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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녹색 달은 끝없는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 어둠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이었다.

    모든 것이 부스러져 가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악몽이었다.

    보라색 달의 죽음과 항거할 수 없는 진화액의 범람.

    진화액에 녹아내리는 밀림 속에서 구원을 바라는 인간들.

    그리고 도망간 끝에 도착한, 진화액이 닿지 않는 우주.

    성벽처럼 솟아오른 나무들은 진화액에 녹아서 쓰러졌고, 사람들을 지켜주던 밀림의 야수들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녹색 달에게 소원을 빌었다.

    진화액을 먹어 치우는 대자연을 염원했다.

    하지만 녹색 달에 바쳐진 그 어떤 염원도 진화액 앞에 무력했다.

    그래서 녹색 달은 도망갔다.

    자신의 주민들을 버리고, 권속 대부분을 미끼로 남기고, 다른 달들마저 버리고.

    잊힌 신의 피와 살을 모방한 ‘진화액’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우주로 향했다.

    하지만 우주로 향한 녹색 달은 의식을 잃고 끝없는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인간의 염원, 그리고 옛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버린 녹색 달은 그렇게 잠들었다.

    그것은 신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 주기 전까지 결코 깨어날 수 없는 감옥이었다.

    녹색 달은 그 끝없는 악몽 속에서 백번 천번 만번 생각했다.

    녹색 달 자신의 실수를.

    풍요로운 밀림.

    생명의 땅.

    사람들의 소망을 이어 붙인 은혜로운 자연.

    그것들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소망을 통해 달성한 다양성은 쓸모없었다.

    필요한 것은 진화액 같은 단순함과 강력함이었다.

    [하나 된 생명이 필요해.]

    [모든 것을 엮은 군체가 필요해.]

    [권속과 주민과 달이 모두 하나여야만 해.]

    녹색 달은 끊임없이 후회하고 되뇌었다.

    그렇게 새로운 형태의 미래를 끊임없이 꿈꿨다.

    도대체 몇 번이나 악몽이 되풀이된 것일까.

    어느 순간, 녹색 달의 의식이 죽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회색 신의 손길이 녹색 달에게 닿았다.

    ***

    티라노가 경비행기만큼 빠른 속도로 밀림을 질주하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과도한 움직임으로 뼈마디가 분질러지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검은 사신 외골격의 힘으로 이루어 낸, 미니 사신을 구하기 위한 고속 돌진이었다.

    나는 그런 티라노 위에서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색이 이상해.’

    우주에서 봤던 정거장의 녹색 달은 정말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었는데.

    지금 밀림에 떠오른 달은 진화액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암녹색이었다.

    지저분한 녹색의 달이 떠오르자, 밀림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기포를 내뿜으며,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가스를 내뿜으며 액체로 변하고 있었다.

    설마?

    나는 검은 사신 갑옷의 일부를 뜯어서, 다급히 티라노를 내려다보았다.

    ‘안!!! 돼!!!’

    외골격을 열어서 확인해 보자, 내 멋진 티라노가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 꿈이.

    내 소원이.

    내 미래가.

    사악하고 간악하고 비열한 녹색 달에 의해서 녹아내렸다.

    ***

    원래 밀림의 달은 생명을 가득 품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언제나 에메랄드처럼 맑은 녹색으로 반짝거렸다.

    달빛은 밀림 속의 어두운 그림자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색으로 덧칠했고, 밀림의 생동감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밤마다 밀림을 부드럽게 품어주는 녹색 달은 정말 평화롭고 고요한 느낌이었다.

    이제 예전과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어떤 의지를 내비치지도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싸움을 싫어했던 상냥한 녹색 달다웠다.

    하지만 지금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녹색이었지만, 그 색은 썩어가는 것처럼 칙칙하고 불길한 느낌을 풍겼다.

    마치 독성이 있는 것처럼 섬뜩한 기운.

    저 달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되고 악몽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모든 생명의 탄생을 보여주었던 달빛은 이제, 모든 생명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이잉….”

    밍밍이는 슬픈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통한 울음소리로 녹색 달을 불렀다.

    하지만, 녹색 달은 여전히 밍밍이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녹이고 썩게 만드는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주르륵.

    달을 올려다보는 밍밍이의 황금색 눈동자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마치 피눈물처럼.

    그런 밍밍이의 몸을 뼈로 만든 날카로운 창이 잔뜩 관통해 있었고, 그 상처는 끓는 것처럼 부글부글 녹아내리고 있었다.

    쿵.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녹색 달의 새로운 권속이 다가왔다.

    그 발소리에 밍밍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달에 닿을 것처럼 높게 솟은 머리.

    온갖 생물의 뼈를 아무렇게 이어 붙인 기괴한 팔다리 수백 개.

    종양처럼 아무렇게나 부푼 살덩어리가 찢어지면서, 그 팔다리를 타고 흐르는 암녹색 점액.

    그 점액이 지면에 닿자, 밀림이 녹아내린 점액과 섞이면서 부글부글 끓었다.

    마치 전염병처럼 암녹색 점액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렇게 지면을 흐르는 점액 위로 수많은 생명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거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점액은 모든 생명의 종착점이었다.

    새로운 녹색 달이 바라는 세계는 모든 생명이 저 점액이 되어버린 세계겠지.

    하지만 밍밍이는 그런 세계를 보고 싶지 않았다.

    “미잉….”

    밍밍이는 뒤를 돌아서 여자를 향해 작게 울었다.

    ‘미안해.’

    살려고 필사적이었던 인간들을 포기하고 떠나서 미안해.

    그러니까!

    “미이잉!”

    밍밍이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밍밍이의 한쪽 팔은 이미 잘려 나갔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지키고자 마음먹었다.

    이번만큼은.

    적어도 저 여자만큼은.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커다란 소리가 밀림 속에 울려 퍼졌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온갖 생물의 뼈로 만든 커다란 뼈 말뚝이 밍밍이의 몸을 지면에 못 박아버렸다.

    마치 파리를 잡는 것처럼, 손쉽게.

    “미… 이… 잉.”

    황금색 눈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깜박였고, 그와 동시에 지면에서 수많은 새싹이 싹을 틔웠지만.

    새싹은 점액에 닿는 족족 모두 녹아버렸다.

    밍밍이는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으로 여자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밍밍이의 의식은 내뱉지 못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

    나는 티라노를 타고, 녹색 달의 존재감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공터에 도착했다.

    고오오!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밀림이 녹아내린 점액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기괴한 괴물.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거대 모스 볼.

    그리고 그 모스 볼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생존자.

    그리고 암녹색의 점액이 늪지대처럼 펼쳐진 벌판 위로, 인공물이 확실해 보이는 하얀색 외벽이 드문드문 보였다.

    난장판이네.

    그래도 생존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밀림 속에는 인간의 흔적이 거의 없어서, 너무 늦게 왔나 싶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티라노 위에서 뛰어내렸다.

    시선을 돌려 티라노를 확인해 보니, 티라노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검은 사신 외골격만이 뛰어다니는 상태였다.

    ‘티라노, 내가 복수는 꼭 해줄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정면의 괴물을 주시했다.

    그 괴물은 척 보기에도 해로운 오브젝트였다.

    아니, 괴물뿐만 아니라 녹색 달도 해로운 오브젝트가 되어버렸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붉은 외신의 정신 오염적인 의미로 해로운 것이 아니라, 존재 의의 자체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미 밀림은 거의 전부 녹아내린 상태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꿈틀 움직이는 살아있는 액체가 되어버렸다.

    왠지 곰팡이 덩어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기분 나쁜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다만 우주 정거장의 생존자로 보이는 여자의 주변은 녹지 않았다.

    여자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새싹들이 자라나면서 힘겹게 점액의 침공을 막고 있었다.

    그 새싹의 근원은 여자의 근처에서 피를 흘리는 거대한 녹색 덩어리였다.

    황금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점액을 해치고 여자와 모스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어버릴 것처럼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에게는 마구 달라붙어서 정신적 안정을 주려고 노력했다.

    ‘힘내!’

    죽어가는 모스 볼에게는 다가가서 장작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밀림에 있는 모든 생명을 빨아들인 괴물이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어느새 숲은 온데간데없고, 검게 썩어버린 지면 위를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커다랗고 기괴한 괴물과 녹색 달을 한꺼번에 시야에 넣었다.

    미니 사신들이 아프니까, 빨리 끝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사용했다.

    <생명의 고리를 끊는다.>

    음….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

    녹색 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새로운 권속은 회색 사신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약해.’

    녹색 달의 기억 속에도 오래전에 잊힌 신의 모습은 없었지만, 그 강력함만은 전해지고 있었다.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거인.

    모든 오브젝트의 근원.

    모든 염원의 주인.

    세계의 규칙.

    하지만 새롭게 나타난 회색 신은 너무나 작고 약해 보였다.

    저런 약한 신이라면, 녹색 달처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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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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