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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무능왕이 죽었다.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기에,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아….”

     나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평소와 달리 여느 때보다도 풀어진 모습을 보이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악몽의 끝.

     유년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무능왕의 살해 위협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음.”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고 있었다.

     나리아가 오랜 악몽의 끝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오랜 악연의 끝이라고 할 수 있겠지.

     종합해 보면 결국 만악의 근원을 물리친 셈.

     

     옛날 동화나 소설, 영웅 이야기로 치면 무능왕을 죽였으니 이야기는 끝나야 정상이지만, 아쉽게도 이 갈라진 시체는 나에게 있어 끝이 아니었다.

     “곤란하군요.”

     “…무엇이?”

     “이렇게 머리만 남은 채로 있어서야, 사람들에게 알릴 때 조금 곤란해질 것 같아서.”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 낸 세인트/지오를 가리켰다.

     “이런 걸 효수하면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너무 잔인하게 죽였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 거고, 동생들이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음. 그건 안 되지.”

     “효수는 포기하죠.”

     “아쉽군.”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싫은 것 같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내 의견을 귀담아들었다.

     “…베지 말고 그냥 찍을 걸 그랬나.”

     아버지는 무능왕을 ‘세인I트지오’로 만들어버릴까 생각도 한 것 같지만, 아마도 조금 전에 아버지가 휘두른 검은 무의식중에 벤 것일 터.

     ‘제일 빨랐지.’

     아버지가 지금까지 휘둘렀던 검 중에서 가장 빨랐다.

     현재뿐만 아니라, 회귀 전보다도 더 빨랐다.

     어느 정도로 빨랐냐고 한다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회귀 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베었던 순간보다 더 빨랐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는 하지만, 그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는 법인가.’

     과거도 지금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아버지에게 죽었다.

     차이가 있다면 회귀 전에는 왕국 광장까지 개처럼 끌려와 아버지에게 직접 처형되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황금 신전에서 황금룡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죽었다는 것.

     “나리아 여왕. 즉위식 말입니다만, 연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기…?”

     “육신이 남지 않은 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나는 모처럼 준비한 석관의 텅 빈 내부를 가리켰다.

     “원래는 저희가 여기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안치하려고 했잖습니까?”

     “그랬죠.”

     “순순히 시체만 남기고 떠났다면, 그 시체를 이용해서 저희가 장례식도 치르고 대관식도 진행할 수 있었죠.”

     “내 잘못은 아니다.”

     아버지가 퉁명스레 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는 적당히 토막을 내려고 했고, 그걸 나중에 기사들을 동원해서 짜 맞추려고 했다. 그게 저것이 멋대로 몸을 황금으로 재생하고 복구하기를 반복해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런 것 치고는 생각보다 좀 얇게 저미셨잖습니까?”

     “사람을 상대로 저민다는 표현을 하다니. 내가 그런 잔인한 자로 보이느냐?”

     “조절하셨으면서.”

     나는 보았다.

     아버지가 세인트 지오가 자신의 육신을 황금으로 뒤바꾸며 버티는 순간, 바로 ‘잘됐다’라는 듯이 웃으며 검을 휘두르는 것을.

     

     심지어 재생되는 부위보다 정확하게 수 cm 정도 베어나갔고, 나중에는 1cm보다 더 좁은 폭으로 베어내었던 것도 전부 다 봤다.

     잔인하다고 하면 잔인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복수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10년 전-

     ‘생각하지 말자.’

     이미 죽었다.

     역사에서 지우기로 한 만큼, 그런 일은 이제 ‘없었던 일’이 될 뿐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

     우리가 어떻게 발표하고 기록에 남기느냐에 따라 진실은 달라질 것이며, 온 세상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의심하는 자가 있다고 해도, 진실을 어떻게 파헤치겠는가?

     당사자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협박하지 않는 한.

     이 시간 끝, 황금 신전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은 오로지 황금룡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이게 어디 중계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경룡장에서 마법의 힘으로 어딘가로 그 장면들이 화상으로 송출된다거나, 영상 마석 등으로 기록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물리적인 시간 자체는 이곳이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계속 이렇게 멀뚱멀뚱 있을 수는 없으니 빨리 돌아가도록 할까요.”

     나는 황금 신전의 출구 방향을 가리켰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확실하게 ‘부패 처리’를 하는 게 나으니까.”

     

     나는 바닥에 흩어진 무능왕이었던 것을 수습한 다음, 그대로 회색의 석관 안에 집어넣었다.

     “빨리 가시죠. 황금룡이 자비를 베풀어 한 번의 기회를 더 준다거나,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기적과 권능으로 이렇게까지 잘렸는데도 되살아난다거나 하기 이전에.”

     “뭘 하려는 것이냐?”

     “이미 효수를 해서 사람들에게 공표하기에는 글렀으니….”

     시신이 지금과 같은 온전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가벼운 처리를 할 뿐이다.

     “봉인해야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 * *

     파ㅡ앗.

     석관을 들고 시간 끝에서 빠져나온 순간.

     “도련님!”

     “상황종료.”

     이미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버트 경이나 멘테 경을 비롯하여, 지브롤터 기사단 대부분이 검을 겨눈 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은?”

     “…그게.”

     “도련님!!”

     밖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카를로스 경이 막 방문 앞에 헉헉거리며 도착했다.

     “위험은-”

     “상황종료.”

     “어….”

     “마법의 힘 덕분에 정리되었으니, 진정해도 돼.”

     내가 석관을 챙겨 밖으로 나오고 난 뒤.

     “…어?”

     “왜 그러지?”

     아버지가 나리아를 공주님처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

     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평소라면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기도 했고, 저렇게 안고 있는 사람이 어머니나 딸들이 아닌 나리아 여왕이었으니까.

     “…….”

     물론, 나리아는 지금 지친 채로 잠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품에 머스킷을 꼭 끌어안은 채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게 조금 겉으로 보이는 게 이상한 느낌도 있었기는 했지만, 지금의 나리아는 기사들이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출 정도로 곤히 자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마법을 이용해 나리아를 습격했고, 아버지와 내가 판 함정에 걸려 사망했다.”

     나는 석관 안을 가볍게 두드렸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흘러나온 진한 피 냄새에 기사들은 바로 표정이 굳었으나, 나는 그들에게 내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트라우마 생기게 둘 수는 없지.’

     인간은 망각의 축복을 받은 존재라고 해도,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기억은 계속 떠오르는 법이다.

     세로로 갈라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머리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가지는 걸로 충분하다.

     굳이 애써서 다른 이들에게 역겨운 걸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까.

     “…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죽은듯하다.

     ‘혹시라도 막 안에서 황금이 기생충처럼 뻗어 나오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네.’

     간혹 오염지대에서 흘러나오는 마수 중에 그 뱃속에 기생충들이 들끓는 이들이 있었다.

     혹시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도 잘린 머리에서 황금이 벌레처럼 돋아나오며 그게 합체하나 싶기도 했지만, 아직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척하고 있는 건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무능왕이기는 해도, 도망치고 살아남는 것 하나만큼은 마스터 급이다.

     어쩌면 지금도 의식은 살아있을 수 있지만, 내가 다시 어떻게 뭔가를 할까봐 반으로 갈라져 죽은 채로 살아있는 걸 수도 있다.

     ‘큐브 조각처럼 잘게 썰게 아니라면, 오랜만에 그 작업 좀 하겠네.’

     회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어이 그 방법을 동원할 때가 되었다.

     “그러면….”

     “그레이!!”

     문밖.

     “하아, 하아, 하아…!”

     아스타시아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이전에 다른 기사들이 달려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아스타시아는 거칠어진 호흡으로 방까지 달려왔다.

     “어떻게 된….”

     “다 끝났습니다. 끝은 났는데, 뒷정리가 조금 남아서요.”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했다.

     “이것만 처리하면 되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레이.”

     아스타시아가 나를 위아래로 훑은 다음,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10년도 넘게 기다려 왔는데, 하루 이틀이라고 더 기다리지 못할 게 뭐 있겠어요?”

     어쩌면.

     무능왕이 죽은 이유는 저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아스타시아. 그러면….”

     나는 석관에 달린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은 뒤.

     “기사단 전원. 삽을 들고 나를 따라오도록.”

     방을 나선 다음, 비행선의 밖으로 나갔다.

     협곡에서, 왕국이 아닌 제국 방향으로.

     * * *

     휘이잉.

     바람이 분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국의, 대륙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다.

     죽은 이를 향한 엄숙한 애도의 바람?

     

     글쎄.

     나리아가 성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 바람은 폭풍이 되어 대륙 전체를 휩쓴 황금룡의 저주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리아가 성인이 되었기에, 현재 ‘노스트럼에는 한 명의 성인 왕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는 저주 발생 회피 조건이 충족되었다.

     그러니.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태양은 필요 없는 법.”

     나는 활짝 열린 관문의 철도를 따라 석관을 쭉 밀었다.

     아래에 금방 달아둔 바퀴 덕분에 석관은 가볍게 철도를 따라 굴러갔다.

     안에서 덜컹거리는 느낌이 나기는 했지만, 석관 뚜껑은 굳게 닫혀있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도련님.”

     

     로버트가 내 뒤로 따라붙었다.

     “제가 밀까요?”

     “아니. 내가 직접 해야지.”

     “그래도 이 무거운걸….”

     “어허.”

     

     로버트가 손을 거들려고 했지만, 나는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망령이 씌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예에?”

     “유령이 되어서 막 몸에 빙의한 다음, 로버트 세인트가 되어버리면 어쩌려고?”

     “지, 진짜로 그렇게 되는 겁니까?”

     “모르지.”

     “…….”

     “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이렇게 여기까지 나온 게 아닌가.”

     

     휘이잉.

     바람이 분다.

     흙먼지의 냄새와 함께, 아무리 갈아엎어도 지워지지 않는 이 대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10년 전, 기억하나? 여기에서 아버지가 오크들을 무참히 썰어버렸던 거.”

     이곳은 제국의 땅.

     “이곳에는 오크들의 피뿐만 아니라, 지브롤터 관문을 넘지 못해 죽었던 수많은 제국군 병사들의 피가 500년에 걸쳐 쌓여있지.”

     노스트럼의 땅이 아닌, 지브롤터 협곡이라는 황금룡의 수호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곳.

     “나는 이 관을 노스트럼 대륙에서 가장 먼 곳, 대륙의 끝에 봉인하려고 하네.”

     “제국 땅이잖습니까.”

     “그렇지.”

     구구구.

     하늘, 저 멀리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다.

     “역시.”

     “저건….”

     “합스베르크 황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나.”

     제국의 하늘에서 황제의 군청색 비행선이 날아오고 있다.

     “…첩자가 있었을까요?”

     “협곡 관문 위에다가 떡하니 황금의 비행선을 올려뒀으니, 아마 이곳에서 뭔가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괜찮….”

     비행선에서 뭔가가 반짝였다고 생각한 순간.

     “그레이, 지브롤터.”

     “…….”

     

     석관의 바로 앞, 합스베르크 황제가 착지했다.

     “이것은, 역시 그자의 관인가?”

     “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습니다.”

     “…역시.”

     황제는 제국식 성호를 그리듯, 관을 향해 묵념했다.

     “부디, 영면에 들기를.”

     공감이다.

     조만간 형식적으로라도 장례식을 치를 건데, 그 자리에서 황금이 솟아나며 ‘나는 부활했다!’라고 하는 것만큼 민폐가 또 없으니.

     ‘죽음은 인간의 완성이다.’

     황제의 지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추하고, 무능하고, 역겨운 인간으로 기록되고 끝맺음을 맺으리라.

     “그래서, 이 관을 굳이 이쪽으로 가져오는 이유는?”

     “부정탈까봐 걱정되십니까?”

     “은폐하고 묻는 거라면,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둘 수 있지.”

     “노스트럼에서 가장 먼, 황금룡이 연민이라도 줄 수 없는 가장 먼 곳에 묻으려고 합니다.” 

     “바다를 통해서 나가려고?”

     “…해류를 타고 다시 노스트럼에 돌아올 수 있으니, 영영 움직이지 못하게 땅에 묻어야겠죠.”

     나는 관 속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 어떤 기적도 닿지 못하게, 물건을 좀 구해다 주셨으면 합니다.”

     “물건이라, 무엇인가?”

     “백은.”

     “…….”

     합스베르크 황제가, 씩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꿈속에 빠져서 평생 닿지도 못할 환각 속에서 살아가라?”

     “아니요. 이 관을 가득 채울 백은이 필요합니다.”

     “……..”

     합스베르크 황제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호오….”

     마치,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그것은….”

     “그리고 석회암이랑, 물이랑,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습니다.”

     “…도대체 뭘 하려고?”

     “반죽하고, 굳힌 다음.”

     나는 관 안쪽을 다시 한번 두드렸다.

     “이 안쪽까지, 다 채워버릴 생각입니다.”

     “…….”

     “노스트럼 국왕의 시신을 제국 땅에, 심지어 관 안에도 제국의 백은과 진흙을 잘 개어 부어 굳힌다. 그 어떤 황금도 닿지 못하게.”

     고인 능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알려지면, 자네는 역사에 없을 왕족 모독을 저지르는 거야.”

     “그렇습니까?”

     상관없다.

     “역사가 어떻게 판단하든, 저는 옳은 일을 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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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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