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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도경은 탈진하여 쓰러진 백우진의 맥문을 쥐고 있는 의원을 보챘다.

         

       “어, 어떻소. 괜찮은 거요?”

         

       옆에서 떨어대는 호들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진찰을 마친 의원이 입을 연다.

         

       “무리하여 기를 끌어다 쓴 탓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그려.”

         

       백우진의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 상태였다.

         

       얇고 깊은 상처가 뒤덮고 있는 겉부분도,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한 탓에 뒤집힌 속도.

         

       얼굴에 별다른 상처가 나지 않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의원의 대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묻는다.

         

       “그, 그렇게 안 좋소?”

       “예, 좋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단호한 대답에 도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원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혈은 뒤틀렸고, 혈도는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요.”

       “그, 그럼 어떻게….”

       “일단 침술로 기혈을 다스리고, 탕약을 달여 먹일 것입니다. 그다음은….”

       “다음은…?”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마지막 말로 대화의 끝을 장식했다.

         

       “운명에 맡겨야지요.”

       “아…!”

         

       도경의 안색이 크게 흐려졌다.

         

       운명에 맡긴다니, 그 말이 자칫 잘못하면 백우진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일단 침을 놓겠습니다.”

       “…….”

         

       도경은 조용히 자리를 내주었다.

         

       나가서 기다렸다가 그가 잘못될까 두려웠고, 안에 있자니 의원에게 방해가 될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구석에 틀어박혀 조용히 앉아 행여 제 숨소리가 거슬릴까 염려되어 숨을 죽였다.

         

       풀어헤쳐진 옷 안으로 더없이 탄탄한 사내의 몸이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이에 감탄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 위에 난 상처들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인다.

         

       얕고, 깊고, 짧고, 긴 상처들.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처들이나, 그렇다고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란 새기는 과정에서 고통을 동반한다.

         

       말인즉, 백우진은 이 수많은 상처를 새기는 동안 그 수만큼 아파했다는 뜻.

         

       단련된 무인도 칼에 베이면 아프다.

         

       다만 참아낼 뿐, 내색하지 않을 뿐.

         

       ‘아프다.’

         

       심장이 욱신거린다.

         

       힘차게 피를 뿜어낼 때마다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온몸이 아려온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사이, 그의 몸에 얇은 침이 빼곡하게 박혔다.

         

       “후우….”

         

       의원의 한숨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잘 된 게요?”

       “다행히 뒤틀린 기혈은 어떻게든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 그럼 위기는 넘긴 거요?”

       “아직입니다. 간신히 기틀만 다졌을 뿐, 아직 내상이 심합니다.”

       “그렇소….”

         

       입가에 띤 미소가 사라지고 금세 시무룩하게 변하는 도경.

         

       빽빽하게 꽂아두었던 침을 회수한 의원은 밖으로 나가 손수 약을 달여 가지고 와 도경에게 물었다.

         

       “직접 먹여 보시겠습니까?”

       “아….”

         

       그녀가 잠시 망설였다.

         

       하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행여 그에게 부담이 될까 염려할 뿐.

         

       “그…, 처음이라 그런데 좀 알려주시오.”

       “별거 없습니다. 그냥 천천히 숟가락으로 떠서 조금씩 입에 흘려 넣으시면 됩니다.”

       “으음! 가, 간단하군.”

         

       구석에 박혀 있던 도경이 종종거리며 걸어와 의원에게서 탕약이 담긴 그릇을 건네받았다.

         

       ‘조금씩이라고 했지….’

         

       숟가락으로 탕약을 살짝 뜬 뒤, 살짝 벌어진 그의 입 안으로 천천히 흘려 넣는다.

         

       한 줄기 흘러갈 때마다 마음 또한 함께 담는다.

         

       ‘반드시 나아야 해, 반드시….’

         

         

       * * *

         

         

       사흑련주의 집무실.

         

       도굉과 사뇌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던가.

         

       그들은 사뭇 다르기에 도리어 서로를 존중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일을 풀어나갔다.

         

       그것이 사흑련이 이토록 발전하게 된 원동력 중 하나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들의 일처리 방식이 맞아떨어졌다.

         

       “의원은 보냈나?”

       “예. 아마 지금쯤이면 한창 치료 중일 겁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백우진과 도경에 관한 일이었다.

         

       도굉은 물론이고 사뇌도 인정했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터다.

         

       여인 하나를 위해 제 목숨을 걸었고, 또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는데 믿지 않을 수가 있으랴.

         

       도경을 포함하면 아내가 무려 셋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도굉은 이마저도 묵인해 주기로 결정했다.

         

       ‘영웅은 호색이라던가.’

         

       그보다 약하면서 삼처사첩을 둔 고수들도 넘쳐나는 마당에 자신이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고 해서 이를 강요하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일 터다.

         

       또 강요한들 어쩌겠나.

         

       제 딸아이가 오직 그 하나만을 인정했는데.

         

       ‘허나 지금 상태로는 쉽지 않겠지.’

         

       지금까지 남자로 살아온 도경에게 온전한 여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수를 좀 쓰기로 했다.

         

       도경이 백우진에게 더욱 애틋해질 수 있도록.

         

       “…의원에게 말은 전해두었고?”

       “예. 눈치가 빠른 이로 골라서 전해 두었습니다. 아마 잘할 겁니다.”

       “음.”

         

       침음성을 삼키는 도굉.

         

       사실 조금 의문이었다.

         

       두 남녀의 관계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함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이때 사뇌가 현답을 내놓았다.

         

       “음식에 소금을 넉넉하게 뿌려야 맛있지 않습니까. 사랑도 마찬가지지요.”

         

       실로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기정사실인 상황.

         

       가까워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닐 테지.

         

       “무림맹과 섬서백가에 보낼 서신을 미리 준비해두게.”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실 예정이십니까?”

       “그게 가장 좋지 싶어. 구실도 적당하고, 명분도 확실하지 않나.”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사뇌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도굉이 그를 헤아렸다.

         

       “자네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네. 허나 그 문제는 우리가 풀 문제는 아닐 듯하이.”

       “…그도 그렇군요.”

       “보통 놈이 아니니 알아서 잘 풀어나갈 테지.”

         

       백우진의 모습을 떠올리자, 사뇌는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의 말대로 백우진이라면 어떤 일이든 막힘없이 잘 풀어나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실 뭐…, 믿음이 없어도 믿어야지 어쩌겠나.

         

       미우나 고우나 이제는 조카사위나 다름없게 되었는데.

         

       “그럼 그리 알고, 서신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이.”

         

         

       * * *

         

         

       사흘이 흘렀다.

         

       백우진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도경은 곳곳을 오가며 많은 것을 익혔다.

         

       시녀를 통해 정성 어린 간병을 배웠고, 미음을 만들고 먹이는 법도 배웠다.

         

       그러한 것을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이, 그녀 또한 변화했다.

         

       억지로 자아내던 남성스러움이 서서히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

         

       낮게 깔린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고, 거침없는 행동거지에 다소곳함이 어렸다.

         

       물론 아직 미비한 수준에 불과하나, 그 속도 또한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오늘도 직접 만든 미음과 또 직접 달인 탕약을 먹인 도경은 그의 앞에 앉아 차분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깨어나도 돼.”

         

       변화의 시작은 달라진 그녀의 마음가짐과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백우진이 목숨을 걸고 제 각오를 보였듯, 그녀도 제 마음과 마주해야만 했다.

         

       어설픈 각오 따위로는 그가 보인 결의를 훼손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머잖아 답은 나왔다.

         

       한참 늦었지만, 그녀는 지금부터라도 순리대로 살고자 했다.

         

       억지로 낮추는 목소리를 벗어 던지고, 가장하여 꾸민 성격은 덜어내고 가슴에 꼭꼭 묻어둔 본연을 조금씩 꺼내어 드러냈다.

         

       낯설지만, 그렇게 죽을 만큼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따금 그리운 감정이 살아났다.

         

       머나먼 옛적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것들을 다시 꺼내게 되었음에.

         

       “결심이 섰으니, 이제 깨어나.”

         

       또 알게 되었다.

         

       그를 볼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리고, 열기가 치솟는 이유를.

         

       한 시녀는 그것을 호감이라 하였고, 또 다른 시녀는 그것을 연모라 하였다.

         

       결국 같은 말이었다.

         

       자신이 눈앞의 사내를, 백우진을 마음에 담아두기 시작했다는 것.

         

       옛날 같았으면 펄쩍 뛰며 그럴 리 없다고,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부정했겠으나, 지금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였다.

         

       “…좋아한다.”

         

       그대를.

         

       “연모…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같은 말을 잠든 그의 앞에서 꺼내 놓는다.

         

       그가 진정으로 깨어났을 때 입이 얼어붙어 내뱉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말을 마치고서 차분하게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자신이 이러한 말들을 건넸을 때, 백우진은 과연 어떤 말을 입에 담을까.

         

       “이야…, 도 소저한테 그런 말도 듣고 목숨 건 보람이 있네.”

         

       그래.

         

       평소 뺀질거리는 그라면 분명 그러한 말을….

         

       “엑.”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뜬 도경은 보았다.

         

       지난 사흘간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눈꺼풀이 벗겨져 두 눈이 찬란하게 빛을 뿌리는 모습을.

         

       흑요석 같은 한 쌍의 눈동자가 제 얼굴을 오롯이 바라보고 있음을.

         

       “그나저나, 며칠이나 지난 거야?”

       “사흘….”

         

       도경의 힘없는 대답에 백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사흘씩이나 잠들어 있었다고…?”

         

       좀처럼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분명 과도하게 내공을 끌어다 쓴 탓에 몸 여기저기 성치 않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아하긴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들어 있는 동안 몸은 활력을 되찾았고, 도경에게서 저런 말까지 들었으니.

         

       “정말 깨어났구나….”

         

       도경이 힘없이 주저앉으며 멍한 눈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나, 난 네가 죽을 줄 알고…, 이대로 못 깨어날 줄 알고…!”

         

       갑작스럽게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보고 백우진은 크게 당황했다.

         

       ‘내가 그 정도로 아팠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지인의 가족 중 한 분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밤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돌아와서 글을 쓰려는데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 글을 쓰기 시작하여 늦었네요.

    마음 잘 추스르고 건강한 연재 이어가도록 하겠읍니다.

    다음 편은 19금씬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럼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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