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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메기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수산물 시장에서 토막이 나듯 꽁꽁 얼어붙은 채 조각이 난 사체.

         

       염주와 지팡이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땅속으로 사라져버렸고, 메기가 입고 있던 가사 역시 있어선 안 되는 것이라는 듯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얼어붙은 메기의 사체 역시 얼음과 함께 녹아갔다.

         

       마치 단단한 육신이 아니라, 그저 색소만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 저거 사라지는데요?”

       “내버려 둬.”

         

       다른 관점에서 보면 증거물이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경찰도, 벌벌 떨고 있는 멍청한 4인방도, 그리고 군인도 말이다.

         

       “아, 사살 완료.”

         

       메기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자 군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위장용 길리 슈트(Ghillie suit)를 입은 군인,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방검판과 방탄판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군인, 기관단총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군복 차림의 군인….

         

       그들은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정예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빳빳하게 잘 다려진 군복을 입고 있는 남성이었다.

         

       남성의 군복에는 중위를 알려주는 계급장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중위 성반석이라고 합니다.”

       “어,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중위는 전투가 끝난 뒤 긴장이 탁 풀려있는 경찰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정 거리 이상은 그들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은근히 군인들에게 신호를 줘서 그들을 포위하도록 만들었다.

         

       “응? 왜 이러십니까…?”

         

       경찰들은 군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놀랐다.

       그리곤 불안하다는 듯 중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중위는 그들의 시선을 받자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안심하십시오. 별건 아니고, 이런 일이 끝나면 꼭 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뒤에 있던 하사 한 명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모습을 채 드러내지 않았던 하사 한 명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의 손에는 둔탁하고 거대하고 낡아 보이는 어떤 기계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가이거 계수기의 크기를 키우면 저런 모양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 경찰 여러분. 시민 여러분. 잠시 그 자리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금방 검사를 할 테니까, 이상이 없으면 바로 포위망을 해제해드리겠습니다.”

         

       하사는 중위의 신호를 받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덜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작동하였고, 기계 곳곳에 있는 램프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그리곤 뭔가 서늘한 기운이 공간을 스윽 훑는듯한 느낌이 지나가더니, 바늘이 이리저리 춤을 추며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직.

       티디딕.

       직.

       치지직.

         

       라디오의 노이즈를 손으로 쥐어뜯는 듯한 그 기분 나쁜 소리에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삐-

       삐-

       삐익-

       치지직.

       틱.

       치이익.

         

       하지만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려도 소리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기분 나쁜 소리 중간중간에 ‘삐’하는 경고음이 섞여가면서, 어디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소리로 변질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중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 내 이럴 줄 알았지.”

       “부중댐? 이거.”

       “어. 그거 맞아.”

         

       중위의 한숨.

       옆에 병장 계급을 단 사람의 의미심장한 말투.

         

       절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반응에 슬슬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야, 가져온 거 써.”

       “지금 정화 아티팩트로 공간 단위로 제독이랑 멸균되고 있지 않습니까?”

       “야, 이럴 때는 쓰는 게 FM이다. 써.”

       “알겠슴다.”

         

       그리고 이러한 불길함은 군인들이 꺼내 든 것을 보며 극대화되었다.

         

       방독면.

         

       군인들이 방독면을 꺼내서 얼굴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자, 잠깐만. 무슨 일입니까?”

       “아-”

         

       결국 경찰 중 한 명이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군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건 아닙니다. 기계로 탐지했는데 오염이 감지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은 잠시 이곳에 있어 주셔야겠습니다.”

       “뭐, 뭐요?”

       “아, 안심하세요. 별것 아닌 오염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자세한 건 탐지할 수가 없어서요. 전문가들이 올 때까지 잠시 이곳에서 대기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잠깐. 내가.”

       “소중한 협조 감사드립니다. 전문가들이 도착할 동안만 계시면 되니까, 크게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오염이 되었다고? 그, 무슨 오염이란 말입니까?”

       “아- 그게. 생물학적 오염인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심한 거라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 계시겠습니까? 기껏해야 생명에 크게 지장이 없는…. 아니, 흠흠. 말을 고치겠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인 것 같으니까, 전문가들이 와서 처치하는 것을 기다려 주십시오.”

       “생, 물학적 오염? 그러니까 지금 저 메기가 바이러스나 세균을.”

         

       포위망 안에 갇힌 경찰들과 4인방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미지의 병균에 감염이 될 수 있다는데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경찰들은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자리를 지켰다.

       어쨌든 이 상황에는 군인들이 부르는 ‘전문가’를 기다리는 것이 제일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멋대로 난입했다가 횡액을 당할뻔한 4인방이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군인들을 뿌리치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실제로 포위망을 뚫고 갈 수 있을지 간을 보는 듯 주위를 힐끔힐끔 훑어보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허튼짓을 벌일 것 같은 그 모습에 군인 한 명은 방독면 안에서 작게 한숨을 쉬더니 샷건을 풀었다.

         

       찰칵.

         

       그는 4인방을 바라보며 샷건에 폭도 진압용 비살상 탄환을 채웠다.

       허튼짓을 하면 바로 쏴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준비하면서도, 설마 그들이 이상한 짓을 할까 싶었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이 상황에 미친 짓을 하진 않겠지.’

         

       하지만 멍청함에는 끝이 없고, 너무나 멍청하면 상식을 아득히 초월할 수도 있는 법.

         

       아주 자그마한 계기가 그들의 멍청한 짓을 촉발하게 시켰다.

         

       쿨럭.

         

       4인방 중 한 명이 기침을 한 것이다.

         

       남자 중 한 명의 입에서 마른기침이 튀어나왔고, 그 기침이 나오자마자 그 남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사삭.

         

       남자의 주위에 있던 셋은 남자가 오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남자와 거리를 벌렸다. 남자는 그 모습에 더더욱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윽고 현실에서 도피하듯 말을 토해냈다.

         

       “아, 아냐. 이건 그냥 기침인데.”

         

       말을 토해내는 남자 본인도 믿지 않는 헛소리였다.

         

       ‘생물학적 오염’이라는 불길한 말과 기침.

       이 두 개가 합쳐졌는데 어떻게 ‘그냥 기침’이 될 수 있겠는가?

         

       남자는 누군가 자신에게 동조라도 해달라는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경찰들은 ‘저 새끼, 돌발행동할 것 같은데.’라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고, 군인 역시 포위망에 접근하려고 하면 바로 제압하기 위해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는 그와 함께 낄낄대며 떠들었던 사람들은 그와 시선만 마주쳐도 병이 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계속해서 눈을 피할 뿐이었다.

         

       “씨, 씨발.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주장했다.

       나는 멀쩡하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꾸르륵.

         

       하지만 남자의 그 주장은 변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의 배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게 배탈이 난 사람에게서나 들릴 법한 소리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남자의 곁에 다가가기를 피했다.

         

       배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꾸르륵거리는 소리는…여러 가지 의미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남자를 꺼렸고, 그 때문에 남자의 불안감은 극대화되었다.

         

       “허억, 허억.”

        “여기 맞지?”

       “어. 군인들 있고 경찰 있고. 여기 맞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전문가’들이 도착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빈틈없이 몸을 감싸는 의료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측정용 도구와 이송용 도구를 짊어진 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등산로를 올리고 있었는데, 짐의 무게가 상당한 모양인지 꽤 지쳐 보였다.

         

       남자는 그러한 전문가들의 모습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포위망 밖에서 짐을 풀고 있는 전문가들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갔다.

         

       “씨발, 빨리 약 내놔!”

         

       남자의 얼굴은 복통 때문인지 일그러져 있었고, 몸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정상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한 남자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던 경찰 한 명이 번개같이 테이저건을 꺼내서 남자를 겨눴다.

         

       파지직!

         

       테이저건에 맞은 남자는 몸을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 모습이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 어쩌랴.

         

       멍청한 짓을 한 제 업보가 아니겠는가.

         

       “에휴.”

       “이게 웬 고생인지….”

         

       그렇게 멍청한 사람 한 명의 희생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남자와 일행이었던 3명은 ‘본보기’ 덕분에 허튼짓하지 않고 모든 검사를 성실하게 받았고, 경찰 역시 시민들의 뒤를 이어서 검사를 무사히 끝마쳤다.

         

       하지만 그 검사의 결과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아.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일단 경찰분들은 전부 해당 사항 없으세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의료 방호복 입으시고, 큰 병원 가서 자세한 검사 하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민분들은…. 음. 일단 성인용 기저귀 드릴 테니까 착용하시고, 그다음 의료 방호복 입어주세요.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같이 가실게요.”

       “예?”

         

       경찰들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시민들에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성인용 기저귀.

       구급차.

         

       듣기만 해도 ‘뭔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단어들이 아닌가.

         

       “아, 지금 네 분 구강에서 시겔라(Shigella)균이 확인되었습니다. 세균성 이질(痢疾)인 것 같아요. 큰 병은 아니고, 저기 쓰러져 계신 분 말고는 아직 잠복 상태인 것 같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성인용 기저귀 착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동 중 심하게 설사를 하시는 분이 있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경구수액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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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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