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3

       사실 이런 것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리폰과 나는 처지가 비슷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내 쪽의 상황이 훨씬 나았다. 이쪽 세계에서 나는 친구도 많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해도 결국 돌아갈 만한 곳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최근에서야 찾은 장소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지내던 곳이.

        

       그 장소라는 곳이 황궁이라는 점에서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은 엄밀히 따져 ‘어린’ 시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금 핀트가 어긋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황궁 내에서 추억의 장소 같은 곳을 짚어보라고 하면 몇 곳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앨리스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짜증을 내고 질투하던 위치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둘의 관계가 최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앨리스를 배려하고 있었고, 앨리스도 그걸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으니까.

        

       본인 앞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반응이 돌아오겠지만…… 앨리스는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내 ‘언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고.

        

       ……만약 나에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어 그때 탈출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나마 그리폰은 그 힘 때문에 이용이라도 당했지만, 나는 그조차 아니었을지 모른다. 몇 번 쓰고 버릴 도구 취급이었을지 모르지.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

        

       설령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해도 저 그리폰처럼 어디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도 없고, 주변에 나를 가족이나 친구로 여기는 사람도 없이 외로운 처지였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리폰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기에 별로 느끼고 싶은 동질감은 아니었다.

        

       “원한다면, 이곳을 집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말을 해놓고도 조금 웃겼다. 그리폰이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리폰의 말을 할 줄 모르니까.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만약 이 그리폰이 다른 그리폰 사이에서 자라본 경험이 없다면, 이 그리폰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 어쩌면 자신과 같은 종족의 말보다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들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불쌍해졌다.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 쓰며, 나는 말을 이었다.

        

       “다만, 이곳이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언제까지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식구라면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니까요.”

        

       나의 말에 그리폰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머리는 내 시선보다 한참 위에 있었고, 고개를 숙일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인지 나를 ‘내려다보는’ 분위기는 조금 덜 느껴졌다.

        

       “멋대로 날아가서 주변 농가의 동물을 잡아먹는 건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면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곤란해집니다.”

        

       단순히 가축이 피해를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가축들을 돈으로 물어주는 것 정도는 쉽지만, 상한 감정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어렵다.

        

       나중에 돈을 준다고 해도 자기가 키우던 가축이 도난당한 거니까. 게다가 그 도난 사건의 범인이 무려 제국의 상징이라고 하면 평판에 오는 타격은 의외로 크다. 앨리스가 그 이후로 그리폰 먹이 관리에 신중한 것도 그 이유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저를 일종의…… 식구나 동료로 느낀다면, 제 친구들에게도 예의를 갖춰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리폰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그 규칙만 잘 지켜준다면, 이곳은 언제까지고 당신의 집일 겁니다.”

        

       그리폰의 수명이 얼마나 긴지 나는 잘 모른다. 생물로서의 연구가 거의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백 년 넘게 사는 영물일지도 모르지.

        

       실제로도 제국 내의 몇몇 대학에서 그리폰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연락을 넣고 있다고 한다.

        

       무려 황녀가 키우는 동물이니 해부는 하지 못해도, 이런저런 실험은 해보고 싶다는 모양인데…… 뭐,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짓은 하면 안 되겠지.

        

       “…….”

        

       내 말을 끝까지 들은 그리폰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나는 그게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리폰처럼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

        

       “그리폰은 자존심이 높은 생물이라고 들었는데.”

        

       “그 자존심의 기준이 사람과는 다른 모양이죠.”

        

       문화제 첫날.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날.

        

       어젯밤에는 가볍게 눈이 내렸지만, 오늘은 하늘이 맑았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눈이 내렸다면 아무리 나라도 하늘을 날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거다. 안 그래도 별다른 보호장구 없이 그리폰 등 위에 올라타 있어야 하는데, 거기서 눈까지 맞고 있어야 하면 추운 건 둘째치고 무지막지하게 무서웠을 것이다.

        

       시야 확보도 잘 안 되고, 내 옷은 젖어서 무거워질 거고, 장갑까지 젖었다가는 손이 얼어서 뭘 제대로 붙잡지도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 핑계로 굳이 이렇게 추운 날 하늘을 날아오르는 짓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하늘이 맑으니 이렇게 날아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비행기 조종하는 파일럿들이 쓰는 털모자까지 쓴 나를 제니퍼는 쓰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학생회장이 괜한 소리를 했군.”

        

       “그 말을 받아들인 건 저였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런가.”

        

       내 말을 들은 제니퍼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리폰을 보았다.

        

       황궁에서는 서 있을 때보다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있을 때가 더 많은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튼튼한 네 다리로 버티고 서서 우리 두 사람을 근엄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꽤 긴 시간을 같이 보낸 나는 그리폰이 무슨 이유로 서 있는지 알고 있다.

        

       지금 이곳에는 바닥에 푹신하게 깔린 지푸라기가 없다. 그야 아카데미 본관 옥상이었으니까.

        

       그렇다. 그리폰은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배를 깔고 앉아있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런 태도를 직접 보인 적은 없었지만, 그리폰이 앉아있는 곳은 언제나 햇볕이 잘 들고 바닥이 포근한 곳이었다. 그런 곳이 아니면 무조건 선 자세였고.

        

       그래도 명색이 그리폰인데, 그렇게 까탈스럽게 따지는 것이 많아서야…… 하긴, 그리폰이긴 해도 결국 사람 손에 자라서 지금도 사람 손에 길러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고양이도 야생 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생활양식이 많이 다르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음.”

        

       제니퍼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그리폰의 이름은 뭐지?”

        

       “예?”

        

       “그리폰이라는 건 생물의 명칭이니까. 개를 키우면서 자기가 키우는 개를 ‘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

        

       “…….”

        

       어……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냥 그리폰이라고 통칭해와서 따로 이름을 붙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제국 내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그리폰은 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얘를 부를 때 이름으로 살갑게 부를 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름을 붙이는 게 좋으려나?

        

       내가 그리폰을 올려다보자, 그리폰도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뭐, 내가 주인이 아니니 뭐라고 할 일은 아니지.”

        

       제니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건물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인 모양이군. 이제 곧 시작할 모양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 그리고 뒤쪽에 마련된 귀빈석.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 앞에 놓인 단상에 교장이 나와 서는 것이 보였다.

        

       “그럼 저는 슬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아버지께서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신다. 살아생전 제국의 상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운 모양이다. 자기가 직접 올라와 확인할 수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나를 여기 보낸 건 아마 날아오르는 광경을 보기 전까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참고로 개선식 때 교장은 제도에 없었다는 모양이다. 이미 군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윈터필드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혹시라도 자치국이 움직일 때를 대비해 잠시 군에 복귀해 제국 북부로 갔었다고 한다.

        

       “마침 검성도 와 있다고 하니, 조만간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고 싶군.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말이야. 어지간히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모양이지? 굳이 이런 이유까지 만들어 시간을 끄는 걸 보니.”

        

       “…….”

        

       제니퍼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그리폰을 향해 다가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편은 최대한 빠르게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원 감사는 다음편 후기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