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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303 – 마지막 상품>

     

    리프의 공격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타이밍을 뺏는 공격.

    속임수에 능한 공격.

    모두 고인물로서의 실력을 자부하는 이 오크노디의 전성기와 동급의 테크니컬이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아픈 꼴을 겪거나 기절당하지 않고도 무사히 풀려날 수 있습니다.”

    “음~ 역시 싫어요!”

     

    안라게의 사도에 대한 정보출처가 어디인가.

    대답이야 대충 둘러대면 된다.

    그렇지만 역시 고인물 체면이 상한단 말이지.

    실력에서 밀려서 고개를 숙였다고 인정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클수록 마음에 데미지가 큰 자학적인 행동이다.

    그렇지만 리프에게는 안타깝게도 싸우는 조건이 내게 유리했다.

     

    [야간시야]

     

    모험가의 야간행동으로 단련된 야간행동 보정치.

    이로써 어둠의 불리함이 사라진다.

     

    [균형감각]

     

    격한 싸움에 실시간으로 부서지는 지면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균형잡기.

    이 또한 부단히 쌓아온 기능 경험치 덕분에 불리함이 사라진다.

    기능보정으로 여유가 생기자 곧바로 판단이 섰다.

     

    ‘리프의 강함은 챕터보스급이야!’

     

    눈 뒤집힌 헤스티아나 펫들의 여왕 카멜라, 고요한 죽음과 침묵의 숲.

    리프는 챕터 1부터 챕터 4에 이르는 전반부 챕터보스들 뺨치는 강함을 지녔다.

    물량으로 몰아치더라도 간격을 유지하며 흩뿌리는 암기폭풍에 우르르 쓰러지고도 남을 속도와 위력의 투사체가 어느덧 ‘마법’을 동반했다.

     

    쾅!

     

    수리검이 닿은 지면이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산산이 터졌다.

    폭발을 대비하여 세운 암흑장막의 표면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더니 한기가 팔까지 타고 올라와 체내에 침투하려 들었다.

    세차게 손을 흔들어 털어내기 무섭게 <윈드커터>를 동반한 수리검이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자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인챈트!’

     

    타이밍, 속임수, 마법.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점점 늘어난다.

     

    “계속 당하고만 계실 겁니까?”

    “흥. 제 공격은 이미 성공하고 있거든요?”

    “하나도 적중한 공격은 없습니다만.”

     

    내 반격을 가뿐히 피한 리프가 가소롭다며 대꾸하다가 몸이 기울었다.

     

    “!”

     

    이제야 눈치 챘구나.

    리프를 중심으로 모조리 부서지고 가라앉은 지면.

    내 공격대상은 리프가 아니었다.

    리프가 발을 디딜 무인도의 지면이었다.

     

    “조나~! 무인도경매의 무인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무인도경매에서 무인도라 정의되는 영역은 크기가 작지 않고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닌 토지를 의미합니다.”

    “들었죠~? ‘바다가 아닌 토지’. 리프는 지금부터 안에 차오른 바닷물에 발 하나라도 담갔다가는 무인도에서 나간 ‘장외판정’이 된다고요!”

     

    리프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머리를 잘 쓰셨군요.”

    “헤헤. 암살자는 대인전에 강해도 다른 전투에서는 약해지니까요.”

     

    사람이 아닌 지형지물을 깎는 전투에서는 당연히 뭐든지 다 잘하는 고인물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빗대자면 대전격투게임을 거부하고 대전포격게임으로 장르를 바꿔버린 셈이다.

     

    “하지만 아가씨께서도 암살메이드를 얕보셨습니다. 고작 이 정도로 저를 ‘장외’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면 심각한 오산입니다.”

     

    리프의 기세가 갑자기 무섭도록 강해졌다.

    사방팔방을 향해 쏘아지는 수리검.

    강하게 마력을 투시하여 살펴보자 수리검과 이어지는 흐릿한 선이 보였다.

    선 위를 질주하는 리프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저것은 길이다.

    지형지물을 넘나들도록 연결된 오직 리프만이 이용할 수 있는 암살자의 길.

     

    “흐음~?”

     

    보통은 수리검과 이어진 선을 끊으려고 들다가 매설된 반격마법에 호된 꼴을 겪겠지.

    포박과 절단.

    살벌한 함정이 걸려있는 줄인데도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들었다.

    이거 할 수 있겠는데?

    손을 슥 내밀어 함정술식을 보호하는 마나를 암흑마나로 잡아먹었다.

     

    “!?”

     

    순식간에 줄 전체가 새까만 어둠으로 변했다.

    리프는 강했지만 너무 많은 걸 동시에 하려고 했다.

    욕심은 금물!

    사방으로 펼쳐진 줄 모두를 장악하는 건 무리지만 그 중에 하나를 빼앗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

    힘을 여러 곳에 퍼뜨린 만큼 리프의 제어력이 약해진 결과였다.

     

    “역포박 발동!”

     

    허공으로 날아오른 리프를 향해 그녀의 발밑의 줄이 춤추듯이 마구 꿈틀거리며 달려들었다.

    첨벙!

    물에 빠진 리프가 부글부글 물거품을 내더니 스르륵 물 위로 떠올랐다.

     

    “리프 참가자의 장외를 확인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리프의 무인도 내에 대한 모든 종류의 간섭을 금지 및 무효로 판정합니다.”

    “얏호! 이겼다!”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는 내게 물속의 리프가 말했다.

     

    “…이런 포박법은 가르쳐드린 기억이 없습니다만,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어, 음. 아카데미요?”

    “귀갑묶기를 가르치는 아카데미라니…”

     

    저벅 저벅.

    제 발로 무인도에 올라온 리프가 몸에 힘을 주어 특정부위가 강조되도록 묶인 줄을 풀었다.

    마음만 먹으면 포박당할 당시에도 벗어날 수 있었음을 알리는 무력시위였다.

     

    “아가씨께서 비밀로 하더라도 이미 출처는 파악했습니다. 분명 아카데미의 교수들이겠죠. 그 중에서도 안라게의 사도를 알만한 실력자는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나 당대 제일의 의적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리프… 화났어요…?”

    “아가씨에게 화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취향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저질스러운 포박법을 가르치고, 재단에 대한 증오를 심어주고자 위험한 지식을 전수한 비겁한 어른에게 화가 났을 뿐입니다.”

     

     

    * *

     

     

    재단은 쓰레기지만 재단의 일원인 리프는 선을 지켜왔다.

    어린아이에게 성적인 가르침을 행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발을 들이도록 만들지 않는다.

    재단의 일원인 자신조차도 지키는 금기를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모조리 위배했다.

     

    ‘이러고도 교육기관의 선생이자 스승을 자처하는가.’

     

    아카데미가 재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재단의 암살메이드인 그녀도 아카데미의 교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프의 전투법, 재밌었어요! 개학하면 2학기에 저도 써먹어도 되죠?”

    “…마음대로 하십시오.”

     

    마나연공법의 시연을 겸할 작정이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전투법을 흡수해버린 오크노디.

    허공에 대고 슈슉 슉 슈슉 휘두르는 단검과 이곳저곳 휙휙 던지고 줄을 잡아당겨 회수하는 폼이 꽤나 숙련도가 높아보였다.

    평소부터 이것저것 곧잘 던져왔던 것처럼 투사체에 마나를 싣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을 익히면 티토소가도 리프만큼 할 수 있을까요?”

    “적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능성은 있는 거죠?”

    “아가씨의 친구라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헤헹. 신난다! 이걸로 티토도 3학년까지는 함께 할 수 있겠어!”

     

    4학년이 아니라 3학년…?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의 강력함을 보여줬는데도?

    리프는 자존심이 상했다.

     

    “어째서 4학년까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까?”

    “저랑 같이 졸업하려면 한 번도 유급이나 휴학을 하면 안 되거든요!”

     

    연공법을 얕잡혀 보인 건 아닌가.

    살벌하게 굳었던 리프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참가자가 아닌 감독보조로 섬에 남았으니 더는 식사를 도와드릴 수 없겠군요.”

    “괜찮아요. 이럴 때를 위해서 아껴둔 음식이 있거든요!”

     

    오크노디의 조그마한 손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잔뜩 구겨진 봉투를 꺼냈다.

    안에는 지하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지급되는 벽돌처럼 단단한 비스킷덩어리가 있었다.

    오크노디의 눈은 “식품도감을 수집하려면 이럴 때 맛없는 걸 해치워야죠!”라고 외치고 있었다.

     

    ‘지하 감옥은 또 언제 다녀오신 거지…?’

     

    크루즈선에 있을 때부터 이 순간이 찾아올 것을 예상하셨단 말인가.

    철저한 준비성에 더는 놀랄 힘도 나지 않았다.

     

    “아참. 그래도 리프 덕분에 무인도에 머무를 시간이 줄어서 다행이에요!”

    “죄송합니다. 저만 아니었으면 이틀 정도는 더 머무르실 수도 있었을 텐데.”

    “앗. 전혀 탓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잘 된 일인걸요. 무인도에서 가장 값진 <최후의 상품>의 출현조건은 모든 개인상품이 출품되고 무인도에서 10일 이상을 보내며 무인도가 사라지는 날이어야 하는걸요.”

     

    대체 저 정보는 또 어디서 들었고, 그렇게까지 작정하고 구매하려는 상품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자는 알 수 없지만 후자는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정오.

    조나의 마지막 경매에 마침내 상품이 나왔다.

     

    “무인도 경매 마지막 상품은 <면죄부>입니다.”

     

    리프의 눈이 커졌다.

    재단에서 어떤 죄를 저질러도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여분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면죄부.

    자살이나 다름없는 지령을 이행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경매 시작가격은 1000만 포인트입니다.”

    “저요! 저요!”

    “오크노디 참가자가 유일한 참가자이기에 입찰과 동시에 1000만 포인트에 <면죄부>를 낙찰 받았습니다. 이상으로 무인도 경매 최후의 날 경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상으로 경매를 종료합니다.”

     

    경매가 끝나고 다 함께 크루즈선으로 돌아가는 길.

    리프는 생각했다.

    면죄부는 지령거부권이자 여분의 목숨.

    쉽게 얻을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아가씨가 저렇게 흉흉한 물건을 쓸 일이 있을까?

    확실히 오늘까지의 아가씨의 행보는 제법 위험했다.

    그녀가 파파라고 부르는 ‘이사장’의 심기를 상당히 거슬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아가씨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지령들만이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원하는 물건을 얻고 만족해서 헤실헤실 웃으며 곤히 잠든 오크노디.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살살 쓸어내리며 리프가 물었다.

     

    “아가씨가 면죄부를 쓸 일이 있겠습니까?”

    “충분히 있습니다. 이미 지령을 수행중이지 않습니까.”

    “예?”

     

    당황한 리프와 달리, 조나는 분명히 명심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이사장님은 분명 지령을 내렸습니다. 이번 방학에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놀러오라. 이 지령은 여름방학 기간 동안, 그리고 이사장님의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크루즈선에 탑승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군요.”

    “그리고 크루즈선의 경유지나 목적지에는 저택이 없습니다. 오직 이곳 무인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

    아가씨는 아직 이사장의 지령을 완수하지 못했다.

    심지어 평범한 지령도 아니다.

    이 지령은 아가씨가 아카데미에서 저지른 재단에 해가 되는 행동에 대한 피드백.

    대가로서 치러야만 하는 지령이다.

    수행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치르게 될 지령은 더욱 가혹해진다.

    그마저도 이행하지 못한다면 재단에서는 대가를 일방적으로 ‘징수’한다.

    그런 가혹한 미래를 모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면죄부]다.

    이 면죄부는 먼 미래도 아닌 바로 이번 여름방학에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가씨는 배에 오르기 전에 이미 선상반란을 꾀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조나에게도 호기심을 일으켰다.

    알고 저지른 것인지, 모르고 저지른 것인지.

    어느 쪽이든 아가씨는 답을 찾았다.

    배를 탈환해서 저택으로 향한다.

    같은 답에 도달했지만 힘이 부족했기에 무인도에조차 닿지 못하고 안라게의 사도에게 저지당한 암흑상인과 달리, 아가씨는 완벽히 배를 점거할 수 있을까.

     

    “곧 알게 될 겁니다.”

     

    조나의 손에는 지젤이 침투시켰던 시야인형이 보란 듯이 붙잡혀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층간소음이 없는 테디베어는 하루에 두 편을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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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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