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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5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

    골든-메카-티라노 로켓으로 회색 사신을 우주로 보낸 뒤, 제임스는 약간의 여유를 즐기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발생한 비상사태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브젝트 차단 방호복이 다 떨어졌으면, 바이러스 차단 방호복이라도…!”

    “화염 방사기 여유분이 있으면 서둘러서 관악산 방면으로 옮겨 주세요!”

    “서둘러서 비상사태를 선포해 주세요.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도 조만간 발표할 겁니다!”

    제임스 타워에 마련된 상황실에서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리거나 전화를 돌리는 중이었다.

    일명 ‘녹색 달 박테리아’ 사태로 인한 것이었다.

    한국에 발생한 호랑이 떼는 물론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봉황 같은 전설 속의 생물까지.

    녹색 달에 의해 창조된 모든 생물이 암녹색의 끈적한 점액으로 변해버리는 현상이었다.

    그저 녹아버리는 현상이었다면 위험한 호랑이 같은 생물이 사라져서 좋은 일이었겠지만, 발생한 점액은 끊임없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고 증식하고 있었다.

    동물, 식물 같은 유기물.

    금속이나 돌 같은 무기물.

    심지어는 대기 중의 기체까지.

    그야말로 모든 물질을 섭취하고 증식하는 끔찍한 박테리아였다.

    마치 SF에서 나오는 모든 물질을 집어삼키고, 그레이 구로 만들어 버리는 나노머신 같았다.

    다행인 것은 증식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다는 점과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이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 대응 방법은 단순했다.

    고온의 열로 태워버리는 것!

    하지만 대응 방법조차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역시 재생하는군.”

    제임스는 미국에 있는 제임스 연구소에서 보내온 실험 데이터를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박테리아는 마치 세희 연구소에서 격리 중인 ‘푸른 도마뱀’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려도, 부활하고 있었다.

    사실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현장에서 박테리아 점액을 완전히 태워버려도 박테리아 점액은 다시 스멀스멀 나타나곤 했으니까.

    태우는 것은 그저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삐-!

    그 순간 상황실에 붉게 표시된 지도의 일부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관악산 방면에 붉은 사신들이 도착했습니다!”

    상황실 모니터에는 관악산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암녹색 점액을 태우고 있는 붉은 사신들이 보였다.

    ‘혁명!’

    붉은 낫과 망치를 들고 날아다니는 붉은 사신들.

    붉은 사신들은 서울 숲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신에게 지구가 구원받는군.”

    제임스는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붉은 사신 출현 보고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다 좋은데, 저 붉은 낫과 망치는 없어도 되지 않나?”

    제임스는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분명 저 낫과 망치로 인해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녹색 달이 점거한 제임스 우주 정거장.

    녹색 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새로운 권속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암녹색 점액을 사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불멸.>

    진화액을 모방한 녹색 달은 진정한 불멸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다루는 녹색 달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진화액처럼 단순하고 강력하게.

    죽여도 죽지 않고 그저 생명이 순환하는 고리로 되돌아갈 뿐인 완전한 생명.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확신한 녹색 달은, 나약한 신에게 자기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녹색 달이 공격 의지를 뿜어내는 것과 동시에 암녹색 점액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점액은 한때 녹색 달이 만들었던 수많은 동물의 모습을 취했다.

    호랑이 같은 현실적인 동물부터 시작해서, 드래곤 같은 상상 속의 동물까지.

    이제는 메마른 공간이 되어버린 녹색 달의 영역을 그런 괴물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괴물들로 가득할 텐데, 회색 사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른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일부가 되어라.>

    마치 개미 떼처럼 회색 사신을 향해 몰려 들어가는 괴물의 해일.

    하지만 회색 사신은 그 무시무시한 해일을 바라보며, 그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 뿐이었다.

    ‘뀩.’

    그리고 허공을 쥐어뜯는 것처럼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공간이 우그러지며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신의 위용, 신의 힘, 신의 분노.

    하지만 그런 막대한 힘 앞에서도 녹색 달의 자신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색 사신’의 존재감이 조금 줄어든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것은 회색 사신이 저 대단한 공간 절단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할 수 있겠지만, 무한히 계속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반면 녹색 달의 죽음과 탄생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일어나는 현상.

    아무런 소모가 없는 불멸!

    녹색 달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죽은 괴물들을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다시 일어나, 우리로서 봉사하라.> 

    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녹색 달을 구성하고 있던 본질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영원히 생명의 고리를 순환해야 할 본질이 줄어든 것이다.

    녹색 달이 당황하기 시작하자, 회색 사신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웃었다.

    마치 ‘히히’ 하고 웃는 것처럼.

    그리고 회색 사신이 양손을 활짝 펼치자, 지면에서 괴물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민트초코 호랑이.

    오색 사탕 봉황.

    솜사탕 드래곤.

    마지막으로 롤케이크 티라노.

    과자로 만들어진 괴물의 무리가 녹색 달을 둘러싸고 있었다.

    모두 녹색 달 생명의 고리 속에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이제 괴물들은 과자의 고리에 속한 존재들이었다.

    녹색 달은 이제서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회색 사신의 몸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변질시키는 과자의 생태계.

    미니 사신 정원을 본 녹색 달은 끝없는 공포에 잠겨, 또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진화액에게서 도망쳤던 것처럼.

    ***

    밀림에서 황폐한 환경이 되어버린 제임스 우주 정거장.

    녹색 달의 파괴 조건 <생명의 고리를 끊는다.>의 해결 방법은 암녹색 점액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암녹색 점액을 이루는 박테리아들의 파괴 조건은 굉장히 단순했다.

    <세포의 구성을 상당 부분 파괴한다.>

    그 점액은 끊임없이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박테리아의 덩어리였는데, 나는 그 과정이랑 비슷한 능력을 하나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푸른 외신’의 영혼 능력.

    죽은 오브젝트를 부리는 외신의 능력이랑 비슷해 보였다.

    ‘그럼, 그 ‘생명의 고리’를 끊으려면 푸른 거인을 불러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다른 점을 깨달아버렸다.

    애당초 저거 ‘달’의 능력이잖아.

    그럼 푸른 구체를 부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한 번 ‘죽고’ 부활하는 오브젝트 능력이라면.

    게다가 외신 급이 아닌, 달 급의 능력이라면.

    죽이는 순간 미니 사신 정원으로 들어올 것 같네.

    히히.

    그래서 장난치는 기분으로 놀아주고 있었는데, 녹색 달은 내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 도망치기 시작해 버렸다.

    ‘재미없게, 도망가지 마!’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괴물을 ‘뀩’으로 으깨버렸지만, 점액은 중심 개체를 잃어버려도 도망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녹색 달이 그 시작이었다.

    완벽한 원을 그리던 녹색 달의 경계가 흐물흐물해지더니, 결국 달 전부가 암녹색 점액으로 변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녹색 달은 자신의 형상마저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녹색 달이 완전히 녹아내리자, 공간을 채우던 대기와 지면은 물론 공간 그 자체마저도 점액으로 녹아내렸다.

    그렇게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힘’마저 점액으로 바꿔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간에 구멍이 뚫리고, 그 너머로 거대한 지구와 우주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는 것은 끝없는 우주였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은하수와 갈기갈기 찢긴 우주 정거장의 잔해와 시야의 한쪽을 가득 채우는 지구가 보였다.

    그렇게 녹색 달의 공간 침식이 모두 사라져 버리자, 나는 드디어 미니 사신 정원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미니 사신과 거대 모스 볼, 그리고 생존자도 나처럼 갑작스럽게 우주로 내던져졌다.

    정신을 잃은 미니 사신들은 정신을 잃은 채 둥실둥실 지구를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고, 생존자 여자도 모스 볼을 껴안고 진공 속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

    ‘위험해!’

    끝없는 진공 속에서 점점 지구로 끌려들어 가는 와중, 검은 사신들은 깜짝 놀라서 미니 사신들과 생존자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찰싹찰싹.

    검은 사신은 자기 몸을 흐물흐물하게 만든 뒤, 미니 사신과 생존자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검은 사신이 잔뜩 달라붙자, 둥글게 부풀어 올라서 검은 사신 구체를 완성했다.

    추위와 열기는 물론, 압력의 변화와 공기의 출입마저 차단하는 검은 사신 구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위험해 보였다.

    산소 부족 같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검은 사신 구체를 통째로 미니 사신 정원으로 보내버렸다.

    잠든 미니 사신들과 생존자와 검은 사신을 모두 미니 사신 정원으로 보내자, 남은 것은 황금 사신들뿐이었다.

    이 녀석들도 정원으로 집어넣을까 했지만, 무중력을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가면서, 점액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세포 단위로 흩어져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녹색 점액들이 보였다.

    지구 전역으로 흩어져서 숨어들 생각인 건가?

    녹색 점액을 일일이 공간 절단으로 죽이기에는 너무 넓게 흩어진 상태였다.

    대기권에서 타버리기 시작하면 더욱 추적하기 힘들어지겠지.

    ‘어쩔 수 없네.’

    나는 미니 사신 정원에서 푸른 구체를 꺼내 들었다.

    푸른 구체를 찢고 나오는 푸른빛의 거대한 회색 사신.

    일명 푸른 거인.

    내가 푸른 거인의 몸을 조종하기 시작하자, 장작이 꽤 빠른 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브젝트 영혼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역에서 죽은 오브젝트의 영혼을 자기 것으로 수집하는 ‘푸른 외신’의 능력이었다.

    대기권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박테리아들은 빠른 속도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만들어질 때부터 생물이라기엔 굉장히 불안정한 구조를 가진 박테리아들의 한계였다.

    아마 그렇게 쉽게 죽어버리는 박테리아의 영혼들은 생명의 고리에서 순환해서, 다시 태어나는 거겠지.

    하지만 죽어버린 박테리아의 영혼들은 생명의 고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푸른 거인에게 강탈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어버린 박테리아들은 모두 생명의 고리에서 빠져나와, 푸른 거인에게 수집되었다.

    녹색 점액들이 죽어가는 동안, 황금 사신들은 다양한 자세로 대기권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입안이 따뜻해!’

    입을 크게 벌리고 떨어지는 황금 사신들.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떨어지는 황금 사신들.

    몸을 공처럼 말고 떨어지는 황금 사신들.

    태양을 바라보며 만세를 하면서 떨어지는 황금 사신들.

    황금 사신들은 모두 각자 가장 좋아하는 방법으로 대기권을 돌파하며 혜성이 되고 있었다.

    일명 황금 사신 유성군!

    ***

    하늘 위에 8개의 달이 떠오른 밤.

    회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커다란 회색 달을 중심으로 무질서하게 흩어진 일곱 색의 달의 밤이었다.

    그 밤 중, 한산한 길거리에 바닥에 널브러진 신문이 하나 보였다.

    그 신문의 1면에는 굉장히 특이한 사진이 한 장 실려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하고 푸른 빛을 띤 회색 사신의 사진이었다.

    그 옆에는 마치 혜성처럼 보이는 황금 사신들도 잔뜩 찍혀있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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