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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아이비 섬에 도착한 마왕군은 곧바로 폭격을 퍼부었다.

       

       작약탄, 고폭탄, 소이탄이나 백린탄. 탄이란 탄은 전부 쏟아부으며 상천의 연구소를 유린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길라흐는 아무리 폭탄을 떨어뜨려도 성에 차질 않았다.

       

       ‘원자탄을 낭비한 게 흠이란 말이죠.’

       

       원자탄.

       

       마왕에게 받은 흑주를 초반부에 다 써버린 것이 실책이었다.

       

       ‘그렇게 손맛이 좋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으흐흐흐!’

       

       정말이지, 그처럼 물건인 게 없었다.

       

       조금이라도 전선이 교착 상태에 보인다? 

       

       툭, 하고 떨어뜨려 주면 엘프들이 교성을 지른다. 도미노처럼 박살 나는 전선을 보면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라흐에게 원자폭탄은 마약과도 같았다. 한 번 효과를 본 뒤로는 써도 써도 계속 써 버리고 싶은 요물.

       

       상천이라는 존재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만들어낸 발명품은 경외하며 뻥뻥 쏴 재끼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섬에 타격이 별로 없군요.”

       

       예상과는 달리 아이비 섬의 저항이 완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벌써 수십 톤에 달하는 폭약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비명은커녕 신음 한 번 새어 나오지 않았다.

       

       무인도처럼 적막한 분위기.

       

       길라흐의 부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섬 내부를 정탐했다. 

       

       “각하, 내부 상황이 보기보다 양호합니다. 파손된 가구도 두 채에 그치고, 전소된 섹터 하나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만한 폭약을 들이부었다.

       

       피해가 없을 리 없다.

       

       “아무래도 전부 대공망에 막힌 모양입니다.”

       “대공망? 대공망이라고?” 

       

       저런 자그마한 섬에 그만한 대공망을 뿌려 두었단 말인가?

       

       왜? 언제? 어떻게?

       

       “…아니, 그럴 법도 한가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처음부터 이 섬은 그녀가 갖춘 최후의 보루였다.

       

       일부러 한적한 곳을 선택해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새로운 연구를 하려던 게 분명했으리라.

       

       잔머리 하나는 비상하다만, 그래봤자 잔머리 아닌가.

       

       근본적인 무력 싸움을 두고 학문만 한 나부랭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보아하니 엘프 사회에 잘 녹아든 모양이군요. 이런 곳에서 잘도 바캉스를 즐기다니.”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뻔하지요.”

       

       길라흐는 손을 슬쩍 들었다. 폭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이었다.

       

       “고속정 한 척을 따로 빼 두십시오. 제가 직접 선수에 가서 그년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준비된 소형 함선을 타고 섬으로 향한다.

       

       설령 저쪽에서 반격해 오더라도 문제는 없다.

       

       자신은 호천씩이나 되는 존재. 고속정이 침몰하더라도 뭍에 올라가 섬의 모두를 갈고리로 도륙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지금 길라흐에겐 그런 사소한 신변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으흐흐흐.”

       

       오랜만에 상천의 면상을 볼 생각에 싱글벙글해진다.

       

       “배신자 년은 당장 나와라!!”

       

       섬 코앞까지 다가간 길라흐는 목에 힘을 주어 소리쳤다.

       

       얼마 후 남쪽 절벽에서 여러 사람의 신형이 나타났다. 시력이 좋은 길라흐는 그들을 보자마자 입매를 샐긋 비틀었다.

       

       검은 꽁지머리에, 작열하는 금빛 눈동자.

       

       오랜 연구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인지 눈동자는 탁하게 풀려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삐쭉거리는 것을 넘어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곱다. 창백한 얼굴이 짙은 눈그늘과 대비되어 병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상천의 에테르.

       

       그녀가 길라흐와 눈을 마주친다.

       

       두 사천이 대치하는 순간이었다.

       

       

       **

       

       

       과거, 대규모 전투를 치를 땐 먼저 사령관끼리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서서 신경전을 벌이는 의례가 있었다.

       

       화력전, 총력전이 대세인 현대에선 사라진 풍습이다. 그런 허풍을 떨 시간에 포탄 먼저 쏘는 놈이 이긴다.

       

       하지만 적으로 만난 두 사령관 모두 1천 년 전 사람이라면 어떨까.

       

       “으흐흐…. 오래 못 살 것 같은 면상이군요. 천하디천한 정령 놈들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죠?”

       “…여전히 말하는 게 좆같구나, 호천.”

       

       옛날의 관습이 부활한다.

       

       상천과 호천. 두 마수는 불과 수십 미터 거리를 두고 입이라는 무기를 날카롭게 벼리며 외쳤다.

       

       마왕군에 있었을 때도 앙숙이었던 두 사람이니만큼 오고 가는 대화도 매서웠다.

       

       “부모도 신원도 없는 천성 버러지 년이 어찌 사천의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군요. 뭐, 그런 점을 생각하면 지금 그 자리가 딱 맞는 자리겠죠. 으하하하하하!!”

       “있던 부모도 버린 자발적 고아 주제에 아가리만 살았구나. 네놈 삶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걸 정녕 모르느냐?”

       

       시작부터 살벌한 예기가 감돌았다.

       

       다들 목이 뻣뻣해지고, 팔다리는 후들거린다. 두 사천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았다.

       

       절멸급 마수가 지니는 고유의 스킬. ‘위압’ 때문이었다.

       

       “멍청한 엘프놈들아, 잘 들어라! 저년은 이미 한 번 우리와의 관계를 배신했다! 반골의 상이야!”

       

       “저놈은 옛날 대전쟁 시대부터 남들 뒤통수치길 밥 먹듯이 했다. 직장 동료가 거지 같아서 퇴사한 게 본관의 잘못인가?”

       “가까이 두면 너희도 배신당하게 될 거다!!”

       

       길라흐의 도발은 분명한 억지였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었다.

       

       “저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한 다경에 달하는 동안 이어진 말싸움 끝에, 에테르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장관님!”

       “각하!”

       “각하, 괜찮으세요?”

       

       그 장면을 본 길라흐도 적잖이 놀랐다.

       

       첫째.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멀쩡했으니까.

       

       둘째. 그녀가 뱉어낸 피는 검은색이 아닌, 인간이나 엘프처럼 붉은색이었으니까.

       

       “…뭐 하는 년이죠?”

       

       피를 한 움큼 게워낸 뒤 들것에 실려 가는 상천.

       

       저게 자신과 같은 사천이었다니, 헛웃음만 나온다.

       

       어쨌든 말싸움에선 이겼다. 더는 두려워할 게 없었다. 길라흐는 손짓하며 부하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내리려고 했다.

       

       “각하, 뭔가 이상합니다.”

       

       난데없이 발목을 잡은 부관. 짜증이 솟구친 길라흐는 갈고리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유를 물었다.

       

       “그야, 상천 아닙니까? 말싸움만으로 저리 쉽게 각혈할 리 없습니다.”

       “필히 숨겨두었던 고질병이 있었던 거겠지요. 무얼 그리 깊게 생각합니까?”

       “우리 같은 기계에게 병환이 있던가요?”

       “철화의 축복을 받았다고는 해도, 병은 병. 반쯤 생명체인 이상 수명도 서서히 닳아가는 법이죠.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마수라고는 해도 무적인 건 아니다.

       

       플레어에 맞으면 죽고, 정령에게 당하면 죽고, 예상치 못한 병환으로 녹슬어 죽을 수도 있다.

       

       사천쯤 되면 그런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저 천한 년은 본래 사천의 자격이 없지 않았나?

       

       한낱 약하디약한 금안에 불과할 뿐이다. 

       

       “그 말인즉, 마왕님의 패도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씀이신지요?”

       

       “……?”

       

       비릿하게 웃으며 침공을 준비하려고 했더니, 부관이 또다시 태클을 걸어온다.

       

       “제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말헀겠습니까?”

       “아니겠지요. 다만, 전 상천도 일단은 마왕님께서 점지하셨던 인물이니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당부드리고 싶었습니다.”

       

       길라흐는 그 말에 버럭 화내려다가 말았다.

       

       “…그래요.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요.”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섬에 쳐들어가 벌집 들쑤시듯 파괴하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사소한 실수 때문에 다 잡은 걸 놓치거나, 함정인 줄 모르고 들어가서 도리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하루만 기다려 보십시오. 만약 중병이라면 저 섬의 시설과 도구만으로는 부족할 터. 필히 인근의 대도시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거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요.”

       

       길라흐는 공격하는 대신 포진을 변경하도록 명령했다.

       

       아주 약간의 틈을 제외하고는 섬을 군함으로 에워싸고, 마수 수십만 마리를 상시 대기시켜 놓았다.

       

       만일 만들어 둔 틈새 사이로 도망치려 한다면….

       

       ‘그날이 당신 제삿날입니다. 으흐흐흐.’

       

       

       **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잘 들어맞았다. 에테르는 공계마도의 도움을 받아 길라흐가 열어 둔 퇴로로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팔정도 제3식(式) ─ 테슬라(Tesla)]

       

       치지직!

       

       콰콰쾅─!!

       

       ‘아프다는 건 전부 구라였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만한 마법을 연달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에테르는 가는 길목마다 이상한 물질을 뿌린 뒤 팔정도를 사용했다. 그 주변에 금빛 전류가 감돌며 폭쇄하기 시작했다.

       

       기뢰처럼 터져 나가는 전격. 처음 보는 유형의 포술(砲術)이다. 천하의 길라흐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맞으면 아프기 때문은 아니었다. 상처는 고유마도로 금방 치유할 수 있었다.

       

       “으억…!”

       

       그보다는 자존심이 상한다.

       

       저런 열등한 년에게 한 대라도 유효타를 허용한다는 사실이.

       

       분하고 분하고 또 분해서, 이마에 실핏줄이 설 정도였다.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다…!’

       

       “섬에 있는 포위 병력은 그대로 두도록! 저년은 내가 쫓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각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놈의 함정은 무슨! 저 정도로 재빠르게 도주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원군을 요청하러 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토벌하지 못하면 골치 아파진다.

       

       엘프들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깊숙이, 더욱더 안쪽으로 들어가겠지.

       

       결국 죽을 운명이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창천이나 민천이 쓰러뜨렸다가는 아무것도 안 남는다.’

       

       마왕님께선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모든 해군을 인솔하게 했으면서, 배신자 년의 목 하나 제대로 가져오지 못한다면 돌아가서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금안족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시대가 열리더라도 받아먹을 수 있는 콩고물이 적을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배당금은 무조건 커야 한다.

       

       그래, 고명한 하이엘프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길라흐는 이를 악물며 도망치는 에테르 일행을 홑몸으로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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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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