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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이 아이는 로즈마리 타르케닐.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랑 같은 마왕군 소속이었어.”

       

       레니냐는 직감했다.

       

       앞으로 이 소녀에게 전투마도를 배울 것이라고.

       

       “네 스승님이 될 테니까 깍듯하게 대하렴.” 

       

       ‘이런 꼬맹이한테…?’

       

       배운다고?

       

       전투를?

       

       ‘스태프도 제대로 못 쥘 것 같은데?’

       

       로즈마리의 키는 150 언저리. 프레이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다.

       

       165인 레니냐가 보기에는 프레이나 로즈마리나 거기서 거기였다. 웬 어린이가 엣헴거리고 있으니 하찮기 그지없었다.

       

       동시에 가련하다는 인상도 들었다.

       

       ‘혹시 귀족이나 왕족이었나?’

       

       검은 드레스에 달린 에메랄드 브로치가 꽤 비싸 보인다.

       

       그 외에도 금으로 된 머리 장식이라든가,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구두라든가. 온통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으로 치장했다.

       

       “뭐야.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봐?”

       “아, 아니…. 아무것도.”

       “이상한 생각 말고 따라 와. 바로 실력 테스트를 해볼 테니까.”

       

       레니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선생님과는 잠시 헤어질 시간이었다.

       

       에테르 선생님이 다른 연구자와 흑주를 완성하는 동안, 레니냐는 선생님을 돕기 위한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해안선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마왕군의 침공. 그 침공을 막는 데 자신의 역할이 중추적이라고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레니냐는 아까 전 여분으로 받은 마력초를 물고는, 로즈마리의 뒤를 따라갔다.

       

       

       **

       

       

       다르다.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허억, 허억….”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 사이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레니냐는 지금 대자로 뻗어있었다.

       

       “뭐야, 겨우 이 정도야?”

       

       키득거리는 소리.

       

       누워 있던 몸이 후웅, 하고 앞으로 당겨진다. 입매를 비튼 로즈마리가 자신의 팔을 잡고 끌어낸 것이다.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제야 레니냐는 눈앞의 소녀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아챘다.

       

       “이 녀석아, 에테르 언니가 얘기했잖아. 나도 한때는 마왕군 소속이었다고.”

       

       ‘인간형 마수이길래 평범한 줄 알았는데….’

       

       전장에서 보이는 마수는 보통 크고 우락부락하다. 얘처럼 작고 하찮게 생긴 게 아니라!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안 그래?”

       

       인간형 마수의 목적 대부분이 인간 사회 잠입이라고 들었다. 공작과 훼방에 능한 반대급부로 전투능력은 약한, 그런 부류.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처음 스태프를 소환할 때까지만 해도 잔망스러워 보이던 소녀였다. 그런데, 바이올린 현으로 이만한 위력을 낼 수 있을 줄이야.

       

       귀엽다고 설렁설렁 대했다간 큰코다친다는 걸 깨달았다. 

       

       “일어나.”

       

       스태프로 땅을 짚고 일어선다.

       

       한 손에는 낫, 다른 손에는 망치.

       

       기다란 금빛 쇠사슬을 손목에 감은 채 기본적인 전투 자세를 잡는다.

       

       “뭐, 자세가 나쁘진 않네.”

       “…그동안 열심히 살았거든.”

       

       어떻게든 학년 1등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매일같이 체술을 연마하고 스태프를 휘두르던 레니냐였다.

       

       눈앞의 소녀에 비하면 한참이고 모자라겠지만, 적어도 ‘기본’은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좋아. 이쯤에서 재미있는 걸 가르쳐 주지.”

       

       로즈마리는 바이올린 현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시선은 현 끝의 말총 부분에 고정한 채였다.

       

       “너, 내 스태프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알아?”

       “…모르겠는데.”

       “그러면 네 스태프는 왜 그렇게 생겼는지 알고?”

       “그건…….”

       

       모른다.

       

       그냥, 어느 날 소환해 보니까 이런 모양이었다.

       

       궁금증을 가지긴 했다. 책도 찾아봤었다. 자신의 스태프가 왜 남들과는 달리 이런 모양을 가지는지를.

       

       ‘소환자의 심상에 따라 스태프가 만들어진다고 했었지, 아마.’

       

       

       책은 개론적인 수준의 답변밖에 내려주지 못했다.

       

       스태프가 소환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

       

       왜? 어떻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낫과 망치는 무어란 말인가? 자신의 심상이 남들과는 한참이고 다르게 뒤틀렸단 뜻이란 말인가?

       

       의문이 지속되는 사이, 로즈마리가 말을 이었다.

        

       “일단 말이야, 내 현은 왕족으로서의 우아함과 교양을 상징해. 이 언니가 살았던 시대에는 현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게 왕족이나 귀족뿐이었거든.”

       

       “……왕족이라고?”

       “그래, 왕족. 지금은 하등 쓸모없게 되어버린 지위지만.”

       

       로즈마리의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나의 고유마도는 바로 연주야. 연주를 통해 이 대지를 떠난 영을 위로하지.”

       

       그녀가 현을 고쳐 쥐고 바이올린을 든다.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자세를 잡는다. 

       

       찰현이 시작되자 애달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가를 다스리는 듯, 차분하고 진정된 곡조였다. 모든 악장에는 슬픔이 담겨있었으나, 몇몇 부분에는 분노도 공존했다.

       

       레니냐의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 그림 속에서는 어느 왕녀가 있었다.

       

       첨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금안의 왕녀. 불바다가 된 왕도를 바라보는 왕녀. 쳐들어오는 군대를 홀로 맞이하는 왕녀.

       

       폐허가 되어가는 수도에는 비명만이 가득하고. 왕녀는 그 소리를 묻어내기 위해 현을 움직였다.

       

       악장이 넘어갈 때마다, 오열이 느껴진다.

       

       망해가는 나라. 학살과 강간의 현장. 들이닥치는 배신자들, 그리고.

       

       3분 56초에 달하는 곡을 연주하고는, 높디높은 첨탑 아래로 몸을 내던지는 소녀.

       

       “…….”

       

       짧고도 긴 연주가 끝났다.

       

       “아이 씨, 오늘 컨디션이 별로네.”

       

       로즈마리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는 송진을 꺼냈다. 연주가 안 되는 게 장비 탓이라는 듯 투덜대기에 바빴다.

       

       “뭐 이리 마모된 데가 많아?”

       “…….”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튼 말이야.”

       

       로즈마리는 큼큼거리며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레니냐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과 결핍, 그로 인해 생긴 목적과 방향성, 아쉬웠던 점이나 긍정적이었던 사고가 한데 모여 네 스태프를 이루는 거야.”

       

       저 또한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의 현재 심상이 어떠한지를.

       

       레니냐는 손에 든 낫과 망치를 바라보았다. 금으로 도금된 것처럼 반짝거리는, 태양과도 같은 스태프.

       

       태양은 아렌스 대륙을 구석구석 비춘다. 행성이 자전하면, 그에 맞추어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레니냐는 그런 빛과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선 이것부터 시작하자. 네 소원이 뭐야?”

       

       성공하는 것.

       

       누구도 금안을 넘보지 못할 만큼 성공해서, 세상을 평등과 화합의 물결로 물들이는 것.

       

       “과거는 어땠는지도 생각해 보고.”

       

       차별받았다.

       

       은연중에… 아니, 어떨 땐 대놓고 무시받았다.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만으로. 금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분했다. 태생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몸을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다짐이 무엇인지도 되짚어 보고.”

       

       다짐이라면, 평등.

       

       평등. 오로지 평등.

       

       그리고 공정, 공평. 억압받지 않는 금안. 차별받지 않는 사회.

       

       인간은 인간인 대로, 엘프는 엘프인 대로. 수인족이라든지, 금안족이라든지. 그런 구별이 있을지언정, 차별이 되지 않도록.

       

       그런 모든 부조리에 맞서기. 투쟁. 정쟁. 혁신.

       

       마지막으로, 소멸.

       

       “…계급사회의 소멸.”

       

       소멸을 통한 신분의 재분배. 가치의 재분배. 부의 재분배. 영토의 재분배. 이념의 재분배. 세계의 재분배.

       

       즉, 모든 것의 재분배.

       

       분배는 곧 나눎.

       

       공산(共産)일지니.

       

       “나는, 원해.”

       

       다시 한번, 레니냐는 스태프를 쥐었다. 왼손에는 낫을, 오른손에는 망치를. 그러자 그 사이를 옭아매던 쇠사슬이 스르륵 풀렸다.

       

       그것을 본 로즈마리도 바이올린 현을 들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로즈마리는 자신의 움직임을 대화의 끝이자 수련의 재개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눈에는 오연한 빛이 그들먹했다.

       

       어디 덤비라면 몇 번이라도 덤벼 보라는 표정.

       

       가르쳐 주는 스승에게는 무례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저 여유를 꽃잎 꺾듯이 꺾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자, 전력으로 덤벼. 햇병아리.”

       

       로즈마리의 도발.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레니냐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

       

       

       “그래서, 그다음부터 복날 개 처맞듯 얻어터지고 돌아왔다고?”

       “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나는 한숨을 쉬며 엉망이 된 로즈마리를 살폈다.

       

       극세사 원단처럼 부드럽던 머리칼은 개떡이 된 상태였고, 안 그래도 넓었던 이마에는 커다랗게 O자 도장이 찍혀있었다.

       

       “너 이마가 이게 뭐니?”

       “저, 저 녀석이 망치로 날 찍었다고요…!”

       

       로즈마리는 울며불며 고자질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옆에서 쭈뼛거리고 있던 레니냐를 향했다.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목석처럼 굳어있는 레니냐.

       

       “저,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레니냐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이전까진 로즈마리가 그녀를 압도했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바닥 뒤엎듯 실력이 뒤집어지다니.

       

       로즈마리가 이렇게 생기긴 했어도 일단은 절멸급 마수다. 플레어 정도 되는 걸로 조지지 않는 이상 신체에 흠이 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망치 자국이며, 갈고리로 옭아맨 흔적이며.

       

       “플레어나 백야, 정령마도도 없이 이 정도 피해를 냈다고?”

       “제 말 들어봐요. 순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니까? 덤비라고 손을 까딱였는데, 곧바로 내 몸이 화악 날아가는 거 있잖아요!”

       

       입이 쌩쌩한 걸 보니 치명상은 아닌가 보네.

       

       그래도 죽을 정도까진 안 가서 다행이군.

       

       “여기 어때. 아파?”

       “아파요, 아파! 나 죽어…!”

       

       아이고야. 이 녀석이 마왕군 이미지 다 깎아 먹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당분간 전투마도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 넌 가서 쉬고 있어.”

       

       나는 사태를 수습하고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고민을 길게 해봤자였다. 생각만 한다고 정확한 답이 얻어지는 일은 없었다.

       

       “……뭘까.”

       

       레니냐가 길라흐를 잡거나, 최소한 묶어둘 수 있다는 말. 버멜이 한 소리니까 어떻게든 믿고는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다니. 블루베리가 걱정되는 동시에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은 레니냐가 더욱더 강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장관님, 해안선에 마왕군의 깃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나는 연구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대장은 장발을 한 금안의 남성 엘프입니다.”

       “……미친 새끼.”

       

       집착도 유분수지.

       

       여긴 수도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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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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