갑자기잖아!”

    “흐음.”

     

    하긴, 이 시대에서 이런 얘기는 다 적당한 분위기가 있는 법이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드라마 속 이야기들도 그렇고, 예르나와 다이튼의 사례에서도 그렇고…….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그 공식은 딱히 달라지지 않는 모양.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도와주다니……. 어떻게?”

    “그야 간단하지.”

     

    루크는 헬레나에게 자신의 계획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사실은 계획이랄 것도 없는 아주 간단한 계기였지만.

     

    “내가 너희들을 오늘 집으로 초대하겠다. 마침 이사도 했으니 핑계도 좋군. 어때, 이러면 확실히 친해질 수 있겠지?”

    “어……? 진짜?”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만, 헬레나는 혼란스러운 눈빛을 루크에게 보냈다.

     

    루크는 여자인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째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걸까, 하고.

    오히려 이런 때엔 자기가 그 틈을 이용하는 것이 맞지 않나?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붙잡아라, 적어도 헬레나는 루스핀드 가문에서 그렇게 배웠다.

     

    “근데 너, 왜 이렇게 나한테 잘 해줘……?”

     

    과연 루크에겐 어떤 대답이 나올까, 헬레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루크는 잠시간의 지체도 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좋으니까.”

     

    ‘아이들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것이 어찌나 즐거운지.’

    그것은 이 시대의 장점중에 하나였다.

    과거에는 어린아이의 웃음이 너무나도 희귀한 것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희생되고 잊혀져야했던 어린 생명이 너무나 많았다.

     

    그 때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어쩐지 루크의 웃음엔 옅은 회한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묘한 웃음을 바라본 헬레나는 또 한번 감정이 차올랐다.

     

    이제는 감정을 접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를 때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겪어보니 그것은 정말 초월적인 무언가였다.

     

    그런데 루크는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멋진 아이였던 것이다.

    “……흑! 고마, 고마워어……. 흐어엉–!”

     

    또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헬레나의 모습에 루크는 더욱 당황했다.

     

    “으, 으응? 그, 그렇게 좋았느냐? 아, 잠시만! 꼬리에는 닦지 말거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신 루크의 아가페적인 사랑….ㅠㅠ

    근데 헬레나 또 이러면 루크도 이제 꼬리 안 빌려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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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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