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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드라고뉴 강에 존재하는 포구들에는 10월 하순쯤이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길고양이 떼의 출몰이었다.

         

       여름에는 산과 들을 쏘다니며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고 새알을 훔쳐먹던 녀석들이 먹잇감이 떨어져 가는 가을이 되면, 인간들에게 빌붙기 위해 포구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어선이 포구에 선착하면 우르르 몰려와 선원들이 그물에서 골라내는 상품 가치가 없는 생선들을 넙죽넙죽 받아먹곤 했다.

         

       마침 드라고뉴 강의 어부들에게 있어서 가을과 겨울은 근방 주민들이 즐기는 제철 생선들이 많이 잡히는 때였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그들은 길고양이에게 선선히 인심을 베풀었다.

         

       악스빌의 포구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듀이는 고양이들을 좋아했다. 선착장에 배가 새로 온다 싶으면 혹시나 어선인가 싶어 몰려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가 방금 막 하역을 시작한 배에 서둘러 오른 것도 이 배에서 가장 먼저 짐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고양이들은 영리해서 짐을 내리는 모습을 한두 번 보고 어선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발길을 돌렸다.

         

       저 멀리 유람선을 향해 몰려갔다가 허탕을 친 고양이들이 이번에는 여기인가 싶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듀이는 고양이들의 영접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짐 하나를 챙겨서 재빨리 선착장으로 내려섰다. 그러나 그곳에는 기대하고 있던 고양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하하, 그만! 그만, 간지럽다고!”

         

       고양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느 여인이었다. 녀석들은 그녀의 치마 아래를 들락거리면서 그녀의 다리를 핥거나 몸을 비벼대곤 했다. 그때마다 여인은 간지러운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듀이는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제 갓 20살을 넘긴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과 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짧은 원피스에는 하늘거리는 하얀색 프릴이 장식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리본이 달린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은 무대에 오르는 예인들의 것과 유사했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내뿜는 눈부심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듀이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녀에게 말을 건 것을 후회했다. 자신처럼 아무것도 아닌 놈이 그녀같이 아름다운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은 큰 범죄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경멸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쳐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걱정과 달리 그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네. 좋은 아침이죠?”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그녀를 보고 듀이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네. 네. 조, 좋은 아침이네요.”

       “후훗, 어쩐 일이세요? 일하시던 도중 같은데…….”

       “아, 그, 그, 그게……신기해서요.”

       “뭐가 신기한데요?”

         

       듀이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가슴골에 자꾸만 눈이 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고양이들은 보통 생선을 받아먹으러 오는데……먹을 것도 안 주는 사람에게 붙는 건 처음 보네요…….”

       “아, 그래요? 흐음,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그, 글쎄요. 당신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사로잡힌 건 아닌지…….”

         

       듀이는 말을 꺼낸 순간, 입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뭐하냐, 너 인마! 처음 만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놈으로 보이고 싶냐?

         

       하지만 다행히도 여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네? 넵! 마, 맞습니다!”

         

       듀이는 이것이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안 했네요? 제 이름은 안나라고 해요.”

       “제 이름은 듀이입니다.”

       “아하하, 듀이 씨의 말은 고맙지만, 안타깝게도 고양이는 제 외모를 보고 몰려든 게 아니에요. 이제는 마술의 비밀을 공개할 차례네요.”

         

       안나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더니 가방에서 봉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듀이는 그것을 보고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고양들이 좋아하는 개박하 가루가 뿌려진 가다랑어포였다.

         

       두 사람은 함께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니가던 포구의 작업반장이 놀고 있는 듀이에게 질책하기 다가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안나의 미모가 주는 힘에 밀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며 물러났다.

         

       악스빌의 포구에 빌붙어 사는 고양이들은 거의 100여 마리가 되었지만, 안나는 그들 모두에게 나눠줄 가다랑어포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한 봉지를 다 쓰면 가방에서 비슷한 크기의 봉지를 더 꺼냈다.

         

       “어떻게 한 거죠?”

       “제가 익힌 마술이에요.”

       “마술이요? 혹시……곡예단의?”

       “네. 제가 이래 봬도 한 서커스단의 부단장이에요. 이번에 이곳의 놀이마당에서 우리 서커스단이 공연하기로 했어요.”

         

       서커스라는 말에 듀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반년 전, 떠돌이 곡예단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무슨 서커스인데요?”

         

       그의 물음에 안나의 입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장난기 많은 악동의 것과 유사했다.

         

       “괴물 서커스.”

         

       그녀의 말에 가다랑어포를 찢어주던 듀이의 손이 멈췄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고양이들이 안달이 나서 큰 소리로 울 때까지 그는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안나는 그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죠.”

       “아니……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그냥 예전에 안 좋은 일이 생각나서…….”

         

       듀이는 해골 광대 앞에서 놀림감이 되었다가, 적혈귀를 보고 졸도했다가, 거미 여인에게 농락당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그러면 듀이 씨는 저희 공연 안 보러 올 건가요?”

         

       안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얼굴을 확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어, 저, 그, 그게…….”

         

       그가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는 그때, 안나는 그의 등 너머를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어, 그런데 쟤는 왜 저래요? 안 먹고 그냥 가는데요?”

         

       곤란한 화제에서 벗어나 다행이다 싶었던 듀이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봤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암컷 고양이었다. 녀석은 개박하 가다랑어포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그것을 물고 절뚝거리면서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듀이는 녀석을 알아보고 혀를 찼다.

         

       “절뚝이라고 이름 붙은 녀석이에요. 녀석은 새끼가 있어요. 사람들 손에 닿지 않는 포구 사무실 바닥 깊숙한 곳에 보금자리가 있는 것 같던데…….”

         

       그때, 절뚝이 주변으로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각자 받은 가다랑어포를 모두 먹은 녀석들이었다. 절뚝이는 자신을 에워싸는 놈들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사납게 그들을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듀이는 그 광경이 익숙한지 그들 앞으로 다가가서 발로 땅을 두어 번 차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절뚝이의 음식을 노리던 녀석들이 재빨리 흩어졌다. 그 반응으로 보아 절뚝이가 공격 대상이 됐을 때, 그가 구해주는 상황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매번 이렇게 쫓아주고 있으세요?”

       “네. 왠지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듀이는 위협하는 소리를 내느라 절뚝이가 내뱉었던 포들을 다시 손으로 주워 놈의 입에 물려주었다. 놈은 듀이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도 완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그의 손을 노려보다가 재빨리 음식들을 물어 뺏고는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그때, 안나가 고양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녀석에게 팔을 내밀었다.

         

       “자, 절뚝이라고 했지? 잠시 이리 오렴.”

       “안나 씨? 위험해요. 녀석은…….”

         

       듀이는 절뚝이가 그녀의 팔을 할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고양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몸을 움찔움찔 떠는 것으로 보아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뭔가 마법에 걸린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안나는 절뚝이의 다리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녀석을 속박하던 힘을 풀어주었다.

         

       “냐아아앙!”

         

       절뚝이는 사나운 기세로 안나의 팔뚝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팔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듀이가 놀라서 달려왔지만,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것보다 저것 좀 보세요.”

       “아니, 뭘 보라는……어?”

         

       듀이는 안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절뚝이가 네 발로 똑바로 서서 걷고 있었다. 고양이 본인도 자신의 변화에 놀랐는지 좌우로 펄쩍펄쩍 뛰어가며 다리가 멀쩡한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안나는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간단한 마법이에요. 다친 걸 고칠 수 있죠. 제 몸도 보다시피, 짠!”

         

       안나는 피로 얼룩진 팔을 내밀어 보였다.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자기 보금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절뚝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고양이는 머뭇거리는 자세로 자꾸 걸음을 멈춰가며 그녀를 돌아봤다.

         

       듀이는 그 모습을 보고 각오를 다지며 아까 회피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꺼냈다.

         

       “저……보러 가겠습니다. 안나 씨가 하는 공연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요.”

       “아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듀이는 그날 밤, 놀이마당을 찾았다. 반년 전, 이곳에 머물렀던 괴물 서커스단에게 호되게 당했던 그는 지금까지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 괴물 서커스라는 것은 그 자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정확히 말해 그를 끌어당긴 것은 괴물 서커스가 아니라 그곳의 부단장인 안나였지만…….

         

       그는 지난번보다 차분한 자세로 괴물 서커스를 관람했다. 그녀가 진행하는 괴물 서커스는 저번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청혈귀, 지네 영감, 샴쌍둥이 자매, 살덩어리 여자, 그리고 투명 인간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지난번의 괴물 서커스는 괴물들을 위협적이고 강한 존재로 포장했으며 관객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 괴물 서커스는 괴물들을 비천하고 사회에서 낙오된 존재로 묘사했으며, 관객들이 그들을 경멸하고 비웃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듀이는 덕분에 저번처럼 오줌을 싸거나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괴물들이 불쌍해 보여서 마음이 불편했다.

         

       듀이는 그녀를 만나서 솔직한 자신의 감상을 전했다. 가슴 따뜻한 남자임을 어필해 그녀에게 점수를 따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안 웃겼다고요?”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안나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치켜뜬 눈동자에 비친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듀이가 오싹함을 느끼는 순간, 막사 구석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듀이는 그 정체를 확인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절뚝이였다. 녀석은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자기 쪽에서 먼저 다가오곤 했다.

         

       “녀석이 안나 씨를 믿나 봐요. 지금까지는 저한테만 저랬는데……. 아, 저것 좀 보세요. 절뚝이의 새끼들이에요!”

         

       듀이는 엄마 고양이를 따라 들어오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나 자식들을 숨기던 그녀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신뢰를 표현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믿기지 않네요. 이게 다 안나 씨가 절뚝이를 치료해준 덕분이에요.”

       “냐아! 냐아!”

       “이잉!”

         

       새끼 고양이들이 안나를 둘러싸고 병아리처럼 삐악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미 고양이는 그녀가 애들에게도 뭔가 좋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새끼 고양이들을 안아 들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입에는 미소가 한가득 걸려 있었다.

         

       그녀를 따라 싱글벙글 웃던 듀이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상했다. 아까처럼 차갑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나 씨…….”

         

       그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말을 걸려는 그때,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우드득. 그녀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의 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꺾어버렸다.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녀는 어미 고양이나 듀이가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나머지 새끼 고양이들에게도 손을 뻗었다.

         

       우직.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괴력으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의 머리통을 으스러뜨렸다. 뼈와 뇌수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냐아앙!”

         

       콰직.

       그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몸을 빼려는 새끼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땅에 패대기쳤다. 그녀가 쥔 꼬리뼈를 따라 척수가 뽑혀 나왔고 새끼의 몸뚱어리는 바닥에 처박혀 피와 내장을 쏟아냈다.

         

       그녀는 충격으로 굳은 절뚝이와 듀이를 돌아보며 입이 귀에 닿을 정도로 히죽 웃었다.

         

       “듀이 씨 봤어요? 듀이 씨가 저희 쇼가 재미없었다고 해서 좀 더 재밌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때요? 이 정도면 웃기지 않아요? 저 어미 고양이 표정 좀 보세요!”

       “캬아아앙!”

         

       어미 고양이는 핏발 가득한 눈을 부라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안나에게 달려들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녀석이 몸을 날리는 순간, 어떤 손 하나가 고양이의 몸을 낚아챘다. 손의 주인은 입을 쩍 벌리더니 그대로 고양이 한 마리를 삼키고는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조심해야지, 안나 양. 하마터면 다칠 뻔했잖아.”

         

       고양이를 통째로 삼킨 괴인이 씩 미소를 지었다. 듀이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까 쇼를 진행했던 괴물 서커스단의 단장이었다. 땅딸막한 키에 툭 튀어나온 배, 그리고 기묘할 정도로 긴 코에 뾰족한 이빨을 가진 노인이었다.

         

       안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저지른 행위를 비난했다.

         

       “무슨 짓이야. 나 걔 기르려고 했는데!”

       “네 길들이기 실력으로?”

       “사람들이 만족하면 되는 거 아냐? 어때요, 듀이 씨? 재미있지 않았어요?”

       “으아아아아악!”

         

       듀이는 더 이상 그곳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침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서커스단을 떠났다. 괴물 서커스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려고 왔다가 더한 트라우마를 안고 가게 된 그였다.

         

       이고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말했었지 않나. 저런 평범한 인간은 키르쿠스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었단 말이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한숨을 토하는 자신의 부단장을 바라보며 이고르는 작년 9월 알라모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이 지닌 화신의 힘을 포기함으로써 이고르가 가진 화신의 힘을 봉인하려고 했다. 단순한 힘으로는 이고르 쪽이 훨씬 앞서 있어서 그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까지 흡수한 키르쿠스의 눈들이 하나둘 닫혀 가는 것을 느낀 이고르는 그 자리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눈들이 닫혀 가는 현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이익, 원더스타인!”

         

       키르쿠스의 눈이 없으면 그는 더 이상 데볼루트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었다. 괴물 서커스를 통해 데볼루트를 수집하려고 해도, 그것을 지켜볼 키르쿠스의 눈이 있어야 비로소 데볼루트가 생성됐다.

         

       필사적으로 궁리하던 그는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키르쿠스의 눈을 다른 생물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그때, 그로부터 가장 가까이 있던 인간이 바로 안나였다. 그녀는 아까 그와 원더스타인이 벌인 싸움에 휘말렸다가 잔해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엘라에게 고백을 한 덕분에 삶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린 그녀 앞에 이고르가 나타났다.

         

       “반갑군.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안나 양이라고 했던가?”

       “다, 당신은……?”

       “끌끌, 인연의 힘이란 무섭군. 자, 일단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이제 남은 키르쿠스의 눈은 한 쌍. 그는 그것을 서둘러 안나의 두 눈에 집어넣었다.

         

       “아악!”

         

       그것은 그로서도 도박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키르쿠스의 눈을 이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로서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뒤, 남은 데볼루트를 쏟아부어 그녀를 되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한 그녀는 성공적으로 키르쿠스의 눈 역할을 해냈다. 그녀 앞에서 괴물 서커스를 보고 비웃는 사람들의 몸에는 데볼루트가 퍼져나갔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키르쿠스의 눈을 이식받은 그녀는 평범한 공연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됐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비웃고, 깔보는 게 주가 되는 잔인한 유흥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했다. 덕분에 다시 엘라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 명의 곡예사로서 말이다.

         

       “이것 봐, 엘라. 나도 이제 곡예 잘한다?”

         

       그녀는 아까 뽑은 새끼 고양이의 척수 뼈를 조각내어 던졌다. 그것은 천막을 가로지르고 날아가 반대편에 세워둔 과녁에 꽂혔다. 그녀는 거기다 다음 척수 뼈를 던져 정확히 이전의 척수 뼈의 관절 부분에 꽂아 넣었다. 그렇게 그녀는 차례대로 뼈를 날려 꼬리뼈까지 뽑았던 그대로 다시 조립해 보였다.

         

       평론가가 되겠다는 그녀의 꿈은 어디까지나 모자란 재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엘라와 나란히 무대에 설 만한 힘을 얻게 되었다.

         

       “어서 그때가 오면 좋겠다…….”

         

       세계 최고의 곡예사들이 모여 키르쿠스가 만족할 만한 즐거운 공연을 펼치는 날이.

       안나는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 묻은 손을 털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 서커스단의 단장과 부단장 그리고 괴물 단원들이 팔짱을 끼고 일렬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만화 표지 같은…그런 장면이 상상되네요.

    다음 화는 아마 월요일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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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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