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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8월 중순, 가스통이 엘라의 기억상실 치료를 위해 괴물 서커스를 방문했을 무렵, 아나이스는 플로랜드를 출발해 베가스로 향하는 비행선을 타고 있었다. 그녀는 삼촌 쪽 파벌이었던 남부 지방 지부장들과 협상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상회의 내분은 이미 그녀의 승리로 확정되었다. 이번 행보는 바둑으로 치면 ‘끝내기’에 해당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병 때문에 저택을 떠나기 힘든 그녀였기에 자연스럽게 반상에서 겨루는 경기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제랄 베르그송은 그런 딸을 위해 국내외의 유명한 기사들을 초빙해 그들에게 그녀의 지도를 부탁했다. 저택에 갇혀 지내는 딸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런 두뇌 게임은 언젠가 상회를 물려받을 그녀의 전략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의 상재는 그저 타고난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주인님, 이번 주 보고 분량입니다.”

         

       그녀는 비행선으로 이동하는 중임에도 잠시도 일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집사가 건네준 보고서를 빠르게 넘겼다. 그곳에는 그녀가 지정해둔 대상들에 대한 최신 정보가 요약되어 있었다. 그녀는 ‘도스빌 남작, 도박 빚으로 파산, 빚쟁이들을 피해 루즈의 성당에서 숙식 중.’이라는 문장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몇 년 전 도스빌 남작을 가정교사로 받아들였던 것도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에 사교계에서 카드 게임 실력으로 한창 이름을 떨치던 중이었다. 파티장 구석에 마련된 카드놀이 방에는 언제나 그가 꼭 끼어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승부 자체의 즐거움보다 도박으로 돈을 따는 쾌감에 중독되어 있었다. 아나이스는 지금까지 초청한 기사들과 겨룰 때, 늘 상대의 방식에 호흡을 맞춰주었다. 그것이 상대의 기력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뿐더러, 상대를 무너뜨렸을 때의 성취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스빌 남작과도 같은 방식으로 겨루었다. 게임마다 두 사람은 진짜 돈을 걸고 대결했다. 돈이 가진 마력은 대단했다. 도스빌 남작은 10대 초반의 여자애를 대상으로 조금의 손속을 봐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덤벼들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도스빌 남작이 일방적으로 그녀를 털어먹었다. 그러나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고 말았다. 그는 지금까지 땄던 돈을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밑천도 모두 털렸으며 상당한 빚도 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한 번 봤었기에 그가 도박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나이스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몰락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는 원더스타인에 대한 재판 건에서 고소인으로 나왔었다. 아마 베르그송 상회에서 진 빚 때문에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것에 대한 원한을 풀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나이스는 보고서를 마저 읽고 집사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도스빌 남작에 대한 정보는 이제 3급 보고서에 올릴 필요 없어요. 5급까지 내려 두세요.”

         

       그녀는 정보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서 취급했다. 3급은 매주 최신 동향을 보고해야 하는 정보였고, 5급은 분기마다 한 번씩 축적해둘 뿐, 보고할 필요가 없는 정보를 뜻했다.

         

       그녀는 더는 도스빌 남작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의 파멸은 그녀가 이번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 중 가장 하찮은 것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 개막식에서 있었던 재판은 여러모로 그녀에게 좋게 작용했다. 오랜 감금 생활 때문에 사교계에 갓 데뷔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샤를로티아 전역에 크게 알릴 수 있었다. 거기다 그녀의 반대편에 섰던 귀족들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부채를 지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상회 내부의 반대파들을 대거 솎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삼촌 편에 섰던 사람 중 주모자를 제외한 대부분을 용서했다. 그것은 그녀가 관대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과 대적했다고 해서 상대를 말살하려 드는 것은 상계와 바둑을 잘 아는 사람다운 행동이 아니었다. 복수 따위로 감정을 해소하는 것보다 이득을 취하는 게 중요했다.

         

       전쟁과 바둑은 유사했다. 자신이 가진 힘이, 그것이 무력이든 재력이든 명분이든, 상대보다 반집이라도 우위에 있으면 충분했다. 승기가 확실한 상황에서는 실수 없이 한 수 한 수 맞교환함으로써 그 상대적 우위를 끝까지 끌고 가는 가면 됐다. 그것이 바로 바둑의 ‘끝내기’였다.

         

       그녀가 남부 지부를 돌며 한 협상도 그와 같았다. 딱 그녀가 가진 힘만큼 상대에게서 빼앗고, 딱 그녀가 손에 쥔 약점만큼 상대를 물러나게 만들고, 딱 그녀가 제시할 수 있는 당근만큼 상대를 달래는 것으로 그녀는 끝내기를 완료했다. 대규모 숙청 없이 피에르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모든 지부에서 그녀가 상대적 우위를 구축한 것이다.

         

       일은 기이할 정도로 잘 풀렸다. 피에르 측은 아예 승부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녀의 끝내기를 흔들어 보려는 시도는 물론이요, 딸 수 있는 돌을 따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삼촌 측에 섰던 지부장들은 무서울 정도로 그녀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피 말리는 신경전을 기대했던 아나이스는 맥이 다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잘 풀리면 더 많은 집 차이로 이기기 위한 시도도 해볼 법도 하건만, 그녀는 묵묵히 끝내기에 집중했다.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괜한 욕심을 부려 변수를 만들 정도로 그녀는 범용한 기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지부의 혼란을 모두 수습하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이사회를 통해 삼촌을 실각시키고, 횡령과 배임 혐의로 그를 고소한 뒤, 그의 지분을 모조리 압류하는 것뿐이었다.

         

       “삼촌이 겨우 이 정도였나?”

         

       아나이스는 이사회에 올릴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한숨을 토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를 향한 적개심이 어려 있었지만, 동시에 어떤 아쉬움도 느껴졌다.

         

       집사 바텔은 그녀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피에르는 어찌 됐거나 그녀에게 상술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그가 이렇게 반항 한 번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에 감정이 동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삼촌은 무엇 때문에 상회를 배신한 걸까? 정말 부두교의 사상에 심취하기라도 하신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부를 순회하면서도 알아내지 못했다.

       바텔은 그녀의 질문이 자신에게 던진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잣말임을 알았지만, 그녀의 기분을 달래줄 의무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사냥개’가 이번에 적의 중추에 잠입한다고 연락해오지 않았습니까? 그가 정보를 가져오지 않을까요?”

         

       사냥개 마르스는 베르그송 상회가 보유한 해결사 중 한 명으로 정보 수집에 있어서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는 아나이스의 부친 시절부터 베르그송 가문을 섬겨온 가신이기도 했다. 아나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라면 부두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제사를 치러줘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비행선 타는 날짜와 딱 맞아떨어져 버렸네. 돌아가는 대로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20시간을 날아서 베가스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그녀를 수행할 비서들과 경호원들이 먼저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2주 동안 그녀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들과 근무를 교대했다.

         

       그녀를 마중나온 경호원 중에는 영지의 봉신인 총사 포르슈 경도 있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그의 주군에게 인사를 한 뒤, 그녀의 영지에서 뭔가 성가신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렸다.

         

       “집사가 좀 갔다 와 주겠어?”

         

       오늘은 이사회 소집이 있는 날이었다. 아나이스는 지금 다른 문제는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집사를 영지로 떠나보내고 나서 마차를 타고 상회의 본사로 향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냐?”

         

       그녀는 오랜 이동으로 지친 와중에도 비서들과 경호원들이 잔뜩 굳어있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이사회 당일에 피에르 진영 측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긴장하는 듯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남부 지방의 지점장들과 협상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 결과만 전보로 진해 들었을 뿐이었다. 목표한 끝내기를 그대로 실행하고 왔으니, 상당히 치열한 협상이 오갔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이후로 비상 상황은 해제될 테니. 다들 일주일에 쉬는 날이 하루씩 늘어날 거야.”

         

       그녀가 피로를 억누르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고, 비서들과 경호원들은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본사에 도착한 아나이스는 포르슈 경을 뒤에 대동한 채, 이사회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이사회실이 있는 복도에는 기존보다 더 많은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사들이 어지간히도 겁먹었다고 생각하며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두 모이셨군요?”

         

       그녀는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른여 개의 눈동자가 말없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그들의 눈빛에 담긴 경악과 혐오를 읽어낼 수 있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회의실에 감돌았다.

       뭔가 잘못됐다.

       그렇게 판단한 그녀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을 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으, 으윽? 포, 포르슈 경?”

         

       아나이스는 자신을 붙든 인물이 자신의 충직한 경호원임을 깨닫고 놀라 소리쳤다. 순간 ‘배신자’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부르기 위해 비명을 질렀으나, 복도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포르슈는 그녀의 팔을 뒤로 꺾고, 그녀가 꼼작 못하도록 제압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포르슈 경! 서, 설마 당신마저……?”

         

       아나이스는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거만하고 우쭐대기를 잘했지만, 그래도 충직한 사람이라 믿었는데…….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 더 믿음직스러웠던 피에르 삼촌조차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나이스는 두 팔을 붙들린 채 탁자를 둘러싼 십여 명의 이사들을 쏘아봤다.

         

       “하아, 하아, 어떻게 이사회 전체가……당신들……이익! 도대체 무슨 제의를 받았길래…….”

         

       그녀는 이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추궁하듯 소리쳤으나, 서툰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 한 명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그녀가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엄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탁자의 맨 끝에 있던 이사회 의장의 자리가 빙글 돌았다. 그것은 상회의 경영자이자 대표인 자신의 자리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나이스는 설마 피에르 삼촌이 이곳에 온 것일까 놀라 그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보다 더 놀라운 사람이 앉아 있었다.

         

       “훗, 당황했나요?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아나이스는 그녀를 보고 굳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플갱어 씨?”

         

       그녀 자신이었다.

         

         

       ***

         

         

       제목: TT3 스테이지3 부두교, 필드 보스 시리즈-도플갱어 편

       게시자: 토치 댄서

         

       안녕하세요. 토치 댄서입니다.

         

       부두교의 필드 보스들이 다 그렇지만, 도플갱어도 모르고 덤비면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죠. 일단 플레이어를 그대로 복사한다는 점 때문에 체력과 공격력이 적보다 모자라도 스킬과 장비로 플레이어가 우위를 점하는 트릴 트릴로 시리즈의 가장 기초적인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큽니다.

         

       거기다 적의 종류에 따라 기사, 도적, 마법사를 전환해서 싸우는 전략도 도플갱어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기사를 꺼내 들면 마법사를, 도적을 꺼내 들면 기사를, 마법사를 꺼내 들면 도적으로 전환하는 가위바위보 상성으로 덤비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공법으로는 도플갱어를 쓰러트리기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알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공략법도 없는 게 도플갱어 전입니다. 도플갱어가 플레이어를 복사하는 것은 보스 스테이지에 입장할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즉, 보스 스테이지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장비를 벗고, 윌리에게서 구매한 ‘스킬 초기화’ 포션도 마시고, 제가 그동안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고 했던 갖가지 상한 음식들을 잔뜩 먹고 입장한다면, 속옷만 입고 식중독에 걸려 골골거리고 있는 용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벗어두었던 장비를 다시 입고, 초기화된 스킬도 다시 찍고, 물약으로 체력을 회복한 후에 빈사 상태의 스킬도 없는 도플갱어 용사들을 두들겨 패주면 되죠. 마야의 지팡이 휘두르기로 적 보스의 체력을 100% 깎아야 하는 ‘방망이 깎는 마법사’ 도전 과제도 여기서 쉽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 보스 전은 도플갱어의 특성을 이용해 몇 가지 재밌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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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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