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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인트 지오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나리아가 회귀권을 다른 이에게 양도했을 가능성.

     ‘지금까지 정체를 숨겨온 건, 오늘 저걸 보기 위함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으아아아아!!”

     무능왕이, 계속 괴성을 지르며 황금룡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해줘! 해달라고!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달라고오오!!”

     지금까지 나는 철저히 회귀를 숨겨왔다.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나를 과거로 보내준 나리아에게도 비밀로 해왔다.

     심지어 아스타시아에게마저도.

     어지간한 부분이라면 속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로버트에게도 나는 ‘나 자신의 회귀’라는 부분만큼은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든 말했다면, 분명 정보가 새어 나가서 무능왕의 귀에 들어갔을 거야.’

     주변에 대한 불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모든 정보라는 건 입 밖으로 내뱉은 이상, 따로 듣는 이가 있다면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확대재생산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회귀했다는 사실을 숨겨올 수 있었다.

     ‘조절 잘했지.’

     혈통의 천재성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까지.

     때로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며, ‘역시 어린아이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모습을 통해 방심을 일으켰다.

     그 덕분에, 이렇게 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다른 이들로부터 ‘이 녀석 몸은 어린 아이인데 사실은 안에 어른이 들어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일절 들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세계의 이면에 대해 알고 있는 합스베르크 황제는 논외.

     황금룡과의 계약 때문에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백금경 에이페리아도 논외.

     

     ‘솔직히 내가 밝힌 것도 아니고, 이 둘이 이상했던 거지.’

     노스트럼의 핏줄이 회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백금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걸 오직 역사의 기록과 영웅들의 활약 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유추해 낸 황제가 이상한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행동을 통해 이상함을 눈치채고, 기어이 ‘그레이 지브롤터가 회귀했다’라는 사실을 추론하기에 이른 황제가 더더욱 이상한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르게 말하자면, 비슷한 조건 속에서도 내가 회귀했다고 전혀 눈치채지 못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그야말로 ‘무능하다’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회귀를 했으니, 다른 사람도 회귀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

     물론 알아차리기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걸 알아내기 위해 나리아를 윽박지르고 괴롭혀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리아는 회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 회귀권을 넘겨준 망국의 공주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기가 회귀했다가 무능왕에게 들키기라도 했다면, 분명 살해당할 걸 알고 있었을 거야.’

     10살.

     내가 아니라 나리아가 회귀했다면.

     과거로 돌아간 시점에서 만일 나리아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들켰다면.

     ‘복권이라는 건 뜯기 전에는 당첨인지 꽝인지 모르지만, 꽝이라면 쓰레기가 되는 법이니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있어 나리아는 보험이었다.

     그 보험을 나리아 본인이 사용했다는 걸 알았다면, 분명 나리아를 죽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자식을 낳아 20년을 또 기다리려고 했을 것이다.

     ‘과거에도 현생에도, 결국 마지막 한 방을 제대로 먹였군.’

     나리아 덕분이다.

     무능왕이 저렇게 망가지고, 몰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계속 보는 건 좋지만, 이제 끝을 맺어야 할 때가 왔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모든 국왕은 자신의 실패에 대하여, 되감기를 통해 그 역사를 새로이 쓸 수 있었습니다. 황금은 모든 시간을 기억해도, 사람들은 그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나는 천천히 황금의 드래곤을 올라가며, 느긋하게 지팡이로 드래곤을 두드렸다.

     “회귀의 기적. 누구 하나는 수필이든 아니면 역사서든, 후대에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건 왕의 특권이고, 오히려 왕권을 강화하기에 무엇보다도 더 확실한 수단이었으니까.”

     나를 죽이려고 해?

     수틀리면 과거로 돌아가서, 너를 죽여주마.

     “한 번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그게 무한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평범한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기적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공포정치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권력도, 자산도, 재물도, 능력도.

     결국 산처럼 쌓은 것들이 누군가가 시간을 ‘딸깍’하고 되감기만 하면 티끌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왕에게 함부로 칼을 겨눌 수 있으랴.

     “그런데 이제는 안 되네요.”

     “으, 네, 네 놈…!!”

     황금룡의 머리까지 올라, 이마에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내려다본다.

     “추하군요.”

     목 윗부분을 제외하면 남은 육신 전체가 꿈틀거리는 황금이 되어버린 모습은 정말이지, 역사에 남겼다가는 노스트럼 전체가 모욕당할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제국의 역사학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승리한 자가 취사선택하여 남겨둔 정보만이, 진실이 되어 후대에 이어진다고.”

     “크, 으윽, 너만 아니었어도…!”

     “제가 아니었어도, 제가 아닌 다른 이가 과거로 넘어왔어도 당신은 망했을 겁니다.”

     나는 아버지를, 그리고 나리아를 슬쩍 바라봤다.

     세인트 지오가 그 시선을 대놓고 느낄 수 있게.

     “제 동생 누아르, 혹은 레타르. 저의 기사, 로버트 경이 과거로 돌아왔어도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당신은 노스트럼의 그 어떤 누구보다도 무능한 존재니까.”

     “닥쳐라!”

     “노스트럼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능력도 없는 사람이 뭘 하겠습니까. 황금룡이 남겨둔 기적과 권능을 이용하는 걸 제외하면.”

     나는 황금룡의 정수리에서 내려와, 가볍게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당신은 그저, 운 좋게 왕이 된 사람일 뿐입니다.”

     

     파ㅡ앙.

     오러를 이용해 흩뿌리듯이 지팡이 끝을 뻗자, 무능왕의 머리가 모래시계로부터 떨어진다.

     “아, 아아…!!”

     흩어지는 황금의 육신을 휘적거리며 모래시계를 향해 그 손을 뻗으나, 그 손길은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기사들처럼 허공에서 자세를 바로잡거나 마법사들처럼 공중에 뜨지도 못하고, 그런 기적을 비슷하게 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권능조차 사용할 수 없으니까.

     퍼ㅡ억.

     그저 바닥에 처박히기만 할 뿐.

     슬라임처럼 퍼진 황금의 육신이 간신히 머리를 지켜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충격은 전신에 퍼지는 듯 눈이 뒤집혀 있었다.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입니다.”

     나는 그대로 황금룡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려, 가볍게 한 발로 무능왕의 앞에 착지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왕국의 수치. 사치와 향락만을 즐기며, 주변에는 아첨꾼만을 대동한 채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대륙의 평화를 망치고 제국을 적국으로 만들기 위해 지브롤터를 매국노로 몰아세운 희대의 암군.”

     “이, 이 매국노가!!”

     “매국노라. 그건 누구의 관점입니까?”

     무능왕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협곡의 수호자가 제국으로부터 칼을 내리게 만든 건 결국 당신이 원인입니다. 이 일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는 즉시, 온 세상에 공표할 것입니다.”

     나는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이 우리 가문을 억울하게 매국노로 몰아세웠다. 그는 우리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였고,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언제? 언제나, 였지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이다.

     “꼭 요구라는 게 대놓고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지 않아도, 헛기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요구가 될 수 있죠. 아니. 강요.”

     왕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초에 그런 인간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바람에 최악의 시너지를 일으키고 말았다.

     “황금의 비행선을 만들라고 강요했다거나, 제국의 황제가 준 마도자동선을 그대로 빼앗아 타버렸다거나, 오로솔 아카데미를 만들기 위해 제국이 선의로 제공한 자금을 대량으로 횡령했다거나.”

     “그건…!”

     “이건 제가 직접 겪은 거고, 바르셀 영지에 남아있던 자료만 하더라도 당신의 행적을 전부 까발리기에는 충분합니다.”

     “뭐, 뭐라고…?”

     “제로스 바르셀.”

     나는 무능왕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길래 평소에 그자에게 좀 잘 해주지 그랬습니까.”

     “서, 설마…!”

     “예, 그겁니다.”

     장부를 남겨뒀다거나, 증거를 쌓아뒀다거나, 비망록을 작성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

     제로스 바르셀은 어리석을 정도로 충성병자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걸 이용해서 무언가 배신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르셀 후작성이 점거당한 뒤, 비밀리에 후작성에 있는 자기 수하들을 이용해 가장 먼저 비리에 관한 자료를 없애기도 했다.

     그렇지만.

     

     “참으로 좋ㅡ은 부하를 두셨습니다.”

     “으, 으아아아!!”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이 쓰레기 같은 놈!! 내가,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돌아가는 즉시, 바르셀부터 반역으로 전부 숙청할 것이다!!”

     제로스 바르셀이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밝히고 싶어도, 그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죽었고, 무능왕이 부활시켜 주지 않으면 영영 되살아날 수도 없으니까.

     “이상하군요. 왜 전하께서는 꼭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무, 뭐…?”

     “슬슬 끝을 내죠, 아버지.”

     “음.”

     아버지가 천천히 뒤에서 걸어왔다.

     무능왕은 몸을 다시 형성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머리만 앞뒤로 계속 돌리며 우리를 올려다보며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이…!”

     “관을 다시 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쿵!

     아버지가 무능왕의 앞에 거대한 회색의 무언가를 그대로 땅에 찍었다.

     황금으로 된 신전에서 유일하게 회색이었던, 무능왕을 위해 연말 동안 아버지와 내가 직접 준비한 물건.

     “그레이. 머리만 넣을 건데, 이거 그대로 쓰면 좀 그렇지 않겠나?”

     “안에서 머리 굴릴 정도의 자유는 줘야죠. 감옥도 너무 몸에 꽉 끼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자비를 베풀 정도인가?”

     “자비가 아니라, 억압이죠. 죽어서도 그 영혼이 빠져나와도, 이 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무, 무슨 짓을….”

     무능왕은 아버지가 바닥에 찍은 회색의 물건-‘석관’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나, 나를 그 안에 가두려고?! 어림도 없다! 나, 나는 죽지 않아! 나는 불멸이란 말이다!”

     “그레이. 네가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물어보마.”

     아버지가 석관의 문을 열기 전, 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역수로 쥐었다.

     “네가 기억하던 시간에서, 이 자는 되살아나고 그랬나?”

     “아니요.”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죽음이겠군.”

     “자, 잠깐! 주, 죽인다니?! 내, 내가 죽는다고?! 그럴 리가! 나는 불멸을-”

     “나리아 여왕.”

     아버지가 나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후는, 여왕께서 하시겠소?”

     “…….”

     나리아는 머스킷을 거꾸로 움켜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관뚜껑을 닫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붉은 오러가 깃든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자는, 내가 처리하겠소.”

     “자, 잠깐만…! 그, 그래!! 나, 나를 과거로 보내주면, 결코 다시는 샤를-”

     푸ㅡ욱.

     “그 더러운 입으로, 함부로 떠들지 마라.”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기도 전에,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빠르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

     “…….”

     순간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치를 봤지만, 나는 그저 눈을 감는 것으로 답을 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하나의 사실만이 중요했으니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이곳에,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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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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