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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303화. 결자해지 ( 2 ) 

       

       

       

       

       

       누군가를 꿈으로 불러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세 명을 동시에 불러야 한다는 것이 조금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할 만한 수준.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네가 지금까지 내 말을 좀 있어 보이는 말투로 바꿔서 말해주고 있었다고?”

       

       – “예.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그리 도와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

       

       – “언제까지고 저의 도움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당신께서는 온 세상을 아우르는 신이십니다.”

       

       조금 섭섭한 말이기는 한데 납득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적응기 아니겠는가.

       

       내가 어느 날 하느님을 만났는데 갑자기 하느님이 따봉을 갈기면서 “여, 길 잃은 어린 양. 어서 오고.” 이러면 좀 깨지 않을까?

       

       ‘…아니 좀 힙한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좀 많이 힙하다.

       

       아무튼.

       두 여인과 한 남성, 그리고 나까지. 

       

       총 네 명을 하나의 꿈으로 부르는 것은 준비가 되었으니. 내가 준비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대본. 

       명색이 신으로 나서는 건데, 그에 걸맞은 무게감을 갖추면서 말해야 할 것 아닌가.

       

       든든하게도 나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교보재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지구에는 나보다 앞서 신의 길을 걸은 두 선배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도 드높은 나사렛의 몽키 스패너 예수님과 갠지스강의 엔젤피쉬 부처님 되시겠다.

       

       예수 선배님의 주옥 같은 말을 기록한 성경. 부처 선배님이 소금 같은 말씀이 담긴 불경.

       

       길을 잘 터둔 두 선배님의 은혜로 나는 좋은 말씀을 쏙쏙 골라 담을 수 있었다.

       

       ‘내가 신이니까 예수님이랑 부처님도 선배가 맞겠지? 어떻게 따지고 보면 내가 항렬이 좀 낮은 후배니까.’

       

       살다 보니 예수님, 부처님이랑 선후배 관계를 맺는 날도 다 오네.

       

       그렇게 나는 두 선배님의 쓸 만한 말씀을 적은 컨닝 페이퍼 한 장을 준비했다.

       

       이걸로 준비는 끝.

       

       “후… 좋아. 가자.”

       

       약간의 심호흡과 함께 명치 언저리를 강하게 의식한다. 이윽고 쏴-하고 몰려온 것들이 내 전신을 돌며 한 팔로 몰려들었다.

       

       뚜두두두둑-!

       

       곧장 한 팔을 뻗어 허공을 강하게 쥐어뜯는다. 방 안 가득 비닐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커다랗게 찢어진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억지로 쥐어뜯는 모양새의 균열이다.

       명치 언저리의 것이 한순간에 제법 빠져나가며 가벼운 탈력감이 몰려왔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잘 된 게 맞겠지?”

       

       균열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본능적인 거부감이 몰려왔지만, 조심스럽게 균열을 넘어섰다.

       

       둥실-

       

       균열을 넘어서자 우주가 있었다.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별들의 바다.

       

       “오. 오오오.”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풍경에 흠칫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꿈 맞겠지?”

       

       꿈 특유의 몽롱함이 없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이내 기묘한 부유감에 한참이나 빙글빙글 날아다니며 그 사실을 금세 잊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고오오오오ㅡ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짙은 장막의 저편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을 의식했다.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

       행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츠팟!

       

       한순간 우주의 어느 부분이 작게 반짝이더니 세 개의 작은 인영이 나타났다. 아주 작고 귀여운 미니어처 같은 모습으로.

       

       얼마나 작고 연약해 보이는지, 내가 손가락으로 툭 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이다. 덧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피와 살점의 피조물들.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이 존재들은 얼마나 가녀린 생명체인가.

       

       쉽게 부서지고 망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생명은 너무나 아름답다.

       

       나에게는 보였다.

       저 하나하나의 생명체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찰나를 쪼갠 순간을 뜨거운 불꽃처럼 살아가는 존재들.

       가녀리고 또 어여뻐서 참을 수가 없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홀린 듯 구경하는 것을 멈추고 세 인간을 ‘바라봤다.’

       

       “아아아… 아, 으아…”

       

       “……지, 진짜 정신 나갔네. 하, 하하… 저게 신이야?”

       

       “위, 위대하신 여, 여여여섯 번째 신을! 미천한 조, 종이 배알하나이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인간들.

       이런 모습 하나하나까지 사랑스럽다.

       

       ‘음… 처음으로 하는 말은 역시 그거지.’ 

       

       신으로 하는 나의 첫 발언. 무엇을 할까 고민했지만 사실 내심 정해놓았다.

       

       쿠구구구구ㅡ

       

       손을 뻗어 우주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강하게 의식하며 말한다.

       

       《빛이 있으라.》

       

       이건 못 참지.

       

       그러자 거대한 별이 태어나 우주의 저편으로 올라갔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와 씨. 이게 되네?’

       

       개쩐다 진짜.

       

       

       

       ***

       

       

       

       신으로서의 내 컨셉은 ‘엄격, 근엄, 진지’다.

       

       중요한 것은 엄격하지만 다정하고, 근엄하지만 부드러워야 하며, 진지하지만 사려 깊어야 한다.

       그래야 좀 좋은 신으로 보일 거 아냐.

       

       ‘뭐. 일부러 다정하게 굴 필요는 없겠네.’

       

       저 인간들을 본 순간부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다란 애정이 일어났으니까.

       

       모든 생명체는 불완전하다.

       영혼은 결핍되고 정신은 미성숙했으며, 턱 없이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룩하려 애쓰는 존재다.

       

       신은 완벽한 존재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기에, 도리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말하자면 꽉 찬 정육면체다.

       

       이와 반대로 불완전한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나아간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뒷걸음질 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 덧없는 발걸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인간을 애호하려는 건가…’

       

       원래 내가 이렇게나 인간을 좋아했나 싶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해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은 명백하게 비정상적이다.

       

       이 공간에 와서 유독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는 한데.

       여기 정말 단순한 꿈이 맞나?

       

       아무튼.

       신으로서 내가 인간의 치정 싸움에 관여하는 것도 좀 가오 딸리는 일이지만.

       모쪼록 나로 시작된 일이니 내가 마무리 짓는 것이 옳았다.

       

       앞서 별을 만드는 것으로 기선 제압은 확실하게 됐을 테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흠, 흠.’

       

       티 나지 않게 목청을 가다듬고.

       아아ㅡ. 좋아.

       

       《너희는 그 부모를 떠나서 배우자와 합하여 한 몸이 될지어다.》

       

       내 목소리가 온 사방에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성량이 거의 오페라 배우 뺨치는 수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성량에 살짝 움찔했지만, 용케 티 내지 않았다.

       

       “으, 아? 예?”

       

       “…가,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이야…?”

       

       반응은 나쁘지 않다. 기세를 살려 컨닝 페이퍼를 몰래 살피며 더욱 크게 떠들었다.

       

       《그에 말하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 네 이웃한 자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 사랑…?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쉬잇! 셀리나 프리가! 조용히! 신께서 저희에게 가르침을 베푸시는 중입니다!”

       

       《수천수만의 생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는 것은 억겁의 기적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

       

       “후회 없이… 사랑…”

       

       이걸로 마지막 대사.

       

       《이에 말하노니. 너희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것이 나의 기쁨이니.》

       

       티 나지 않게 눈동자만 힐끗거리며 컨닝 페이퍼를 살폈다. 적어 온 대사는 방금 그것으로 끝났다. 쓸모를 다한 컨닝 페이퍼를 휙 던져서 버렸다.

       

       지금부터는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시간이다. 

       

       《사랑하고 애정하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내가 그대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대들도 서로를 사랑하라.》

       

       내가 떠들었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적당히 있어 보이게 떠든 거야.

       

       “…자, 잠깐…!”

       

       다리를 떨며 꼿꼿하게 서 있던 작은 여성이 나를 향해 외쳤다. 

       

       “다, 당신께서… 네가 하려는 말은 알겠어.”

       

       “프리가!”

       

       “조용히 있어 이스칼.”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두 다리로 서서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퍽 사랑스럽다. 

       이에 나는 허리를 숙여 그 작은 존재와 눈을 마주쳤다.

       

       《내 듣고 있노라.》

       

       “으에엑, 우웨에엑… 우그으으윽ㅡ”

       

       헛구역질을 몇 번 하더니 다리를 덜덜 떨면서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 나는 원래부터 이스칼의 연인이었어! 그런데도 다, 다다당신의 말대로면 모두 사랑하고 셀리나까지 품으라는 거잖아! 그건 이상해!”

       

       예상했던 반발이다. 이렇게나 직접 말할 줄은 몰랐지만.

       새끼손톱보다 작은 존재가 땍땍거리는 모습은 퍽 귀여웠다.

       

       《마음이란 형체 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열 개의 물길을 알고 백 개의 바닷길을 알아도, 한 사람의 마음 흐르는 곳을 알 수 없나니.》

       

       “…”

       

       《억겁의 생에서 마주친 우연은 가는 줄이 되고, 우연과 우연이 엮어 인연의 동아줄이 된다. 결국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필연이 되어 운명으로 묶이노니.》

       

       작은 존재와 눈을 마주치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그대여. 인연을 소중히 하라. 모든 것은 그대의 인연과 필연일지니.》

       

       “…씨이.”

       

       여기까지만 하면 너무 한 쪽 편만 들어주니까, 반대쪽 여성에게도 눈을 돌렸다.

       

       “히이이익ㅡ!”

       

       조용히 내 눈치를 보던 또 다른 여성이 펄쩍 뛰며 꼬리를 쭈뼛 솟아 올랐다. 반응이 무슨 식인 괴물이랑 눈이 마주친 급이라 살짝 상처받았다.

       

       《항상 마땅히 예를 알고 공경하라. 자만할 까닭이 없으니 겸손을 알지어고, 낮은 자세로 배움을 실천하라. 길가는 이들 세 명 중에서도 그대의 스승이 있기 마련이니.》

       

       “아? 네, 네에!”

       

       고양이 귀 달린 여성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알아들었다는 제스처가 제법 귀엽다.

       

       ‘뭔가 분위기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덕담해 주는 분위기가 됐네.’

       

       고개를 힐끗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남성.

       아닌 척 애쓰지만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얘한테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이제 슬슬 대사 생각하는 것도 힘든데.

       

       《이제. 그대들의 시간으로 돌아가라.》

       

       “아.”

       

       파앗!

       

       가벼운 손짓과 함께 세 명의 인간이 사라졌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남성의 외마디 탄식만이 짧게 남았다.

       

       아쉽지만 남정네한테까지 머리를 싸매면서 덕담을 해주기에는 너무 지쳤어.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균열을 열어 방으로 돌아왔다. 기묘한 부유감이 사라지며 익숙한 중력이 내 몸을 반겼다.

       

       “흐어어어어ㅡ 진짜 죽겠다…”

       

       침대에 눕기 무섭게 피로가 쏟아진다. 체감상 거의 하프 마라톤 뛰었을 때와 비슷하게 몸이 무겁다.

       

       “주, 죽을 것 같아…”

       

       무거운 눈꺼풀을 몇 번 껌뻑거리다가 이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신 노릇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 네…’

       

       존경합니다.

       나사렛의 몽키 스패너 예수님, 갠지스강의 엔젤 피쉬 부처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작 중 주인공이 한 말은

    창세기 1:3 => 빛이 있으라.

    마태복음 19:4 => 너희는 그 부모를 떠나서 배우자와 합하여 한 몸이 될지어다.

    마가복음 12:31 => 네 이웃을 사랑하라.

    입보리행론 등에서 인용했습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후보군이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파워 인플레…!!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투명 드래곤… 솔직한 저의 심정으로는…!! 특유의 아쉬운 문장만 제외한다면… 투드는 나름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투명 드래곤의 엔딩은… 웹소설 계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봐도 무방…!! 아니라구요? 아니면 말구용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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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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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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