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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왜요 대체??”

         

         조건 반사적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절대 시비가 아니라 강한 악센트로 이유를 되묻는 거랍니다?

         

         내가 ‘시발(Fuck)’이니 ‘염병(Shit)’이니 하는 욕지거리를 사족으로 덧붙이지 않고 참을 수 있던 건, 이 능글맞은 노인과 구면이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헬레나에게 안 들리게 떠들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귀에 들어가면 보나마나 벌써부터 그런 못된 감탄사를 능수능란하게 쓰면 안 된다며 과보호 모드로 돌입할 게 뻔했으니까!

         

         …원래 나이를 합칠 경우 내가 한참 연상이라는 부분은 쏙 빼고 어떻게 연구소에서 태어났다는 부분만 계속 강조하는지 원. 아주 약점을 쥐어 준 꼴이 되었다니까 이게.

         

         헬레나 본인도 어릴 때 인형 대신 가게에 남는 부품으로 호버바이크 타며 자유분방하게 자란 황무지 출신이면서 왜 나는 화초 취급을 하려는 건지….

         

         곰곰이 되짚어보면 나도 의식 회복한지 15분만에 총부터 쥐고, 1시간 후에는 시체로 산을 쌓으면서 광명을 찾아 떠난 불굴의 야전 용사 출신인데? 하.

         

         “왜라니! 아직 소유권이 넘어간 것도 아닐진대, 내가 내 물건 좀 들고 다닐 수도 있지. 커흐흠…!”

         

         “괜히 헛기침하시는 걸 보면… 억지 부린다는 자각은 있으신가 보네요!”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이 급한 메인 이슈는 역시 이 깐깐한 알프레드 노인의 고집이 되시겠다.

         

         총질하거나~ 해킹하거나~ 여지껏 대부분 그런 단순 무식한 방식으로 식비를 충당해온 나지만. 최근 사업 영역을 확장하느라 다른 경험을 해본만큼, 잘 아는 건 아니어도 이런 일의 기본적인 골자 자체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매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헤멧 씨에게 상품의 ‘위탁 판매’를 부탁드렸던 것과 근본적으로 같지 않겠나?

         단지 그 대상이 개인 업자가 아니라, 그걸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는 게 다를 뿐이지.

         

         자, 한 번 차근차근 단계별로 비교해보라.

         

         우선 고객으로부터 물건을 전달받는다는 건 공통 과정.

         심지어 이후 감정 평가를 통해 상품의 품질과 진위 여부를 확정 짓고 판매 계약을 맺는 것까지도 동일.

         

         이제 차이점이라면 헤멧 씨는 직접 판매 계획을 짜고 미팅 약속 등을 잡은 반면, 크라이테리아사는 매일매일 오전 오후 타임 경매를 진행하는 대행 기업이니 기존 고객들에게 일정을 공지하는 걸로 끝마쳤겠고.

         

         …그럼 당연히 계약이 이루어진 순간. 그러니까 실물이 넘어간 시점부턴 위탁 주체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물건을 잘 관리, 보관하는 게 정상이지!

         

         이곳처럼 고가의 상품을 취급하는 곳은 만일을 대비해 보험 같은 것도 다 들어놓을 거 아니야!

         

         근데 떠넘겨 놓으면 알아서 저쪽 책임이 될 골치거리를 왜 굳이 다시 들고나와서 자랑하듯이 휘두르시는 거냐고요. 벌써 이상한 놈들이 꼬이기 시작했잖아.

         

         이런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없다. 아마도.

         그러니 이만 순순히 죄를 실토하라… 라는 느낌으로 팔짱을 끼고 알프레드 씨의 대답을 촉구했는데.

         

         “크흠! 내가 갑자기 노망이 나서 실수한 건 아니고, 경매장 놈들이 영 못미더워서 그랬네. 너무 사근사근한 게 의심돼서! 차라리 어깨가 뻐근한 수고를 좀 들이더라도 자네들이 지켜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아이고….”

         “…단순한 신용 문제라면 어쩔 수 없네요. 최초부터 자산 보호도 포함한 의뢰였으니 편한대로 하시길.”

         

         흰머리가 성성한 그의 수줍은 고백(?)을 듣자마자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파왔다.

         

         어차피 직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상자를 다시 챙겨 나오는 모습을 처음부터 구경했을 헬레나는 더 감추는 것만 없다면 구태여 결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고.

         

         하… 이 편집증 도진 할배가 진짜…!!

         

         보란듯이 금고 째로 옮겨와서 꺼내 줬으니 나중에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이 책임 소재가 완전히 넘어가는 셈인데 일부러 보관 서비스를 마다하셨어?

         

         아니, 실제로 경매장이 비공개로 추가 손님을 받아가며 이중 명단 장난질을 친 건 맞으니까 편집증이 심하다기 보단 감이 좋으신 거라 보는 게 맞긴 하다만.

         

         설마 경매 시작전까지 잠깐 맡겨놓는다고 그새 바꿔치기를 당한다든가, 자기들 부주의로 도난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할 리가 있냐고요.

         

         게다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전액 보상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을 거 아닙니까, 쟤들도 소문나기 싫으면 조용히 회유하던 정식으로 피해보상금을 주던 하겠지!

         

         “어허…! 만약 그런 사고가 생기게 되면 돈은 들어와도 누가 날 멕이려 했는지는 영영 모르게 되어버리지 않나? 차마 억울해서라도 그 꼴은 절대 못 보겠네!”

         

         “갸아아악—! 거 왜 그렇게 자존심이 세요 도대체! 아무리 원금 회수가 주목적이 아닌 건 아까 들었다지만 진짜 그렇게까지?”

         

         “사람이란 게 원래 나이 먹으면 고집만 느는 법일세. 더군다나 이 늙은이가 이걸 요러코롬 끼고 다니면 관심있는 놈들은 더 애간장이 타겠지, 안 그런감?”

         

         이 바닥에선 한 번 시비가 걸렸다면 정말 끝장을 봐야 다신 얕보이지 않다는 것처럼.

         

         아직 정식으로 인사하러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상대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더 긁어서 꼬장을 부려보겠다는 유쾌한 각오를 담아, 우리의 악질 의뢰인께서는 씩 웃어 보이셨다.

         

         …….

         

         그래, 뭐. 본인이 재밌고 행복하시다면 됐다.

         

         이 건물 한복판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어렵고, 누군가 기적적으로 우리의 경호를 뚫고 알프레드 씨를 해친다고 해도 게임 마냥 소유권이 슉 넘어가는 건 아니니 극단적인 수단을 취할 걱정은 적겠지.

         

         하지만 다 좋은데… 이거 하나는 존나 확실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수상쩍은 경로로 얻은 물건 같은 건 아닌 거죠? 아니, 애당초 예술 관련으로 분류되는 골동품이 정말 맞긴 맞아요?”

         

         내가 크레딧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여유분을 빼고는 몽땅 전쟁 물자와 나중에 써먹을 기계 부품류에 쏟아붓는 실용주의적인 사람이기에 더더욱 이해를 못하는 걸 수도 있는데.

         

         보통 부자들이 이상한 취미를 가지거나, 세금 관련 목적으로 이 쪽 분야에 크게 투자한다는 건 들었지만… 관심있는 물건 하나 출품되었다고 다들 부랴부랴 연락 받자마자 회사에서 뛰쳐나온다고?

         

         존나 누가 봐도 더럽게 수상하잖아 이건.

         

         “섣부른 오해는 그만두게! 저기 공업 지대에서 괜찮은 규모의 정밀 공업사를 굴리던 친구의 물건일세. 능력은 나름 있었는데 사업 감각은 영 별로였는지, 개발비에 회사 예산을 몰래 몰래 땡겨쓰다가 결국 부도가 나서 파산 절차에 돌입했고.

         

         내가 빌려줬던 몫으로 ‘정당하게’ 받아온 골동품은 오래된 조각상이라 할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서 꽤 고아한 멋이 있는 녀석이지. 정 못 믿겠으면 아가씨의 언니에게 물어보게! 연식 감정하는 내내 옆에서 다 지켜봤으니.”

         

         “맞아, 꽤 예쁘더라. 저 옛날 작품인데도 요즘 시대 감성이랑 비슷하니까… 그런 부분이 예술적으로 높이 인정받을 것 같은 느낌? 뭐, 나는 그런 걸 사는데 쓸 돈이 있다면 장식용 검을 찾아보겠지만.”

         

         “…오케이, 그렇다면야 뭐.”

         

         망한 기업의 사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옛날 조각상?

         호사가들에게 프리미엄이 붙은 만한 좋은 물건이라면 그렇게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게 납득이 어려운 것도 아닌가.

         

         사실 우다다 열변을 토한 알프레드보다도 헬레나의 담백한 맞장구에 속으로 더 높은 점수를 준 게 맞다.

         

         양파처럼 꼭 한 겹씩 까야 뭔가를 토해내는 그의 이야기-변명-보다는 우리 언니의 한 마디 보증이 더 믿음이 가는 걸 어떡합니까? 안타깝지만 자매 용병을 묶어서 고용한 부작용이라 생각하십쇼 그냥.

         

         “에잉… 알아주었다면 됐네. 그래도 아가씨가 명단을 따로 빼 온 덕분에 할 일은 명확해져서 다행이야.”

         

         “네? 기다리다가 본 경매에 참가하는 것 말고 더 하실 게 있어요?”

         

         우리끼리 실컷 떠드는 와중에도. 사이버웨어로는 참가자 리스트를 끝까지 차분히 다 읽었는지 뻐근한 눈가를 주무른 알프레드 씨가 기세 좋게 위층으로 앞장서서 올라가시길래 얼른 정위치로 돌아가 따라붙었다.

         

         덤으로 입구 근처에서부터 초조하게 알프레드 씨와 상자를 힐끔거리던 거수자들도 야금야금 목적지를 짐작한 것처럼 거리를 좁히며 쫓아왔고.

         

         여타 유력자 손님들이라고 수행인 없이 홀로 온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한두 명.

         

         그나마도 실용성과 외견을 따져서 생체형 안드로이드 시종을 동행한 사람이 제일 합리적이었는데, 남녀 혼성으로도 모자라 종족 혼성 대가대를 이끌고 온 우리 팀의 진행 방향에 알짱거리는 바보는 없었다.

         

         위층, 넓은 홀에 비치된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이쪽을 구경하고 계신 어느 미모의 여성 분을 제외한다면.

         

         “내가 이 조각상을 오늘 팔기로 약조하긴 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옥션 리스트에 올라간 건 아니란 말이지? 허면 내가 이걸 저기 고명한 미술품 수집가이신 에멜다 여사께 가져가서 미리 소개하면 거품 무는 새끼가 분명 있지 않겠나? 그러니 누가 좋아 죽으려 하나 주위를 잘 좀 봐주게.”

         

         제로를 컨트롤하고 있다 믿는 나는 물론 헬레나에게도 살짝 언질을 주며 윙크한 그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훌쩍 소파 앞으로 가서 여인의 손등에 입맞춤을 떨어트렸다.

         

         피부와 신체에 부자연스러운 곡선이나 어색한 윤기는 일체 없음.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 받으시는지, 나나 헬레나와 비슷한 나이대라고 여겼던 그녀가 바로 노인이 찾던 손님이었다.

         

         “마담 에멜다! 이런 좋은 자리에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사실 저번 자선 행사에 참가할까 고민도 했지만… 이 미천한 돈놀이꾼이 끼면 평판에 누가 되실까 봐.”

         

         “어머, 설마요. 저번에 카지노 불심단속 건에 대문짝하게 사진만 안 찍히셨어도 제가 먼저 초대장을 보내 드렸을 거랍니다? 다들 미스터 알프레드의 수완을 질투해서 폄훼하는 면이 있죠.”

         

         “…어흐흠!!”

         

         굉장히 민감하고 무안한 부분을 지적 받았는지, 과장되게 이마의 땀을 닦는 알프레드 씨를 쳐다보며 그녀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에멜다 여사라면… 갑자기 생긴 VIP 명단 말고 제대로 예약을 해 놨던 정상적인 손님 명단에 성함을 올려놓으신 참석객이 되시겠다.

         

         내가 따로 기억하고 있던 건 아닌데, 일부러 찾아볼 필요조차 없이 원래 출품자 및 VIP 자격으로 꼭대기에 이름이 박혀 있으신 분이라 방금 문서 파일을 열자마자 발견했다고.

         

         “아무튼,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늙은이가 주책 맞게 마담의 시간을 좀 빼앗아도 괜찮을런지요?

         

         그래도 썩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

         

         여기까지 와서 거절당하는….

         속되게 표현해 ‘경우가 없다!’ 정의할만한 돌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상정한 그가 옆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형식상의 허가를 구했는데.

         

         “아무리 봐도 캐피탈 소속 직원분들은 아니신 것 같은데…. 이런 아리따운 경호원들을 구하신 인맥을 소개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앉으셔도 좋아요.”

         

         “………저희 경호원들 말입니까?”

         

         왜 갑자기 고혹적으로 입술을 할짝이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칭찬을 엄청 특이하게 하시는 편일지도.

         

         어째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지신 에멜다 여사께서는 팔 생각이 만만한 상품을 보기도 전부터 비매품 쪽에 먼저 눈독을 들이셨으니.

         

         이렇게 지목당한 경우에도 경호원은 그냥 닥치고 있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아니면 딱히 문제없나?

         

         찰나의 순간, 불과 몇 초 사이에 치열한 아이 컨택 및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

         

         헬레나는 나에게 여차하면 자기가 대표로 이야기하겠다는 눈빛을 송신. 음, 확인했다.

         알프레드 씨는 다급하게 헬레나에게 불쾌한 건 아닌지 양해를 구하며 고개를 끄덕. 저쪽도 원만하게 웃어넘기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본 그는… 잠깐 눈을 굴리더니, 무슨 만화 캐릭터처럼 부왁! 식은땀을 뿜어내시며 창백한 안색으로 돌변하셨다.

         

         뭐, 자신 있게 협상 테이블에 나서 놓고 왜 그러세요 갑자기. 난 별로 화가 나진 않았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싸인, 곤란.

    한 번 꼬인 수면과 연재 패턴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또 늦어서 죄송합니다.
    덤으로 3/5 , 3/15 예비군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살…ㄹ려….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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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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