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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크라슈의 백염.

   아서의 섬광.

     

   두 개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침식종들은 썰려나갔다.

     

   둘의 힘은 일반 침식종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침식종들의 정리를 마친 두 사람이 어느새 한 점으로 몰려들었다.

     

   침식종을 이끄는 세계 침식의 주인 중 하나, 발키레오스라는 침식종이 건물을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키레오스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크라슈와 아서를 발견했다.

   녀석은 즉시 뿔을 들이밀며 응징하려 했으나 크라슈와 아서는 그보다도 빨랐다.

     

   아래쪽에서는 백염이, 위에서는 섬광이 흩뿌려졌다.

     

   발키레오스의 심장이 백염에 의해 불사 질러졌다.

   발키레오스의 머리가 섬광에 의해 잘려 나갔다.

     

   쿠웅!

     

   두 일격을 감당치 못하고 발키레오스가 쓰러졌다.

   그것으로 잠시 주위에 일어난 흙먼지와 함께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사, 살았어?”

   “살았다! 살았다고!”

     

   곧이어 자신들이 살아남았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크라슈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한숨을 돌리고 있는 아서가 있었다.

   역시 다시 보아도 아서는 강했다.

     

   수많은 회귀를 거듭해 그가 강해진 것도 분명 있을 테지만.

   아서 또한 창공의 세대들 못지않은 충만한 재능을 가진 이였다.

     

   ‘만약 정말로 아서와 협력해 함께 싸울 수 있었다면.’

     

   그런 세계가 존재했다면.

     

   멸망을 막는 것이 더 수월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한 길은 아서도, 크라슈도 포기했다.

   아서는 크라슈를 배신했었고, 크라슈는 아서를 배신했었다.

     

   서로에게 남아 있던 배신감은 더 이상 두 사람을 동일선상에 세워놓게 해주지 못했다.

     

   “당신, 내 생각보다 더 강하네.”

     

   검을 허리춤으로 되돌린 아서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크라슈는 그것이 신성 왕국 프리만의 성검임을 눈치챘다.

     

   역시, 이 시간선의 아서 또한 성검을 애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생했어. 이야기를 딱히 들려줄 생각은 없긴 하지만. 당신 덕분에 수월했던 건 사실이니까.”

     

   아서는 그리 말하며 무사히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조금의 안도가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은 분명 크라슈가 알던 아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서는 사람을 지키는데 이익을 먼저 따지는 사람이었으니까.

     

   확실히 이미 닳고 닳아 버린 아서보다 희망차 보였다.

     

   “몇 번쯤 해야 이런 일이 안 생길까.”

     

   그러나 크라슈가 알던 아서 만큼 닳지 않았을 뿐.

   크라슈는 그녀에게 점차 균열이 생겨나고 있음을 눈치챘다.

     

   “차라리 그때…….”

     

   혼잣말이 길어졌던 그녀는 움찔거리며 크라슈를 힐끗 보았다.

     

   “미안, 내가 한동안 혼자 있던 시간이 길어져서 혼잣말이 좀 있어.”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 판인데. 그런 거 하나쯤 있다 해서 문제시할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도 크라슈는 아서가 말한 혼자가 신경 쓰였다.

   왜인지 그녀가 오랫동안 혼자 있었던 이유에 자기 죽음이 관련 있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아서는 크라슈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은 제쳐두고, 크라슈는 우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야 했다.

     

   크라슈의 시간선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서 그라말테.”

     

   부름을 들은 아서가 크라슈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크라슈는 시선을 멸망한 제국 에파니아 방향으로 옮겼다.

     

   “정복의 백기사를 쓰러트릴 생각이지.”

   “…….”

     

   아서가 잠깐 침묵했다.

   그녀는 여러 생각을 하는 듯 침묵을 이어 가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응, 쓰러트릴 거야.”

     

   회귀를 이어오며 지금까지 새겨진 사명.

   그 사명을 위해 아서는 정복의 백기사와 맞설 작정이었다.

     

   “돕겠어.”

     

   아서의 눈이 크라슈에게 닿았다.

   진심이냐는 의미였다.

     

   크라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그놈은 쳐 죽이고 싶으니까.”

     

   크라슈에게도 나름대로 정복의 백기사에 관한 정보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먼 거리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했을 뿐.

   정복의 백기사와 직접 부딪쳐 싸워 본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기회다.’

     

   정복의 백기사와 직접 싸워보고, 그에 관한 데이터를 얻을 기회.

     

   제일 좋은 것은 최흉을 전부 흡수해 묵시록의 4기사의 탄생을 막는 것이겠지만.

   항상 최악의 최악을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것이었다.

     

   “당신, 죽을 거야.”

     

   아서는 솔직하게 크라슈가 살아남지 못할 거라 말하였다.

   하지만 크라슈는 오히려 입가의 미소를 띄웠다.

     

   “언제는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싸운 적 있어?”

     

   이기는 싸움만 해서 강해질 수 있었다면 시도조차 안 했다.

   크라슈는 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렇기에 강해질 수 있었다.

     

   아서는 크라슈의 진심을 깨닫고는 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정복의 백기사를 무찌를 수 없어.”

     

   아서는 그리 말하며 자신이 쥔 성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애석하게 그냥 보내버린 시간이 아쉬운 듯이 쓰라린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정복의 백기사를 쓰러트리기 위해 밑 준비가 필요해.”

   “다른 천상사강들은 어쩌고 있어?”

   “들은 무슨, 천상사강이라고 해봤자 이제 락테아의 그 남자밖에 안 남았어. 전 천상사강을 포함해 죄다 죽었으니까.”

     

   크라슈는 이 시간선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임을 눈치챘다.

   적어도 회귀 전 크라슈 때에는 묵시록의 4기사가 나타날 때 천상사강들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창공의 세대도 이제 없어. 몇몇 살기는 했겠지만, 이제는 사실상 다 죽었으니.”

     

   그녀는 한숨을 커다랗게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메리 다이아나, 그 멍청한 년이 군을 이끌지만 않았어도 더 살아남았을 텐데.”

     

   뜻밖의 이름이 아서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서는 메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질린 기색을 풍겼다.

     

   ‘이랬던 녀석이 어떻게 메리를 꼬셨던 거지.’

     

   회귀를 허투루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준비는 얼마나 걸리지?”

   “적어도 일주일, 성검을 진짜 모습으로 개안시킬 거야.”

     

   그러면 왜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이 걸리는지 이해가 간다.

     

   “문제는.”

     

   아서가 세상을 돌아보았다.

     

   과연, 일주일씩이나 이 세상이 버틸 수 있을까.

     

   정복의 백기사는 철저하게 인간을 도륙하고 다닐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 인간은 불필요한 존재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4일, 4일 안에 끝내고 오겠어.”

     

   아서의 두 눈에 의지가 차고 흘렀다.

   분명 무리한 일이 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불사지를 마음으로 시간 단축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가는 길, 돕지.”

     

   당장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크라슈가 도울 수 있다면 아서도 좀 더 편하게 성검을 개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성검을 개안시킬 수 있는 장소는 성지(聖址)야. 여기서 먼 만큼 속도를 최대로 올릴 생각인데. 따라올 수 있겠어?”

     

   크라슈는 자기 다리를 가볍게 풀어 보였다.

     

   “나 말고 널 따라갈 수 있는 녀석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을 거다.”

     

   크라슈의 자신을 엿본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주지 않을 거니까. 알고 있어.”

   “바라던 바야.”

     

   아서는 그 말을 남기고, 달릴 준비를 하던 도중 크라슈를 스윽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신은 이름이 뭔데?”

     

   여기서는 크라슈라고 말한다 한들 소용없겠지.

     

   “크라드.”

     

   그러니 크라슈는 그냥 예전에 사용했던 가명을 쓰기로 했다.

     

   크라슈에서 한 글자만 바뀐 이름이다.

   당연히 아서도 그 부분이 신경 쓰일 테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세상이 이 꼴이 난 마당에 어떤 이름을 쓰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간다.”

   “그래.”

     

   성지.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아서와 크라슈가 나아간 순간이었다.

     

     

   * * *

     

     

   아서의 섬광이 꼬리를 물고 물며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우 마냥 아서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크라슈도 마찬가지였다.

   멸화침식을 발동시킨 뒤 엑셀을 사용하고 있는 크라슈는 아서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서가 뒤를 힐끗 보았다.

     

   ‘어떻게 나를 쫓아오는 거지.’

     

   아서의 섬광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아서의 뒤를 쫓아 올 수 있을 정도라면 메리의 엑셀밖에 없었다.

     

   ‘설마 엑셀을 쓰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아서는 의문을 보이면서도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걱정 없이 속력을 높이며 산을 계속해서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래도 성지는 꽤나 멀었다.

     

   둘의 엄청난 속도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쉬지 않고 달리기만 반복한 결과.

   둘은 해가 뜰 때쯤 겨우겨우 성지의 앞에 도착했다.

     

   성지, 다른 말로는 신들이 눈을 감은 땅.

   성지의 앞에 도달하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새하얀 안개였다.

     

   그러나 크라슈와 아서는 이것이 보통 안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땅에 추락한 신들의 육체가 시간이 흐른 뒤, 분해 되어 작은 입자가 된 형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성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 안개에 담긴 신의 입자를 삼키는 순간 몸이 감당치 못하고 파괴되기 때문이다.

     

   “크라드, 들어갈 수 있겠어?”

     

   아서의 경우 이미 반신의 영역에 올랐다.

   그러니 신의 입자가 몸에 들어온다 한들 그녀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별문제 없어.”

     

   하지만 크라슈 또한 여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크라슈의 몸 내부에는 사계가 있다.

     

   아무리 신의 입자라고 한들 이제는 제 의지를 상실해버린 힘일 뿐.

   흡수하는 족족 사계가 전부 삼켜 다른 걸로 치환시켜 버린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야.”

     

   그는 제 발로 직접 여기까지 따라왔다.

   아무 생각 없이 쫓아온 게 아닐 터.

     

   아서는 크라슈를 믿기로 하고, 바로 성지 내부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갑갑한 안개가 이어졌다.

   신의 입자가 퍼진 안개는 숨을 들이켜는 것만으로 어딘지 모르게 괴로운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인지 크라슈와 아서는 최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크라슈도 이곳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크라슈로서는 따라올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까.

   아서 쪽에서 대뜸 걸음을 멈칫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멈춤에 따라 크라슈의 제 육감도 따라 발동됐다.

   안개 너머 무언가가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신의 사자들이야.”

   “신의 사자?”

   “신을 믿고 따르던 망령들, 자기 신이 죽고 나서 믿을 곳이 없어진 뒤로 이곳에 남아 신의 입자로 연명하는 기생충들이지.”

     

   이건 확실히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놈들이 여기로 온다는 건.”

   “전투야. 자기네들의 연명 수단인 신의 입자를 훔치러 온 침입자라 판단했을 테니까.”

   “싸워야 한다는 소리네.”

     

   크라슈가 우뢰성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아서는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달리자. 어차피 곧이니까.”

     

   이쪽은 아서가 더 전문가일 것이다.

   크라슈는 더 묻지 않고, 아서를 따라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서와 함께 안개 속을 뚫으며 달려 나가는 사이, 신의 사자들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이런 안개 속에서도 헤매지 않고 똑바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 왔어!”

     

   그때 아서의 걸음이 멈춰 섰다.

   거기에는 어떤 제단이 있었다.

     

   아서는 제단의 중심으로 걸어가더니 제단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한차례 쓸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성검을 뽑아 놓곤 제단 위에 올려 두었다.

     

   “준비는 됐어. 문제는.”

     

   아서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안개 안 가득, 신의 사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새하얀 색의 증기 같은 형체의 놈들은 검붉은색의 눈빛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런 놈들의 기다란 손에는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신의 입자를 먹고 사는 놈들답게 그들도 일부나마 신의 권능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성검을 개안시키는 것을 방해받는다.

     

   “아서, 개안 준비해.”

     

   그때 크라슈의 몸에서 새하얀 백염이 피어올랐다.

     

   처음 따라온 대로 크라슈는 아서의 성검 개안을 돕기로 했다.

   그러니 지금 할 일은 간단했다.

     

   아서가 성검을 개안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다.

     

   “광신도 놈들은 내가 다 쓸어 줄 테니까.”

     

   예부터 광신도는 매가 약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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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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