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02

       *** ***

       

       흑묘는 진법의 틈새 사이로 사라진 불명의 뒷모습을 머리에 새기며 동굴로 들어갔다.

         

       흑묘는 저택 밖에 나와 있는 평상에서 뒹굴고 있는 당소열을 보면서 눈썹을 까닥였다. 평상시에 가장 늦게 일어나기 일쑤였던 당소열이 어쩐 일로 이 새벽부터 깨어 있을까.

         

       말이라도 한마디 걸기 위해서 다가갔던 흑묘는 당소열의 손이 촉촉하고, 소매가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보고 흑묘는 어떤 직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혹여 알고 있었나요?”

         

       불명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는가?

         

       주어가 생략된 물음이었지만 당소열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언제부터 말입니까?”

         

       “어르신을 만난 첫날.”

         

       당소열의 태연한 대답에 흑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흑묘를 바라보면서 당소열은 씨익 웃었다.

         

       “그러니 천하에서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라 하지 않았느냐.”

         

       당소열은 그 순간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기인이 나타났으니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당소열은 어떻게든 불명을 꿰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당소열의 통찰은 불명에게 거의 통하지 않았다.

         

       불명을 보았을 때 당소열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불명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뭐 하나 알아낼 수 없었지만.

         

       불명이 호천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차고 넘치는 단서이기도 했다.

         

       아무리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그 존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형상. 그 형상은 당가타에서 정철과 마주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그날의 호천안에게 느꼈던 형상이었으니까.

         

       흑묘는 뜻 모를 당소열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고 당소열은 인상을 찡그린 흑묘를 바라보면서 큭큭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어.”

         

       당소열은 호천안의 거대한 재능을 바라보며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아올 줄이야.

         

       “혹시나 어르신에게 뭐 전해 들은 것이라도 있느냐?”

         

       흑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다행이군.”

         

       “그게 다행인가요? 앞으로 마주할 역경을 미리 알고 있어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결말을 알고 있는 전개만큼이나 재미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실수로나마 미래에 대한 일을 들을까 걱정이었거늘 마음을 놓아도 된다니 참으로 다행이지.”

         

       이 사람은 정말이지 재미 하나만을 위해 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안 그래도 불명과의 이별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데 자꾸 혼자서 웃고 있는 당소열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어휴.”

         

       당소열도 당소열 나름대로 불명과의 인연을 소중히 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뒹굴거리는 당소열의 손과 소매가 아직 젖어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끝났군.”

         

       돌연 저택이 사라졌다. 겉껍데기만 남은 잿더미가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저택에서 잠을 자던 이들이 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벌떡 일어났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상황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야…”

         

       “마지막 길, 배웅이라도 하게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가셨군요.”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호천안 역시 저택이 사라진 자리를 물그러미 바라보다가 바닥에 놓여진 참암검을 들어 등에 맸다.

         

       “자, 다들 밥이나 먹자꾸나.”

         

       당소열이 박수를 쳐 일행들의 이목을 모으며 말했다.

         

       “밥 말입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일까. 일행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당소열은 손가락을 뻗었다.

         

       “아….”

         

       그곳에는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는 푸짐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식기 전에 먹죠. 다들 빨리 오세요.”

         

       흑묘는 일행들의 등을 제단 쪽으로 떠밀었다. 불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쪼개가며 차려준 상이었다. 또한 남몰래 일어난 당소열이 불명을 도와 차린 상이기도 했다.

         

       “키야, 어르신께서 마지막에 힘 좀 쓰셨군.”

         

       흑묘는 물 묻은 자국이 남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능청스럽게 오리발을 내미는 당소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맨날 늦잠을 자던 사람이 거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불명과 같이 음식을 만들었다.

         

       불명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 것이 뭐 그리 숨길 일이라고 저러는 것인지 참으로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싶었다.

         

       태음지체 때문에 고생한 흑묘는 애써 당소열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 거문지체를 타고났으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어서 저렇게 되었겠지.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흑묘는 무작정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으려던 당소열의 손등을 꼬집었다.

         

       “끄아악!”

         

       “어르신이 주신 마지막 선물입니다! 다들 자리에 앉고! 조금이라도 경건함을 가지고 불명 어르신의 노고에 감사한 뒤에 먹어야죠!”

         

       결국 불명이 만든 음식을 단 한번도 맛보지 못한 호천안이 날 듯이 달려와 젓가락을 집으려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흑묘는 조용히 젓가락을 놓고 진중한 표정을 짓는 호천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저 선배는 몇십 년이 지나야 불명 어르신 같은 묵직함을 지니게 될까.

         

       “감사합니다. 어르신.”

         

       “훌쩍, 노야.”

         

       “잘 먹고 힘 내겠습니다.”

         

       나름의 제를 마친 일행은 제단 위에 차려진 풍성한 식사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호천안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누구보다도 빠르게 음식을 흡입했다.

         

       진법 안에서 사는 동안 찬밥과 보존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호천안은 억울함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입 안에 느껴지는 맛들은 요리 기술을 대성했음을 알게 해 주는 천상의 맛이었으니까!

         

       “이 맛있는 걸 나 혼자 못 먹었다니! 으아아아아아!!!”

       

       3년간 묵힌 한을 이 자리에서 풀어주겠다는 듯이 전투적으로 수저를 놀리는 호천안을 보며 일행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혁기린을 위한 당과주머니, 그리고 흑묘를 위한 쌀튀김 주머니를 제외한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흡입한 호천안이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감싸쥐고 뒤로 쓰러졌다.

         

       흑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호천안을 보며 불명을 떠올렸다.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눈빛을 한 채, 그저 자신의 한 마디에 마음속에서 넘치는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던 불명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작해야 그런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구원받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던 불명.

         

       흑묘는 생각했다.

         

       무게감 있는 노년의 선배도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지금의 철없는 모습이 선배에게는 가장 잘 어울린다고.

         

       그러니 옆에 철썩 붙어서 잘못된 길로 들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지.

         

       결국 용지맹인지 뭐시긴지 혼자서 해보겠다고 온몸을 비틀다가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역시 선배에게는 동료가 필요해요. 그걸 이 선배는 알까 몰라.’

         

       흑묘는 괜히 호천안이 얄미워져서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잘 먹었나요? 선배?”

         

       “그래.”

       

       호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호천안은 동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여간….마지막에 좀 인사라도 하고 갈 것이지. 

       

       호천안은 불명을 생각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아무리 그래도 그 오랜 시간을 서로 부딪히면서 살았는데 말이야. 마지막에 그냥 이렇게 도망치면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어림도 없지. 

       

       호천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숙제비 2회분, 잘 먹어치웠다.”

         

       *** ***

         

       호천안은 진법 안에서 동굴의 문을 닫았다.

         

       우우우우웅!!

         

       진법이 가동하고 있다는 증거인 석문의 푸른 빛이야 바깥에서만 뿜어지는 것이기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진동으로 인해 진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끝났군.”

         

       호천안이 중얼거렸다. 핵심석은 사용되었고 이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정말로 그날의 뽑기 진법 속에 자신이 구현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핵심석을 하나 더 구한다 한들 그날의 그때로 자신의 복제본을 보내기 위해 개조된 진법은 이미 한계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은 진법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무리한 개조를 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진법이 끊어질 터였다.

         

       만약 성공했다면 그때의 그곳에 이미 구현이 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호천안은 공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 년간 틈틈이 가꾸어 온 곳이지만 이제는 모든 쓸모를 다했다. 호천안은 몸에 밴 습관대로 저택과 저택에 있는 물건을 점검했다.

         

       이제 진법이 가동되었으니 이곳의 물자와 저택을 점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호천안은 평소의 일상 그대로 물자를 점검했다.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그 무의미한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또 과거에 사로잡혀 버릴 테니까.

         

       그 무의미한 짓을 반복하며 호천안은 생각했다.

         

       과거의 자신은 바뀔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메마른 조소를 흘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또 저지른 자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수십 년간 망집을 불태웠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모든 정비가 끝났다. 수십 년간 계획해 온 안배에 맞춘 물자와 시설에 티끌만큼의 문제도 없음을 확인한 호천안은 우뚝 멈추어 섰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호천안은 더 이상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저 언제나와 같이 자신의 실수를 반추하고 후회할 따름이었다.

         

       정철과의 싸움은 길고 치열했다.

         

       정철은 어떻게든 호천안이 성장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 했고 호천안은 어떻게든 그런 정철의 방해를 뚫고 성장해야 했으니까.

         

       모든 여건을 다 갖추었더라도 단시간 내에 정철의 실력을 따라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위에 온갖 방해가 더해지고 그 방해를 떨치기 위해 계속해 수를 짜내야 했으니 어찌 제대로 성장이 이루어졌겠는가.

         

       호천안이 정철을 뛰어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호천안은 진정 자신의 오만을 깨우치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했다. 

       

       정철의 함정에 빠지기도 했고, 기연 사냥 이후 다른 무인들에게 덜미를 잡혀 쫒기기도 했으며, 깨달음을 주어 동료를 늘리려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런 실수가 이어질 때마다 일행의 숫자는 줄어만 갔다.

         

       그런 일행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오만을 깨달은 호천안은 모든 복수를 마칠 수 있었으나.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스러져 있었고.

         

       천하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충돌로 인해 원한의 연쇄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던 사천과 운남.

         

       사천과 운남은 몇 번이나 대규모 충돌을 반복하며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원한의 고리를 쌓아 올려 계속해 피를 피로 씻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소하게 정도를 추구하며 수련을 이어가길 바랐던 사천낭인들은 그 과정 속에서 맥없이 스러졌다.

         

       혼란은 무림에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

         

       유야를 잃은 유경은 분노하여 사파를 쓸어 버리려 했다. 아니 온 무림을 쓸어 버리려 했다.

         

       그 결과 사도련과 관련된 이들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멸문했으나.

         

       이성을 잃은 유경의 행동은 수많은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사도련을 멸문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과 혼란은 황국과 무림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관이 무림에 개입하고 무인이 관의 행사에 개입했다.

         

       병사들이 무기를 든 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고 무림인들은 변방으로 이주하거나 제각기 뭉쳐 새로운 국가의 왕을 자처하며 반역의 기치를 드높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변방은 희생당하거나 황국과 무림에게 이빨을 들이댔다.

         

       정파, 사파, 황국, 변방.

         

       천하는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를 품고 싸우는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 천하의 모습을 본 호천안은 그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호천안의 생을 붙잡은 것은 혁기린의 유언이었다.

         

       오라버니를 부탁한다는 말. 그 한마디가 호천안이 생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어 황국의 혼란을 수습하며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핵심석을 만나 후회를 만회할 기회를 발견했다 여겼고.

         

       오직 그 기회를 개화시키기 위해서 수십 년을 매달렸으며.

         

       드디어 오늘 그 매달림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기에 호천안은 멍하니 있었다. 모든 것을 잃고 그나마 마음속에 남은 후회와 미련조차 그러 모아 모두 불살라버렸으니 이제 정녕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뭐하냐?”

         

       뒤에서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천안은 그 목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중년의 호천안이 서 있었다.

         

       “하이고, 내 이럴 줄 알았다. 배드 엔딩을 본 것 마냥 넋놓고 있을 것 같더니만.”

         

       “허…”

         

       불명의 원본인 호천안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배드 엔딩이라….그래 딱 그 말이 맞았다. 일행은 모두 죽었고, 사천낭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으며, 무림은 엉망이 되었으니까.

         

       노년의 호천안은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일의 얼개가 정확히 어떻게 맞아떨어진 것인지는 노년의 호천안 역시 알 길이 없었지만…

         

       지금 이 호천안이 진법에 의해 구현된 존재라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같은 저택을 그 자리에 똑같이 지은 것일까. 저택 자체는 그대로 있었으나, 바깥에 비치되어 있던 항아리의 배치와 개수가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저택 앞에 못 보던 평상이 생겨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네가 보낸 전령, 불명 어르신에게는 참 신세 많이 졌다. 나를 알뜰살뜰 굴리시고 쏙 사라지셨지.”

         

       성공했다고? 정말로 그때의 그 순간의 뽑기 진법에 개입했다고?

         

       노년의 호천안은 벅차오르는 감동에 목이 메이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게 타버려 재조차 남지 않았다고 여겼던 가슴이 술렁거렸다.

         

       “정녕…”

         

       과거는 바뀌고 흑묘를 구했는가.

         

       너는 너의 오만을 깨우치고 실수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나 대신 죽음을 맞이했던 여일예, 혁기린, 당도연, 당소열은 구할 수 있었는가.

         

       운남과 사천은 어찌 되었는가.

         

       사천낭인들은 그들이 바라는 삶을 그렸는가.

         

       황국은 예정대로 부흥을 맞이했는가.

         

       그리고 너는 지금….행복한가.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지만 노년의 호천안은 수많은 질문들 중 어느 것도 입 바깥으로 내뱉지 못했다.

         

       중년의 호천안이 손을 들어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쪽의 진법이 엉망일 테니까. 나도 두 번 쓰기 위해서 정말 개고생했다 진짜. 그때 숙제비는 왜 두배로 받아가지고…”

         

       노년의 호천안은 툴툴거리는 중년 호천안의 말을 반만 이해했다. 진법의 상태야 누구보다도 노년의 호천안이 잘 알고 있었으나 어째서 진법을 두 번이나 펼쳐야 했을까.

         

       “나도 과거의 나한테 가서 개같이 굴려…아니 깨우쳐 줘야 할 것 아니냐.”

         

       “아…!”

         

       노년의 호천안은 이어지는 중년 호천안의 말에 의문을 말끔히 해소했고, 그와 동시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노년의 호천안이 한 행동을 계승하려 한다는 중년 호천안의 말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성과를 이루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 자신의 안배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두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뜻도 있지. 좋은 눈 두고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가 있나? 금쪽같은 시간 소중히 써야지.”

         

       중년의 호천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노년의 호천안은 저택 안에서 여러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기척을 느낀 호천안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꿈에서나 그리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니 그저 벅차올라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일행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속에 가득 차올랐으나.

         

       호천안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사슬이 호천안의 발을 꽁꽁 옭아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호천안은 이내 발을 움직였다.

         

       보고 싶다.

         

       그저 보고 싶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으니까.

         

       “…아.”

         

       호천안은 저택 안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해주는 일행을 보면서 그저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후로 이어진 미래.

         

       마음속 상상일 뿐이나 그마저도 죄스러워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일행의 미래가 바로 지금 이곳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일행의 미래는 노년의 호천안이 예상한 그대로인 부분도 있었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저 호천안은 일행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뭐 이래저래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은 많았는데…그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괜히 다른 사람 데리고 왔다가 일이 터질까봐 그냥 우리끼리 왔다.”

         

       “그런가…”

         

       “슬슬 갈 시간이로군.”

         

       노년의 호천안은 진법의 흐름이 깨지는 것을 느끼며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두서없이 되뇌었다.

         

       “고맙다. 고맙다. 고마워…”

         

       “네가 보내준 불명 어르신과는 일행들과 함께 좋은 추억 많이 쌓았다. 사실, 나는 별로였…”

         

       투덜거리던 중년의 호천안과 뒤에서 쓴웃음을 짓고 있던 일행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일행과 앉아 대화하던 평상도 돌연 사라졌다.

         

       호천안은 가볍게 착지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상이 사라지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수년간 먹을 수 있는 보존식을 비축해둔 항아리들이 다시 나타났다.

         

       진법이 해제되었다는 증거였다.

         

       불명은 다시 한 번 진법 안을 점검했다. 진법이 풀렸음을 알고 이 진법이 수명을 다했음을 알았으나 그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절차였다.

         

       마지막으로 제단을 살핀 호천안은 한 장의 서신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허허 웃었다. 그야말로 마음을 놓고 웃고 떠들었다고는 하나 기척 하나 느끼지 못했거늘 이리 서신을 남기고 가다니.

         

       “그쪽의 인생도 꽤나 고생길이었던 모양이구나.”

         

       서신에는 큼지막하게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재기(再起).

         

       호천안은 그 두 글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르기를 반복했지만, 호천안은 그저 못 박힌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두 글자만을 바라보다가 서신을 품에 넣었다.

         

       “네 말이 맞다.”

         

       지금까지 혁기린의 유언에 따라 소문을 듣다가 황국에 큰일이 생기면 힘을 보태곤 했던 호천안.

         

       그때마다 혼란한 천하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 광경을 외면하며 황국의 일만을 돕고는 다시 이곳에 처박혀 연구만을 거듭했다.

         

       “지금이라도 내 과오를 씻기 위해 움직여야지.”

         

       지금 천하를 짓뭉개고 불태우는 원한의 수레바퀴는 호천안이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정파, 사파, 황실, 세외…그 외에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를 노리고 피를 피로 씻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까.

         

       무엇 하나 남지 않은 잿더미와 같은 마음으로는 그 수레바퀴를 멈춰 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호천안은 원한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과거에서 온 호천안이 다시 걸으라 했으니까.

         

       다시 걷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마음을 보듬어 주었으니까.

         

       그저 그 행동에 보답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호천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굴을 떠나 천하로 나섰다.

         

       훗날 어느 세계선의 한 무림.

         

       천하를 혼란에 몰아넣은 주범이라 여겨지기도 하며 동시에 천하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이중적인 행보로 인해 호사가들 사이에서 불멸의 떡밥으로 영원히 다루어지게 될 무인.

         

       뇌명존자(雷鳴尊者)의 두 번째 일대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제목 스포가 될까봐 한번도 쓰지 못한

    [미래에서 온 호천안]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했네요.

    불명의 정체부터 미래 호천안이 맞이한 결말과 과정까지도요.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 호천안의 여정은 그 길이 남았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야 작가가 직접 스포할 수는 없으니까요!

    불명의 본체인 노년의 호천안이 맞이한 결말은 호천안이 겪었을 지 모를 if 루트의 한 갈래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현재의 호천안이 앞으로 겪게 될 모험은 노년의 호천안과는 전혀 다른 모험이 될 것입니다.

    무림천하의 고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니 지적해 줄 수 없었던.

    ‘마 고인물이라고 너무 깝치지 마라!’ 라는 충고를 받으며 피튀체조로 굴려진 교훈을 얻었으니까요.

    만약 외전을 쓰게 된다면 미래에서 온 호천안 파트에서 몇 편 뽑을 수 있겠군요.

    군침이 싹 도네.

    오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현재 오전 1시 30분이니 아주 많이 늦어버렸군요. 그래도 6480자의 본문을 읽으시고 화가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에피소드로 찾아뵙겠습니다.

    *
    2/8 03시 깨달음에 대한 가벼운 언급을 추가했습니다.

    제단에서 호천안의 내면 묘사도 살짝 추가했습니다.

    *
    [하늘연달]님께서 [30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보고 눈을 의심한 코인의 갯수…! 300화에 맞추어 300코인을 후원해주셨다니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10코인 후원에도 그저 헤헤거리며 만족하는 소시민인 검은주사위는 감동의 스쿼트 3회를 조졌습니다!

    300회는 커녕 30회도 못하는 저질체력임을 용서하세요.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도둑고양이]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동파육에 만두와 죽엽청에 소면이라. 엄청난 대식이지만 도전해보겠습니다!

    제가 아니라 호천안이 언젠가 할겁니다. 아마도요.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qws2]님께서 [3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300화 기념 후원에 걸맞는 30코인 후원! 늦고 빠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마음 써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