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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이곳의 시간은 현실보다 엄청 빠르게 흘러간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자면, 아마도 바깥에서의 1초가 이곳에는 1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곳에서 며칠 동안 지내더라도, 아마 바깥은 그다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빨리 들어오기를 정말 잘했네.’

     

     만일 5초만 더 늦었더라도, 무능왕은 이미 시체(나흘째)가 되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나리아.”

     “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저도요.”

     푸화ㅡ악.

     

     붉은 피가 튄다.

     수많은 황금의 노예들이 베일 때마다 튀었던, 제로스 바르셀이 그렇게 죽을 때마다 뿌려댔던 거짓된 황금이 아닌 붉은 피가 황금 신전을 붉게 물들인다.

     “크아아악!!”

     아버지는 무능왕을 쉽게 죽이지 않았다.

     

     아주 느긋하게, 아주 천천히.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흙장난하면서 발견한 벌레를 해체하듯, 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가르듯이 아버지는 검을 휘둘렀다.

     “죽을 만큼 아픈가? 그것참, 아쉽군.”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말하면서도 검을 휘두르기를 쉬지 않았다.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추하게 황금을 몸에 뒤집어쓰려고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커헉, 커헉, 허어억…!”

     인간은 고통 속에서 자연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어떠한 방법이든, 무의식적이든 뭐든 어떻게든 고통을 억누르기를 원한다.

     

     무능왕이 지금 자신을 향해 펼치고 있는 마법과 같이, 잘려진 팔을 황금을 이용하여 강제로 붙이려고 하는 것처럼.

     혹은 그렇게 붙였는데도 또다시 아버지에게 팔을 베여, 아예 황금으로 팔을 연성하고 있는 것처럼.

     “나리아.”

     나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복수극을 지켜보며 나리아에게 물었다.

     “이거, 계속 봐도 되는 겁니까?”

     “네.”

     나리아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날을 기다려온 건 국왕 전하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능왕이 괴로워하는 얼굴을 평생 기억하겠다는 듯, 또렷한 눈으로 베이고 썰리는 무능왕을 빤히 바라봤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직접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장 좋은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제일 만족스럽군요.”

     나리아가 옅게 웃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죽여버리고 싶은 분은 오직 한 사람뿐이니까.”

     “예.”

     크림슨 지브롤터.

     오직 아버지만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가장 끔찍한 죽음을 내려줄 수 있다.

     “나리아. 저거, 보이십니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사지가 조금씩 황금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거.”

     “예. 잘 보입니다.”

     손가락이 잘리고, 발목이 잘린다.

     그 광경은 분명 잔인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으나, 이어지는 세인트 지오의 행동을 보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크, 흐히히! 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황금의 기적을 내 몸에, 크어어억!!”

     “벨 곳이 마땅찮아서 아껴서 자르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기고만장해서는 안 되지.”

     세인트 지오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몸을 저며가는 걸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심장부터 찌르고, 목부터 베고. 그런 자비로운 죽음을 선사해서야 되겠느냐, 세인트 지오.”

     “이, 이…!”

     “그건 마지막 순간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아버지가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나쁘게 표현하자면, 아버지가 질릴 때까지.

     “왜 그러나. 죽고 싶다면 스스로 자결하면 될 것을.”

     혹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까지.

     “이익…!”

     무능왕이 몸을 뒤로 날렸다.

     이미 지팡이를 붙잡고 있던 팔은 저기 지팡이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구르고 있고, 황금으로 된 손과 발로 다급하게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걱.

     “크아아악!!”

     아버지는 그대로 도망치는 무능왕의 다리를 베었다.

     한쪽은 황금이고 한쪽은 실제 다리.

     무릎 아래로 둘 다 잘렸지만, 무능왕은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쯧.”

     보는 게 흉할 정도로, 무능왕은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엎어지면서도 두 팔을 이용해 앞으로 포복하듯 기어나가고 잘린 다리의 아래로 황금이 달라붙어 발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분명,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황금룡의 기적은, 지브롤터를 위한 것이 아니야! 나를 위한 것이지!”

     “탈출할 곳을 찾고 있나? 유감이로군. 그런 곳은 없다. 내가 이미 이곳에 있으면서 다 둘러봤거든.”

     “크아악!”

     아버지는 멀리서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오러의 참격이 날아가 무능왕의 허벅지를 갈랐다.

     “세상 사람 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있었지. 그냥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여왕이 될 때까지, 그 사지를 잘라다가 20살이 되는 해까지 어디 처박아 두면 안 되냐고.”

     “끅, 끄윽, 끄으윽…!”

     “위대하신 황금룡께서 그것도 딱하게 여기셨는지, 그것도 불가능하게 해뒀어. 이미 누군가는 해봤고, 역사에 그 기록이 남아있기에 시도하지 않았지.”

     과거.

     반역이 일어나 국왕을 유폐하여 산송장으로 만든 경우가 있었고, 그때도 왕국에는 황금룡의 저주로 인한 재앙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폐당한 왕을 구한 가문의 후손이 있었지만, 뭐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나리아가 성인이 된 지금, 황금룡의 안배는 더 이상 너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아, 안 돼, 거, 거기는…크아아아악!!”

     아버지가 검을 휘두른 순간, 나는 나리아의 눈을 가렸다.

     “안 보입니다.”

     “보지 말라고 그러는 겁니다.”

     “직접 봐야 하는데.”

     

     나리아는 어쩌면 가장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조차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레이. 저러면…이제 후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요. 마법의 힘으로 어디까지 복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으아, 안 돼!!”

     하반신이 통째로 잘린 무능왕이 다급하게 몸을 돌려 자신의 잘린 하반신을 향해 다가갔다.

     “저러는 걸 봐서는 아마도 제 기능은 안 될 것 같군요.”

     무능왕이 다급하게 몸을 돌려 하반신을 향해 다가간다.

     허벅지 아래로 뻗어있던 황금은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고, 무슨 조각상 일부만 떼어놓은 것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다.

     “나리아. 성인이 되었으니 하나 말씀드리자면,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하시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벼르고 또 벼렸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다시는 허튼수작하지 못하게, 그 원흉을 제거해야 한다고.”

     서걱, 서걱, 서걱.

     “으아아아아악!!”

     아버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무능왕은 자신의 하반신이 해체되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고-

     “이 자식!!”

     기어이, 아버지를 향해 절반 이상이 황금으로 된 몸으로 달려들었다.

     “쯧.”

     아버지는 혀를 차며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무능왕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거 아십니까? 무능왕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물리적으로 덤벼든 적이 없었습니다. 겁쟁이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덤벼들었잖아요.”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 달려든 거죠. 저렇게까지 분노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확실해진 것 같군요.”

     아버지는 지금, 무능왕에게 있어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았다.

     “저자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

     “…고작 육체적인 욕정 때문에?”

     “그게 저 자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된 겁니다.”

     아버지는 세인트 지오에게서 쾌락을 빼앗았다.

     설령 황금룡이 자비를 베풀어 세인트 지오를 저대로 바깥으로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무능왕은 이제 황금으로 된 하반신을 움직이기만 해야 할 터.

     소변은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몸이 황금으로 된 이상, 육체의 감각으로 인한 쾌락은 적어도 하반신에 있어서는 앞으로 영영 얻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복수한다거나 하는 정신적 쾌락과 만족감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슬슬, 마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

     아버지가 자신의 몸에 튄 황금을 손으로 털어내며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끝내도록 하자꾸나. 혹시, 이어받을 생각이 있더냐?”

     “저는-”

     “네.”

     나는 딱히 생각이 없었지만, 나리아는 바로 머스킷의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쏘게 해주십시오.”

     “…….”

     “일생일대의,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바람입니다.”

     “나리아 여왕. 살인도 살인이지만, 저자는….”

     “아버지,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리아의 질문에 아버지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서걱.

     “끄아아아악!!”

     우리가 잠시 이야기하는 사이에 몰래 바닥을 따라 기어가려던 무능왕의 어깨가 그대로 썰렸다.

     두 팔과 하반신이 황금으로 금방 돋아났지만, 그 황금도 이제는 물리적인 형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듯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모습이 되었기에 아버지라고 부르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저자가 감았다고 하는 세계에서…제가 저 남자의 딸이 아니었기에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철컥.

     “저는 그저 어렸을 때부터, 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죽이려고 했던 자에게 딱 그만큼의 복수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후회하지 않겠소?”

     “지금 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겠죠.”

     “그레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지. 나리아에게 평생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면, 허락해 주십시오. 나리아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관용구적인 표현이 아니라, 평생.

     “…….”

     아버지는 조용히 무능왕에게 다가간 뒤, 검을 거꾸로 들고 무능왕의 몸통에 그대로 찍어 넣었다.

     푸화아악.

     이제는 붉은 피가 아닌, 황금이 액체처럼 튄다.

     지금까지 무능왕의 체액이 튀는 게 싫어서 일부러 멀리서 참격을 날려왔지만, 아버지는 굳이 무능왕의 등에 검을 찔러넣고 그 등을 짓밟았다.

     “쏘시오, 여왕.”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철컥.

     나리아는 그대로 머스킷을 들어 올린 뒤.

     “자, 잠-”

     타ㅡ앙!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새 장전해 둔 실탄은 정확하게 무능왕의 목을 꿰뚫었고, 무능왕의 목에 옆으로 뚫린 구멍에서 황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우….”

     나리아는 파르르 몸을 떨며 머스킷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손으로 자기 목을 만지작거렸고, 눈을 감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몫까지, 라고 하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 좀 속이 후련해지는군요.”

     “…….”

     “평생 기억할 겁니다. 이 순간의 감각을. 아마도…평생 잊지 못하겠죠.”

     낳아준 아버지를 향해 총을 쐈다.

     그건 분명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끄어, 으어어….”

     “…저건 좀.”

     아예 몸을 버린 채, 목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머리만 떨어져나와 황금의 액체와 함께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저걸 아버지, 왕으로 부를 수 있을까.

     “위대하신, 크로노스트럼이시여…!”

     무능왕의 머리가 땅을 기어간다.

     바닥을 기는 슬라임에 왕의 머리가 달라붙은 것처럼, 황금룡의 기적에 의한 마법은 무능왕을 어떻게든 죽지 않게 만들어줬다.

     “부디, 제게 한 번 더 기회를…! 이번에는, 잘하겠습니다!!”

     이제 무능왕은 우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오직 두 시선을 황금의 모래시계를 휘감은 황금의 드래곤을 향한다.

     “크로노스트럼이시여!! 제가, 이렇게 간절히 빕니다!! 부디 이 불쌍한 자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머리 아래로 몸이 돋아나고, 황금으로 된 육신으로 드래곤의 몸을 따라 올라간다.

     “노스트럼의 수호신이시여! 그때처럼, 제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 해줬으면, 또 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드래곤의 육신을 향해 주먹을 쥐고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돌려! 돌리란 말이야!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드래곤이라는 게, 왕국의 수호룡이라는 게 왕을 위해 고작 그 정도도 못 해주냐는 말이냐!!”

     목에서 피가 아닌 황금을 토해내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황금룡을 향해 포효를 내지른다.

     “돌려달라고! 과거로! 다음에는 잘할게!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잘할 테니까!!”

     황금의 드래곤은, 아무런 말이 없다.

     “황금룡이여ㅡㅡㅡㅡ!!”

     “어처구니없군.”

     아버지가 허탈하게 웃는다.

     “그렇게 해줬는데, 여기에서 더 뭘 해달라는 건가.”

     “으아아아아아아아ㅡㅡㅡㅡㅡㅡ!!”

     아버지의 말이 들리기나 할까.

     “기적을, 내게!!!!”

     무능왕은 기어이 황금룡의 몸을 타고 올라가, 황금룡의 눈앞에서 황금으로 된 몸을 쭉 뻗었다.

     “신이시여ㅡㅡㅡ!!”

     신은.

     모든 권능을 가진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이미, 기회를 줬으니까.

     “제발!!! 한 번만, 더ㅡㅡㅡ!!”

     500년 노스트럼 역사.

     모든 노스트럼의 핏줄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있었고.

     “잘도 주겠다.”

     예외는 없었다.

     ‘두 번이나 나라를 말아먹었는데.’

     황금룡이 모든 걸 지켜보면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는 보았을 것이다.

     첫 번째. 세이레네가 배신하고 무능왕이 나라를 망친 모습을.

     두 번째.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왕도를 버리고 도망치던 그 순간을.

     나리아가 모든 걸 기억하는 것처럼.

     이 황금 또한, 그 모든 덮어진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에.

     “황금룡이시여ㅡㅡㅡㅡㅡㅡ!!”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황금룡이 머리 앞에 엎드리며 머리를 찧었으나.

     쿵, 쿵, 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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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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