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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황태녀씩이나 되는 분이 그런 복장을 하고 계십니까?”

        

       “보자마자 시비 거는 거야?”

        

       아직 오픈은 하지 않았는지 교실 안은 다소 어수선했다.

        

       그래도 책상과 의자는 학생들이 쓸 것을 제외하면 전부 치웠고, 일반적인 카페에서 쓸법한 둥근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두어서 꽤 그럴싸해 보이긴 했지만, 식자재들이나 도구들이 아직 몇 개 남아있는 책상 위에 쌓여있었다.

        

       그러면서도 애들은 전부 종업원 스타일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메이드 카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나뿐일지도 모른다. 이쪽 세계에서 메이드와 여종사원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으니까. 다만 높으신 분들 옆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야 하는 메이드 쪽이 조금 더 정숙한 옷을 입은 경우가 많을 뿐.

        

       검은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하고 있으면 그게 메이드복이니 시대상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 것이긴 했다.

        

       “문화제잖아. 어차피 즐기려고 입고 있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리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은 듯, 앨리스는 곧장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럴 때가 아니면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해볼 일이 없잖아. 애초에 황족인 우리는 둘째치고, 여기 있는 애들은 죄다 귀족가 애들이니까.”

        

       무슨 서민 체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굳이 여기 있는 애들이 귀족가 자식들이 아니더라도, 실제 고등학교 문화제에서 종종 돈을 받고 뭘 파는 일은 있으니까. 대학교쯤 가면 전을 팔기도 하고. 하루 이틀 직업 체험을 한다고 보면 되려나.

        

       물론 그런 체험을 한다고 해서 뭐 대단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기 있는 애들은 귀족이니까. 찾아온 모든 사람이 귀족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귀족 집 애들이라고 인식하면 평범한 가게에 왔을 때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

        

       “…….”

        

       하지만 그래도 묘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정작 그렇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 자신도 모르겠다. 내가 황녀로서 무슨 대단한 자부심이 있어서 그 위치에 먹칠할 일에 화를 낼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이미 앨리스와 함께 바니걸 복장까지 입었었는데.

        

       “그래서, 안 입을 거야?”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버린 나를 보며 앨리스가 물었다. 조금 전에 나의 말에 반응했을 때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뭐, 정 입고 싶지 않으면 입지 않아도 괜찮아. 문화제 참석은 자유니까. 너는 이미 아침부터 고생하고 내려왔고.”

        

       “…….”

        

       약 올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라서,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몹시 켕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주변 애들이 죄다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물론 황태녀인 앨리스가 이미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고, 그러니 지금 상황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의를 제기한 쪽이 바로 그 아래 있는 제국의 이인자였으니까. 긴장할만하지.

        

       만약 여기서 내가 메이드복 입는 것을 거부하고 몸을 돌려버리면 문화제 내내 분위기가 착 가라앉게 될 거다.

        

       “……아뇨, 입겠습니다.”

        

       분위기에 떠밀렸다기보다는, 뭐랄까, 인제 와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미묘하게 거부감이 있었고, 나도 그 거부감이 어디서 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좋아, 그럼.”

        

       앨리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긴장한 채 내 쪽을 보고 있던 애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멈추어 섰던 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교실 안에 다시 활기가 찾아왔다.

        

       “쨘!”

        

       그리고 옆에서 마치 내가 당연히 입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서 있던 클레어가 나에게 바로 메이드복을 들이댔다.

        

       전통 메이드복— 이 디자인이 진짜로 ‘전통’인 건지 아니면 그냥 서브컬쳐 쪽에서 굳어진 이미지가 그럴 뿐인 건지는 보는 나도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아무튼 오타쿠들이 보통 ‘메이드복’ 하면 떠오르는 흑백 조합의 전통 메이드복이었다.

        

       “메이드복은 전부 예산으로 구매한 겁니까?”

        

       “응? 아니? 빌린 건데?”

        

       “여기 귀족반이야. 이런 옷은 구하려면 얼마든 구할 수 있는 애들이라고.”

        

       아, 그러네.

        

       자세히 보니 전부 같은 디자인은 아니었다. 대체로 깨끗한 상태에 비슷한 디자인이었지만, 어깨의 튀어나온 부분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든지, 앞치마에 달린 레이스 부분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든지, 아무튼 한 곳에서 전부 만든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혹시 레이스 부분이 조금 작은 것은 없습니까?”

        

       클레어가 나에게 보여주는 옷은 어깨 부분의 레이스가 좀 컸다. 잘하면 볼도 가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그래서인지 더 코스프레 같았고.

        

       “응? 아, 언니 건 사이즈를 특별히 따로 빼둔 거라서 이것밖에 없는데…… 내가 물어볼까?”

        

       “……아닙니다. 그냥 입도록 하겠습니다.”

        

       클레어의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을 꾹 참은 채 옷을 받아들였다.

        

       *

        

       내가 메이드복을 입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는 곧 밝혀졌다.

        

       바니걸 복장을 했을 때는 사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부끄러워도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다시 볼 일 없다고 생각해서 용감해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앨리스가 먼저 바니걸 복장을 하고 있었고, 내가 입지 않으면 앨리스 혼자 그 복장으로 잠입하게 될 것이 뻔하기도 했다. 그 상황을 어떻게든 넘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입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 분위기에 떠밀려 억지로 입게 되었다는 점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황녀님.”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조금 전 홍차를 받은 귀족은 내 기억에도 있는 귀족이었다.

        

       주로 ‘환상 속 세상’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

        

       원래의 시간대에서 나는 무도회나 연회에 자주 나가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들과 친교를 다지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는 얼마든 빼돌릴 수 있었고, 수틀리면 암살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환상 속에서는 황제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고, 그 방법이 바로 내가 구축했던 ‘그레이스 가의 흑백합’이라는 이미지였다.

        

       사실 내가 그런 별명을 원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새 그런 별명이 붙어있었을 뿐.

        

       백합이면 백합이지 또 흑백합이 뭐냐고. 아무리 백합의 백이 하얗다는 뜻이 아니라고 하지만 너무 뻔뻔한 별명 아니냐고.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공작은 내가 그때 말을 걸었던 중년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고위 귀족답게 나를 여자로 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에서 명백하게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메이드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음?”

        

       게다가, 그렇다.

        

       그날 여신의 힘이 깨지면서, 사람들은 묻혀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간 기억, 혹은 이전 기억들과 겹치는 기억일 뿐이라 거의 잊었을 것이고, 설령 특이한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꿈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황녀였을 때 흑백합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면 또 모를까, 그 환상 속의 세상에서 나는 그레이스 가의 딸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가 혼자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공작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황녀에게 ‘혹시 남작가 태생은 아닙니까?’같은 질문은 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내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건 고위 귀족들 사이에는 공공연하게 퍼진 이야기일 거고.

        

       황제의 아이들에게 정말로 황제의 피가 섞였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기밀이었다. 혹시라도 그 이야기가 퍼지면 ‘지금 벨부르에 잡혀있는 황가의 후손들을 구해야 한다’라는 명분이 터질지 모르니까.

        

       아마 최종적으로는 제국에서 그 신병을 인도받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비밀은 비밀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럼 저는 다른 손님들 때문에……”

        

       “아, 그렇군요. 붙잡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차는 잘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공작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공작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돌아섰다.

        

       ……그리고,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손님들을 보았다.

        

       죄다 아는 얼굴이었다. 주로 내가 ‘흑백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때 알게 된 얼굴들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래서 내가 메이드복을 입기 싫다고 느낀 거였어.

        

       괜히 말을 길게 했다가 내재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으니까. 워낙 바보 같은 꿈이라서 입 밖으로 굳이 낼 생각이 없던 기억이라도, 혹시 다른 귀족들끼리 말을 맞추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레이스 가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

        

       아, 벌써 피곤하네.

        

       벽에 붙은 시계를 보니 아직 근무 시작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눈앞이 암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오늘……. 너무…… 바빠서…….ㅠㅠㅠㅠ

    다음화는 오늘이 가기 전에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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