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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3

    투방투방 걸어가면 뚜방뚜방.

    나는 후끈한 열기와 마치 만져질 것 같은 습기가 가득한 밀림에서 미니 사신들을 데리고 뚜방뚜방 걸어 나갔다.

    인간처럼 더위에 심각한 영향을 받지도 않는 것은 물론 호흡조차 하지 않아서 그런지, 밀림은 나름대로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인간이었으면 후끈한 찜질방처럼 덥고 습해서 움직이기 싫었겠지.

    이 녹색 달이 만들어 낸 밀림은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거대한 고사리를 시작으로 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모양 열매까지.

    게다가 서식하는 동물들은 전부 공룡!

    티라노가 못생긴 것만 제외하면 정말 멋진 밀림이었다.

    하지만 티라노의 생김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밀림의 공룡들은 실제로 있었던 공룡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의 상상과 기대가 뭉쳐져서 만들어지는 거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깃털과 입술과 뱃살의 티라노가 진짜일 리가 없으니까!

    만약 그 티라노가 진짜라면 K-Pg 대멸종은 티라노가 너무 못생겨서 생긴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천벌이지, 천벌이야.

    ‘티라노, 또 안 나타나나?’

    나는 현재 밀림을 돌아다니며, 티라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티라노가 나타나면 좋고, 아니더라도 쓸만한 방법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방법은 황금 사신들이 작은 공룡을 괴롭혀서, 공룡 모자를 만드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이번에도 깃털 입술 뱃살 티라노가 나타나면, 올바른 티라노로 만들어줘야지.

    깃털을 전부 뽑고, 입술을 잘라내고, 뱃살을 덜어내기만 하면 끝!

    히히.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티라노가 나타날 낌새가 보이질 않아서, 별 모양 과일이 잔뜩 열린 나무 밑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전부터 이 별 모양 과일의 맛이 궁금했으니까.

    공간 절단으로 별 모양 과일을 반으로 싹둑!

    그리고 과일을 작게 잘라서 옆에 앉아 있는 검은 사신 입 속에 쏙 넣어 주었다.

    내가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 신기한지, 검은 사신은 굉장히 감격한 표정으로 과일을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하지만 싱글벙글 웃고 있던 검은 사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수축하기 시작했다.

    몸을 이리저리 변형할 수 있는 검은 사신만의 귀여운 반응이었다.

    ‘!!!’

    과일이 굉장히 셔서 그런지, 검은 사신은 눈을 꼭 감고 혀를 내밀었다.

    히히, 귀여워.

    나는 입 밖으로 나온 검은 사신 혓바닥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나저나 반짝반짝 예쁜 열매인데, 맛은 없나 보네.

    나는 검은 사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맛없는 과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검은 사신은 ‘속았어!’라는 표정이 되더니, 나를 향해 달려들어서 ‘앙’ 하고 깨물었다.

    ‘?’

    ‘엄마?’

    검은 사신이랑 내가 아웅다웅 다투고 있자, 공터에서 데굴데굴 놀고 있는 황금 사신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검은 사신이랑 놀아주는 걸로 보여서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깨물고 있는 검은 사신 주변을 공간 절단으로 격리한 뒤, 황금 사신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검은 사신이 나 혼자 맛있는 열매 먹는다고 화내는 중이야.’

    그러면서 공터의 모든 황금 사신에게 별 모양 과일을 나눠주었다.

    히히.

    그렇게 황금 사신들이 단체로 혀를 내밀며, 표정을 찡그린 장면을 뇌리에 새길 수 있었다.

    물론 그 뒤로는 화난 미니 사신들이 빨판상어처럼 나를 ‘앙’ 깨물고 한동안 달라붙어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장난이었다.

    ***

    깊은 숲속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괴물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서 와. 오랜만이네.”

    “어서 와. 오랜만이네.”

    “어서 와. 오랜만이네.”

    이제까지 봐왔던 공룡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생물 같아 보이지 않는 괴물들.

    말라붙은 핏물이 달라붙은 제어실의 하얀 외벽.

    은은하게 풍기는 피 냄새.

    그러면서도 동료의 목소리는 정말 똑같고 평온하게 들려서, 여자는 더욱 소름이 돋았다.

    저 괴물들을 보는 밍밍이의 태도도 달랐다.

    밍밍이들은 다른 공룡들과는 싸움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상하게도 저 괴물들에게는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여자는 기괴한 공룡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커다랗게 변한 밍밍이의 폭신한 등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괴물들은 갑작스럽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빙글빙글, 빙글빙글 돌렸다.

    한 방향으로 계속, 계속.

    괴물의 몸통에 붙어서 계속 회전하던 ‘인간의 머리’가 견디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때까지.

    “이 게아 닌가?”

    “이게아 닌 가?”

    “이 게아닌 가?”

    바닥에 떨어진 인간에 머리에서는 억양이 이상한 말소리가 계속 흘러나왔고, 괴물들은 천천히 밍밍이와 여자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두려운 모습을 보면서, 밍밍이의 초록색 풀을 꼭 움켜쥐었다.

    그 순간, 괴물들이 밍밍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미이잉!”

    밍밍이가 눈에서 황금색 빛을 뿜어내며 크게 소리치자, 지면에서 새싹이 마구 돋아나더니 괴물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

    밍밍이는 특별한 구석이 없어서 조금 특이하게 생긴 생물일 거라고 예상하던 여자는 깜짝 놀랐다.

    밍밍이가 지금 발휘한 것은 그야말로 오브젝트 능력이었다.

    ‘오브젝트였구나….’

    여자는 밍밍이를 밍밍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어서, 살짝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새싹으로 만든 밧줄은 괴물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끊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랩터를 닮은 괴물과 밍밍이의 육탄전이었다.

    랩터의 갈고리발톱이 밍밍이의 피부를 잘랐고, 밍밍이의 거대한 손이 랩터를 짓이겼다.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은 전투는 랩터들이 뒤로 물러서면서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밍밍이의 피부는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에 움푹움푹 파먹힌 것처럼 잔뜩 파여있었다.

    그 상처들에서는 평범한 동물이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정도로 핏물이 잔뜩 흘러서, 웅덩이를 만들었다.

    게다가 코끼리만큼 커다랬던 크기도 조금 줄어든 상태였다.

    “미잉. 미잉.”

    “어떡해….”

    여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밍밍이의 상처를 막으려고 했지만, 옷가지로 꾹 누르는 정도로는 출혈이 잡히지 않았다.

    반면 재생 능력을 가진 랩터들은 상처 하나 없었다.

    뼈가 부러지면, 뼈가 나무처럼 가지를 쳤다.

    피부가 찢어지면, 주변 신체 부위랑 달라붙어 버렸다.

    신체 일부가 사라지면,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수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재생할 때마다 더욱 기괴하게 뒤틀리고 있었지만, 재생은 재생이었다.

    “미이잉.”

    밍밍이가 작게 울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밀림에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괴한 괴물들도 마찬가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낮이었는데, 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하늘 위에는 유독 커다랗게 보이는 녹색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

    나는 검은색 갑옷을 입은 거대한 티라노를 타고서, 밀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밀림을 돌아다닌 끝에 발견한 ‘진짜’ 티라노사우루스였다.

    깃털이나 입술이 달린 ‘가짜’가 아니라 진짜!

    가짜를 만나도 진짜로 바꿔줄 생각이긴 했지만, 역시 진짜를 만나는 편이 좋았다.

    내 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라, 티라노 성형 수술하다가 실수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물론 조련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 티라노는 파충류 아니랄까 봐 자꾸 물어뜯으려고 하고, 명령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찌나 난폭한지, 검은 사신 대검으로 푹푹 찔러도 금세 공격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내 뛰어난 두뇌로 해결했다.

    이름하여 검은 사신 갑옷!

    행동을 보조하는 외골격처럼, 검은 사신 갑옷으로 전신을 보조해 주는 것으로 조련!

    아무리 공룡이 힘이 세 봐야 검은 사신이랑 비교할 수는 없었으니까.

    사실상 지금 티라노를 움직이는 것은 검은 사신들이었다.

    히히.

    그렇게 티라노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황금 사신의 다급한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

    시선을 돌려보니, 나를 따라서 온 미니 사신들이 황금 사신에게 안겨서 축 늘어져 있었다.

    ‘?’

    갑자기 무슨 일이지?

    티라노 갑옷을 조금 개조해서 침대처럼 만든 뒤, 미니 사신들을 눕혀놓았다.

    내가 쓰러진 미니 사신들을 살펴보니, 모두 굉장히 졸려 하던 미니 사신들이었다.

    설마 우주로 나와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생기가 넘치는 황금 사신과 조금 피곤해 보이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 없는 검은 사신을 제외한 모든 미니 사신이 정신을 잃어버렸다.

    ‘엄마….’

    ‘동생들이 아파….’

    황금 사신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니 사신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나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미니 사신 정원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우주라서 그런지 힘이 현격히 떨어진 상태인 데다가, 녹색 달의 영역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녹색 달을 부수든, 우주에서 나오든.

    둘 중의 한 가지를 해결해야만 했다.

    미니 사신들이 대기권 돌파를 할 수 있을까?

    황금 사신이 아팠다면 그냥 냅다 지구로 던지면 될 텐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하늘 위로 녹색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찾았다!’

    ***

    괴물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이 밀림 모든 것의 창조자, 녹색 달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주로 도망간 달.

    가장 힘을 온존한 달.

    하지만 자아를 잃어버린 달.

    버려진 옛 권속과의 전투로 인해, 잃어버렸던 녹색 달의 자아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서 오래된 권속이 아니라, 자신들을 선택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녹색 달에게 선택된 괴물들의 뒤틀린 살점이 찢어지고,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가장 이 밀림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치솟은 머리.

    낡은 살점을 찢고 나와, 온갖 생물의 뼈로 만들어진 수많은 팔다리.

    ‘이제 우리가.’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힘까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녹색 달이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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