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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어….”

         

         전에도 지나가듯 언급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지만… 난 외모에 관련해서 타인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걸 별로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정말 노골적으로 시비 걸리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찬양이 되면 그야 부담스럽지만 그것도 일종의 칭찬인 셈이니까 조금 낯간지러워하기는 했어도.

         

         이젠 적응할 시간도 충분히 지났을뿐더러, 일부 미친 연구원들에게 ‘원전 생체 설계도’ 취급을 받았던 내 커스터마이징 솜씨를 인정받는다 여길 해석의 여지도 있지 않겠나?

         

         뭐, 어쨌거나 현재의 나를 받아들인 이후로는 나름 관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건 당연.

         

         오늘 밖에서 차마 못 보일만한 추태를 드러낸 기억도 없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에멜다 여사와 나는 초면이니 다짜고짜 나쁜 얘기를 꺼내기 위한 포석일리도 없다.

         

         따라서 정말 순수한 감탄이나 가벼운 공치사에 가깝겠지~ 라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얀 쪽은 늠름하면서 성숙한 맛이 돋보이고. 까만 쪽은 아담하게 귀여우면서도, 실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은 게 어쩜 이렇게 싱그러울까? 정말…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네.”

         

         “예?”

         

         조금, 너무 안심했나…?

         

         자리에서 말로만 떠드는 걸로 참고 있기가 힘들었는지 치켜든 손을 까딱까딱.

         뒤에 시립해 있던 시종 안드로이드로부터 담뱃대를 넘겨받은 그녀가 한 모금,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듯이 길게 빨아들인 다음 헬레나와 날 번갈아 가며 응시하셨다.

         

         꽤나… 그윽하신 눈빛으로 말이다.

         

         음, 맞다. 동성애라는 게 별로 흠이나 유별난 취향 같은 게 전혀 아닌 동네였지 참.

         

         남성의 성욕이 끈적한 타르에 붙은 불길이라면 여성의 정욕은 격랑이 몰아치기 시작한 망망대해.

         

         그래도 직접적으로 연소를 거듭할 시청각 재료가 사라지면 소화되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마음의 바다에 부는 바람 -기분- 자체가 완전히 그쳐야 겨우 잠잠해지는. 조금 더 심도가 깊은 자연 현상에 비견할 만하다.

         

         …근데 어떻게 그걸 바로 몰랐냐 황당해하신다면, 아무래도 두 욕구가 나를 향했을 때 처음에 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보니 재깍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고 변명을 하겠다.

         

         어조가 독특한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닐진대, 고작 예쁘다는 말 몇 마디로 그런 가능성부터 떠올릴 만큼의 자의식 과잉과는 거리가 멀다니까요 난?

         

         “컵, 크흠. 어흐흠…!! 마담에게 아름다운 걸 굉장히 좋아하고 아끼신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말입니다. 단순히 감상하고 수집하는 범위를 넘은 취미가 있다는 건… 오늘 또 새로 알았군요.”

         

         어쩐지, 데리고 있는 안드로이드도 꽤 공들여서 아름답게 커스텀한 티가 팍팍 나더라니.

         

         그녀의 취향을 건너 건너 들은 수준으로 파악한 노인은 우리와 함께 가는 게 득이었으면 득이지 절대 해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점수를 너무 많이 따버렸다는 얘기였고.

         

         결국 필터 없이 적나라하게, 약간의 과장만을 더해 앞서 나온 에멜다 여사의 말을 정리하자면 ‘당신이 데려온 사용인들이 엄청 내 취향이라 그러는데, 한 번 꼬셔볼 수 있게 해주면 시간을 내주겠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대답이 되시겠다.

         

         하지만 소파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몸이 굳었음에도, 용건이 있기에 찾아온 알프레드 씨는 더듬더듬 대화를 이어 가고자 최대한 노력하셨다.

         

         역시 참 어렵구나. 아쉬울 게 많은 사회 생활이라는 건.

         

         이게 서구권 문명의 후신이라 그런가? 아니, 무슨 놈의 성적인 농담이 초면부터 이리 쉽게 툭툭 오고 간다냐.

         

         엉…?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진짜로 할 생각이 만만해 보이는 거니 그냥 농담 같은 게 아니지 않냐고? ………쓸데없이 냉철한 분석으로 긴장감 더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보십쇼 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말씀이네요. 미의식과 심미안이란 녀석은 계속 갈고 닦아줘야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감각이랍니다? 그리고 예술품 중에 그저 바라만보는 것 이상으로 즐길 방법이 있는 게 뻔히 있다면… 굳이 참을 이유도 없겠죠?”

         

         “호의적으로 보고 권해주신 점은 감사하나…. 저희 자매는 전문 용병으로, 그런 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적으로 만나서 친목을 다질 생각도 없어요. 핑계가 아니라 정말로!”

         

         분명 내용은 알프레드 씨에게 하는 말인데, 왜 시선은 우리 쪽을 향해 있을까.

         

         빈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슬쩍 보내는 달짝지근한 윙크라던가, 조금만 더 거리가 가까웠으면 손등이라도 사악 쓰다듬었을 것처럼 아련하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라던가.

         

         여사님이 보내는 여러가지 징후들을 보자마자, 나와 헬레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무언가가 구체화되기 전에 거절 의견서를 한데 모아 제출했다.

         

         알프레드 씨의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기도 전에 초를 쳤다면 미안한데, 조금만 더 우물쭈물 기다렸다간 이따 밤에 술약속이 잡힐 판이잖아 이건.

         

         “그, 그녀들이 제가 일시적으로 고용 계약의 형태로 모신 경호원들인 건 맞지만. 여기엔 설명 드리기 힘든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어서…… 그런 방면으로 권유하는 건 부디 참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늙은이의 심장이 도저히 견디질 못합니다….”

         

         “흐응? 뭐, 그렇게까지 간절히 말씀하신다면야.”

         

         마담 에멜다 본인이야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건넨 요청이었던 셈이니, 상대가 말 그대로 죽을 만큼 불편해한다면 철회할 수도 있는 법.

         

         족히 10년은 추가로 늙은 것처럼 메마른 목소리로 앓는 노인에게 차마 자세한 내막을 캐물을 수는 없었는지 그녀는 생각보단 시원스럽게 뒤로 물러나셨다.

         

         뭐, 좋게 좋게 생각합시다.

         저렇게나 미술품을 좋아하신다 하니 그 망할 조각상인가 뭔가도 흥미롭게 봐주실 거 아닙니까.

         

         “하아… 이따 경매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보실 작품이기는 해도. 이제 또 귀한 게 있는데 앞선 물품들에 너무 힘을 빼지 마시라는 의미로 먼저 살짝만…….”

         

         드륵…!

         

         영업 멘트와 함께 마찰음이 귀를 간질였다.

         

         수평으로도 수직으로도 긴 정육면체 형태의 상자.

         

         테이블 한 구석에 올려 놨던 문제의 그 녀석, 솔직히 한껏 뽐낸 신사 정장을 입은 알프레드 씨가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엔 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큰 보관함이었지만. 그걸 보란듯이 끌어당겨 소개하는 그는 일부러 연신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뭔지 구경하고 싶은 마음?

         물론 굴뚝같았지만 난 엄연히 할 일이 있는 몸이지 않나. 부탁받은 대로 주변을 살펴야지.

         

         “참, 우리 동생이 매력 넘치는 걸 세상이 알아주는 건 기뻐도. 이렇게 가는 곳마다 헌팅 당할 줄 알았으면… 후방 지원으로 남겨놓는 거였는데.”

         

         “…그건 아마 언니랑 같이 묶여서 가산점으로 고평가받은 탓에 오늘 유달리 심했던 게 아닐까. 아니, 아무튼! 그 얘기는 이만 됐고 여기 홀에 있는 수상한 사람은 아까 걔들이 전부야?”

         

         – 말씀 나누시는 사이에 추가로 입장한 인원까지 전원 마크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버웨어로 시각 강조 데이터를 곧장 전송해드리겠습니다. –

         

         약간 기분이 나빠 보이는 헬레나를 달래주는 건 다음으로 미뤘다.

         

         아래에서부터 우리를 뒤따라온 이들은 하나의 단일 팀이 아니라 스토킹 과정에서 여러 무리가 일시적으로 혼선되었던 모양인지, 지금은 홀 곳곳에 흩어져 이쪽을 기웃거리느라 꽤나 바빠 보였으니까 감시자인 나도 집중해야지.

         

         “근데 엄청 크게 대비할 건 없어 보이기도 하고…?”

         

         – 최근 전투 빈도가 빈번해서 그랬으나, 최초부터 절도나 금품 갈취 수준의 위법 행위만 상정하고 협박을 했던 이들이라 여긴다면 이 정도가 보통이라 생각됩니다. –

         

         일단 더는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강압적인 수단으로 나올 가능성은 접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까까지는 하도 음울하고 끈질기게 쳐다보고 있던지라 혹시나 급발진 하는 강도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숨을 곳 없이 탁 트인 공간에서 제로와 보안 시스템의 시야를 통해 차근차근 뜯어보니 다들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고.

         

         막 화려한 사교복을 맞춰 입은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정말 회사에서 급하게 뛰쳐나온 듯 깔끔한 정장 차림새, 겉으로 드러난 무장도 상식적인 호신 용도나 소규모 대인 교전을 상정한 수준?

         

         아니, 임플란트라는 주요 변수가 남아있긴 하니까 속단은 금물이지만….

         그냥 막말로 제로 한 대는 무력으로 뚫을 수 있어요 회사원 여러분?

         

         얘는 완전 비상식적인 극한 상황이나 총력전을 전제로 깔아놓고 매일 업그레이드 중인 상남자 로봇인데.

         

         “연식 감정 결과 거의 2세기가 흘렀는데도! 표면에 흠집은커녕 기능 이상도 거의 없어서 별도로 복원 작업조차 안 거친….”

         “잘 알았으니까, 기대를 돋우는 건 좋지만 너무 뜸들이시는 것도 별로 멋없어요?”

         

         하여간 홀에 마련된 휴식용 소파에서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낼 것 같은 입 가벼운 알프레드 씨가.

         그리고 정면에는 업무 중에 당한 성희롱으로 인해 상당히 기분이 별로인 용병 둘과 아무런 동요 없는 드로이드 군단이.

         

         어차피 외통수라면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이대로 눈치만 보아 봤자 별진전이 없다. 비로소 결심이 선 것일까.

         

         노인이 정식 경매를 기다리지 않고 기어이 보관함을 열어버리기 직전. 누군가는 당당하게 정면 돌파를 골랐고, 누군가는 그 와중에도 음습한 샛길 협상을 택했으니.

         

         우르르!

         

         “어흠! 이거 안녕하십니까, 미츠바시 사의 긴토 부장이라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마담 에멜다보다는 저희 회사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화이트 타이거의 보가드 이사라 하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경매 순서에 맞춰 공정하게 출품만 해 주셔도 알프레드 공이 손해보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내가 개인적으로 보증하겠소.”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인파의 일부는, 마치 이 정도가 철면피가 샐러리맨의 기본 소양이라는 것처럼 나와 헬레나에게 앞다투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고.

         

         [ 아이보리 해커님께, 혹시 도둑질 한 번 하고 화려하게 한몫 챙겨서 은퇴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감히 여쭙고자…. ]

         

         [ 미스터 알프레드에게 은밀히 이쪽 제안서를 전달해주시기만 해도 소정의 보상금을 드릴 의향이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신지요? ]

         

         몇몇 약삭빠른 이들은 내 블랙마켓 쪽 회선을 통해 이중 계약을 제안해오기까지 했다.

         

         …갑자기 인기가 폭발한 건 둘째 치고, 여기서 고용주의 뒤통수치겠냐고 러브콜을 하는 건 숫제 미친놈 아니야 이거! 내가 쓰레기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하겠냐!

         

         여기 사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존나 나쁜 쪽으로만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간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못 먹는 감 천 번 찌르기.

    Notes 님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실 오늘 너무 분량도 그렇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영 진행이 안 돼서 차라리 오늘은 휴재 공지를 올리고 내일 두 편을 합쳐서 올릴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난다고 개선될 보장은 없으니까… 일단 비겁하게 또 반으로 나눠 타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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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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