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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땅으로부터 드높게 비행선이 떠오른다.

     협곡에서 제국의 새벽하늘을 날아, 제국의 끝으로 향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

     

     비행선 내부 응접실 안.

     합스베르크 황제는 내 앞에 지도를 펼친 뒤, 테르시안 제국의 끝을 가리켰다.

     “목적지죠.”

     “도시 이름이 뭔지 알고 있나?”

     “딱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합스베르크 황제는 다소 섭섭하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으나, 내 모든 신경은 지금 우리의 옆에 놓여있는 회색 석관에 쏠려있다.

     

     “수년 전, 제국에 반란이 있었다네. 내가 즉위하기 직전 일어났던 반란이었지.”

     “그때였다면….”

     “이사벨라.”

     황태자비.

     황제가 씩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제국의 지박령과도 같은, 테르시안이라는 이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던 흡혈귀의 후예.”

     “…….”

     “이사벨라 황태자비는 죽었다네. 이사벨라와 협력하던 자들, 함께 반역하려고 했던 자들 모두 죽었지.”

     표면적으로는 황태자의 외척과 그 반란 세력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의 시작과 함께한 제국의 실세, 흡혈귀 집단의 일각이었다.

     황제는 자신이 황제에 이르기 전, 황태자 시절에 이미 제국의 모든 흡혈귀를 처리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가 갈 곳은 반역자들이 모두 처형당한 곳일세.”

     지도에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그냥 땅으로 놀려두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땅이다.

     애초에 흡혈귀의 본거지-제국의 실세들이 있던 곳이라는 건 지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땅이라는 소리.

     그곳의 지배자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건-

     “재건되었거나, 재개발된 곳입니까?”

     “아니. 아직은. 그러고 있지만.”

     황제는 지도를 향해 가볍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곳에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없네.”

     “살아있는, 사람은.”

     “그렇지.”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도 많은 의미가 전해지는 법. 

     “있는 것이라고는 마도 기계와 그걸 다루는 연금술사들, 그리고 제국의 안녕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노예들만이 존재할 뿐이지.”

     “밤낮없이, 노예들이라.”

     합스베르크 황제는 알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지 떠보는 걸까.

     “살아남은 흡혈귀들을 노예로 만들었군요. 더 이상 제국의 역사에 간섭하지 못하게.”

     우리가 가는 곳, 백은 공장이다.

     마도공학 연구소인 동시에, 인간이 있다면 제국의 관리자뿐인 곳이리라.

     “정확해. 120점 주지.”

     “애매하게 120점은 뭡니까?”

     “100점 만점에서 정확하게 답을 도출해 낸 것이 20점 보너스. 나머지 추가 점수를 얻지 못한 건, 자네가 지금 내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야.”

     쿵.

     “이러면 좀 집중할 수 있겠나?”

     합스베르크 황제가 한쪽 다리를 들더니, 그대로 석관의 위를 자기 발로 즈려밟았다.

     

     “고인모독입니다.”

     “고인을 만들어 온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쓰나. 그리고 이걸 가지고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행동을 하려고 하면서.”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뒤, 관을 향해 뻗은 지팡이를 당기며 긴장을 풀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정신적으로 지치고 있던 중이었다. 

     나보다 아버지가 훨씬 더 지쳐있어서 아버지를 나리아와 함께 후작성으로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전인 상태였기에 이 뒷수습을 맡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오직 나만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완전하게 끝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

     다른 이라면 괜히 황금의 유혹에 시달릴 것 같기에, 나는 당장 언제 관 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황금의 존재를 억제하느라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잠깐 부탁드립니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 부탁해도 되는데.”

     “…….”

     황제라면, 아마 내가 잠깐 신경을 꺼도 될 것이다.

     관을 향해 흘려보내는 마나를 바탕으로 관 속에 있는 것이 행여나 부활한다거나 무언가 또다른 기적으로 재생된다거나 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를 조금은 느긋하게 해도 된다.

     ‘황제도 세인트 지오 깜짝 부활쇼 같은 건 질색할 테니, 방심하지는 않을 거야.’

     나만큼은 아닐지라도, 나 다음으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 대해 불신하고 경계하는 이를 손으로 꼽아보자면 당장 황제가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테니.

     “…우리가 가는 곳, 제국 최대의 백은 생산공장입니까?”

     나는 잠시 머리가 맑아진 사이, 지도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하네. 지금부터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점수를 가져가면 되네.”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시민권은 있습니까?”

     “노스트럼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비유하자면, 이곳에 사람은 없네. 전부 노예만 있을 뿐이지.”

     시민은 없고 노예만 있다.

     사람은 없고 흡혈귀만 있다.

     “죄수라거나, 반역자라거나, 제국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노동교화로 사법 거래를 한 겁니까?”

     “자네를 통해서 배운 거지. 후후후.”

     합스베르크 황제가 자기 목을 가볍게 한 손으로 움켜쥔다.

     “적당히 제어할 수 있는 흡혈귀들만 잡아다가, 영원히 제국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었지. 내부적으로는 여러 단계의 계급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신분에 이르면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걸로.”

     “그러다가 죽으면 백은으로 만드는 겁니까?”

     “어차피 죽여야 할 자들이었고, 어차피 없어져야 했을 자들이야. 그런 이들이 그나마 수년 동안이라도 더 목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는데, 당연히 입 닥치고 일해야지. 안심하게. 죽일 이들은 철저하게 죽였으니까.”

     아마도 발자크 자작이라거나, 제로스 후작이라거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같은 자들.

     죽어야 할 자들은 전부 죽었고, 그나마 저기 백은공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런 자들의 아래에서 일했던 실무자들이거나 스스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일 것이다.

     “특히 자네에게 제일 감사하고 있는 건 역시 ‘밤낮으로 일하는 노예들’이야. 자네가 흘려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우수한 노동 가치를 가진 이들을 함부로 다 죽여서 고작 약물 따위로 만들어 버릴 뻔하지 않았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런 거, 내가 딱히 제안한 건 아니다.

     회귀 전의 황제에게도 딱히 이런 방향의 제안을 한 적은 없었다.

     “원래 아이디어라는 건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어떤 아이디어에서 이런 끔찍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나온 겁니까?”

     “자네가 노스트럼의 뛰어난 영웅의 핏줄을 대학원생으로 뽑아다가 밤낮으로 굴리라는 그 제안.”

     아.

     “그거, 바토리 소장에게 농담으로 했던 말인데. 역시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었던 겁니까?”

     “오로솔 아카데미 초창기에나 그런 사소한 대화조차 넘어왔지, 이제는 그렇지도 않아. 바토리 소장도 아무래도 자네에게 푹 빠진 모양이라서 말이야.”

     “…….”

     체력적으로 우수한 영웅의 핏줄을 대학원생이자 연구원으로 굴리라고 했던 말이 설마 제국으로 넘어와서는 설마 이런 식으로 발현될 줄이야.

     인간의 흡혈귀화.

     죄수의 노예화.

     그리고 시체의 백은화.

     제국의 수많은 공산품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대로 백은이 되어 출하되는 공장 흡혈귀 노예들에 의해 밤낮으로 생산되고 있다.

     왕국이 지금부터 공장을 세워 제국산 공산품에 대항한다고 하더라도, 그 생산 속도를 따라갈 수나 있을지.

     “자네가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내게서 빼앗아 갔으나, 나는 자네 덕분에 밤낮으로 일할 수 있는 흡혈귀 노예 수천수만 명을 손에 넣었으니까.”

     “딱히 바토리 소장을 빼앗은 적은 없습니다만….”

     “이미 그녀는 배신을 했어.”

     황제는 단호하게 정색하며 말했다.

     “제국과 지브롤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그 자리에서 제국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제국에 대한 배신이지.”

     “설마 바토리 소장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제국이랑 지브롤터가 반목하는 상황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거부감이 없다?”

     “그럴 리가요. 폐하께서 그걸 가정하셨으니, 저는 그저 바토리 소장의 선택에 대하여 말할 뿐입니다.”

     바토리 소장은 그저 지브롤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연구하는 걸 좋아할 뿐이다.

     “그녀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저 제국에서 하지 못하는 연구를 마음껏 노스트럼에서 하는 것뿐입니다.”

     “연구라…. 그녀가 진정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곳은 첩보거늘.”

     “개인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부분과 그 개인이 가장 선호하는 방면은 다를 수 있는 법이죠. 저는 바토리 소장이 첩보나 정보전 등이 아닌, 대륙의 평화를 위한 기술혁신에 더 집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술혁신이라.”

     황제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기술혁신의 일환으로 한 번 보여주겠나? 자네의 방식을 백은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아무래도 그 어떤 때보다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테니 말이야.”

     “효과야 엄청나겠죠.”

     공포와 억압에 의한 통치자에게 있어, 이 방법은 그 어떤 방법보다도 더 끔찍하고 압도적인 공포를 피지배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저는 그런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건 아닙니다. 그저, 재료를 빌리려고 하다 보니 그 방법을 보여드리게 된 것일 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인간을 제외하면, 이런 식으로 묻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겁니다.”

     오직 시간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이를 끝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 * *

     잠시 뒤.

     

     나는 어둠 속에서도 깡, 깡 소리를 내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소리 가득한 공장 부지의 끝자락, 절벽에 가까운 옛 성의 터에 도착했다.

     “여기는 공장이 아니군요? 본보기입니까?”

     “정확해. 이사벨라 황태자비가 몰락했던 성이었지.”

     “…….”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했을 것 같은 낡은 성이 무너진 폐허.

     시간이 밤이라 주변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알싸한 백은 냄새와 짙은 흙냄새가 내게는 낯설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땅을 다시 쓰지 못할 정도로 참 많이 뿌려져 있군요. 다시 쓸 생각 없으십니까?”

     “반역자의 흔적이라는 건 이렇게 파괴된 흔적을 그대로 두는 걸로 의미를 가지는 법이지.”

     “이해합니다. 제국이 반역자를 상대로 어디까지 잔인해지는지, 그 실물이 버젓이 남아있으니.”

     백은을 만들고 남은 걸 처리하거나, 혹은 인간이었던 것을 불태워 처리하는 곳.

     좋게 말하면 화장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시체 소각로와 다를 바가 없다.

     “됐습니다. 제게 필요한 건 전부 이곳에 있으니, 그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전부 준비되어 있네.”

     황제는 신이 난 듯 뒤로 손을 흔들었고, 곧 똑같은 제복을 입은 그림자들이 수레를 여러 개 가져왔다.

     “이제 이걸로 무덤을 만들 생각인가?”

     “무덤이라.”

     나는 석회암과 다른 모래, 자갈, 그리고 백은 가루가 잘 섞이도록 삽을 휘저은 다음, 그 가루의 안에 물을 부었다.

     “비석을 만들 겁니다.”

     “비석?”

     “예. 관의 안에 이걸 채우고, 관 밖으로도 이걸 발라서 우뚝 서게 만들면 되겠네요. 거기다가 문구 좀 적어놓고.”

     “무슨 문구? 명문이라도 남겨두게?”

     “음….”

     나는 관뚜껑을 열었다.

     “글쎄요.”

     다행히, 여전히 안에 있는 것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하필이면 눈이 나를 향하고 있어서 내가 뭘 하는지 바라보려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이 안에 석회암과 백은을 굳혀 만든 회색 벽돌의 안쪽에 한 인간의 잘린 머리가 있다는 걸 알리지 않으려면, 지성과 상식이 있는 이라면 절대 건드리지 않을 그런 문구를 남겨둬야겠죠.”

     그 누구도 내부를 확인할 그럴 생각을 못 할 그런 묘비의 문구.

     “만지지 마시오. 건드리면 무능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여기에 잠들다.

     “농담입니다.”

     절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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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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