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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이사회 사람들은 아나이스에게 변론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포르슈 경을 시켜 그녀에게 재갈을 물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그들은 지금 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진짜 아나이스’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그것은 사냥개 마르스가 부두교 본부에 목숨 걸고 잠입해서 캐낸 것이었다. 그가 가져온 보고서에는 이번 바꿔치기 음모에 대한 상세한 계획이 실려 있었다. 심지어 그곳에는 부두교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비밀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자료의 신빙성에 힘을 더해주었다.

         

       아나이스는 사지를 포박당한 채 그들이 내미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자료는 시네페쿠스의 마도사인 마르스가 조사한 것답게 출처는 대부분 그가 훔쳐 들은 것이었다. 그중 몇 개는 상회 내부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조사 결과,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이 가짜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는 없었다. 만약, 부두교가 마르스의 잠입을 예측했다면, 가짜 계획을 일부러 구성원들에게 퍼트려 놓았을 수도 있었다.

         

       이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경험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충분히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도 고작 그 정도로 그녀를 진짜 아나이스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보다 더 확실한 검증을 거쳤다.

         

       도플갱어는 원본과 같은 기억과 육체를 지녔지만, 단, 하나 ‘핵’이 되는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 몸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정교회의 ‘빛의 말뚝’을 몸에 박아보는 것이었다.

         

       “저는 제 몸 구석구석에 성정을 박아 무고함을 증명해 보였죠.”

         

       이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여인이 당당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안 되는 힘이죠. 하지만 과연 당신에게는 어떨까요?”

         

       그녀가 딱 손가락을 튕기자 대기하고 있던 성직자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그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결박당한 아나이스를 노려봤다. 잠시 움찔했던 그녀는 곧 이를 악물고는 할 테면 해보라는 심정으로 허리를 쭉 폈다.

         

       ‘두려워할 것 없어. 저 녀석이 무슨 속임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백한……아니, 잠깐?’

         

       성직자들의 손에 깃든 빛이 날카로운 형태로 빚어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4개월 전, 그녀의 몸을 치료해준 원더스타인의 마법이 마신의 힘이라면……?

         

       “잠시 기, 기다……아아악!”

         

       성정 십여 개가 그녀의 몸 곳곳에 박혔다. 그 순간, 그녀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통증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굳어있던 이사들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돌았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그녀가 가짜였다.

         

       눈물과 침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그녀 앞에 ‘진짜 아나이스’가 다가와 섰다.

         

       “이제 인정할 마음이 드나요, 도플갱어 씨?”

       “하악, 하악……이, 이건 내, 내 병을 치료해준……그분의 마법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

         

       그녀가 숨을 억지로 쥐어 짜내며 변명을 해보았지만, 상대는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궁색한 변명이군요. 그러면 저는 왜 아무런 통증을 못 느낀 거죠? 그 똑똑한 머리로 해명해보시겠어요, 가짜 아나이스 님?”

       “다, 닥쳐! 가짜는……큭, 너잖아! 진짜는 나야! 내가 진짜라고!”

       “네, 네. 이해해요. 당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을 거예요. 가여워라.”

         

       그녀의 딱하다는 말투에 아나이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쏘아보며 되물었다.

         

       “그게……무슨 말이지?”

       “성직자분들께서 말씀해주셨어요. 도플갱어는 자기가 진짜로 변한 대상 본인이라고 믿는다고요. 그렇기에 더욱더 철저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거죠. 하지만 이제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됐어요. 당신은 진짜 아나이스 베르그송이 아니에요.”

         

       그녀의 선언에 아나이스는 갑자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내가 가짜라고?’

         

       그녀는 다시 내가 진짜라고 주장해보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 것조차 도플갱어의 특성이라니. 그것은 그녀가 그녀 자신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교황청에 이단 심문관을 요청해두었어요. 그분들이 와서 당신은 몸을 낱낱이 해체할 거예요. 그리고 구슬을 찾아내 파괴할 겁니다. 포르슈 경, 그녀를 지하로 데려가세요.”

         

       아나이스는 더 이상 저항할 기력을 잃고 그의 팔에 순순히 끌려갔다. 그리고 밤새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단 심문관들의 손에 그녀가 끌려가는 일은 없었다.

         

       유폐된 다음 날, 집사가 그녀를 구출하러 왔기 때문이다. 영지로 향하는 도중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그가 도중에 발을 돌린 것이다. 그는 전직 군인답게 노련한 솜씨로 경비병들을 제압한 뒤, 그녀를 데리고 도망쳤다. 몇 가지 속임수와 착란을 이용해 간신히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들은 가진 돈도 다 떨어졌고, 추적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기에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비참한 도주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은 항상 유복한 생활을 누려왔던 그녀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정말 진짜일까?’

         

       도주 중 몇 번이나 자살을 고민했던 그녀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집사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가까이서 오래 지켜봐 준 사람이 자신을 믿고 있기에 그녀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나이스는 그가 붕대를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도주 중 포르슈 경이 쏜 총탄에 맞았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할 때를 놓쳐서 상처가 상당히 깊어졌다. 그만한 나이에는 작은 부상도 잘 낫지 않았다.

         

       “할아범, 당신은 왜 내가 진짜라고 믿은 거야?”

         

       아나이스는 지난 3개월간 참았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그럴 경황도 없었고, 그럴 용기도 없어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바텔은 두려움에 찬 그녀의 표정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딱히 증거는 없습니다. 곤란에 빠진 아가씨를 못 본 척하기 힘들더군요.”

       “그게……전부야……?”

       “저희는 함께 비행선을 타고 왔지 않습니까? 거기서 제가 본 아가씨는 진짜 같았어요. 도저히 연기로 보이지 않았죠.”

       “아…….”

         

       아나이스는 안타까움에 하마터면 눈물을 터트릴 뻔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진짜라고 믿고 있던 자신을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아나이스는 교체한 붕대를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차마 그에게 도플갱어는 원래 자신조차 속인다는 것을 알려줄 수 없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구한 자신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그에게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은 감옥을 탈출했을 때부터 확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그런 의심 속에서도 집사가 자신을 구하러 와 준 것이 기뻐서, 아직도 자신이 진짜인 것을 믿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밖을 돌아다녔던 것도, 그에게 자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 점점 힘에 부쳐왔다. 자신은 정말 진짜 아나이스가 맞는 걸까? 아나이스로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집사는 가짜인 너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따라나선 거야. 네게 아나이스로서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그를 보내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가 계속 고생하다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붕대 하나 가는 걸로 기력이 다한 집사는 창백한 안색을 한 채 토굴에 등을 기댔다. 언제까지 이렇게 좁은 토굴 속에 숨어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했다. 자신 따위보다 더 나은 주인을 섬겨야 했다. 아나이스는 무언가 각오를 한 듯 입을 열었다.

         

       “저기……그냥 이대로 돌아가지 않을래?”

       “……주인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바텔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있어 봤자 할아범 몸만 상하잖아. 딱히 할아범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그냥 베르그송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척하는 거야. 가짜가 나랑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할아범을 용서하겠지. 그렇게 그곳에서 가짜 녀석의 집사로 있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기회를 엿보는 거지. 괜찮지 않아?”

         

       바텔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주인에게는 연기를 정말 못했다.

         

       “전술, 전략적으로 지적할 점이 산더미 같지만, 주인님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범…….”

       “저를 떠나보내고 어쩌실 작정입니까.”

       “다, 당연히 계속 기회를…….”

       “자살하실 겁니까?”

         

       아나이스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고개를 거칠게 내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무, 무슨 끄, 끔찍한 소리야. 자살은 무슨. 내가 왜 자살해? 한다면 가짜 년이 해야지!”

       “주인님은 자신을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정곡을 찔러 들어오는 그의 말에 아나이스는 표정을 딱딱히 굳혔다가 곧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 언제부터 알았어?”

       “처음부터요. 주인님은 정말 연기에 소질이 없으시군요.”

         

       집사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가 아예 그런 고민을 안 하기를 바랐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수렁에 빠진 것처럼 몸을 뺄 수 없었다. 아무리 명확한 증거가 있어도 사고의 늪은 끊임없이 자신을 잡아당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아예 그런 의심 같은 건 구석에 밀어 넣고 자리를 되찾을 궁리만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아나이스가 이제 갓 성인이 된 여자애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사고무친이 된 그녀가 영지의 주인으로서, 상회의 회장으로서 얕보이지 않기를 바라서 의도적으로 무시했었다.

         

       “제가 주인님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인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 아냐. 사과하지 마. 당신은 잘못한 거 없어. 잘못된 게 있다면 내가……내, 내가 진짜가…….”

       “주인님.”

       “어, 어쩌면 내가 가짜인…….”

       “아가씨!”

         

       집사의 엄한 호통에 아나이스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그는 그녀가 베르그송 영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이후로 한 번도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눈을 날카롭게 뜬 그는 마치 어렸던 그녀가 무모한 짓을 저질렀을 때 그녀를 혼내던 시절의 그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늙은이를 용서하세요. 아가씨의 마음에 미혹이라도 불어넣기 싫어서 제 섣부른 추측을 입에 담지 않았던 거니까.”

       “그게……무슨 말이야……?”

       “아가씨는 제게 질문하셨죠. 제가 당신을 진짜라고 믿는 이유가 뭐냐고. 사실 앞서 말한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눈물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너털웃음을 터뜨려 보였다.

         

       “비행선에서의 저희가 나눴던 대화 모두 기억하시나요?”

       “응.”

       “도스빌 남작의 정보를 3급에서 5급으로 낮추라고 하신 뒤, 또 어떤 명령을 내리셨죠?”

         

       아나이스는 주간 보고서를 받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원더스타인 단장님에 대한 정보도 2급에서 4급으로 내리라고 했었지.”

         

       2급은 매일 보고해야 할 정보를, 4급은 한 달에 한 번씩 보고해야 할 정보를 의미했다. 그녀는 그때 한창 원더스타인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고, 도스빌 남작에 대한 명령을 내리면서, 그 고민 역시 묶어서 처리하려고 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량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반으로 나눕니다. 다음 하는 10분 뒤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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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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