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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비행쇼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걸 비행쇼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흔히 에어쇼라고 부르는 쇼에서는 보통 비행기 뒤로 형형색색의 연기가 꼬리처럼 이어진다거나, 비행기가 하늘을 누비며 이런저런 요상한 각도로 비행한다거나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타고 있는 그리폰은 생물이다 보니 그런 것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게다가 그리폰 본인이 등에 안장을 얹거나 입에 재갈을 물거나 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므로 비행 동작에도 여러모로 제약이 컸다. 비행기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다면 당연히 비행기가 360도로 회전해도 몸이 날아갈 일이 없지만, 나는 그리폰이 옆으로 90도만 돌아도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비행이 끝나고 나서야 생각이 든 건데, 사실 굳이 그리폰 등 뒤에 내가 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타고 있어 봐야 조종이나 지시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폰 혼자 날아올라 곡예비행을 했다면 더 화려한 쇼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퓌요오.”

        

       하지만 옥상에 내려앉은 그리폰의 얼굴이 무척 만족스러워서,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그리폰이 나한테 신뢰를 보여서 내가 그 등에 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혼자 날아보라고 하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날아오르기 전에는 제니퍼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제니퍼도 아래로 내려간 모양인지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건 내 요청사항이었다. 괜히 옥상에 그리폰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가 멋대로 만지기라도 하면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지난번의 대화로 나름대로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리폰이 아닌 이상 그 생각을 전부 알 수는 없다. 나나 내 주변 사람은 조심할 줄 아는 사람뿐이지만, 저 귀빈석에 앉아있는 귀족 중에서 그리폰을 그냥 금수 취급하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자존심 강한 그리폰의 기분이 상하면…… 뭐, 그래도 죽이기까지야 하겠냐마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훌륭했습니다.”

        

       나는 그리폰의 등을 손으로 슥슥 쓰다듬고 내려섰다.

        

       차가운 겨울 하늘을 날고 내려와서 몸이 얼어붙었다. 게다가 그리폰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깃털을 꽉 잡고 있었던 덕에 손도 뻣뻣했다.

        

       장갑을 벗지 않은 채로 손을 몇 차례 쥐었다 폈다 하면서 나는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에도 확인했지만, 그리폰의 얼굴은 몹시 만족스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몸을 뽐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렇게 게으르게 살았으면서도 그리폰의 몸이 망가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깃털은 내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윤기가 흘렀다. 제도 내에서 새 사육으로 정평이 난 사육사들이 비싼 돈을 받고 관리해주는 효과가 제대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리폰이 배가 나오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니까.

        

       ……이상한 것과는 별개로 진짜로 살이 찌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리폰이 얼마나 먹어야 하는 생물인지 조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한다면 돌아가서 기다려도 좋습니다. 여기 있어 봐야 춥기만 하니까요.”

        

       그리폰의 깃털을 생각하면 딱히 춥지는 않을 것 같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지 않는 것을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을지 모르지.

        

       내 말에 그리폰은 한번 고개를 끄덕인 뒤 날아올랐다.

        

       그 덩치에 그만한 크기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도, 날아오를 때 헬리콥터처럼 바람이 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수준은 그리폰이 날아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더 정숙해지고 있었다.

        

       마법을 쓰는 것도 경험이 쌓일수록 더 자연스러워지는 걸까?

        

       그리폰이 아직도 성장 중이라면, 분명 몇 년 뒤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경지에 오르게 될 거다.

        

       그때까지도 황궁을 집이라고 인식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이후에도 스트레칭을 조금 한 뒤, 몸이 조금 녹은 것을 확인하고 털모자를 벗었다.

        

       정전기 때문에 사방으로 삐친 머리카락을 손으로 적당히 빗어서 얌전하게 만들고, 두꺼운 장갑을 벗은 뒤 옥상 문을 열고 복도로 내려갔다.

        

       복도에는 사람이 붐볐다.

        

       물론 아카데미 건물은 거대하다. 사람이 조금 있는 것으로 앞으로 나가기 힘들 정도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신분이 증명된 사람들 뿐.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고 해도 무슨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지진 않는다.

        

       그래도 평소보다 훨씬 활기 넘치는 분위기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아무리 귀족가의 아이들, 그리고 평민 중에서도 상류층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라도,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다. 1학년은 이제야 16세가 된 아이들이었고, 4학년까지 다 해봐야 19세다. 그나마 연말이라서 그 정도의 나이이지, 평소에는 가장 어린 학생들이 15세다. 중3부터 고3까지 섞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말 그대로 어린애들 모여있는 곳이 맞지.

        

       축제 분위기에 맞춰서 교실마다 나름대로 꾸미고 이것저것 붙여두긴 했지만, 결국 어린애들이 만들었다는 티가 난다.

        

       책상을 이용한 가판대, 그리고 그 아래 걸어둔 천에 손으로 직접 그려 넣은 간판.

        

       ……내가 고등학생 때도 이렇게 ‘문화제’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 하긴, 원작 게임이 있는 세상이니까 학교 문화제가 좀 ‘서브컬쳐’스러워도 납득이 가긴 했다.

        

       본관의 가장 위층은 4학년이 쓴다. 아카데미 학생 중 많은 수가 학기 중에 그만두게 되니, 자연스럽게 학년 중 4학년의 수가 제일 적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4년이나 아카데미에 다닌 연륜이라고 해야 할지, 나름대로 정숙하고 깔끔하게 그려진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애들도 있고.

        

       이 애들은 이제 내년이면 사회로 나갈 애들이다. 귀족가의 아이건, 평민 상류층의 아이건, 황족인 나에게 잘 보여서 나쁜 것은 없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층 한층 내려갈수록 복도는 조금씩 더 시끄러워졌다. 아무래도 그런 현실이 닥치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더 시끌시끌하고, 조금 더 어리숙하고, 조금 더…… 즐겁고.

        

       그러네. 지금까지 온갖 사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16세다. 아직도 이곳에 3년이나 더 있는 것이다.

        

       앞으로 큰일이 터지지 않을 거라는 법은 없지만, 반대로 큰일이 터지지만 않으면 조금은 느긋하게 있어도 된다는 말이다.

        

       물론 능력이 없으니 공부는 훨씬 더 힘들어지겠지만…… 뭐, 이제 와서 성적 걱정하기에는 여러모로 들킨 것도 많고.

        

       “언니!”

        

       1학년들이 쓰는 1층 복도에 오자마자 멀리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복도를 내려오면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던 나는, 그대로 클레어를 돌아보았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활기차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달려오는 클레어는 무척 예뻤다. 뭐, 당연한 일이다. 클레어뿐만이 아니라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애들은 전부 예뻤으니까. 지나가던 엑스트라도 웬만하면 예쁜 게임이기도 했고.

        

       하지만 내가 굳어버린 건 클레어의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클레어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클레어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내가 물어보자, 내 앞에 딱 선 클레어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한 바퀴 돌아 보였다. 메이드복 특유의 넓고 긴 치마가 옆으로 우아하게 펴지면서 예쁘게 돌았다.

        

       하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아, 그래, 맞다.

        

       ‘게임’ 속의 문화제다.

        

       그것도 미소녀 캐릭터가 잔뜩 나오고 연애 요소까지 존재하는 게임 속의 문화제.

        

       현실의 학교 축제에서 메이드복 카페를 여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상하게도 서브컬쳐 콘텐츠 속의 문화제에서는 꼭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리고 내가 했던 아제르나 전기에서도 그랬고.

        

       “메이드복이야!”

        

       아니, 메이드복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참고로 우리 반 여자애들은 전부 입고 있어. 아직 가게는 안 열었지만, 준비는 미리 해야 하잖아?”

        

       “그렇습니까?”

        

       “……응? 뭘 그렇게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하고 있어?”

        

       내 대답에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우리 반 여자애들은 전부 입었다니까?”

        

       “……앨리스도?”

        

       “그렇지?”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언니도 입어야지.”

        

       “…….”

        

       음.

        

       생각해보니 이 세계에선 메이드가 아직 존재했다. 그것도 오타쿠가 메이드복 하면 떠올리는 그 메이드복을 입은 메이드들이.

        

       그러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메이드복을 입는 것은 그냥 다른 직업의 옷을 입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는 코스프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자, 자, 이쪽으로 와. 언니 것도 준비해놨으니까!”

        

       클레어는 바로 내 팔에 자기 팔을 걸어 끌고 가며 외쳤다.

        

       아, 그러고 보니, 나나 앨리스나 문화제에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있었지.

        

       ……뭔가 의견이라도 내는 것이 좋았을까? 메이드복을 회피할 수 있다면 조금 좀스럽게 보이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바니걸 복장을 입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컨티스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0화라는 소설을 연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저의 글을 매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혼자서 글을 쓰는 것만큼 지루하고 따분한 일은 없습니다. 예전에 종이책으로 판타지 소설이 나오고 라이트노벨이 나오던 시절, 언제나 공모전에 글을 내고 싶었지만 끝까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이유가 제 부족한 근성 때문이었어요. 한 권 분량의 소설을 한 번에 다 써서 내는 것이 어찌나 어렵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웹소설이라는 형태의 소설이 등장하고, 한 화씩 끊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 권이라는 목표는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있지만, 하루에 한 화씩이라는 눈에 또렷하게 보이는 목표는 또 이야기가 달랐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독자 여러분 앞에 글을 써서 내놓고 있게 되었네요. 매일매일 한 화씩 올리는 것이 조금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300화가 되었습니다. 소설 하나 하나가 완성되어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즐겁습니다. 그 중간과정에 느꼈던 힘들었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만큼요. 이제 몇 편의 소설을 완성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쓰고 싶은 내용이 많습니다. 전부 인기를 끌 수 있을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련 없이 다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드리다보면 또 다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겠죠. 언제까지고 독자 여러분께 즐거운 소설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잉크돛대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금액을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ㅠㅠ 그리고 정성스러운 후원메세지도 감사합니다! 한때 글을 거의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거의’가 아니라 포기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혼자서 소설을 쓰더라도 그걸 다른 사람 앞에 내놓지 않으면 소설로서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웹소설이 너무 재미있었고, 그래서 저도 그런 글을 써볼까 하다가 충동적으로 올렸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사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혹시 ‘모에선’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제가 십대 중반이던 시절 오타쿠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던 단어입니다. 온갖것을 의인화(미소녀화)시켜두고 ‘와 이런 것까지?’하면서 즐기던 때였는데, 그중에는 TS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TS라는 장르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네요. 그때 썼던 소설은 컴퓨터가 아니라 노트에 끄적거렸기에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찾아보면 몇 개 나올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굳이 그걸 찾으려고 방을 뒤집기는 좀 그렇네요.

    하지만 소설 내용 자체는 꽤 상세하게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이랑 돌려보며 낄낄거렸던 내용이라서… 정부의 어떤 실험이 어쩌다 잘못되어서 거기 피폭당해 미소녀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정부를 상대로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는데… 이것도 극초반만 쓰다 말아서 내용이 이게 전부네요. 하지만 그런 짧은 글을 쓰면서도 즐거웠던 기분은 생생합니다. 그때 친구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긴 하지만, 지금까지 글을 쓰는 것은 저 뿐이네요. 몇 번 권유하긴 했는데 다들 한귀로 흘려들어서, 아직까지는 저 혼자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나 제가 여기 글을 쓰기 시작했을때나, ‘TS’라는 장르가 돈이 될거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라이트노벨에서도 TS라는 장르는 아주 한정적으로만 사용되던 장르였고, 종이책으로 나오던 판타지 소설들이라면 더 좁았죠. 예전에 팬픽을 쓴 적 있다고 했었죠? 그것도 처음에는 TS로 기획했다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까봐 그냥 여주인공으로 수정해서 연재했었습니다. 그래서 노벨피아에서 TS라는 장르가 어느정도 유행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는 반가웠습니다. 글을 써볼까 하던 생각이 든 것도 그 시절 제가 쓰던 소설이 떠올라서였고요.

    그러니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서 여기까지 글을 썼고, 앞으로도 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제 꿈을 이루어주신 여러분께는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드려도 모자라지 않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분께서 읽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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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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