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5

        

         –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십니까, 바로 포획할까요? –

         

         “아니, 잠깐만 내버려둬보자.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야지. …근데 뭘 진짜 저지르려고 하긴 하려나?”

         

         알프레드 씨가 나에게 중재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긴 하나, 그건 이해가 얽힌 당사자들과 나이 지긋하고 경험 넘치는 저기 사회인 분들이 해결할 문제지 나 같은 일용직 해커가 주제넘은 참견을 부릴 게 아니라 본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공격을 막고 지켜 드리기로 계약했어요?

         능동적인 노력을 몇 가지 제공한 건 어디까지나 약간의 지인 서비스 같은 느낌이었을 뿐이지.

         

         …알고 있는 무언가가 떠오를 것처럼 계속 머리 한 구석이 근질근질해서 엄청 신경 쓰이기는 해도!

         

         삑, 삐빅. 사이버웨어를 재빨리 조작.

         어차피 실시간 감시는 제로가 성실히 해주고 있겠다. 아예 시야 절반 이상을 빨대 꽂아놓은 감시망과 제로가 보내준 참고 자료의 과거 데이터를 로드해 꽉꽉 채워버렸다.

         

         제로는 그저 간략하게 ‘숨어들어왔다.’고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걸로 내 시간을 아껴주려 배려했지만… 솔직히 무늬만이긴 해도 수비측(?) 일원으로서 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나?

         

         과연 어찌 된 영문인지, 정확히 뭘 하고 싶어서 놀러 온 밤손님인지도 파악할 겸 구경을 좀 해보도록 하자고.

         

         ‘흠, 흐흠♪’

         

         콧노래를 부르며 화면을 체크하자 표기된 시간은 기업 VIP들을 실은 차량이 줄줄이 이곳 주차장으로 입장하고 난 이후.

         

         거리가 좀 떨어진 골목으로부터 으슥한 곳에 장기 주차를 해놓기엔 걱정되리만치 외견은 그럴싸한 차량이 나오더니, 대로를 따라 스르륵 이쪽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아무래도 경매장이라는 특수한 업종이다 보니 오고 가는 유동 차량이 많고, 저녁 경매 이벤트 준비로 직원들이 실내 업무에 몰려 있어 관리가 느슨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새인데.

         

         어쨌거나 주변이 충분히 한적해지자 차가 잠깐 들썩이고는 뒷문에서 크라이테리아 일반 직원과 동일한 복장의 남자가 슬쩍 밖으로 나왔다.

         

         소형화 배터리 특유의 용량 문제도 그렇고, 딱히 상품도 운송하고 있는 것도 아닌 무허가 드론이 같은 장소를 몇 시간이고 맴돌며 날아다니는 게 의심스러울 수 있기에.

         백업용으로 호출한 내 드론들을 크라이테리아 옥션 하우스 반대편 고층 건물 옥상에 까마귀 무리 마냥 주르륵 대기시켜 놨는데, 거기에 일련의 과정이 쭉 찍혔다.

         

         재수없게도 하필 사제 이동형 카메라에 단속 당하다니… 지지리 복도 없는 놈들이네.

         

         헌데 거 경매장 레터링까지 똑같이 박힌 제복은 또 어디서 구했대? 계획 범행의 냄새가 나는 걸.

         

         지금도 꽤 흥미진진하기는 했지만 아직이다. 재밌는 부분이 덜 나왔다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으니까.

         

         왜냐. 아까 외부 배전반으로 수작질을 부리고 들어올 때, 활짝 열린 정문과는 다르게 후문은 제대로 된 전자 도어 락으로 통제되고 있는 걸 얼핏 봤거든.

         

         저건 어떡할 거냐. 옷을 미리 갖춘 것처럼 직원 ID라도 하나 빼돌려 놨나? 하면서 한껏 기대하고 있었더니만. 상대는 내 상상보다 훨씬 그럴싸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돌파를 시도해왔다.

         

         찰칵!

         

         먼저 주머니에서 꺼낸 기다란 이동식 메모리 박스 같은 걸 도어 락에 꽂은 남자가 뒤이어 작은 헤어드라이어처럼 생겨먹은 뭉툭한 물건의 와이어도 후면에 이중으로 연결.

         

         난 능력 사용시에 이것저것 부가적인 장비를 쓰는 타입이 아니라 뭐가 뭔지 용도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따로 해설을 해줄 분석가가 곁에 붙어있어서 별 상관이 없었다.

         

         – 저명한 데이터 스내쳐(Data Snatcher; 자료 탈취기) 모델 중 하나입니다. 의도적 전송 지연을 일으켜 분석 시간을 벌고, 내부 코드를 알아보기 편하게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용도의 장치이며. 나머지 하나는 휴대가 간편한 소형 필름 프린터였습니다. –

         

         남자가 손목을 내밀어 스캔시키지만 당연히 거부된다.

         

         하지만 그 프로세스를 통해 얻은 지식과 표본이 있는지 얼마간 꼼지락거리더니… 즉석에서 프린터로부터 뽑아낸 생체 필름을 피부에 덧씌우고는 재인식, 불과 2분에서 3분 사이에 뒷문을 따고 입장하는데 성공했다.

         

         “오….”

         

         제법? 완전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점도 큰 가산 요소랄까, 사전 조사를 잘 한 것 같기는 해도 나처럼 믿을 구석이 많은 것도 아닐진대 호쾌하게 움직이는 게 엄청 대담했다.

         

         방금 그 해킹 프로세스는 직접 한 건가? 아니면 차 안에 공범 해커가 있나?

         

         하여간 잠입 액션 플레이는 경매장 내부에 들어와서도…. 아니, 안에서 외려 더 적극적으로 펼쳐졌다.

         

         노골적으로 안면부가 촬영될 수 있는 위치와 각도는 교묘히 피하고. 다른 직원이 스쳐 지나갈 때는 직장인 특유의 피곤한 표정 연기를 기막히게 구사해서 괜한 관심이나 대화를 무마한다.

         

         뿐만 아니라 정말 괜찮은 팀원에게 서포트를 받고 있는지 스태프 구역에 있는 보안문도 꽤 부드럽게 통과했으며, 여차할 경우에는 보안 장치에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고의적으로 경비 팀의 이목을 돌리고 그 위치에서 슥 빠져나왔으니.

         

         그렇게 가벼운 식사와 안주를 제공하기 위해 있는 자체 주방에서 능청스럽게 잔이 가득 놓인 쟁반까지 들고 손님들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메인 홀에 들어온 건 과연 갖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이룬 나름 멋진 대서사이긴 하다.

         

         ……굉장히 유감이나, 나와 제로에게 걸린 시점에서 아웃이지만!

         

         그것만 아니었다면 마무리도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다들 정치적인 얘기를 하느라 바쁘고, 서로를 살피느라 관심이 팔린 틈을 타 시야의 맹점을 잘 활용한다면 저기 옆에 밀어 놓은 상자 하나쯤은 훔칠 수 있을 법한데. 흠.

         

         “언니, 혹시 11시 방향 음료수 서빙하는 웨이터. 잠깐만 맡겨도 돼? 공범을 좀 찾아야 할 것 같아서.”

         

         “…확인했어. 근데 공범? 뭐, 범죄자야?”

         

         “아직은… 예비 후보군? 우리랑 전혀 다른 쪽에 고용된 용병이 아니면 뒷골목 출신 냄새가 좀 나던데.”

         

         남자는 무작정 우리 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힐끔 곁눈질을 한 다음에는 다른 손님들에게 음료를 권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지.

         

         아니, 사실 눈치를 본다는 것도 과정을 엿본 나니까 할 수 있는 방언이고. 겉으로만 보기엔 그냥 자기 일이나 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과열되어 있어서 망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매사 건물의 구조와 체제는 선행 조사했어도, 막상 홀에 입장해서 보인 게 예상을 웃돌게 우글우글한 사람과 포진한 드로이드 부대 플러스 보디가드라면… 존나 당황하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래.

         

         손기술로 사람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기계는 체계적인 교란 작전이 필요한데, 애당초 얘들은 여기 회사에 딸린 게 아니라 내 사유 재산이라 아예 쥐구멍을 새로 파야 고장 낼 수 있다.

         

         물론 그마저도 이 자리에선 제로와 나를 둘 다 기술적으로 뚫어내는 게 아니라면, 소프트웨어 오작동을 기대하느니 그냥 주요 부품이 망가지도록 둔기 같은 걸로 내리쳐서 부수는 게 훨씬 더 빠를 거고.

         

         …그러고 보니 제로가 전파 공격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지?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기는 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어디 사람으로 치면 멀쩡히 움직이면서 바쁘게 할 일하고 있는 도중에, 난입한 강도가 다리를 잡아 뽑으려 들거나 팔을 붙잡고 약을 주사해서 납치하려는 셈인가? 근본적인 난이도를 따지기 이전에 진짜 불같이 화를 낼 것 같네.

         

         내가 나서서 전파 공격을 막고 자시고 하기 이전에 존나 빡친 제로 손에 맞아 뒤지고도 남을 것 같잖아 그건.

         

         “얼른 역추적 좀 할 테니까, 그동안 저 인간이 무슨 짓 한다고 다짜고짜 ‘과잉 진압’해버리면 안 된다. 알았지…? 아, 그리고 한 대는 미리 주차장으로 보내.”

         

         – 확인했습니다. 화기 사용 엄금 및 3호기를 해당 차량으로 이동, 대응이 필요할 경우 미스 헬레나와 함께 육탄전 위주로 제압하겠습니다. –

         

         혹시나 잠깐 전자 세계에 다녀온 사이에 생포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거나 아무 말을 못하는 컨디션으로 변하는 끔찍한 마술이 일어날라, 두 명 모두에게 필히 당부하고 네트워크로 파고들었다.

         

         노리는 건 현장에 있는 저 남자를 지원하는 후방 해커와 차를 운전해왔을 드라이버.

         

         못해도 정보를 캐낼 표본은 둘 이상은 있어야 누굴 위해서 일하는지, 이 난리통에 들어오게 된 경위나 사정이 무엇인지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지 않겠나?

         

         하루에 출입 인원만 수백, 수천 명.

         건물 인근을 거쳐가는 유동 인구까지 포함한다면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많은 이들 중에 사이버웨어로 접속을 잘못 시도했다가 황급히 취소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아까 나나 얘네 해커가 한 것처럼 겁나 빠르게 치고 빠지면 경보가 울리기 전에 장난질을 치는 게 일반적으로 가능하지만….

         

         공교롭게도 난 증거 영상과 로그 접근 권한이 둘 다 있는 데다가 딱 그걸 찾은 목격자인지라, 몇 시 몇 분 몇 초에 이루어졌던 기록을 분석하면 범인이 남겨두고 간 실을 더듬어갈 수 있다.

         

         뭐, 억울해? 억울하시면 쫓기는 입장이 안 되도록 깨끗하게 사시면 됩니다. …아니면 나처럼 아예 안 들키던가! 핫하!

         

         “아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내로남불인가…? 음….”

         

         가상 공간은 기본적으로 무한한 고요의 바다.

         혼자 여기를 유영하다 보면 가끔은 오싹한 기분이 드는 만큼 시답잖은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가며 진입했는데, 생각보다 길 찾기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단 망할 실이 어마어마하게 배배 꼬여 있다.

         

         정신나간 암호화는 물론이고, 경로 분석을 막기 위해서인지 거쳐갔다고 찍히는 기지국의 숫자만 열 군데가 족히 넘는다.

         

         직전까지 북미에 있다가, 남미로 가질 않나. 유라시아 대륙을 막 떠돌다가 북극 기지 주소 찍고 다시 적도선 근처로 내려오질 않나.

         국적 개념이 없는 세상이니 신원을 갈아타는 건 아니지만… 이동 속도만 보면 초광속 이동을 밥 먹듯이 하는 아스가르드 인이 따로 없으시다 아주. 시발.

         

         덕분에 도중부터는 직접 더듬어 움직이는 걸 포기하고 낚싯대를 되감는 요령으로 일치하는 발자취를 죽어라 뒤쫓게 되었고.

         

         “……엥? 어라?”

         

         기나긴 추격전 끝에 높은 성벽을 마주했다.

         백신 프로그램이 좀… 많이 단단하다? 아니, 처음 겪어보는 압박감이라 당황스럽네. 진짜 뭐다냐 이거?

         

         여태 방화벽 망을 빠져나가는데 썼던 요령으로 틈을 만들고자 꾸욱 누르면 튕겨져 나간다.

         살짝 짜증을 담아, 능력을 끌어올려서 후려치면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기는 해도 어찌저찌 단단한 기반과 연계해서 버텨낸다.

         

         외견도 그렇고, 하도 단단해서 막상 진득하게 관통해서 들어가려고 꾸준히 손상을 가하면. 살아있는 생물이 자가치유를 시도하는 것처럼 꾸역꾸역 메꿔지는 게 엄청 기분 나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데 약간?

         

         ….

         어… 음……. 진짜 아니지? 에이, 설마…?

         

         “…마스터 권한 접속용 ID,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접근 코드, 21950715W.”

         

         [ 신원 확인 완료, 그라운드 제로 시큐리티 프로토콜 락다운 레벨 5 해제. 환영합니다. 개발자 아나스타샤님. 어떤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

         

         아잇, 이게 대체 왜 진짜인데!!

         

         “하… 현재 서비스 사용자 정보나 싹 긁어서 얼른 정리해줘.”

         

         통계상 많이 팔리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걸 굳이 깔아서 쓰는 사람이 벌써 생겼어?

         

         말이 개인용 버전이지, 기기 한 대에서만 써도 납부해야 하는 월 계정비나 구독료가 수십만 크레딧이 훌쩍 넘어가서 테크 얼리 어답터가 아니라면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음, 정말 우연치 않게도. 프로그램이 수집하여 제출한 사용자 등록 정보를 보니 반가운 얼굴 중 한 명이 구매자로 있었다.

         

         해커 명찰 달고 활동하는 주제에 자기는 심화 이론을 잘 모른다며 거리낌 없이 업혀 가겠다 선언했던 기간 한정 팀원.

         좋은 프로그램이나 툴이 있으면 엄청 적극적으로 쓰는 편이니, 만일 내가 개발하는 게 있다면 꼭 사겠다고 아이디어 제공자 역할을 했던 활기찬 여성.

         

         그때 에나마 본사 메인 로비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헤어진지 얼마만이야 이게.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외출해서 싸돌아다닌 영향인가? 아니면 격동의 시기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뭐 이리 아는 사람을 연달아 자주 만나는지 원.

         

         이렇게 되면 마침내 정체불명의 해커 녀석이 붙잡고 있는 라이브 컴퓨터에 뚫고 들어와놓고도, 막판에 비상문을 이용한 탓에 김이 샌 화풀이를 하기도 애매해졌다.

         

         몇 달이나 같이 합숙한 동료한테 너무 가혹하게 굴기는 좀 그렇지.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당장은 적대하는 입장일 가능성도 엄청 높으니까, 어디 가볍게 살피는 인사부터.

         

       

       

         [ 안녕, 마리나. 혹시 또 뭐 훔치러 왔어? ]

         

       

       

         흠흠, 이 정도면 충분히 프렌들리한 느낌이 강조됐으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요. 겁나 잘못된 만남이라 무서울 것 같아요~

    3월에 예비군으로 인한 강제 휴재가 연달아 있어서 웬만하면 그 전에는 컨디션이 나빠도 정기 휴재일 외에는 연재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작용으로 어마어마하게 지각하고 있는 건…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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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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